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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98화 (298/609)

00298  결정이 필요한 때  =========================================================================

10여 대의 장갑차가 줄을 이어 들판을 내달렸다.

어느 한 지점에 이르자 장갑차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세 무리로 흩어졌다.

3시 방향으로 진격을 바꾼 3대의 장갑차는 속도를 늦추었고, 확성기를 통해 커다란 음성이 흘러나왔다.

「본 차량은 북한 주민 여러분들을 구조하기 위한 미합중국 차량입니다. 주민 여러분은 안심하시고, 속히 본 차량에 탑승하시기 바랍니다. 본 차량은 주민 여러분을 무사히 구조해드리기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본 차량은…….」

확성기에서는 한국어로 된 음성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숨어있던 주민들이 반신반의하며 나왔다.

평양이 소멸했다는 이야기는 그들도 들었다. 이미 북한 전 지역에 소문이 파다했으며, 라디오에서도 쉴 새 없이 그 이야기만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우리를 끌어내서 죽이려는 거 아니야?”

“미국이 뭐 하러 그런 짓을 해? 우리는 군인도 아닌데.”

“미제놈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잖아.”

그렇게 두려워했지만, 결국 몇 몇 주민들이 장갑차 부대로 접근했다.

노동당은 미국을 불구대천의 주적이라며 홍보하고 세뇌했으나, 지금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는 원수의 손이라도 잡고 볼 일이었다.

주민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장갑차가 선회하며 후방을 드러냈다. 후방 탑승 도어가 열리자 텅 빈 내부가 드러났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주민들은 내부에 식수와 식량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달려들었다.

「현 지역은 방사능 노출로 인해 위험합니다. 가급적 빨리 피신해야 하니 서둘러 탑승해 주십시오.」

차량 운전수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지만, 주민들은 결국 장갑차에 탔다. 탑승이 완료되자 장갑차 무리는 왔던 방향을 그대로 되짚어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리자 다른 방향에서 온 아군 장갑차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합류했다. 3무리로 나뉘었던 장갑차는 다시 10대로 뭉쳤고, 주행이 길어질수록 합류하는 무리가 늘어났다.

그렇게 30대 이상으로 불어난 장갑차 부대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도로였다.

도로 위에는 커다란 군용 수송기 1기가 시동을 걸고 대기 중이었다. 한쪽에는 연료 및 생존 물자가 가득 쌓여 있고, 10여 기가 넘는 야전 로봇이 물자를 지키고 있었다.

장갑차 무리는 일제히 수송기 후방에 내린 뒤 탑승도어를 개방했다.

「주민 여러분들은 수송기에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안전한 곳까지 수송해드릴 것입니다.」

반신반의하며 내린 주민들은 미군이 정말 자신들을 구하러 왔음을 깨달았다.

허탈함, 감동, 충격, 노동당에 대한 배반감 등 온갖 감정으로 뒤범벅이 된 채, 주민들은 거대 수송기에 올라탔다.

주민들이 수송기에 올라타는 동안 야전 로봇들은 장갑차 부대에 식수와 식량 등을 다시 보충해 넣었다. 소모한 연료도 다시 채워 넣었다.

그 사이에 수송기는 문을 닫고, 도로를 빠르게 달려 이륙했다. 물자 보충을 완료한 장갑차 부대에 중앙컴퓨터가 좌표를 전송했다. 주민들이 피신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빠르게 장소 배정을 완료 받은 장갑차 부대는 자신이 가야 할 곳을 향해 다시 흩어졌다.

얼마 후 다른 수송기가 속도를 줄이며 도로에 착지했다. 주민 수송을 완료하고 교대를 위해 돌아온 수송기였다. 야전 로봇들은 수송기가 싣고 온 연료 및 생존 물자를 꺼내어 다른 물자들과 함께 쌓았다.

