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81 왕명, 혁명 =========================================================================
샤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중국 명문대 출신인 그는 나름 유망한 자원이었지만 인맥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서 배터리를 생산하는 중국의 한 기업의 영업부서에 근무하고 있었다.
영업부에 일을 하면 온갖 더러운 꼴을 보게 된다. 샤오니는 회사가 더럽게 일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온갖 불합리적인 일들이 사방에 넘쳐난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자기 일에 열중했다.
회사가 하청업체를 상대로 강압적인 비즈니스를 하든, 정부 인사들에게 뇌물을 상납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그저 월급만 제때 받으면 됐다.
‘이 나라는 참 썩었어.’
공부할 만큼 공부해서인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인식하고 있다.
기업, 관료, 정치, 그리고 낮은 시민 의식. 이 나라는 썩지 않은 곳이 없다. 어디를 가도 부정부패가 넘쳐난다.
아시아 중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나라 규모가 크다 보니 부패의 크기도 엄청났다.
‘고위 공산당원 중에서 총자산이 7억 위안 밑인 사람이 없다고 했지?’
7억 위안. 무려 1억 달러가 넘어가는 거액이다.
고위 공산당원 중 자산 규모가 그보다 밑인 사람은 없다는 게 정설이다. 어디까지나 ‘기본’ 규모에 불과하며, 초고위직은 그 수십, 수백 배의 자산을 축적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
해외에 수많은 은닉 재산이 있고, 정경유착으로 엄청난 뒷돈을 챙기고, 본부인 외에 여러 명의 여자들을 거느리며 왕 같은 생활을 누리고…….
그런 도둑들이 국가지도층이랍시고 떵떵거리며 중국을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래도 샤오니는 참고, 묵묵히 자기 일에만 열중했다.
어차피 사회는 부정하고 더러운 법칙으로 돌아가는 법, 그들의 리그에 진입하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견딜 수가 없으니.
일당 독재 국가라지만, 그래도 깨어 있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게 문제였을 뿐.
그런 이들이 가끔 시위를 벌이거나, 목소리를 높이며 자기주장을 관철하기도 한다. 나라의 변화를 강하게 요구한다.
물론 그들은 예외 없이 공안에 끌려가서 소식이 두절되곤 한다. 끌려간 이들 대부분은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이 없고, 풀려나온 이들도 육체적, 사회적으로 폐인이 된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샤오니는 침묵했다.
‘어차피 나 하나 나서봐야 달라지지도 않아. 세상은 아래에서부터 썩었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깨끗한 걸까.
아랫물이 깨끗해야 윗물까지 맑게 되는 걸까.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샤오니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십 년 전에도 그랬고, 수백 년 전에도 그랬으며, 천 년 전에도 그랬으니까.
집단은 거대해질수록 깨끗해질 수 없다. 집단의 더러움은 소수의 의지만으로 개혁하지 못한다.
부정부패 타도를 부르짖는 시위를 볼 때마다, 그런 이유로 샤오니는 침묵했다.
어차피 자신이 나서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어차피 공안에 끌려가 폐인이 될 뿐이다.
분명 자신은 그랬었다. 어제까지는…….
“정부는 물러나라!”
“부정부패! 이제 지겹다! 그만하자!”
“우리는 깨끗한 중화인민공화국을 원한다! 너희 개돼지들의 배를 채워주는 곳간이 아닌, 인민 모두를 위한 올바른 국가를 원한다!”
거대한 파문이 일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수많은 북경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회사에서 일하던 사무직, 거리에서 장사하던 노점상, 건물을 짓던 목수, 트럭으로 물품을 운반하던 운전수…….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서 중국 정부를 비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미 긴장 사태에 정부는 무제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고위직은 안전하게 숨어 있고! 젊은이들의 목숨만 앗아갈 전쟁! 절대로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
“총서기는 책임을 지고 사퇴해라!”
평소라면 샤오니는 그저 지켜보았을 것이다. 아무리 규모가 큰 시위라 해도 결국 힘을 쓰지 못한다.
천안문 사태가 이미 그것을 증명했다. 조금 있으면 전차가 밀려와서 시민들을 몰아낼 것이다. 사상자가 얼마가 되든 짓밟고, 발포할 것이다. 결국 고통 받는 것은 이름 없는 잡초일 뿐이니.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샤오니는 평소처럼 지켜만 보지 않았다. 거리로 뛰쳐나가 그들 사이에 섞이며, 미친 듯이 외쳤다.
“부정부패! 독재! 언제까지 이런 후진국으로 살 수 없다! 중국은 달라져야 한다!”
이상했다.
