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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87화 (287/609)

00287  꿈속의 파트너  =========================================================================

“하나야, 오늘 시간 좀 비워 둬.”

식사하던 중에 송지현이 말을 꺼냈다. 백철중은 먼저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급히 출근한 상태였다.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중국 사태 때문에 국내 경제도 비상 모드였기 때문이다.

“왜?”

“오늘 명품관 신상 많이 들어올 거야. 엄마랑 데이트 좀 하자.”

“안 돼, 바빠.”

“아직 개강 멀었는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너 한 박사 때문에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기분 전환 좀 해야지.”

“그게 왜 오빠 때문이야? 중국 때문이지.”

송하나가 찌릿 하며 쳐다보자 송지현은 혀를 끌끌 찼다.

“얘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엄마, 앞뒤 관계는 똑바로 잡아야지.”

“알았다, 알았어. 이제 약혼 밖에 안 했는데 결혼하면 아주 그냥 친정이랑 연 끊을 기세구나.”

송지현은 혀를 차면서도 속으로는 피식거렸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울기만 하던 애가 예전의 활발한 모습을 되찾았다. 기운도 차리고 많이 씩씩해졌다. 모친으로서는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퍼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가슴이 조금 저리기도 했다.

“그래서 시간 비워둘 거야, 안 비워둘 거야?”

“신상 많이 들어와?”

“응. 카탈로그 좀 훑어봤는데 네 맘에 들 만한 것도 제법 보이더라.”

“알았어, 고마워.”

“시간을 비워둔다는 거야, 안 비워둔다는 거야?”

“오빠랑 같이 갈래. 엄마는 아빠랑 가.”

“……딸자식 키워놔 봤자 아무 소용없다니까.”

송하나는 모친의 한탄을 태연히 한 귀로 흘리며 젓가락질했다. 야채절임을 한 조각 집어 들며 말을 이었다.

“오늘 오빠 집에서 자고 올 거야. 그렇게 알아, 엄마.”

“아무리 약혼했다지만 대놓고 외박하는 거 아니니? 아빠 입장도 생각해야지.”

“엄마가 적당히 말해 줘.”

“둘러대는 것도 어디 한두 번이지. 그건 그렇다 치고, 벌써부터 그렇게 매일 붙어 있으면 금방 질려.”

“어차피 아빠는 둔해서 잘 속잖아.”

송하나는 태연히 말하며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다.

“부탁해, 엄마.”

그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송지현은 혀를 차며 바라보다가 마저 수저를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잠시 앉아 있는데, 이윽고 송하나가 내려왔다. 그녀는 어느새 외출 차림을 마친 상태였다.

팔다리를 시원하게 드러낸 민소매 티에 짧은 반바지 차림이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얇은 원단이 늘씬한 볼륨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송지현을 팔짱을 끼고 훑어보다가 말했다.

“내 작품이지만 참 근사하단 말이지.”

“내가 엄마보다 좀 더 낫지?”

“그러게. 배우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직도 생각 없니?”

“없거든?”

“러브씬 같은 건 얼마든지 뺄 수 있어. 멜로 주연만 맡지 않으면 되니까.”

“그래도 싫어. 엄마나 해.”

“그랬다가는 네 아버지 뒤집어진다. 네 아버지 성격을 몰라?”

“우리 오빠는 안 그런 줄 알아?”

송하나는 툴툴거리며 파우치를 든 채 나섰다. 그때 톡 메시지가 왔다.

―하나야, 나 지금 정문 앞이야.

톡 메시지를 확인하자 새침한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혹시 잠 설쳤어?”

조수석을 열어주며 한서진이 물었다. 송하나는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요, 왜 그러세요?”

“표정이 왠지 굳어 있어서.”

“아, 엄마 때문에 그런 걸 거예요, 아마.”

“어머니께서 왜?”

“자꾸 배우 할 생각 없냐고 하시잖아요.”

“배우?”

“네, 어려서부터 자주 그러셨거든요. 아깝다고, 그러니까 배우 해보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다. 하지만 송지현이 예전에 유명한 톱스타 배우였던 점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재벌 회장, 그것도 수십 년 연상의 이혼남과 사실혼 관계인 여배우가 연기 활동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그녀는 일찍 은퇴해야 했을 테고, 아마도 미련이 남았겠지.

