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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89화 (289/609)

00289  꿈속의 파트너  =========================================================================

“아,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죠. 네, 저도 산적한 문제들이 많아서요. 네, 그러죠.”

30분 가까이 길게 이어진 통화가 끊어지자, 옆에서 노트북으로 과제를 하고 있던 송하나가 호기심을 드러냈다.

“무슨 전화인데 그래요?”

“응, 영국.”

“영국이 왜요? 아.”

뭔가 하던 송하나는 짚이는 게 있는지 작은 탄성을 냈다.

“혹시 학회 때문인가요?”

“어. 원래 내가 참여하기로 했었잖아.”

“기억나요. 에테르 학문도 이번 런던왕립학회 세미나 메인 테마였죠?”

송하나는 피식 웃었다.

원래 한서진은 런던왕립학회 학술회에 참여하기 위해 전용기를 타고 이동하다가 중국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다행히 무사히 생환했으나, 한동안 중국의 책임 문제로 국제 외교 시장이 시끄러웠다. 그리고 연이어 터진 중국의 대혁명, 공산당의 숙청까지.

그런 국제적인 혼란 속에서 런던왕립학회는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에테르학을 메인 테마로 야심차게 준비한 노력만 헛수고로 날린 셈이다.

“뭐라고 하던가요?”

“보강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더라.”

“대학도 아니고, 무슨 보강이래요.”

송하나는 보강이란 말이 웃긴지 피식거렸다. 그러다가 장난기를 지우고 물었다.

“그럼 추가 학술회를 준비하고 있나 봐요?”

“어, 내가 확답만 주면 바로 진행시키겠대. 그래서 생각해보겠다고 했어.”

“아무래도 런던에서 열리겠지요?”

“그렇겠지?”

한서진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송하나가 넌지시 물었다.

“오빠, 혹시 추가 학술회 그거 제가 왕립학회랑 교섭을 해보면 안 돼요?”

“네가?”

“네, 장래 희망 예비로 연습한다 치고요.”

송하나는 향후 한서진이 발휘할 국제적 영향력 및 외교관계를 조율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한 한서진은 더 생각 않고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한번 네가 알아서 해봐.”

“네.”

한서진은 간만에 학교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물론 학교를 방문했다는 뜻이지 강의 시간에 출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 학부 3학년이지만, 그는 학위만 없을 뿐 실질적으로는 교수 취급을 받고 있었다.

비단 재력이나 권력 때문이 아니라, 에테르학의 창시자로서 연구 성과와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 모를까, 학부생처럼 앉아서 강의를 듣고 있을 수준은 아니었으니.

한국대 반도체연구소.

오랜만에 방문한 연구소는 여전히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연구 결과 분석에 집중하고 있던 박효산이 반갑게 맞이했다.

“오,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냐.”

“겸사겸사 들렀습니다.”

“앉자.”

박효산은 자리를 옮긴 뒤 손수 커피와 차를 가져왔다.

간단히 연구 진행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중국으로 화제가 빠졌다. 그 역시 다른 이들처럼 중국의 향방이 몹시 궁금했던 것이다.

“여러 개의 나라로 쪼개질 수밖에 없을 걸요.”

“중국 인민들은 일체의식이 무척 고양됐던데.”

“그럼 뭐 해요. 미국이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혁명을 이뤄낸 중국이 하나로 존재하는 것은, 그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았다.

박효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중국도 세계에 공동으로 착취당하기 싫으면 분할을 감수해야겠군. 말 그대로 외통수구나.”

“지금의 체계를 유지할 수도 있죠. 대신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겠지만.”

중국 때문에 세계는 엄청난 손해를 봤다.

그런데 최고 수뇌부는 모두 증발한 상태고, 주요 국정 업무는 하나도 승계되지 않은 상태다. 외교, 무역, 행정, 심지어 첩보 등까지. 말 그대로 주변에서 뜯어먹기 좋은 상태.

중국 인민은 공산당의 부패함을 타도했지만, 혁명의 대가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대수술을 마치느라 체력을 바닥까지 소모한 거대한 코끼리를 두고, 수십 마리의 맹수들이 사방에서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인민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를 놓고, 한국대 여론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시끌시끌했다.

