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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92화 (292/609)

00292  북쪽 폭풍  =========================================================================

「심포지엄 일정 잡았어요. 한국대에서 개최하기로 했구요, 왕립학회는 거의 전부 참석하기로 했어요.」

야무진 목소리에 한서진은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네가 수고가 많았어.”

「뭘요. 오빠를 위해서인데.」

“그냥 앞으로 개인 스케줄은 다 너한테 맡길까?”

「정말요?」

가볍게 농담으로 한 말인데 너무 좋아한다. 이제 와서 농담이었다고 말하면 크게 서운해할 것 같다.

‘하나한테 맡겨도 딱히 상관없고.’

사실 개인 스케줄이라고 해봤자 복잡하게 관리할 건 없다.

보통 학교 연구소 아니면 회사만 무한 반복하니까. 그 중 주기적으로 집과 데이트가 끼어들고.

“네가 맡아서 관리해주면 나도 좋지. 다른 일에는 신경 안 써도 되니까.”

「그냥 개인 비서 쓰셔도 되는데.」

“아, 그럼 그냥 그렇게 할까?”

그새 마음이 바뀌었나보다 하는데, 갑자기 음색이 한층 새침해졌다.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어차피 오빠 외국 일정 조율은 제가 하기로 했잖아요. 스케줄도 같이 묶어서 관리하는 게 편해요.」

“공부는 괜찮겠어?”

「이게 공부예요. 어차피 제가 반도체 개발자 할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개인 스케줄은 송하나가 관리하기로 했다.

그 뒤로는 가벼운 일상 잡담을 나누었는데, 도중에 문득 송하나가 물었다.

「근데 오빠, 오늘 우리 백화점 오셨었어요?」

“으, 응? 그건 왜?”

한서진은 순간적으로 찔렸다.

「직원들이 그러던데. 오빠 리무진 봤다고.」

“아, 근처 지나갈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어. 별 거 아냐.”

「알겠어요.」

일부러 백화점과 조금 떨어진 것에서 신효진을 픽업했는데, 직원들이 그걸 본 모양이다. 하긴 리무진은 그 자체로 눈에 띌 수밖에 없다.

혹시 신효진을 태운 걸 본 건 아니겠지? 한서진은 그 점이 괜히 걱정되었으나, 다행히 송하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한서진은 전화를 끊으며, 가만히 신효진을 떠올렸다.

‘할게요! 저만 믿으세요!’

다행히 그녀는 씩씩하게 부탁을 수락했다.

한서진을 도울 수 있는 인물은 그녀뿐이었다. 레노지안에 관한 것을 공유하는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니까.

과연 그녀가 얼마나 도움 될 수 있을까.

‘심포지엄이라…….’

주모니터를 주시하며 한서진은 생각에 잠겼다.

말이 심포지엄이지, 일방적으로 자신이 강연하고 질문에 답변을 하는 형식이 될 게 뻔하다. 에테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니.

그나마 니트론 교수 정도는 되어야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에테르에 있어 그 외 다른 석학들은 학부 1년생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심포지엄인데 마력 칩셋 강연만으로는 부족할 것도 같고.”

본래 런던왕립학회에 초청받았을 때, 자신은 비중이 높긴 했지만 그래도 외부 초청 강연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여러 개의 메인 주제 중 에테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심포지엄은 다르다.

에테르가 여러 테마 중의 하나가 아닌, 유일한 대주제인 것이다. 집단 토론보다는 개인 강연회처럼 흘러가기 쉽다.

그걸 생각하니, 마력 칩셋 관련 테마는 뭔가 약한 것처럼 느껴졌다.

‘겨우 마력 칩셋 하나로는 너무 없어 보인단 말이야.’

뭐 괜찮은 게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타르타로스 1이 그의 시선에 닿았다.

그는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그래, 저걸로 하자.”

런던왕립학회 주관 학술회.

한국대로서는 최고의 경사이자, 한편으로는 막중한 부담이 가는 행사였다. 비록 국내 최고 수준의 명문대라지만, 런던왕립학회가 지닌 위명에는 많이 부족했다.

학교는 결전에 임하듯이 학술회 준비에 매달렸다.

