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93화 (293/609)

00293  북쪽 폭풍  =========================================================================

―에테르 스톰이 감지되었습니다. 신미도 동남 해역 인근, North Korea.

대형 스크린에 떠오른, 타르타로스 1의 메시지에 조용해졌던 대강당에 혼란에 찾아왔다. 학계의 권위자들은 마치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처럼 산만하게 수군거렸다.

“에테르 스톰? 저게 뭐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어딘가에 재해가 발생 중이라는 거 아닌가?”

“신미도 동남 해안이면……. 평양과 그리 멀지도 않은데.”

대강당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음에도 한서진은 환기할 생각도 못했다. 그는 당황한 속내를 감추며, 태블릿을 이용해 타르타로스의 예측 결과를 검토 중이었다.

‘에테르 스톰이 평양 앞바다에?’

대기 중의 에테르가 과밀도로 응집되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자연 재해가 일어난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에테르가 자연적으로 흩어지기를 기대할 수밖에.

아니면 과밀도로 집적된 에테르를 흩어버리는 마력 칩셋 No.1을 활용하거나.

그러나 상황은 이미 늦었다.

―에테르 스톰, 발화합니다.

해안에서 일어난 에테르 스톰에 그대로 불꽃이 붙었고, 발화된 에너지가 육지에 옮겨 붙었다.

학술회 참석자들은 상황 파악을 못했지만, 한서진은 타르타로스가 출력한 코드 기호를 통해 상황을 명확히 파악했다.

지금 북한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한 사람은, 이 자라에서 오롯이 그뿐이었다.

신음이 흘러나왔다.

“큰일 났네…….”

“여러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한서진은 수만 명의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곧바로 페이 차일드를 찾았다. 그도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였다.

“박사님, 무슨 일입니까? 에테르 스톰이 대체 뭡니까? 지금 북한에 무슨 재해가 일어난 겁니까? 저번에 강원도에 발생했던 이상 산불처럼요?”

어떤 소화 물질에도 반응하지 않고, 끝없이 증식하며 삼림을 살라먹던 불길. 해가 바뀌었지만 그 참혹했던 기억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한서진은 에테르 스톰을 그때의 산불과 바로 연관을 지은 페이 차일드의 직관력에 새삼 놀랐다.

“비슷합니다.”

“맙소사.”

페이 차일드는 입을 쩍 벌렸다.

공식적으로, 산불은 쏟아지는 폭우에 겨우 진압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어떤 소화 물질에도 꿈쩍 않던 불길이 고작 ‘물’에 금방 잡혔다는 게 여러 모로 이상했던 것이다.

소나기에 잡힐 불길이었으면, 소방차와 헬기가 뿌려대는 물에도 진작 반응을 보였을 테니까.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페이 차일드는 주먹을 꾹 쥐었다.

“그럼 북한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일단 상황을 알아야겠습니다. 지금 재해는 실시간으로 진행 중입니다. 제가 분석한 것에 따르면, 이미 에테르 스톰은 발화 작용이 시작됐고 육지로 옮겨갔습니다.”

“본부에 연락해보겠습니다!”

한서진이 원하는 바를 깨달은 페이 차일드가 얼른 말했다.

구석에서 통화를 마친 뒤 그가 굳어진 얼굴로 돌아왔다. 심상치 않은 표정에 한서진도 긴장했다.

“위성으로 확인을 하긴 했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왜 그러시죠?”

“직접 확인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상부에서는 이곳 심포지엄에서 공개해도 좋다고 합니다. 다만 약간의 송출 지연을 둔다고 합니다. 만약 국제적으로 극히 민감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정보 통제를 해야 해서요.”

지연이 있긴 해도, 실시간 위성 영상까지 제공받는다? 학술회를 주관하는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래도 되나?

“저야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위성 촬영 정보 자체가 외교적으로 중요한 정보 아닌가요?”

“그 정도는 상관없다고 합니다. 박사님의 일이라면.”

