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5 왕명, 혁명 =========================================================================
샤오니는 똑똑히 보았다.
전차 상단에 설치된 기관총이 불을 내뿜는 것을, 그리고 부러진 갈대처럼 우수수 쓰러져 나가는 사람들을.
붉은 혈육이 낭자하고, 굉음에 섞인 비명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다.
그 모든 광경은, 마치 꿈을 꾸듯이 느릿느릿하게 흘러갔다.
샤오니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내려다봤다. 따뜻한 느낌이 두 팔에 가득 느껴진다.
바로 눈앞에서 쓰러진 어떤 젊은 여대생, 그녀가 흘린 피가 자신의 두 팔에 흠뻑 묻은 것이다.
바닥에 쓰러진 그녀와 문득 눈이 마주쳤다. 초점이 없는 눈빛, 이미 생명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질감이 그의 정신을 강제로 현실로 끌어내렸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벽을 쌓고 있는 전차 부대를 노려봤다.
내면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격노가 느껴진다.
신기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군중의 분노까지 고스란히 연결되는 듯하다.
마치 하나이되 전체이며, 전체이되 하나가 된 듯한 감각.
다른 이들도, 지금 자신처럼 분노하고 있을까?
그는 내장을 쥐어짜내듯이 외쳤다.
“모두 뒤집어버리자!”
피를 본 군중은 더욱 흥분해서 달려들었다.
수십 명이 넘는 사람이 총탄에 쓰러졌음에도 물러서지 않고 맨몸으로 전차에 부딪쳤다.
급히 해치로 몸을 숨긴 지휘관은 분통을 터트렸다. 군중이 던진 돌에 맞은 그는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모두 밀어버려!”
“하, 하지만……!”
“저들은 인민이 아니라 정부의 통제를 거역한 반역자들이다! 다 쓸어버려!”
돌진 명령은 곧 모든 전차에 전달되었고, 수십 대가 넘는 육중한 전차가 시민들을 향해 전진했다.
비명과 굉음이 사방을 가르고, 육중한 전차에 깔려 살점과 뼈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지휘관은 피를 닦으며 이를 갈았다.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에 반역자들은 필요 없다.”
클레튼 대통령은 며칠째 한국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그는 김두박 대통령 등 정부 관계자는 일체 만나지 않았다. 그의 일정은 주로 한서진 쪽에 맞춰져 있었다.
덕분에 행정부가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져 있다는 말이 돌았지만, 누구도 그 사실에 신경 쓰지 않았다.
설계 사무소에 출근해 있던 한서진은 클레튼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통화에 응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무척 심각했다.
「혹시 지금 바로 만나볼 수 있겠습니까?」
“무슨 일이신가요?”
「공산당이 결국 일을 저질렀습니다.」
“네?”
「자세한 건 직접 말씀드리죠.」
한서진은 전화를 끊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곧장 클레튼 대통령이 머무르고 있는 한국대로 향했다.
“영상을 보시죠. 구역질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희미하게 모자이크 처리를 한 영상이 재생되었다.
광장에 잔뜩 모인 시위대와 그에 대치 중인 전차 부대의 모습이었다. 잠시 후 발포음이 울리고, 수십 명의 시민들이 우수수 쓰러졌고, 곧이어 흥분한 시민들이 일제히 전차 부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윽고 전차 부대가 일제히 돌격하는 것을 보고 한서진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잠깐만요. 이거 설마 진짜로……?”
“계속 보시지요.”
전차 부대는 사정없이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아래 깔리고, 발포에 쓰러져 나갔다. 탄에 맞은 건물들이 붕괴하며 그 파편에 깔리기도 했다.
“…….”
한서진은 아무 말이 없었고, 대통령이 차분히 설명했다.
“북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최소 10만 명의 사상자가 나왔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천안문 사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지요.”
“……잔인하군요.”
“엄청난 사상자가 나오긴 했지만, 시위 자체는 일단 진압되었습니다. 공산당으로서는 한숨 돌린 셈이지요.”
