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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84화 (284/609)

00284  왕명, 혁명  =========================================================================

“알려줄 수 있습니까?”

클레튼 대통령이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시선으로 주시했다. 한서진은 그의 눈빛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자신은 미국에 모든 기반을 두고 있고, 미국은 중국과 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보복하려 했다.

이미 상호 간에 굳은 신뢰가 맺어진 상황, 그에게 미국은 조국보다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국가였다.

“자세한 설명은 난감합니다만, 에테르를 이용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마력 칩셋을 개발해두셨던 거군요.”

“비슷합니다. 부유 기능이 있는 마력 칩셋을 항공기에 미리 장착해두었습니다. 실험적인 모델이었는데 저도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서 왕의 힘을 둘러댈 수 없는지라 한서진은 대강 그럴듯하게 지어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본질을 감추긴 했으나, 한서진은 분명 대답을 해주었고, 그것은 미국과 그의 관계가 여전히 끈끈하다는 방증이기도 했기에.

“실은 한 박사가 에테르를 이용한 전략무기 개발을 이미 완료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의 시선도 있습니다.”

“제가 전략무기를요?”

“그만큼 한 박사가 해낸 것이 놀랍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8km에서 날개를 잃고 추락한 점보기를 안전하게 착지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죠. 수퍼맨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를까요.”

한서진은 어이가 없어서 그저 피식 웃었다. 클레튼 대통령은 그 맥 빠진 웃음에 담긴 허탈함을 읽었다.

“에테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저는 에테르를 살상 무기 쪽으로 연구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한 박사의 그 높은 뜻, 지지하겠습니다.”

술이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좀 더 부드러워졌다.

한서진은 취기를 빌어 넌지시 물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될까요?”

“…….”

대통령은 바로 대답하지 않은 채 잠시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한서진은 그가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윽고 그가 입을 떼었다.

“중국 대혁명은 잘 아실 겁니다. 중국 전 지역에서 인민들이 궐기했지요.”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 수가 어느 정도인지 혹시 아시나요?”

“적어도 10억 이상이라고…….”

대통령은 더욱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한서진은 그의 미소가 괜히 신경 쓰였다.

“소박하게 잡으시는군요.”

“그럼 그 이상이라는…….”

“우리는 최소 13억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상 부유층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봐야 하겠지요. 중산층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한서진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최소 13억 이상? 그렇다면 모든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중국이 천안문 사태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겠지만, 나라가 송두리째 없어질 것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

“부유층과 그에 얽힌 계층을 제외하면, 국가에 소속된 모든 인민들이 지도부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국 지도부는 결국 선택을 해야 할 겁니다.”

“물러난단 말입니까?”

“끌려 내려오기 전에 말이지요.”

대통령의 입가에 떠오른, 의미심장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우리 미국은 현재 무력적 보복 행위를 잠시 중단한 상태입니다. 무력 투사보다 더 좋은 방법이 널린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더 좋은 방법이요?”

“중국 내부 라인을 최대한 동원해서 대혁명에 더 큰 불을 붙이고 있습니다. 절대 쉽게 꺼지지 않도록 말이지요.”

그것은 무력이 아닌 첩보를 이용한 또 다른 전쟁.

한서진이 생환했고, 중국이 혼란에 빠진 지금 미국이 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카드였다.

“일단 대혁명이 흘러가는 상황을 조절하면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개입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내정 간섭이라고 한 소리 듣겠군요.”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전쟁까지 치르려고 했던 나라입니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중국 지도부가 곤경에 빠진 현재 상황이 즐거운지 대통령은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일은 전례가 없는지라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저로서도 쉬이 믿어지지 않는군요.”

“그렇군요.”

“중국의 모든 인민들이 일어나서 지도부를 몰아내려고 하다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도 어떠한 전초도 없이 말입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격발 장치가 된 건가요?”

“연관성은 있지요.”

중국은 한서진의 납치를 빌미로 세계적인 공적이 되었고, 인민들의 궐기에는 그런 국가 범죄도 어느 정도 관여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자국 정부의 국익을 위한 범죄 행위에 관대한 인민들이 이렇게까지 거세게 일어난 것은, 미국으로서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범주였다.

궐기의 과정, 목적, 이유, 그리고 그 규모까지.

“중국 대혁명은 어느 것 하나 선뜻 이해되는 게 없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을 분석하는 것보다 이것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 부정부패를 욕하며, 지도부의 일괄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거리에는 시위 세력이 넘쳐나고, 모든 나라가 혼란스럽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많은 인민들이 생업마저 전면 중지한 상태에서 시위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 10억이 넘는 인민들이 생업을 하지 않은 채, 시위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중국 내의 모든 공장이 멈춰 버렸다.

근로자들은 공장에 출근하는 대신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고,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고 시위에 참여했다. 학생들은 등교 대신 교복을 입고 광장으로 향했으며, 주부들은 아이를 들쳐 업고 시위에 참여했다.

말 그대로 전국적인 시위 신드롬이었다.

인민들은 마치 시위에 참여하지 않으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업 및 모든 개인 활동을 중지한 채 광장으로, 거리로 나갔다.

국가구성원의 99% 이상이 혁명에 참가하는 상황, 국가로서의 생산 기능은 사실상 중단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즉각 무역 시장에 타격이 왔다.