가슴에서 들끓는 이 뜨거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평소 억눌러두고 있던 정의에 대한 갈망, 국가지도층의 부정부패에 대한 증오, 불합리한 문화를 당연시하는 회사 고위층에 대한 혐오…….
평소 품었던 그런 생각들이 엉키며 가슴에서부터 폭발하듯이 목청으로 터져 나왔다.
신기하게도, 분노하는 스스로가 너무 기분 좋았다. 왜 지금까지 억누르고만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그는 거리를 행진하는 인파에 섞인 채, 다른 이들처럼 목이 터져라 부르짖었다.
“더러운 지도자들은 물러나라!”
북경은 혼란에 빠졌다.
아니, 북경뿐만이 아니었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소도시를 포함한 모든 도시 지역에서 시민들이 일어선 것이다.
학생, 노동자, 시민, 그리고 평범한 가족…….
특정 계층을 구분할 의미조차 없이, 그야말로 모든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서 혁명을 부르짖었다.
“부패한 지도층을 잡아라!”
“총서기를 거리에 매달아라!”
“공직자 치고 안 해 처먹은 놈이 어디 있더냐! 모조리 잡아서 죽여야 한다!”
지역의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전 지역에서 중국 인민들이 혁명을 외쳤다. 부정부패한 사회에 대한 증오를 쏟아냈다.
이 시각, 백악관은 다른 의미로 비상이 걸렸다.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한 미중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 터진 것이다.
클레튼 대통령도 이 사태가 황당했다.
“최소 10억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 많은 중국 인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단 말입니까? 이게 가능합니까?”
1백만 명이라 해도 놀라울 판인데, 무려 10억이나 되는 숫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다니. 눈으로 확인을 하면서도 정녕 믿어지지 않는다. 이게 확률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까.
“지금 중국 정부는 패닉 상태일 겁니다. 우리 미국과 치열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와중에 이런 일이 터졌으니까요. 천안문 사태가 중국 전 지역에 일어난 거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신이시여.”
클레튼 대통령은 성호를 그었다.
너무 황당한 일이라 혹시 중국 정부의 자작극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건 말도 안 된다. 10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혁명을 부르짖으며 거리로 나오게 만들 수도 없고, 그렇게 되더라도 군중 심리에 잘못 불이 붙으면 지도층은 물러나야 한다.
군대를 동원해서 밀어버리는 것도 어렵다. 10억이 넘는 인구를 모두 사살할 수도 없지 않은가?
10억도 어디까지나 최소 숫자가 그렇다는 것이지, 진짜 중국 인민 전체가 거리로 나온 것일 수도 있었다.
대통령은 차갑게 조소했다.
“중국 지도층은 잘하면 모두 루이 16세 꼴이 날 수도 있겠군요.”
“…….”
“누군가가 저 군중을 제대로 지휘하기만 한다면…….”
의미심장한 말에 국무 위원들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대통령 각하! 한서진 박사가 살아 있습니다!”
다급한 보고에 클레튼 대통령은 체면도 잊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요!”
왕명.
군중 제어의 절대적인 권능.
전능에 가까운 레노지안 군주의 힘으로, 불특정 대다수의 군중에게 절대적인 지침을 강요하는 권능이다.
인격이나 기억, 행동을 정밀하게 조작하는 세뇌와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소수가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작용하는 힘이며, 군중을 통제하여 특정한 일을 하거나 혹은 하지 못하게 다스린다.
쉽게 말하면 군중의 욕망에 하나의 씨앗을 틔우는 것. 왕명을 실행하면, 군중을 구성하는 개개인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군집 행동에 나서게 된다.
세뇌가 아니므로, 왕명에 의한 지침은 군중 개개인의 심층 무의식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즉 집단 자살을 명한다거나, 원치 않는 집단 범죄 행위 등을 강요할 순 없다.
군중 개개인이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 혹은 바라지는 않았더라도 거부하지는 않는 것.
그런 보편적인 지침을 내려 일제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것이 바로 왕명의 진정한 위력이다.
‘부패한 나라, 나서지 못하는 군중.’
왕명으로 행한 것은 중국 인민들이 품은 부정부패, 불의,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와 항거를 일깨운 것.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새로이 심어준 것.
그 결과 북경 시민들은 거대한 군중 심리에 불붙어 들고 일어나게 되었다.
왕명은 중국의 국가 지도층, 그리고 그들과 얽힌 이해관계자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왕명이 명한 ‘혁명’은 그들의 욕망과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왕명은 세뇌가 아닌, 대규모 지침이다.
‘한서진……. 이곳으로 돌아오는가.’