“산둥성의 독립 선언은 시작일 뿐이에요.”

“그 사람들도 이전 정부의 책임을 승계하긴 싫다는 거군. 아참, 근데.”

박효산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 진짜냐? 클레튼 대통령이 김두박 대통령 얼굴도 한 번 안 보고 바로 미국으로 갔다는 게?”

“……아마 맞을 겁니다.”

“김두박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겠네. 그 성깔에 청와대 집기가 남아나기나 할지 모르겠구나.”

박효산은 생각만 해도 고소한지 키득거렸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한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다. 그런 국가의 대통령이 방한했는데, 한서진하고만 면담했을 뿐 정작 이 나라 대통령과는 눈도 한 번 안 마주치고 돌아갔다.

대통령으로서는 체신이 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에게 항의를 할 수도 없다.

“그거 들었냐? 너 때문에 시끌시끌한 동안 여당에서 법안 몇 개 재빨리 통과시킨 거.”

“법안이요? 어떤 건데요?”

“너하고 상관없는 거긴 한데. 최저임금 상승률을 제한하고, 금산분리법이랑 대기업 규제도 완화하고. 뭐 재벌 기업들한테 유리한 거 몇 가지 정도?”

“법안 말씀하셔서 전 또 저한테 불리한 법안이라도 통과시켰나 했네요.”

“에이, 네가 정말 죽었다고 쳐도 그런 건 못하지. 그냥 혼란을 틈타서 야금야금 재미 좀 본 거지.”

“진짜 저하고는 상관없는 것들이네요.”

한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박효산은 속으로 조금 의외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 녀석, 별로 신경 안 쓰네?’

정부와 국회가 어떻게 그런 비겁한 짓을 할 수 있냐고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자기와 상관없는 법안이라며 덤덤했다. 박효산은 잠시 의아했지만 금방 수긍했다.

‘하긴, 이 녀석은 정부하고 선 긋고 있었지. 연구 활동에 방해된다고.’

한서진은 소소하게 자선 사업도 하고, 직원들의 복지도 넉넉하게 챙겨주고, 자기 주변은 잘 보살핀다.

하지만 국내 정치라든가 경제, 사회 문제 개선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연구 활동에 더 열정을 쏟아 붓는 스타일이다.

그런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박효산은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세상을 위해서라도 이 녀석은 에테르 연구에만 몰두하는 게 낫지.’

그때 태블릿을 살피던 한서진이 눈을 들고 말했다.

“다음 주에 미국 갈 건데, 혹시 같이 가시겠어요?”

“미국에?”

“네, 미국 사업장도 한 번 체크하고, 캘리포니아에서 생환 행사가 열린대서 참석도 해야 하고요. 제가 행사 주인공인데 안 갈 수가 없지요.”

“그렇지, 네가 주인공인데 당연히 가야지. 주지사가 주최하는 거냐?”

“네, 그렇대요.”

“한 100만 명쯤 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너 미국에서 완전히 영웅이잖아.”

“에이, 설마요. 그렇게까지는 안 올 거예요.”

100만이라는 말에 한서진은 웃음으로 넘겼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최대 20만 명 정도의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참, 하나도 같이 갈 거예요. 휴가라 생각하시고 교수님도 같이 가시죠. 스탠포드에도 들리시고.”

“니트론 교수님은?”

“그 분은 아까 말씀드렸는데 좋아하시더라고요. 스탠포드에 들러서 인재 좀 수급해와야겠다고 하시던데.”

“알았다. 다음 주라고?”

“네, 자세한 일정 정해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끄덕거리던 박효산은 문득 놓친 점을 깨달았다.

“근데 너 전용기 없잖아? 전세기라도 구했어?”

“아뇨.”

“그럼 민간 항공편을 이용한다고? 경호에도 번거롭고 위험하지 않을까? 그럴 리는 없지만 저번 중국 때처럼…….”

“괜찮아요. 미국에서 대통령 전용기 보내준대요.”

한서진은 마치 콜택시를 부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고, 박효산은 떨떠름해서 말했다.

“네가 정말 크긴 엄청 컸구나…….”