주식시장을 포함한 중국 관련 경제지수는 끝을 모른 채 폭락을 거듭했고, 항만을 드나드는 컨테이너는 수출입이 묶인 채 기약 없는 대기에 빠져들었다.

“서둘러 이 사태를 종결시켜야 하오.”

300명의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한 자리에 모였다.

8천만 명의 공산당원 중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300인. 중국을 이끌어가는 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집단이다.

그 중에서도 최고권력자인 총서기는 대책회의가 시작되기 전부터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소. 이미 중국의 무역과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소. 이 사태가 일주일만 더 길어져도 중국의 경제는 10년 이상 뒤로 후퇴하고 말 거요.”

다들 공감한다는 듯이 무거운 얼굴로 끄덕였다.

벌써 며칠째인지, 인민의 99%가 일은 안 하고 시위만 거듭하고 있다.

“만약 어리석은 인민들의 요구에 굴복해 우리가 물러난다면, 미국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중국을 사정없이 물어뜯을 거요.”

“맞습니다.”

“군중이란 본래 어리석은 법입니다. 국가 수뇌부가 무너지면 다른 국가에 잡아먹힌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감정에 취해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강제로라도 계몽해야 합니다. 그리고 강압적인 수단을 쓰더라도 저들을 해산시켜야 합니다.”

“일선 장병들 대다수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큰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99%의 인민들이 적으로 돌아선 와중에도 그들이 한 가닥 여유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군대라는 강력한 무기를 단단히 쥐고 있기 때문이다.

무장하지 못한 시위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결국 시들해지면 저들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때를 기다려 주모 세력을 찾아내서 일벌백계하면 된다.

문제는 주모 세력이 누구인지 짐작 가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공안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나서고 있지만, 혁명을 주도하고 이끄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여러 모로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반란’이었다.

“배후가 누구인지 아직도 못 찾았소?”

“죄송합니다.”

총서기의 질책에 공안부 위원이 쩔쩔매며 대답했다.

“반란을 주도했다면 분명히 그 목적은 권력 쟁취일 텐데, 대관절 이해할 수가 없군. 이건 중국 전체가 다 같이 죽자는 식이 아닌가!”

총서기는 일갈을 하며 분노를 터트렸고, 위원회는 침묵으로 그의 분노에 동조했다.

잠시 후 총서기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소. 이 사태가 며칠만 이어져도 중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총서기님.”

“군중을 강제로 해산하겠소. 먼저 북경부터 본보기를 보여야겠소.”

300인의 중앙위원회.

공산당의 심장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북경.

오늘도 광장에는 수많은 인민들이 모여 부패한 권력자들을 성토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총서기는 물러나라!”

“부패한 관료를 처벌해라!”

“억울한 정치범을 석방해라!”

샤오니는 오늘도 회사 대신 광장에 출근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입을 맞춰 혁명 구호를 입에 담았다.

“위대한 중국에 고결한 정의를!”

“개혁해라! 개혁해라!”

남들과 호흡을 맞춰 한 마디 한 마디를 외칠 때마다, 속에서 뜨거운 힘이 끓어오르는 듯했다. 원천을 모를 용기가 끝도 없이 샘솟는 기분이다.

그 짜릿한 감각에 휩싸인 채, 샤오니는 더욱 열창했다.

마치 지금 외치지 않으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그때였다.

“군대다!”

“탱크야!”

땅이 진동하는 굉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장갑차 부대를 거느린 전차들이 나타났다. 대로 한쪽을 차지한 전차부대는 군중과 몇 십 미터 거리를 앞두고 잠시 멈췄다.

선두에 선 전차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고급 장교가 해치를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마이크를 입에 대자 외부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민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누군가의 선동과 날조에 속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행위는 국가에 대한 반역이자 내란입니다. 형법적으로 무거운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범죄 행위라는 말입니다.」

무거운 형벌.

아마도 사형을 뜻하리라.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군중은 잠시 침묵한 채 조용히 지휘관을 주시했다.

군중의 침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는지, 지휘관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즉시 해산하고 가정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순순히 해산한다면 더 이상의 처벌은 없을 것입니다. 공산당의 이름을 걸고 약속합니다.」

여전히 사방은 고요했다.

공포라도 질린 것일까. 지휘관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군중이 결집돼 있다 하나 완전 무장한 전차 부대 앞에서는 무력하다.

당장 전차 한 대만 나서도 저들을 짓밟고, 혼비백산해서 흩어지게 만들 수 있을 테니.

그때였다.

“공산당의 발이나 핥는 더러운 군벌놈들아! 물러가라!”

“죽여라! 죽여라!”

어느 곳에서 시작된 외침이 한순간에 군중 전체로 퍼져 나가며, 순식간에 정적이 깨져 나갔다.

성난 군중은 황소 떼처럼 전차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어어 하는 틈에 선두 전차는 순식간에 에워싸였고, 전차를 타고 올라온 이들이 지휘관을 끌어내리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둔탁한 굉음이 광장을 뒤흔들었고, 붉은 혈육이 넓게 비산했다.

========== 작품 후기 ==========

―개와 돼지 여러분, 순순히 선동과 날조에 휘둘리는 것을 중지한다면 유혈사태는 없을 것입니다.

ps : 결혼식은 무사히 마쳤고(제 결혼 아닙니다-_-) 지금 집은 개판 오분 후입니다.

저걸 언제 다 치울지 까마득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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