왕은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가슴 속 깊이 울림이 느껴진다. 그것은 마치 영혼의 문을 두드리는 한서진의 외침과도 같았다.
자신을 어서 꺼내달라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달라고. 또 다른 아서 왕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왕은 눈을 감았다.
몸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싼 세상이 멀어지는 듯했다.
‘왕비.’
아쉽지만, 이번 진입에서 꿈속 왕비를 만나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그 순간 왕은 눈을 번쩍 떴다. 경악과 혼란이 가득한 눈빛, 이미 그는 왕에서 한서진으로 돌아가 있었다.
“허억! 허억!”
그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마라톤 경주를 한 것처럼 폐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저쪽에서 콜란 기장이 놀라서 달려왔다. 그의 부축을 받으며, 한서진은 겨우 고개를 들었다. 숨소리가 조금씩 차분해지며,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왔다.
“여, 여긴……?”
처음 보는 지역이다. 어디 깊은 산속인 듯 하다.
결박되어 있지는 않다. 주변에 보이는 이들도 전부 자신의 수행원들뿐이다. 중국 군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텐데.’
다행히 콜란 기장이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었다.
“미 정부에 연락했습니다. 7함대에서 지금 수송 헬기와 호위 전투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7함대?”
“7함대는 지금 남중국해 인근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이제 곧 수송 헬기가 도착할 겁니다.”
자세한 영문은 모르겠지만, 무사히 탈출한 게 맞는 듯싶었다.
믿어지지 않는다. 7, 8km 상공에서 날개를 잃고 추락하는 항공기를 어떻게 안전하게 착륙시킨 걸까?
‘내가 저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고. 대체 어떻게 확인하지?’
한서진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폐부를 찌르는 공기가 더 없이 상쾌했다. 레노지안의 청명한 공기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이곳은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가.
‘말도 안 돼.’
한서진은 주먹을 꾹 쥐었다.
이곳 지구가 거짓된 세상이라고? 왕이 꾸는 꿈속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지혜, 송하나, 백철중, 정지원……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꾸는 꿈속의 아바타일 뿐이라고?
‘여기가 진짜 세상이야.’
멀리서 희미한 파공음이 들렸다.
고개를 든 한서진은 수직이착륙기가 날개를 꺾으며 착륙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저 그냥 여기서 고급 노예로 살면 안 돼요……?”
ps : 작중에서 왕명에 대해서 서술했지만 사적인 톤으로 좀 더 보강 설명을 하자면.
쉽게 말해서 군중 심리를 강제로 일으키는 겁니다. 그래서 군중 제어 권능입니다.
세뇌가 아니라 군중 심리 제어이므로, 군중이 강하게 거부할 만한 명령은 효력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집단 자살, 전쟁 촉발 등 자신들의 생명에 큰 손해가 날 일에 군중들이 따르지 않겠지요?
그러나 전쟁이라 하더라도 국민 정서상 용서가 안 되는 불구대천의 원수국이라면 가능합니다. ‘원수국을 때려부수자!’라고 들고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 거죠.
또한 군중 심리 제어이므로 왕명에 반대되는 강한 욕망을 가진 소수의 집단은 효력이 없습니다. 군중으로 취급되지 않는다고 보시면 될 듯.
1) 군중을 한 방향으로 통제하는 권능. 소수의 특정인을 세뇌하는 게 아님.
2) 왕명의 내용에 강한 거부감이 있는 이들은 군중에 포함되지 않음.
3) 뜬금없는 왕명은 오히려 더 많은 군중들이 따를 수 있음. 왜냐하면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내용이기에.
예시를 들자면.
1)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는 왕명에는, 반일감정이 있는 사람들은 왕명을 따르겠지만 친일감정이 있는 사람들은 거부합니다. 하지만 반일감정이 있는 이라 할지라도 전쟁에 직접 참가하라고 하면 자기 목숨이 걸려 있으니 머뭇거릴 수도 있습니다.
2) 국회의원들을 군중 대상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왕명을 내리면, 대통령과 입장이 다른 이들은 적극 따를 겁니다. 반대로 대통령과 강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은 효력이 없죠.
3) 브라질 쌀을 절대로 먹지 말자고 하면, 브라질 쌀 산업에 강한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따를 겁니다. 그거 따른다고 자기가 손해 볼 게 없으니까요.
4) 연참을 하라는 왕명을 써도 실탄은 따르지 않습니다. 실탄은 복수가 아닌 단수니까요. 군중이 아닌 특정 인물입니다.
5) 트롤 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면 평범한 대다수는 더 이상 트롤을 하지 않겠지만, 트롤 자체가 삶의 낙이자 전부인 소수의 관심종자들은 거부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