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95화 (295/609)

00295 북쪽 폭풍  =========================================================================

북한에 일어난 재해로 심포지엄은 엉망이 되었다.

그러나 왕립학회 관계자들과 참석자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에테르의 거시적인 위력에 정신을 빼앗겼다.

참석자들은 가진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북한의 사정을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평범한 나라였으면 재해 사정 정도쯤 알아내는 게 어렵지 않으나, 하필 폐쇄성으로 유명한 국가 아닌가.

첫날 심포지엄은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정리되었다.

저택으로 돌아온 한서진은 재빨리 타르타로스가 있는 별실부터 찾았다.

‘왜 이런 대규모 에테르 스톰이?’

벌써 두 번째다. 그것도 한반도에서만.

아니면 지구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아직까지 자신이 몰랐던 건 아닐까?

‘감지 범위를 더 넓혀야 하나? 타르타로스 1 출력으로는 안 될 텐데, 타르타로스 2까지 동원해야 하나?’

타르타로스 1은 미국과 한반도의 날씨 및 재해를 예측하는 작업에만 대부분의 시스템 자원을 쓰고 있다. 전 지구로 범위를 넓히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타르타로스 2도 다른 작업할 게 많은데.’

페이 차일드가 보여준 평양은 참혹했다.

살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페이 차일드는 생명체라면 세균이나 바이러스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미국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파멸 현상이라며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폭발과는 전혀 궤도가 다르다. 대폭발에서 발생하는 열이 거의 없다. 위성 관측 결과, 파멸의 순간에도 평양의 기온은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폭발이 아닌 ‘파멸 현상’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원인과 과정, 결과까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대참사였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하나도 걱정이 많던데.’

송하나도 평양이 소멸한 것 때문에 일이 커지겠다며 걱정이 많긴 했다. 어린 나이에 그런 국제 정세에 고민이 많은 걸 보니 기특하기도 했다.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2를 작동시켰다.

곧 타르타로스 2를 구성한 모든 케르베로스가 가동하며, 대기 권의 에테르를 더듬어 나갔다.

타르타로스 2는 곧장 한반도를 감싼 에테르의 파동을 남김없이 훑어나갔고, 그 과정이 주모니터에 생생하게 표시되었다.

어느 순간 한서진은 신음했다.

“이게 뭐야.”

평양을 덮친 고밀도의 에테르 스톰은 이미 흩어졌다. 그러나 그 잔재는 북한 전 지역에 흩어진 채 남아 있었다.

평양에 비교할 순 없지만, 북한 전 지역이 상당한 ‘에테르 위험지역’이 되고 만 것이다.

멍하니 바라보던 한서진은 재빨리 계산에 들어갔다. 북한이 지금 얼마나 위험한지, 저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는지, 그리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지.

괴물 같은 성능을 지닌 타르타로스 2의 연산능력으로도 몇 시간이나 걸리는 대작업이었다.

마침내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고, 한서진은 망연자실해서 출력값만 바라보았다.

“마력 칩셋으로도 안 돼?”

과집적된 에테르 스톰을 흩어버리는 마력 칩셋. 그러나 지금의 출력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일부 지역의 에테르를 흩어버려도 금방 다시 복구가 되기 때문이다. 이건 마치 숟가락 하나로 한강을 퍼내려는 것과 같다.

결정을 굳혀야 했다.

평양이 소멸했다는 보도가 나가고, 한국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이 뜨겁게 뒤집어졌다.

최고통치권자, 노동당 및 고위 군인들과 평양 주민들, 그들이 하나 남김없이 소멸한 것이다. 열병식을 준비한 엘리트 군인들까지 모두 사라졌다.

그 수가 최소 270만에서 최대 320만까지 추산된다는 보도에 여의도 정국마저 뜨겁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둘만 모였다 하면 북한 이야기를 했다.

“이러면 북한이 사실상 무정부지대가 된 게 아닌가?”

“사실상이 아니고 그냥 무정부지대지. 평양 주민들이면 북한에서도 제일 잘 사는 사람들인데, 거기다가 대규모 열병식이라고 나라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죄다 평양에 모였잖아.”

“한 마디로 국가 서열 1위부터 3,200,000위까지 몽땅 다 죽은 거네.”

“우리나라에도 저런 일 생겼으면. 특히 여의도와 종로에.”

북한 일에 간섭할 중국은 한창 분열 중이고, 한국은 미국을 등에 업고 그 어느 때보다 큰소리를 낼 수 있다. 그리고 통일에 걸림돌이 될 만한 북한 지도부, 상류층은 모두 사라졌다.

마치 신이 통일을 위해 마련해준 듯한 상황 아닌가.

“통일은 피할 수 없다. 지금 통일 안 하면 앞으로 영영 통일 못한다.”

“서둘러 북한으로 진격해서 전 지역을 장악해야 한다. 어물거리다가 하급 군인들이 자기들끼리 뭉치고 지역 마피아처럼 되면 진짜 골치 아파진다.”

“국방부는 대체 뭐하냐! 당장 장갑차에 시동 걸지 않고!”

재계도 북한 사태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결판이 나든, 이건 다시없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진성그룹이 긴급 긴축경영에 돌입했습니다. 전 계열사가 사내 유보금 축적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통일 후 대북 투자를 대대적으로 노리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은 북한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큰 피해와 혼란이 예상된다 해도.

당연히 북한 지역은 남한 행정지역에 편입될 것이고, 대대적인 재건 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그것은 대기업에 있어 어마어마한 사업투자가 된다. 이보다 더 큰 투자는 역사적으로 다시없을 것이다.

“우리도 흡수 통일 이후를 대비해야 합니다!”

