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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82화 (282/609)

00282  왕명, 혁명  =========================================================================

「한서진 박사의 예비 장인이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박사의 전용기는 중국 공군의 공격을 받아 8km 고도에서 추락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백철중은 큰 충격에 빠졌다.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정지원은 대답을 바꾸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마치 한서진의 죽음이 자기 책임이라도 되는 듯, 정지원은 무척 송구해했다.

‘이걸 어쩐단 말이냐.’

눈앞이 그저 캄캄했다. 몸에서 큰 살점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간 느낌이다.

전화를 끊고, 제일 먼저 딸이 생각났다.

딸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까. 상상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절대 비밀로 하리라 다짐했다.

“아빠, 오빠가 연락이 안 돼요.”

“그, 그래? 바쁜가 보구나.”

“이상해요. 계속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만 나와요. 어떻게 된 걸까요?”

“모르겠구나. 일정이 바빠서 꺼놓았을 수도 있지.”

백철중은 필사적으로 시치미를 뗐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지만, 딸의 아픔을 하루라도 늦추고 싶었다. 그런 비보를 통지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안타까운 노력은 며칠도 이어지지 못했다.

―우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인류의 미래는 중국의 야욕에 의해 맥없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중국은 한서진 박사를 살해한 범죄 행위에 관해서 무제한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 성명 발표.

방송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이제는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가 없게 되었다.

발표가 채 끝나기도 전에 폰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한 그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바로 딸이었다.

받아야 하나? 받아서 뭐라고 해야 하나?

고통스러운 망설임을 끝낸 그는 겨우 전화를 받았다.

「……아빠.」

“하나야.”

「이거…… 사실 아니죠? 거짓말이죠?」

“……미안하구나.”

위로를 건네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백철중은 통화가 끊긴 폰을 들고 암담한 채, 한참을 그렇게 굳어 있었다.

「한서진 박사의 죽음은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나, 우리의 검문 통제에 응했으면 그런 비극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은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미중 간의 신경전이 나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한반도 역시 전쟁의 불화에서 열기를 받고 있었다. 나라 전체가 술렁이며 국민들의 표정에 분노와 불안감이 어렸다.

―이러다가 진짜 미중 전쟁 나겠네. 우리도 싫어도 끌려들어가겠지?

―정말 싫다. 미국 일에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지?

―이게 왜 미국 일이냐? 한서진 박사가 우리나라 사람이지 미국 사람이야?

―미국 명예시민이면 미국 시민 맞잖아.

분노, 공포, 증오, 혼란.

나라 전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무너질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때를 노려 여당에서는 날치기 입법을 시도했고, 이를 감지한 시민 단체가 저지에 나섰고, 국민들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정신이 없고, 온통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백철중에게 그런 것들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하나는?”

오늘도 일찍 퇴근한 백철중이 묻자 송지현은 씁쓸한 얼굴로 저었다.

“자기 방에 있어요.”

“…….”

“오늘도 울기만 해요.”

한서진의 죽음이 알려지고 벌써 사흘째, 송하나는 여전히 방에 틀어박혀서 울기만 했다.

집안 분위기도 초상집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송지현은 이제 좀 괜찮아졌지만, 딸은 여전히 눈물바다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 사람아. 이렇게 가면 우리 하나는 어떡하라고.’

오죽하면 한서진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백철중은 무거운 음색으로 말했다.

“앞으로 중국 사업은 영영 철수해야겠어.”

“전쟁 때문에요?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요?”

“글쎄, 그것도 있지만…… 한 박사를 죽인 나라에서 장사를 할 수는 없지.”

이런 결정은 기업가로서 실격임을 안다.

하지만 백철중은 아버지로서, 그리고 한서진의 지인으로서 도저히 중국 사업을 용납할 수 없었다. 기업가로서는 그릇된 결정이지만 인간으로서는 옳은 결정, 그는 이 부분에서만큼은 내려놓기로 했다.

그때였다.

“웬 해외전화야?”

모르는 번호가 걸려왔다. 해외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백철중은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전파 너머로 들린 음성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회장님, 접니다.」

“하, 한서진 군? 정말 자네인가? 자네, 살아 있었어?”

「예, 지금 막 미군의 구조를 받았습니다.」

“살아 있으면서 왜 이제야 연락을 하나!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기나 해! 칼라폰은 뒀다가 뭐했나?”

「죄송합니다. 추락 당시 충격으로 모든 전자기기가 망가져서요. 칼라폰도 부서졌습니다.」

백철중은 그제야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부러 안 한 게 아니라 사정이 있었구나.

「죄송합니다. 지금 미군 헬기 타자마자 전화 한 겁니다.」

“왜 하나한테 먼저 안 하고 나한테 하나? 어서 하나한테 연락해서 안심시키게! 자네가 죽은 줄 알고 삼일 내내 울기만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나가 전화를 안 받아서요. 모르는 번호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전화 좀 받으라고 해주십시오.」

“알았네. 아니, 아니야! 마침 지금 집이니까 내가 내 전화를 하나한테 주겠네! 자네도 끊지 말고 있게!”

「알겠습니다.」

송지현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 경악한 모양이다.

말 그대로 죽은 사람, 아니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서 돌아왔다.

백철중은 부리나케 2층으로 뛰었다. 흥분으로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이 사실을 알면 딸이 얼마나 기뻐할까.