“배려 감사합니다.”

한서진은 얼른 강단으로 돌아왔다. 대강당에 모인 참석자들은 아직도 술렁거리며 자기들끼리 토론하거나, 혹은 북한 관련 속보를 검색하고 있었다.

“북한 지역을 실시간으로 촬영한 위성 영상입니다.”

한서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형 스크린이 세로로 분할되며 신미도 남쪽 해안 지역이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저, 저게 대체 뭐야!”

“화재? 아니아니, 불이라기에는 뭔가 좀…….”

해안에서부터 시작된 불꽃이 육지를 향해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다.

위성 촬영이기에 해상도가 그리 선명하지는 않다.

마치 바다에서 일어난 푸른 불꽃이 육지로 상륙해서 번져 나가는 듯한 모양새였다.

얼핏 보기에는 거대한 화재 현장인 듯싶으나, 너울거리는 불꽃의 생김새에서 강한 위화감이 풍긴다.

여기저기서 질문이 빗발쳤다.

“한 박사! 에테르 스톰이 대체 뭡니까! 지금 북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혹시 작년 강원도에서 일어난 산불과 유사한 현상입니까?”

과연 세계적인 석학들이었다. 날카로운 관점으로 사정없이 짚어낸다.

한서진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생각을 정리했다.

‘에테르 산불을 칩셋 1(one)으로 진압한 건 비밀인데.’

당시 최초의 마력 칩셋이 에테르 스톰의 에너지를 흩어버리면서 산불이 진압됐고, 그 여파로 폭우가 쏟아졌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에테르 산불은 폭우를 맞아 진압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의심받고 있는데.’

날카로운 직관력을 지닌 사람들이 왜 이리 많은지.

마력 칩셋 3가 화재를 진압하는 것과, 당시 에테르 산불이 진압된 것을 연관 지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아직까지는 음모론에 머무르고 있는 수준이지만.

“에테르가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뭉칠 경우, 그 에너지는 주변 환경에 강한 변화를 줍니다. 이렇게 위험한 수준까지 뭉친 것을 에테르 스톰이라고 합니다.”

한서진은 차분히 설명했고, 참석자들은 대번에 그 의미를 알아들었다.

에테르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근원 에너지다. 에너지가 ‘비정상적으로 과하게’ 뭉쳤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절대 좋은 상태가 아니다.

3군단 소속 소용무 상좌는 목청이 터져라 악을 쓰고 있었다.

“가져 와! 소화기든 소방차든 닥치는 대로 다 가져오란 말이야!”

그의 직속부대는 불을 끄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3군단 소속 전 장교 및 장병들이 화재 진압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현장에 나온 장소운 소장의 얼굴도 새카맣게 굳어 있었다.

“불이 안 꺼진다고?”

“예! 소장님! 인근의 모든 소방시설을 투입해서 진압하고 있지만, 불길이 전혀 잡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화재의 원인과 형태도 기이합니다! 이런 불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붉은 화염이 아닌, 푸르스름한 불꽃이 해수면을 수평선까지 크게 뒤덮고 있었다. 그건 마치 바닷물이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푸른 불꽃은 해수면에 그치지 않고, 이미 육지까지 넘어온 상태였다. 이미 증산군은 지옥이었다.

아무리 봐도 일반적인 자연 재해가 아니다. 저런 불길이 존재한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혹시 적국의 공작인가?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이런 게 가능한가?

그때 장소운 소장은 퍼뜩 생각난 게 있었다.

“작년에 남조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맞습니다! 강원도에도 저것과 비슷한 산불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소화 물질에 일절 반응하지 않는 기이한 산불, 그게 생각난 장소운 군단장의 안색이 새하얗게 굳었다.

‘하필 이런 때에!’

지금 평양에서는 대규모 열병식이 벌어지고 있다. 중장(투스타) 이상의 고위 장령과 노동당의 주요 인물들은 하나 남김없이 참석한 대행사였다.