한국대뿐만 아니라 다른 명문 이공계 대학에서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왔다. 이미 한국대만의 단독 문제가 아닌, 한국 과학계 전체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이 역사적인 학술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기 위해, 유명 대학들과 연구소 및 기관들까지 합세해서 달려들었다. 정부에서 나온 관계자도 어디 도울 구석이 없나 갸웃거렸다.

마침내 심포지엄 개최일이 다가왔다.

개최 당일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몰려든 수많은 인파 때문에 한국대 전체가 바글거렸다. 한국대는 특별히 개최 기간 동안 모든 강의를 휴강하기로 했다. 인문대도 예외는 없었다.

―CBS 송찬혁 기자입니다! 잠시 후 30분 뒤면 한국대학교에서 영국의 런던왕립학회와 한서진 박사가 공동 주관하는 에테르학 심포지엄이 열립니다!

―국내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학술 행사로, 미국 및 영국, 독일 등 수많은 선진국에서 몰려든 저명한 석학들과 해외 취재단으로 인해, 지금 한국대는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잡하기만 합니다!

―아직 한서진 박사가 구체적인 발표 주제를 언급하지 않은 가운데, 국내 전문가들은 마력 칩셋의 원리와 운용에 관한 주제를 다룰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어…….

대학 창립 이후, 이만큼 큰 행사는 없었을 것이다.

총장 및 교수들은 입이 귀에 걸려서 바쁘게 뛰어다니며, 평소라면 어림도 없을 유명 석학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농담이 아니라 마주치는 사람 중에 익숙하다 싶으면 노벨상 수상자거나 국제적으로 저명한 과학자들뿐이었다.

“이건 마치 살아있는 모든 노벨상 수상자들은 죄다 모인 것 같습니다. 아, 문학상과 평화상은 빼고요.”

“저 분은 작년 경제학상 수상자가 아닙니까? 에테르학 심포지엄에는 왜 오신 거죠?”

“왜 오긴요, 에테르가 국제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안 올 수가 있나요.”

성공적인 개최에 한국대 인물들은 하나같이 가슴이 들떴다. H그룹에서는 대대적으로 인력을 파견하여, 대관 절차 및 행사 진행을 문제없이 도맡아 나섰다.

백철중 부부도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학술 행사에 참관인으로 참여했다.

어마어마한 인파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된 백철중은 재벌 총수라는 지위에도 불구하고 잔뜩 고무돼 있었다.

“내 평생 이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이야.”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장난이 아니라고. 만약 여기에 테러라도 발생한다면 세계 과학의 발달 속도가 적어도 100년은 늦어지게 될 거야.”

“그 정도인가요?”

송지현은 진심으로 감탄했고, 백철중은 뿌듯해서 대강당에 모인 이들을 둘러봤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우리 예비 사위 이름 하나만 보고 몰려든 거지. 참 굉장하지 않아?”

“전 굉장하다기보단 조금 불안한데.”

“아니, 불안할 게 뭐 있어?”

“우리 하나가 마음 고생할까 봐서 그러죠. 남자가 잘난 건 좋지만, 너무 잘나면 또 여자가 불안하다고요.”

“에이, 우리 하나가 어때서?”

백철중은 당치도 않다는 듯이 툴툴거렸다. 원래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쁜 법, 게다가 송하나는 고슴도치가 아니라 화려한 백조가 아닌가.

“근데 하나는 왜 안 보이죠?”

“한 박사랑 같이 있겠지.”

“살짝 연락해볼까요?”

“놔둬. 지금 주제 발표 때문에 한창 정신없을 텐데, 집중력 흐트러지게 하면 안 되지. 그렇지 않아도 2박 3일 동안 한 박사 혼자서 이 학술 행사를 이끌어 나가야 할 텐데.”

에테르는 국제 과학계에 새롭게 떠오른 강렬한 핵이다.

그러나 막연히 머리로만 아는 것과, 이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그 체감이 확연이 달렸다.

한서진이 단순히 미국 명예시민이 아닌, 에테르 창시자로서 국제 과학계에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백철중은 수많은 인파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잘 하셔야 해요.”

검은 원피스를 입은 송하나가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말했다. 한서진은 끄덕이며 패드 컴퓨터를 확인했다.