신입생 때는 파릇파릇하니 귀여웠는데. 이제는 말을 편히 하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이 돼버렸다.

노신하의 설명을 듣고 난 왕은 조금 아쉬워했다.

“에테르 지식도 전수 받았으면 좋았을 것을.”

“폐하께서는 그곳 지구가 거짓 세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신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에테르 지식을 전수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먼저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확고하게 잡아주는 게 필요했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왕은 인정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군. 만약 꿈속의 짐이 꿈을 진짜라 믿는 상황에서 레노지안의 진정한 힘을 손에 넣는다면…….”

“오히려 저주에 힘이 실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서진은 통찰안, 엘릭서, 마력석, 에테르 지식 등 다양한 왕의 권능을 얻었다. 그 힘들을 통해 지구에서 큰 출세를 했다.

그러나 그런 권능들은, 왕의 입장에서 볼 때 무척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서진은 지구를 진짜라 믿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레노지안을 위협할 수 있을 만한 힘을 덜컥 얻어버린다면?

“지식의 전이는 지금처럼 조심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자칫 레노지안의 힘이 저주력의 증강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알겠소.”

저주 극복을 위해 앞으로의 방향을 잡은 뒤, 노신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입은 어떠하셨습니까?”

“음, 가능할 것 같소. 이미 두 번이나 다녀왔고, 최근의 방문에서는 직접 마법과 왕명까지 사용했음에도 꿈에서 이탈하지 않았소.”

왕은 웃으며 덧붙였다.

“비록 중급 마법과 간단한 왕명에 불과하지만, 또 다른 짐이 복귀를 원할 때까지 꿈속에서 아무 일도 없었소.”

첫 강림 때, 왕은 백세완 일당을 제압하기 위해 간단한 심령을 사용했다. 말 그대로 먼지 같은 권능이었지만, 그 대가로 왕은 금방 꿈속 세상에서 밀려나야 했다.

허나 이번 강림은 달랐다.

거대한 항공기를 안전하게 착지시키고, 14억에 가까운 중국 백성들에게 왕명을 시전했다. 그런데도 강림은 풀리지 않았다.

강림이 풀린 것은, 한서진이 간절하게 그곳으로 복귀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조심하소서. 그곳에서 권능을 시전하는 게 저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릅니다.”

“알겠소. 자, 그럼.”

왕은 왕좌에서 일어났다.

각자 자리에서 대기 중이던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수정구에서 빛이 발하며, 단상 아래에 커다란 마법진의 빛이 떠올랐다.

마법진의 중심을 밟고 선 왕은 노신하를 돌아보았다.

“잠시 다녀오겠소.”

곧 왕의 눈이 감기며, 온몸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한서진.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사방에 가득 찬 황금색 안개가 시선을 가리고 있다.

‘여긴 어디지?’

한서진은 의아했다. 송하나와 사랑을 나누고 잠들었던 기억이 분명한데, 여긴 대관절 어디란 말인가?

‘설마, 레노지안?’

또 다시 꿈으로 끌려온 건가.

긴장해서 사방을 주시하는데, 별안간 안개가 걷히며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 하지만 왕의 위엄이 가득한 표정. 화려한 군주의 옷을 입고 허리에는 커다란 검을 차고 있는 왕이 똑바로 걸어왔다.

한서진은 피하지 않았다. 어느새 왕은 몇 걸음 앞에 다가와서 섰다.

신기하게도 몸이 떨리지 않는다. 두려운 마음도 없이 편안하기 그지없다.

왕도 그런 자신의 상태를 느낀 것일까. 입가에 온화한 미소가 걸린다.

“이제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너 지금 전용기 없잖아?”

“미국에서 콜택시 불러줬어요.”

ps : 어제 연재가 늦은 건 죄송합니다.

레고 핼리캐리어를 새벽에 뜯는 게 아니었는데...;;

새벽 4시에 핼리캐리어를 뜯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오후 3시더라구요.ㄷㄷ

11시간 걸려서 겨우 완성했는데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하고 손가락도 아파서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어서 푹 쉬고 지금 일어나서 곧바로 밥도 안 먹고 원고 작업했습니다.ㅠ

다음에는 배트카 텀블러 76023에 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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