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96 북쪽 폭풍 =========================================================================
―북한 전 지역을 위험지역으로 선포합니다.
SJ재해 사이트에서 공포한 경보에 한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과학에 관심 없는 일반인들은 에테르 스톰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뒤늦게 심포지엄의 강연 내용에 주목한 일반인들은 알면 알수록 혼란스러워 했다.
“에테르 스톰? 그게 뭐야?”
“몰라. 평양을 날린 원인이래. 자연 재해의 일종인 듯.”
“걔들 핵탄두 가지고 열병식에서 자랑하다가 사고로 터진 거 아니었어?”
“그런 게 아니었나 보네. 에테르가 원인인가 봐.”
정부에서는 긴급히 보도 통제에 나섰다. 정부 지분이 있는 언론사들을 상대로 최대한 보도 자제를 요구했다. 국민들이 자세한 전후사정을 알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북한에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거야? 에테르 스톰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대체 왜? 에테르 스톰은 이제 끝난 거 아니었어?”
“조금 위험하긴 해도, 지금이야말로 통일을 이뤄내기에 적기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북한은 영영 다른 나라가 되고 만다. 그러니 김두박 정부는 두말 말고 진격해라!”
SJ재해 사이트의 경보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기는 했으나, 〈다소 위험해도 밀어붙여야 한다.〉라는 여론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 나갔다.
“어차피 통일을 할 거라면 기회는 지금뿐! 안 할 거면 그냥 시원하게 물러나라!”
위험할 수 있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지금이 아니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이기에.
정부가 원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결국 이렇게 되네요.”
태블릿으로 기사를 확인한 송하나가 차분히 말했다.
여론 조사 결과 북진을 원한다는 의견이 70% 이상이었다. 위험은 인정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다시없을 기회라는 것이다.
“내가 분명히 위험하다고 경고했는데.”
“원래 대중은 전문적인 의견은 잘 귀담아듣지 않아요. 감정적인 것에 휩쓸리죠.”
한서진은 가만히 생각했다.
고객들이 뉴월드백화점을 방문하지 못하게 한 것처럼, 국민들을 통제할 수는 없을까?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선택이지.’
경보 지역으로 공포했으나, 정확히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아직 그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에테르 과밀 지역은 접근하지 않는 게 안전한 것은 확실했다.
“근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험한 거예요?”
“나도 잘 몰라.”
“……네?”
“에테르는 나도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서 확신할 수 없어. 그래도 에너지가 비정상적으로 응집된 것은 과학적으로 결코 안전한 상황이 아니잖아. 문제는 이 과밀 현상이 오랫동안 유지될 것 같다는 거야.”
“……아.”
살짝 입을 벌린 채 놀라워하던 송하나는 이윽고 천천히 끄덕였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네요. 에테르는 무궁무진한 힘이니까.”
“그 말이 딱인 것 같다.”
어떤 ‘위험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북한의 현 주소를 가장 잘 나타낸 말이리라.
그때 기다렸던 손님이 찾아왔다.
미국의 화이트 요원, 페이 차일드였다.
“미 정부의 의지를 전달해드리기 위해 왔는데, 잠시 시간을 내어주시겠습니까?”
정중한 인사, 송하나는 자리를 비켜달라는 뜻임을 알아차리고 일어섰다.
“편히 말씀 나누세요.”
“감사합니다.”
한서진은 송하나도 같이 이야기를 들으면 좋을 것 같았지만, 잔뜩 굳어진 페이 차일드의 안색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마지막으로 도청 여부를 확인한 페이 차일드가 드디어 말문을 꺼냈다.
“먼저 미국은 북한에 관해서 박사님이 원하는 큰 그림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그리는 그림이요?”
“예,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혹은 북한이 어떻게 되었으면 하십니까?”
“…….”
“역시 무관심하시군요.”
한서진은 북한의 이권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과학적으로 에테르 스톰 및 에테르가 북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탐구하는 데만 몰두할 뿐이다.
뼛속까지 철저한 연구자 마인드. 미국이 한서진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
“박사님께서 북한 지역을 접수, 장악하십시오. 미국이 모든 군사력, 외교력,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돕겠습니다.”
한서진은 가슴에 돌이 쿵 하고 떨어진 듯이 놀랐다. 페이 차일드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북한을 접수하라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북한 지역을 한국 영토에 편입시키되, 실질적인 종주권은 박사님께서 접수하시란 의미입니다. 백악관 싱크탱크의 시나리오는 최악의 경우 일부 개헌까지 상정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개헌이요?”
“지금 북한은 매우 위험한 무주공산입니다. 그리고 남한은 북한을 소화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부정부패는 심하고 경제는 어렵습니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도 통일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않습니다.”
“…….”
“박사님께서 북한의 실세가 되시고, 연방 체제로 한반도를 단일화하는 것, 이것이 백악관 싱크탱크가 그리는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입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개헌 작업이 필요합니다만, 그건 미국이 해낼 수 있습니다.”
“그건…… 자칫 하다가는 미국이 저를 통해 북한을 51번째 주로 편입시키려 한다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일부 개헌이 필요합니다. 헌법적으로 한반도는 하나 된 연방국이 될 겁니다.”
단호한 말에서 한서진은 미국의 굳건한 의지를 느꼈다. 그들은 지금 북한에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선물인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한서진이 뜻을 알아준 게 기뻤는지, 페이 차일드는 그제야 생긋 미소를 띠었다.
“영토란, 그리고 북한처럼 장래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매물은 좀처럼 국제 시장에 나오지 않습니다. 미국은 기왕이면 박사님께서 이 좋은 매물을 차지하셨으면 합니다.”