한참 후 흩어졌던 장갑차 부대가 또 다른 주민들을 싣고 수송기로 돌아왔다. 주민들이 수송기에 옮겨 탄 뒤 떠나고, 장갑차가 연료와 생존 물자를 보충한 뒤 떠나고, 빈 수송기가 다시 돌아와 착지했다.

인근 지역의 피난이 완료됐다 판단되자 미군 사령부는 해당 무인 부대의 집결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같은 작전을 반복했다.

북한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유례없는 대규모 무인피난부대의 활동이었다.

“현재까지 587,261명의 구출을 완료했습니다.”

무인 부대는 첫날 하루에 무려 58만 명이 넘는 구출 수를 달성했고, 미군은 구조 진행 과정을 남김없이 발표했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구조 영상은 전 세계를 커다란 경악과 감동에 빠뜨렸다.

활주로 활용이 가능한 포장도로가 있는 곳에는 대형 수송기가 내려앉아서 장갑차와 수송차량을 토해놓고, 주민 수색 작업에 나섰다.

포장도로가 없는 곳에는 수직이착륙기와 수송 헬기가 편대를 이뤄 움직였다. 수직이착륙기는 주민들의 수송을, 수송 헬기들은 수송차량과 생존 물자의 운송을 담당했다.

나흘 동안 동원된 차량만 3,000여 대 이상. 미군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수천 대의 차량을 북한에 집결시켰고, 대대적인 구조 작전을 시작했다.

“1차 부대가 구출 작전을 실시하는 동안 본토에서는 제2차 부대를 편성 완료, 현재 태평양을 건너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3차, 제4차 부대의 추가 투입이 있을 겁니다.”

1차 부대가 하룻밤에 구출한 숫자가 58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앞으로 추가 투입이 지속될 거라 하니, 사람들은 이제 감탄을 터트릴 힘마저 잃었다.

“무인시스템은 위성 확인과 무인 경보기의 스캐닝을 통해 생존 주민들의 위치와 숫자를 파악한 뒤, 해당 지역에 필요한 만큼의 구출 부대를 배분합니다. 물론 인력으로 구출 시스템을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재까지는 시스템의 자율통제를 통해 구출 작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구출 작전 수행에 사람의 개입은 없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직까지는 시스템에 이상이나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지 모니터링을 하는 수준에만 그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직접 관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어느 기자의 질문에 미 사령관은 실소를 지으며 답변했다.

“차세대 종합무인전술통제 시스템은 미군의 세월과 역량, 지식과 지혜를 총망라해서 야심차게 개발한 시스템입니다. 사람이 다루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더 빠르게, 더 많은 일을 동시에 해낼 수 있습니다.”

“…….”

기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자신감 넘치는 발표에 세계는 전율했다.

대단위 구출 작전에 투입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차세대 종합무인전술통제 시스템은 군용 목적이다.

한 몸처럼 정교하게 이뤄지는 저 시스템이 구출이 아니라 점령을 목적으로 실행된다면? 과연 어느 나라가 버틸 수 있을까?

―미군의 숨겨진 위용.

―종합무인전술통제 시스템, 북한에서 선보인 것은 본래의 5%도 채 되지 않아.

―어디까지나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구출 작전이니만큼 전투기, 전차, 전투로봇 등은 일체 투입하지 않았다.

철저하게 숨겨둔 미국의 비장의 카드가 주민 구출을 위해서 드러나게 되었다. 세계 전문가들은 미국의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해석했다.

하나는 숨겨둔 전력을 과시하여 미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 다른 하나는 비장의 카드를 공개하면서까지 한반도를 전폭 지원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것.

후자에는 당연히 한서진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의 복수를 위해 중국과 전쟁까지 결정했던 국가이니까.

단순 계산으로 1차 무인부대만으로 구출 작전을 완료하는 데 겨우 37일 정도가 걸린다. 추가 부대가 투입되면 그 시기는 더욱 단축된다.