10만 명을 전차로 밀어버릴 생각을 하다니. 한서진은 공산당의 잔혹한 결정에 가벼운 소름이 끼쳤다.
대통령은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슨 의미죠?”
“공산당은 잔혹하게 북경 시위대를 진압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혁명을 공포로 다스리려 한 모양인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조짐이 있습니다.”
“역효과라면…….”
“북경 대참사 소식을 들은 다른 지역에서 더욱 타오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
한서진은 주먹을 꾹 쥔 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심장을 향해 서늘한 기운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아서 왕,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든 거지?’
레노지안에서 만난 노신하, 그는 아서 왕이 중국 문제를 잘 해결해놓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서진은 기껏해야 중국 지도부를 처단한다던가 하는 방식을 상상했다.
그런데 중국 전체에 혁명을 일으킬 줄이야.
고작 몇 시간 동안 뉴월드백화점에 손님이 드나들지 않게 했던 것에 비하면, 반딧불과 보름달의 차이가 아닌가.
‘정말 당신은…… 다른 세상의 신이기라도 한 거야?’
13억에 달하는 인민들의 마음에 혁명의 불씨를 불어넣다니. 대체 어떤 대단한 권능이 이런 기적을 가능케 할 수 있을까.
한서진은 왕의 힘에 전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식으로 처리했는지 이유가 알고 싶었다.
“제국에 가장 무거운 벌을 내리셨군요.”
깨어난 왕의 설명을 들은 노신하가 차분히 말했다. 왕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저절로 바람이 불어오며, 그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것이 한서진을 보호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오.”
“동시에 제국으로서는 제일 두려운 벌이기도 하지요.”
“백성으로부터 업보를 돌려받는 것일 뿐.”
왕은 냉담히 말했다.
중국은 국력으로 2위에 달하는 제국이다. 국가에 소속된 백성의 수는 압도적인 1위를 자랑한다.
그러나 부패하고, 부패했으며, 또 부패했다.
레노지안 대륙의 역사로 따져도 그만큼 부패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현명한 군주인 왕의 입장에서는 존재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어디 중국 하나뿐일까.
꿈속 세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은 왕의 시점에서 볼 때 미개하고, 야만적인 풍습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
“제국의 지도부는 짐을 건드린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제국의 백성들은 자기들 손으로 국가를 바르게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거요.”
왕은 왕명을 널리 퍼뜨려, 중국 인민 전체에 혁명 정신을 불어넣었다.
그들이 막연하게 품고 있던 부정부패한 지도부에 대한 증오, 그리고 합리적인 사회를 갈구하는 마음을 자극했다.
민초, 즉 백성들에게 수술 도구를 쥐어준 것이다. 그들이 사는 사회를 직접 고칠 수 있도록.
“유례가 없던 대수술이 되겠군요. 과연 그 제국은 수술을 견딜 체력이 있을까요?”
“없소. 그리고 상관없소.”
왕은 냉정히 말을 이었다.
“짐은 치료의 형태를 빌린 벌을 내렸을 뿐이니.”
너무 강한 약은 때로는 몸을 해치는 독이 된다. 또한 적당한 약이라 할지라도 쇠약한 몸에는 독이 될 수 있다.
왕은 강력한 치료제를 주었지만, 그것은 그 나라가 소화하지 못하는 한 치명적인 독이 될 뿐이다.
북경 대참사는 중국 전체를 깨웠다.
잔혹한 진압 및 공포 정치로 인민들을 다스리려 했던 공산당은 그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장병들이! 일선 장교들이! 모두 명령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통제를 따르지 않습니다!”
“반역입니다! 중앙군 곳곳에서 반역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군대는 이미 혼란에 빠졌습니다!”
“군대가 무기를 거꾸로 쥐고 시위대에 합류해서 진격하고 있습니다!”
10만 명의 사상자를 낳은 북경 대참사.
무수한 사람들이 전차에 깔렸지만, 그것은 더 이상 공포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인민들에게 차분한 분노를 일깨우는 격발쇠 역할만 했다.