그는 노크를 할 틈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딸은 침대에 웅크리고 앉은 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하나야! 한 박사가 구조됐단다!”

송하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물이 말라붙은 표정에 패닉이 가득했다. 그것은 순식간에 기쁨으로 바뀌었다.

백철중은 강제로 폰을 쥐어주다시피 건넸다.

“전화 왔다. 어서 받아라.”

“하나야. 나…….”

말을 꺼내자마자 수화기에서 통곡이 쏟아졌다.

무수한 감정이 섞인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서진은 아무 말도 잊지 못했다. 그저 우두커니 앉은 채 그녀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저도 죽으려고 했어요.」

“큰일 날 소리.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오빠 따라 가려고 했어요.」

“만약 내가 죽더라도 절대 그런 생각 품지도 마. 알았어?”

그렇게 혼내고 어르고 위로하며, 한서진은 최선을 다해 송하나를 안심시켰다.

“지금 미군 구조 받았고, 7함대로 가는 중이야.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베트남이라고요? 그럼 이동하다가 또 중국이 공격하면 어떡해요?」

“걱정하지 마. 호위 전투기 편대도 함께 왔어. 그럴 일은 절대로 없어.”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송하나는 또 한 번 울음을 터트렸다.

“금방 갈게.”

「……네. 빨리 오세요.」

언제까지 전화를 붙잡고 싶었지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지인들에게 속속들이 알려야 했다. 한서진은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전화를 끊었다.

울음 가득한 목소리를 가만히 떠올리니, 그저 가슴이 아프다. 그 어린 것이 얼마나 놀랐을까. 돌아가면 더 잘해줘야지.

그는 한지혜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구세요?」

“나야.”

「어, 오빠. 이 번호는 뭐야? 왜 오빠 전화로 안 걸고?」

한지혜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쾌활했다. 한서진은 기특한 마음에 코끝이 찡했다. 이 녀석, 걱정했던 티를 안 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구나. 이렇게 오빠를 깊이 생각하는 동생이었을 줄이야.

그는 마른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걱정 많이 했지? 미안하다.”

「무슨 걱정? 아아, 오빠가 강연 실수 안 하나 하고 아주 쬐끔 걱정하긴 했지. 학회는 잘 하고 있어? 언제 끝나더라?」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무슨 소리를 하냐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너, 내 소식 못 들었어? 설마 지난 며칠 동안 기사 하나 안 본 거야?”

「나 친구들하고 산에 놀러갔다가 이제 집에 가는 중인데? 콘도에서 친구들하고만 있었고 핸드폰도 다 꺼놨어. 경호원도 울타리 밖에 물려놓고.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됐고. 아무튼 지금 현 시간부로 내 신병은 무사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자세한 건 회장님한테 물어 봐.”

「오빠? 무슨 일인데?」

그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고, 정지원에게 걸었다. 박효산, 니트론, 학교 총장, 서진혁 재무팀장, 제약담당 박현준 등에게도 차례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생환을 알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했으며, 기뻐했다. 자기 일처럼 생환을 축하해주었다.

그래, 이런 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라는 년은…….

“지 오빠 죽은 줄도 모르고 술독에 빠져 있었어?”

물론 정말 죽은 건 아니지만, 지난 며칠 간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한서진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보고에 백악관은 완전히 할로윈 축제 분위기였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측근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어났다.

“중국 꼴이 아주 보기 좋게 됐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아주 기대 되는데요.”

“지금 정신없을 겁니다. 거의 모든 중국 인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건 폭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혁명이죠.”

“중국 인민들이 지도층의 부정부패에 드디어 눈을 떴군요. 시기가 참 절묘합니다.”

“그런데 한서진 박사는 어떻게 무사했던 것일까요?”

“…….”

누군가가 제기한 의문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A380은 기관총탄에 날개 하나가 박살이 났고, 8km 고도에서 추락했다.

날개 하나를 잃은 항공기가 비행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무거운 기체가 8km에서 초음속의 속도로 추락했다.

당연히 기체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산산조각 났을 테고, 탑승자는 시체를 찾는 게 기적일 것이다.

그런데 무사했다. 그것도 전원이 상처 하나 없이.

이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자세한 건 나중에 한서진 박사한테 직접 들을 수 있을 겁니다만…… 제 생각에는 아마도 특수한 마력 칩셋을 미리 항공기에 설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력 칩셋?”

“이를테면 낙하 속도를 늦춘다던가 하는 그런 장치 말입니다. 에테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손톱만한 반도체에 회로를 새겨 대형 화재를 한순간에 진압하는 힘, 그것이 바로 에테르다.

만약 한서진이 또 다른 마력 칩셋을 이미 개발해놓았고, 그것으로 항공기의 안전을 확보했다면?

“그럴듯하군요. 하지만 섣불리 추궁해서는 안 되겠지요?”

대통령은 한서진이 기분 상하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확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서진 박사가 이미 전략병기 수준까지 에테르 연구가 진행된 상황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우리 미국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서진 박사는 기꺼이 협조해줄 거라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사이가 아닙니까?”

그제야 대통령은 여유 있는 웃음을 짓고 말했다.

“조만간 제가 술 한 잔 하지요.”

========== 작품 후기 ==========

바람직한 여동생의 표본입니다.

(※발암이 아니니 발음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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