“엄마는 절 통해서 자기 꿈을 이뤄 보려는 거라구요. 그냥 지금이라도 본인이 직접 연기하면 될 텐데.”

송하나는 그렇게 툴툴거렸다.

한서진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송지현은 언뜻 보기에는 서른 초반으로 보일 만큼 동안이고, 또 미인이다. 지금도 충분히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당신께서 직접 하셔도 괜찮을 거 같긴 하네. 근데 하나 너는 연기하는 게 싫어? 난 스크린에서 널 보면 되게 좋을 거 같은데.”

“오빠는 제가 다른 남자랑 멜로를 찍어도 좋아요?”

“그건 안 되지.”

한서진이 당장 정색해서 반박하자 송하나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음…… 그래도 오빠가 보고 싶다니까 멜로씬 없는 조연 출연은 한 번 생각해볼게요. 근데 저 연기 해본 적 없는데.”

“나도 진지하게 말한 건 아니야. 스크린에서 널 보면 색다를 것 같아서 해본 말이니까.”

“오빠는 색다른 게 좋아요?”

“색다른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아마?”

그 말에 송하나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엑셀을 밟으며 한서진은 흘끔 옆을 살폈다. 시원하게 뻗은 팔다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역시 하나 몸매는 최고라니까.’

저절로 흐뭇한 마음이 든다.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행복한 남자라는 자신감이 솟구친다.

그의 시선을 느끼고 송하나가 배시시 웃었다.

“오빠, 지금 제 다리 봐요?”

“응.”

“제 다리 비싼데. 요금은 내고 보셔야죠.”

“얼마면 돼?”

“뽀뽀 한 번. 특별 할인이에요.”

송하나는 방긋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펴보였다. 한서진은 몸을 돌려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물었다.

“혹시 부족하니?”

“충분해요. 마음껏 보셔도 돼요.”

둘은 눈이 마주쳤고, 거의 동시에 풀썩 웃음을 터트렸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를 쳐다보며 웃는 시간. 한때 다시는 이런 시간을 누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아찔한 경험 덕분인지 지금 이 순간이 더없이 애틋했다.

차량은 H백화점에 도착했다.

한서진은 경호원 한 명에게 주차를 맡긴 후, 송하나와 팔짱을 낀 채 백화점 건물에 들어섰다.

명품관이 있는 신관 건물은 H백화점 후면에 있었다. 고급과 희소성을 추구하는 신관 건물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브랜드 매장만 입점해 있다.

웬만한 중산층은 이곳에 들릴 엄두도 내지 못한다. 200만 원 이하의 물품은 아예 취급하지도 않으니까.

그래서인지 신관 건물은 늘 한산했지만, 그런 여유로움이 고급스러움을 한층 강조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여유가 넘치는 상류층 사람들이다.

한서진은 푸념하듯이 말했다.

“옷 좀 사려고 해도 웬만한 매장은 아예 가질 못하겠어. 내가 가기만 하면 너무 혼란스러워져서.”

“오빠가 너무 유명해서 그래요.”

웬만한 장소는 한서진이 모습을 보이는 순간 톱스타 싸인회처럼 변한다. 한가하게 쇼핑을 즐기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 돼버렸다.

그래서 H백화점 본점을 더 찾게 된다. 이곳은 사람도 적어서 아늑하고, 경호에도 수월하니까. 마주치는 손님들은 그를 알아보면서도 모른 체하며 배려를 해준다.

“사실 엄마가 조금 신경을 썼어요.”

“어머니께서?”

“신관 품격을 계속 높이고 계시거든요. 오빠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게요.”

“너무 하이엔드 손님층만 공략하면 매출에 타격이 있을 텐데.”

“상관없어요. 백화점 매출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송하나는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오빠가 마음 편안한 게 더 중요하죠.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어머니 스케일이 참 크신데. 감사하다고 전해 줘.”

둘은 신관 명품관을 천천히 거닐었다.

신상 백을 구경하다가 구입하고, 스위스 시계 매장들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구두를 발견해서 신어보기도 하고…….

여느 평범한 커플처럼 둘은 마음 편안히 쇼핑을 즐겼다.