처음에는 2,200만여 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과연 얼마나 구출할 수 있을지를 의심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이 며칠 만에 이 위대한 구조 작전의 종료를 선언할지에 모두 주목했다.

그러는 동안 남한은 미군이 수송하는 주민들을 수용할 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었다. 남한 정부의 행정력으로, 하루에도 수십 만 명씩 쏟아지는 피난민들을 소화하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다.

“터를 잃은 주민들을 돕는 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이 원호를 시작했다.

미국의 은근한 압력과 눈치, 그리고 이 기회에 한서진한테 점수를 따두겠다는 계산이 섞인 결정이었다. 선진과학국인 일본은 에테르에 미국 못지않게 관심이 컸으니까.

다른 나라들도 주민 수용을 위해 대형 유람선 여러 척을 보내 주었고, 한국은 덕분에 어느 정도 한숨을 돌렸다.

3주가 갓 넘었을 때, 미국은 2,100만여 명의 구출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95% 이상의 구출을 완료한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주민들을 구출하기 전까지, 미군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세계는 전율했고, 미국 시민들은 조국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확실합니다. 에테르에 의한 조직세포 괴사입니다.”

지난 며칠 간 극비리에 수송병원을 왕래하며 조사에 임한 한서진이 최종 통보를 내놓았다. 권위 있는 의사들이 수강생처럼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귀담아 들었다.

“방사능 피폭과 거의 동일한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보셔도 좋습니다. 에테르가 방사능처럼 조직세포를 죽이고, 유전자 변형을 초래한 겁니다. 방사능과 다른 점은 잔류 방사능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 치료 방법은…….”

“저는 의사가 아니라서 그 부분은 드릴 말씀이 없군요. 방사능 피폭 환자를 치료하듯이 하면 되지 않을까요?”

결국 표면적인 증상을 치료하면서, 환자의 자기 회복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다행히 2,000만 명이 넘는 주민들 전원이 피폭 증세를 보인 것은 아니었다. 증상을 보인 환자는 약 100만여 명, 그러나 대부분은 가벼운 증세만 보이고 있었다.

집중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약 2,900여 명 정도. 그 중 1,200여 명은 한국군 장교와 하사관, 그리고 장병들이었다. 물론 이미 사망한 190여 명의 피해자는 제외한 숫자다.

통보를 마친 한서진은 병원을 나섰다. 모래를 씹은 듯이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저대로 놔두면 죽겠지.’

2,900여 명의 중증 환자들은 생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대량의 방사능을 쐰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미 자율신경계는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망가졌고, 온몸의 피부 조직이 괴사해서 헐어버렸다.

현재 정부는 여론의 거센 질타를 받고 있었다.

섣부른 북진 결정이 수많은 장병들의 피해를 양산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2,900여 명이 죽게 생겼고, 이미 190여 명은 사망한 상태였다.

가벼운 증세를 보이는 이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수만 명, 지금 광화문은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들의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자기 책임이 아님에도, 한서진은 번뇌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자기 책임이 없다고 머릿속에서 비워낼 만큼 무신경해지기는 어려웠다.

그는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백철중의 저택을 찾았다. 미리 연락을 한 덕에 그는 옷을 갖춰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게.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인가?”

자신을 맞이하는 백철중의 태도는 차분했다. 한서진은 그가 왠지 자신의 의도를 짐작하고 있을 거란 느낌이 들었다.

“회장님과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에 관련해서요.”

“말해 보게.”

“방사능 피폭과 거의 동일한 증세입니다. 물론 방사능이 아닌, 고농도의 에테르가 일으킨 질환입니다. 조직세포와 신경계의 괴사, 그리고 DNA 변형 등이 있죠.”

백철중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어서 그가 다음 말을 꺼내기를 바라는 것처럼.

“엘릭서라면……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가만히 바라보던 백철중은 그제야 가볍게 탄식했다.

“험난한 길이 될 게야. 아주 몹시.”

========== 작품 후기 ==========

역시 갓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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