“발표 원고는요?”

“여기 있잖아. 갔다 올게.”

한서진은 어깨를 살짝 안아주고 강단으로 향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점잖은 과학자들이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누가 보면 심포지엄이 아니라 아이돌 콘서트인 줄 알 것이다.

마이크를 잡은 한서진은 가볍게 인사말부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반도체공학 및 에테르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서진이라고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또 한 번 터졌다.

“먼저 팜플렛에는 제가 박사라고 소개 되어 있는데, 저는 박사가 아니라 학부 3년차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의도치 않게 잘못 알려진 터라 그 부분을 일단 해명하고 싶군요.”

여기저기서 가벼운 실소가 터졌다.

“원래 저는 몇 주 전에 열린 런던왕립학회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할 계획이었습니다만, 불미스러운 사고로 불참하게 되었습니다. 그 점을 안타까워해주신 왕립학회 관계자분들께서 이런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왕립학회 및 관계자분들, 그리고 행사를 지원해주신 제 모교 교수님들, 타대학 학자분들, 행사 진행을 맡아주신 H그룹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일부 성질 급한 학자들은 벌써부터 얼굴에 조급한 감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한서진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인사는 이쯤 하고, 먼저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마력 칩셋에 관련된 발표를 할 예정이었습니다.”

드디어 본제로 넘어갔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얼굴에 기대감이 반짝거렸다.

“마력 칩셋, 사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일반 반도체처럼 미세 명령 코드를 새겨 전자 대신 자연계에 존재하는 에테르를 움직이는 원리지요.”

다소 부실한 설명에 일부가 살짝 실망하기도 했으나, 곧 이어진 말에 다들 일제히 긴장했다.

“오늘은 특별한 자리이니만큼 화재 진압용 마력 칩셋으로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아직 공표한 적 없는 에테르학 관련 주제를 언급해보고자 합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공표한 적 없는?”

“한 박사가 뭔가 새로운 주제를 발표하려는 건가?”

“특종이다!”

수많은 참석자들은 바짝 긴장했다.

미국의 화이트 요원, 페이 차일드도 크게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뭘 터트리시려고?’

수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음에도,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한서진은 차분히 대강당을 둘러보았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음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가슴 깊은 곳에서 당당함이 솟아 나왔다.

“아시다시피 저는 SJ사이트를 통해 미국과 한국의 주요 재해를 예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적중률이 100%에서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특종이다! 날씨 예보 관련이라니!

외신 기자들은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대는 한편, 본국에 보낼 기사를 재빠르게 타이핑했다. 누가 특종이 되느냐는 그야말로 시간 싸움이었다.

“저는 기상 및 지진파 관측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날씨와 재해를 예측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예전에 비해 크고 작은 재해가 기이할 정도로 잦은 빈도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질 만큼, 대강당은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 기존 관측 데이터를 해독하는 대신 지구의 에테르 파동 그 자체를 관측하여 해독하는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즉, SJ사이트는 조만간 한층 뛰어난 성능으로 버전 업이 될 것이며, 커버지역도 대폭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와아아, 하고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날씨 예측은 마력 칩셋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국제 사회에 영향력이 큰 주제였다.

그게 이번 학술회의 대주제였다니! 상상도 못한 뜻밖의 선물에 참석자들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확실히 요즘 들어 국제적으로 재해 발발이 이상하게 많아지긴 했어. 규모도 커지고.”

“다행이군. 이제 한국과 미국 말고도 재해 예보의 수혜를 입을 수 있게 됐어.”

강한 호응에 만족하던 한서진은 원격 조종으로 강단 뒤쪽의 거대 스크린을 켰다. 타르타로스와 연결된 화면이었다.

“그럼 시범적으로, SJ사이트 2.0이 어떤 절차로 날씨와 재해를 예측하는지 그 과정을…….”

한서진은 말을 잇다 말고 우뚝 멈췄다.

대형 스크린에는 선명한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응집 중인 에테르 스톰이 감지되었습니다.

―위치 : 39.377679, 125.065898(신미도 동남 해역 인근, North Korea)

============================ 작품 후기 ============================

저 스톰은 13등급이 틀림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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