매장 매니저가 구입한 물품들을 정리하는 동안, 둘은 매장 내부에 마련된 쇼파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오빠, 중국은 이제 어떻게 될까요?”

넌지시 묻는 말에 한서진은 잠시 생각했다. 얘한테 이걸 말해줘도 될까 싶었다.

마음을 정한 그는 입을 열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대외비야. 부모님께도 말씀드리면 안 돼. 알았지?”

“네, 걱정 마세요.”

“일단 고위층 간부들이 해외에 은닉한 재산이 몇 조 달러쯤 될 거래. 그건 아마 해당국에서 꿀꺽 할 듯싶어.”

“정말요?”

“혁명파가 재산 출처를 알아내기도 힘들고, 입증하기도 어려우니까.”

“몇 조 달러나 되는 걸 환수 못하면…… 중국도 타격이 엄청 크겠네요.”

송하나는 뭔가 신난다는 듯한 톤으로 말했다.

“지금 중국은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거든. 국가를 대표하고 책임질 수 있는 집단이 없어. 서열 1위부터 40만 위 정도까지 모조리 죽어버렸으니까.”

“인구가 13억이 넘는다는데, 40만 명이 없어졌다고 국가 기능을 상실할까요?”

“총학생회 멤버가 한순간에 전원 연락 두절된다고 생각해 봐. 다른 학생들이 학생회 업무를 무슨 재주로 수행하겠어? 업무 파악하는 데만 엄청 시간 걸릴 걸?”

“그렇겠네요.”

송하나는 끄덕이며 수긍했고 한서진은 계속 말했다.

“그 큰 나라를 통제하던 머리가 한순간에 증발했으니 국정 업무를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당분간은 혼란에 시달릴 거야.”

“그럼 중국은 많이 약해지겠네요?”

“약해지는 건 당연하고, 더 나아가서…….”

한서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런 자리에서 꺼내기에는 너무 민감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말해줘도 괜찮을까?

“곤란하면 안 말해주셔도 돼요. 저는 그냥 오빠한테 나쁜 짓을 한 국가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송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물러나자 한서진은 괜히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사실 크게 민감한 것도 아닌데.

“아니아니, 그렇게 대단한 건 아냐. 음…… 아마도 일단 혁명파가 곧 자치 세력을 구축할 것 같긴 한데, 외국과 걸려 있는 이권이나 조약 같은 문제가 번거로워서 그게 문제지.”

“그럼 어떡한대요?”

“아마 기존에 외국과 맺은 모든 조약과 협정, 거래를 무효화한다는 선언을 할 것 같긴 해.”

미국이 그런 식으로 공작을 하고 있다는 내용은, 너무 민감한 것 같아서 생략했다.

“그런 게 가능해요? 손해 보는 나라들이 수긍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불가능하진 않아. 몇 가지 큰 협상만 적절하게 마치면 되니까. 일단 고위층이 해외에 은닉한 재산을 포기하고, 그리고…….”

한서진은 주변을 살피고는, 그녀의 귀에 대고 목소리를 바짝 낮춰서 말했다.

“다수의 독립 정부가 세워질 거야.”

“독립 정부요? 다수?”

“혁명파는 기존의 중국을 승계하지 않을 거야. 중국이 여러 개의 새로운 나라로 분할되는 거지. 얼마든지 명분이 돼.”

송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가, 곧 눈빛을 누그러뜨리며 끄덕였다.

“오빠. ……사실 저, 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그래?”

“지금 당장은 아닌데…… 저, 오빠 옆에서 오빠를 돕고 싶어요. 다시는 중국의 납치 같은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한서진은 그런 마음이 기특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게 뭔데?”

송하나는 한참이나 단단한 눈빛으로 응시하다가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정치요. 국제 정치.”

========== 작품 후기 ==========

한서진 : 혹시 잠 설쳤어? 표정이 왠지 굳어 있어서.

송하나 : (내숭을 떠느라 새침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모친 핑계를 댄다) 아, 엄마 때문에 그런 걸 거예요, 아마.

배우 연기가 이상해서 촬영 대본을 체크하니 저렇던데... 누가 저런 지문을 넣었지?

메인작가가 총괄피디 무시하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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