비상회의 자리에서 총수는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렸다.

“우리 그룹도 진성처럼 유보금을 쌓는다! 대북 투자를 위해서 무조건 저축이다!”

조금만 규모가 있다 싶은 기업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통일은 남한 정부와 국민들에게는 큰 혼란과 피해가 있겠지만, 기업에게는 둘도 없는 절호의 기회이니. 맨땅을 짚고 헤엄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H그룹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들은 다른 그룹과는 입장, 그리고 시각이 달랐다.

“북쪽 지역에 관한 선점권을 가능한 크게 확보해야 합니다. 한서진 박사님이 직접 움직이셔야 합니다. 미국은 한서진 박사님이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들어줄 겁니다.”

임원들은 그룹의 북한 재건 투자 그 자체보다는, 한서진에 포커스를 맞추고 큰 그림을 그렸다.

“박사님은 어마어마한 현금을 보유하고 계시고, 또 앞으로 지속적으로 막대한 현금을 확보할 능력이 있으십니다. 심지어 미국의 든든한 지지도 한 몸에 받고 계십니다. 게다가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는 만큼, 박사님 개인에게 있어서도 절호의 기회입니다.”

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맞췄다.

“박사님을 북쪽 지역의 패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건국을 뜻하는 게 아니다. 북한과 남한은 진정으로 하나 된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다.

바로 미래자동차와 울산 지역을 보면 이해가 쉽다.

현재 울산은 미래자동차가 콱 틀어쥐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과 주민과 기업이 하나로 일체화돼서, 단단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H그룹이 노리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한서진이 전폭적으로 북한 지역 장악에 나서서, 미래자동차와 울산의 관계 이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구축하는 것. 그렇게 형성된 카르텔은 백 년이고 이백 년이고, 대대로 유지될 것이다.

한서진과 송하나의 특별한 관계 덕분에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요, 품을 수 있는 야망이었다.

“회장님, 박사님만 결심을 굳히면 이 모든 게 일사천리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미국은 박사님의 보복을 위해서 중국과 전면전까지 결심한 국가입니다. 이 정도 요구는 앉은 자리에서 콜을 외칠 겁니다.”

“맞습니다.”

“박사님만 결심하시면 됩니다.”

거듭된 임원들의 간언, 백철중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임원들의 말대로 되면 H그룹은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한 채, 북쪽 지역을 장악한 초거대 기업으로 거듭난다. 진성그룹과는 압도적인 격차를 벌릴 수 있다.

허황된 시나리오도 아니다. 임원들의 말대로, 한서진은 그걸 실행 가능한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심지어 동원가능한 군사력까지 있다. 미군이 그를 위해서 움직여줄 테니까.

그가 결심만 하면 된다.

백철중은 마침내 눈을 번쩍 떴다.

“예비사위와는 내가 이야기해보겠네.”

북진하라!

모든 국민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보수고 진보고 수구고 가리지 않았다.

북한은 이미 국가로서 무너졌고, 다른 국가에서 간섭하기 전에 서둘러 선점해야 한다. 동시에 머리를 잃은 지역 군대들이 마피아로 거듭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동원령이 선포되었고, 후방 부대를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부대를 편성했다. 거의 모든 육군이 북한 진격을 위해 모였다.

김두박 정부는 그 모든 작업을 최단기간 내에 해내는 쾌거를 보였고, 덕분에 정부 지지도가 조금 올랐다.

그리고 대통령은 자신 있게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 지도부의 소멸로 인해 현재 북한은 전 지역이 무정부지대나 다름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식량과 식수, 생필품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을 것이며, 통제를 잃은 지역 군대는 주민들에게 있어 무장한 강도단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수도 없이 플래시가 터진다.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들어찬 기자들을 주시하며, 김두박 대통령은 힘 있게 말했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영토와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결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생방송으로 보도된 대통령의 성명 발표에, 거리는 광란으로 뒤덮였다.

“김두박! 김두박!”

“우리 땅을 되찾아야 한다! 절대 남에게 줄 수 없다!”

시민들의 반응을 보고받은 김두박 대통령은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통일은 이미 따 놓은 당상이다. 통제를 잃은 북한 군대가 제대로 대항이 될 리가 만무하니까.

핵? 지도부가 통째로 증발했는데 무슨 재주로 발사한단 말인가. 기껏해야 구식 무기로 몇 번 저항하다가 박살날 것이다. 그전에 마음껏 쏘아댈 실탄이 존재하기는 할까?

‘우리 군대와 조우하자마자 기겁해서 백기나 들겠지.’

흡수통일은 사회적으로 어마어마한 혼란을 가져온다. 당장 예상되는 통일비용만 해도 엄청나다. 국회에서는 벌써부터 통일예산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받겠지만, 대통령은 그런 작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자기 대에서 통일을 이뤄냈다는 것. 그것도 가장 피해가 적은 방식으로.

정일재단, 비자금, 대선자금 등의 스캔들을 한순간에 지워질 위대한 업적이다. 역사에 자신의 이름이 길이 빛날 것이다.

그랬는데…….

「경보, 북한 전 지역을 특별 재해 구역으로 정의합니다. 경보가 해제될 때까지는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경보 상태가 유효합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의 중국 일부 지역도 포함됩니다.」

SJ재해 사이트에 올라온 재해 경보가, 통일의 단꿈에 젖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나리오를 뒤흔들어 버렸다.

「해당지역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기를 권고합니다.」

에테르 스톰의 잔재가 전 지역에 걸쳐 있는 북한은, 결코 안전한 땅이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이게 다 아서 왕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강림하라고 했잖아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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