최근 중국의 혼란과 몰락으로 인해 주요 우방국을 잃은 북한은 국제적인 운신폭이 더욱 힘들어졌다. 러시아는 시큰둥했고, 남한은 미국과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한 상태였다.

그래서 ‘인민 최고 존엄’은 공화국 내부 분위기를 바로 잡고,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대적인 열병식을 준비했다.

그런 역사적인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에서, 꺼지지 않는 산불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평양을 향하고 있었다.

공화국 최고의 존엄은 평범한 들불이거니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 사태가 보고가 되기는 했을까? 한창 열병식 때문에 평양 전체가 바쁠 텐데?

“소, 소장님! 저걸 보십시오!”

그때 부관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소장은 화들짝 놀라 장갑차에서 뛰어나갔다.

땅을 살라먹듯이 퍼져 있던 푸른 불꽃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하얗게 작열하는 스파크만이 온통 사방을 뒤덮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여름에 온 세상을 뒤덮은 백설을 연상케 했다.

‘아름답다…….’

어처구니없게도 장소운 소장은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 순간 눈부신 섬광이 번지나가며, 눈앞의 모든 풍경이 새하얗게 지워졌다.

졸지에 에테르 심포지엄은 에테르 재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상황실이 되었다.

한서진은 본래 일정대로 에테르 관측을 이용한 재해 예측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려 했지만, 이미 참석자들의 관심은 북한에 일어난 재해로 옮겨간 지 오래였다.

기왕이면 이론 강의를 듣는 것보다, 실전 해설 강의를 듣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다.

“과밀도로 뭉친 에테르는 위험한 에너지원입니다. 안전장치가 해제된 폭탄과도 같습니다.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방치된 가스탱크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서진은 위성 영상과 타르타로스의 분석 결과를 동시에 훑어보며 설명을 계속했다. 파급력을 생각해서 타르타로스의 분석 결과는 혼자만 확인하고 있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뭉친 에테르에 불이 붙는다면, 달궈진 가스탱크가 폭발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해당 지역에 매우 큰 피해가 예상됩니다.”

“불이 붙는다는 것은 연소 반응을 말합니까? 에테르는 산소와 결합이 가능한가요?”

“아닙니다. 에테르의 발화 반응은 산소나 다른 물질과 결합하거나, 그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에테르는 스스로 에너지화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편의상 이것을 불이 붙는다고 표현했을 뿐입니다.”

“그 반응을 막으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 방법은 에테르 코드를 이용해 에너지의 흐름을 통제하는 겁니다. 마력 칩셋 3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되었습니다.”

“혹시 마력 칩셋 No.1이나 No.2도 있는 겁니까?”

“……있습니다만, 그것은 초기 테스트 제품이라 상품으로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칩셋 1은 에테르 산불을 끄는 데, 칩셋 2는 캘리포니아 대지진을 진압하는데 사용되었다.

그간 칩셋 1이나 2에 관해서 물어보면 어떻게 해명해야 하나 걱정 많이 했는데, 단 한 명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걸 이제야 물어보다니!

“영상을 보면 단순히 들불 같은 게 아닌, 증산군 지역에 널리 확산된 에테르가 에너지 전이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건 매우 위험한 물리 반응으로…….”

뚝.

그때 갑자기 위성 송출 영상이 끊겼다.

전송 사고인가 하고 당황해하고 있는데, 페이 차일드가 빠르게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상부에서 영상 송출을 중지했습니다.”

지금까지 재생된 영상은 일부러 수십 초 정도 지연된 영상이다. 공개에 민감한 장면이 나올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한서진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다.

“혹시 폭발했나요?”

“그렇습니다. 그 규모는.”

페이 차일드는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더욱 낮춰 말했다.

“마치 핵폭발 같았다고 합니다.”

========== 작품 후기 ==========

이 정도로는 부족해...! 겨우 이 정도로 현실에 맞설 수는 없어....! 현실의 그 위대한 판타지스러움을 당해내진 못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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