“……그렇지만.”
“박사님은 한국인이시기에 명분 또한 떳떳합니다. 미국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청와대와는 이야기가 된 겁니까?”
“김두박 정권은 교섭 상대가 아닙니다. 이용 대상이지요.”
“…….”
“다행히 그들은 지금 우리의 예상대로 움직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손을 대지 않고 있습니다.”
한서진은 입을 다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페이 차일드는 재촉하지 않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제가 SJ재해 사이트에 올린 경보는 보셨습니까?”
“네, 당연히 체크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지역이 위험하다는 것도 아실 텐데요.”
“위험하다 해서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사적으로 이만큼 떳떳하고 피해 없이 영토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는 몇 안 됩니다.”
북한이 보유한 많은 지하자원,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 차지하는 절묘한 지리학적 위치.
하루아침에 소멸해버린 지도층과 최상류층, 그리고 무정부 상태의 불안함과 기아에 떨고 있는 이천만 여 명의 주민들.
이런 기회가 과연 다시 올 수 있을까?
제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이런 기회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있을까?
“위험은 우리 미합중국이 감당하겠습니다. 전폭적인 지원을 망설이지 않겠다는 것은, 미국의 의지입니다.”
한서진은 불현듯 위화감을 느꼈다.
에테르 스톰이 흩어지고, 그 잔재가 북한 전역에 남아서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페이 차일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험한지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 다른 수단을 통해서 위험가능성을 어느 정도 검증했다는 이야기다.
“혹시 미국은 북한 지역이 어느 정도나 불안정한 상태인지 이미 예측한 겁니까?”
“박사님만큼은 아닙니다만, 우리 미국도 열심히 에테르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이 위험한 건 사실입니다만,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는 게 대통령의 결정입니다. 북한의 확보를 위해서라면.”
한서진은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페이 차일드는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갔고,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미국에도 에테르 연구 기관이 있다. 그것도 근래 생긴 게 아닌, 꽤 오래 전부터…….’
니트론 박사를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의심이다.
에테르의 본질까진 아니더라도, 스코브리아늄을 통해 제5의 힘에 관해서 그들도 감은 잡고 있었으리라.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건데.’
지진일 수도 있고, 산불일 수도 있다. 어쩌면 평양에 일어났던 파멸 현상과 유사한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으리라. 아마 그 규모는 크지 않겠지만.
미국은 그 정도 위험이라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그때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백철중이었다.
“예, 회장님.”
「바쁜가?」
“아닙니다. 말씀하시지요.”
「북한 관련으로 할 이야기가 있네. 지금 바로 만나볼 수 있겠나? 내가 그쪽으로 가도 좋고, 자네가 편한 곳으로 장소를 잡아도 상관없네. 다만 보안이 확실한 곳이면 좋겠군.」
한서진은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 북한 관련 일로 방금 저를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미국에서? 뭐라고 하던가?」
백철중의 목소리가 대번에 달라졌다.
“회장님께서 먼저 말씀해주시면 저도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
“죄송합니다. 그만큼 중대한 일이라서요. 미국 측 인사가 가져온 것은 미 대통령의 전언이자, 미국의 의지였습니다.”
단단한 음색에 무언가를 느꼈는지 잠시 말이 없던 백철중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혹시 미래자동차와 울산 지역을 아는가?」
“잘 모릅니다만…… 왜 그러시는지요?”
「미래자동차는 대대적인 인프라와 사업 투자로 울산 지역의 경제를 장악했네. 모든 울산 주민은 미래자동차 산업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울산은 시장부터 시의회 등 시의 모든 행정력이 미래자동차의 의지에 달려 있네.」
한서진은 다음에 이어질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자네가 북한과 그런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어. 물론 그보다 더 깊고, 끈끈한 사이가.」
“스케일의 차이만 있을 뿐…… 미국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짧은 대답. 그러나 백철중이라면 그 한 마디에서 미국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대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화색을 띠었다.
「그래? 미국이 그런 제안을 했단 말이지?」
“예, 저더러 북한을 장악하라고 했습니다. 통일한국 체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말입니다.”
「군사력이나 협상은 미국이 알아서 해줄 테고, 자금이야 자네 사재 일부만 차출해도 무난하니, 남은 건 개헌인가? 여의도에 공작을 시작해야겠군.」
재빠르게 상황을 짚어낸 백철중의 통찰력에 한서진은 새삼스레 놀랐다. 역시 맨주먹으로 재벌 총수가 되는 것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자네 의지는 뭔가?」
“저는…….”
한서진은 조금 망설인 뒤 대답했다.
“조금만 더 지켜본 뒤에 결정하려고 합니다.”
휴전선 인근.
평소처럼 철책 경계 근무를 서던 박 병장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죽을힘을 다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본능적으로 사격 자세를 취한 그는 곧 총구를 내렸다.
상대는 세 살쯤 된 아이를 품에 안은 젊은 여자였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꼬질꼬질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살려주세요! 제 아이 좀 살려주세요! 의사를! 제발!”
“진정하세요! 야, 김 일병! 바로 초소에 보고해! 탈북자와 접선했다고!”
“예!”
후임에게 지시를 내리고 아이를 살피던 박 병장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마치 한센병 환자처럼 아이의 피부가 너덜너덜하게 헐어서 떨어져 나가고, 핏물까지 보였다.
“야, 이거 아이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 의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해!”
상륙작전 전야에 휴전선에서 벌어진 이 일은, 군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지 못한 채 철저히 통제되었다.
========== 작품 후기 ==========
“대통령님, 탈북자가 나왔는데, 상태가…….”
“어허, 북진을 하룻밤 앞두고 부정 타는 소리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