300인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 입을 여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마치 지금 이 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총서기는 눈을 감았다. 대관절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한서진을 납치하지 말아야 했나?’
자신이 지시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측근의 판단을 묵인해준 것은 자신이었다.
에테르 과학을 독차지한 미국은 앞으로 따라잡는 게 불가능할 만큼 발전할 것이다. 미국의 헤게모니 체제가 더욱 굳건해지는 미래에서 중국의 위상은 없다.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에테르 과학을 차지하든지, 아니면 미국도 가지지 못하게 부숴버리든지.
허나 그 일이 이런 큰 불로 번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총서기 각하, 일단 탈출하셔야 합니다. 이곳도 안전하지만은 않습니다.”
“더욱 강경하게 진압을 해야 합니다! 시위대 전체를 짓밟는 한이 있더라도 중앙 정부의 지엄함을 보여야 합니다! 우습게 보이니까 이리 거역하는 겁니다!”
국무원 총리의 강경한 말에 총서기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인민은 결국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근본이요. 그런 근본을 아예 도려내자는 거요?”
“총서기 각하……!”
“일단 몸을 피합시다. 인민들의 분노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립시다.”
총서기는 누구를 제물로 바쳐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웬만한 숙청 조치 가지고는 인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리라. 최고위직 간부의 절반 이상은 도려내야 할까?
회의실 밖에는 중앙위원회의 탈출을 위한 헬기가 대기 중이었다.
군 기지이니만큼 충분한 헬기 수량이 갖춰져 있었다. 위원회 간부들은 차례차례 나눠서 헬기에 탑승했다.
총서기도 3명의 상무국 정치위원과 함께 헬기에 탑승해서 그곳을 떠났다. 일단 핵미사일 기지로 중앙 정부를 이전해서 대책을 세울 작정이었다.
문득 총서기는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신음했다.
‘어떻게 이런…….’
도시의 거리에는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 인민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정부의 통제를 거부한 군대와 합쳐져서 행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정부를 몰아내려는 그들의 외침이 이곳까지 들리는 듯했다.
총서기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민중의 어리석음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 중요한 때에 정부의 발목을 잡으면, 결국 미국에 먹혀버리고 마는 것을…….’
지금 미국이 잠자코 있지만, 그것은 중국의 상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일 뿐이다. 아마 물밑에서는 끊임없이 정보 조작과 공작에 열중하고 있으리라.
어리석은 인민들은 그것을 모른다. 지금은 결코 혁명 놀음 따위에 취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그때 헬기가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착륙을 시도했다. 마침내 완전히 땅에 착지하자 총서기는 눈을 떴다.
“벌써 도착했나?”
미사일 기지는 이곳에서 거리가 상당하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 같은데, 그새 도착했단 말인가?
철컥.
그때 차가운 격철음이 울리며 섬뜩한 느낌을 안겨 주었다. 총서기와 다른 상무위원들은 안색이 굳어서 기장을 바라봤다.
“너, 너 이놈! 설마……!”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지요.”
총서기와 상무위원들은 하얗게 질려서 차창 밖을 돌아보았다. 무수한 군중이 빽빽하게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어딘지 익숙한 거리, 총서기는 불현듯 이곳이 어디인지 깨달았다.
“여긴, 북경……!”
“맞습니다. 수십 대의 전차가 선량한 인민들을 짓밟은 바로 그 눈물의 광장입니다.”
헬기 문이 열리고, 건장한 남자들이 우르르 달려와서 그들을 끌어내서 묶었다. 강제로 무릎이 꿇려진 그들은 증오를 품은 군중의 시선을 받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광장 중심에 마련된 커다란 교수대가 보였다. 동그랗게 늘어진 밧줄이 그들을 환영하듯이 이리저리 가벼이 흔들렸다.
“저승길이 외롭지는 않을 겁니다. 수많은 당원들이 뒤를 따를 테니까요.”
이날, 수백 명의 최고위 지도자들이 군중의 손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작품 후기 ==========
“판사님, 저는 프랑스 대혁명을 모티브로 했을 뿐입니다. 제발 믿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