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79화 (279/609)

00279  스위치  =========================================================================

A380 격추를 확인한 백악관은 발칵 뒤집어졌다.

분위기는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국운을 건 전면전을 앞두고 있는.

클레튼 대통령은 격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화를 냈다. 중국 지도부에 원색적인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그만큼 격노한 것이다.

“피부를 벗겨서 네바다 사막에 던져 놓아도 시원치 않을 것들이! 감히 누구에게 위해를 가해!”

전장정보가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스크린에는 A380이 추락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영상 확인은 불가능했지만, 기체 내부는 아마 지옥이리라.

대통령은 주먹을 불끈 쥔 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마침내 A380 반응이 사라지고, 한서진에게 부착된 추적 장치의 반응까지 소실되었음에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

“…….”

백악관 상황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있을 수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 일.

미국의 보물을 빼앗으려다 실패한 중국은 결국 보물 그 자체를 부숴버렸다.

한참 후 대통령이 눈을 떴다. 그는 국무위원들을 차갑게 돌아보며 물었다.

“중국이 한 박사의 납치를 시도했고, 결국 실패하자 격추시켜버렸습니다. 이는 용인할 수 없는 범죄이자, 우리 미국을 기만한 도발 행위입니다.”

“…….”

“이제부터 우리 미합중국이 어찌 해야 할지, 의견들을 말해보세요.”

차가운 목소리, 하지만 눈빛은 타오르듯이 뜨겁다. 대통령은 용광로와도 같은 분노를 억지로 이성으로 눌러 담고 있었다.

한 위원이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대통령 각하의 말씀대로 이것은 범죄이자 도발행위입니다. 여기서 밀리면 향후 중국은 우리 미합중국을 우습게보게 될 게 틀림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저는 광시장족 자치구에 선제타격을 권합니다.”

다른 위원이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무척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한 박사는 이미 사망했습니다. 복수는 이뤄야겠지만 죽은 사람을 위해서 미국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군사적인 타격은 자칫 전면전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세계대전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고려해 주십시오.”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군사적 타격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중국을 응징하자는 겁니다. 무역 및 금융 제재 정도에 그쳐야 합니다.”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당장이라도 전투기를 보내 납치 지역을 타격하자는 의견, 군사력 동원은 무력시위에서 그쳐야 한다는 의견, 전투로 번질 수 있는 행위는 일절 삼가야 한다는 의견…….

한창 입씨름이 오가던 중 국무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고, 죽은 사람을 위해서 미국 전체를 진창에 빠뜨릴 수 없다는 것은 동감합니다. 그러나…….”

위원들은 숨을 죽여 그의 말을 들었다.

“우리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입었습니다. 이건 뒤집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보물이자 영웅.

캘리포니아의 구세주.

살아있는 유일한 명예시민.

중국의 욕심에 그런 귀중한 사람을 잃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체면에 먹칠을 한 것이다.

국무부 장관은 계속 말을 이었다.

“비강경파 입장인 여러분들의 의견 역시 이해합니다만, 중국 또한 그런 생각을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 미국은 죽은 사람을 위해서 큰 손해를 감수하지 못할 거라고, 세계의 공장인 자기들과 결국 갈라설 순 없을 거라고, 충분한 배상을 취하면 무마할 수 있을 거라고.”

“…….”

“그런 계산이 있었기에 이런 일을 벌인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미국은 그런 계산에 넘어가줘야 합니까?”

무력 투입만은 안 된다고 주장하던 이들의 얼굴에 부끄러운 감정이 어렸다.

모두의 시선이 대통령을 향했다. 그는 표정의 변함없이 입을 열었다.

“태평양 함대를 움직이겠습니다.”

“……!”

“그리고 의회에 선전포고안을 제출할 준비를 하세요.”

이미 한서진이 죽어버린 상황, 미국은 극단적인 선택을 취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은 합의에 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은 그렇게 믿고 있다.

대통령은 그런 중국의 교활함에 어울려줄 마음이 없었다.

“우리 미합중국이 한 박사의 죽음에 얼마나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는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에테르 밀도는 충분하다.’

왕은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피부로 느껴지는 높은 에테르의 농도, 이곳 지구는 오히려 레노지안보다 에테르 밀도가 높은 편이었다.

왕은 최고의 전사이자, 마법사다.

마력(에테르가 뭉쳐서 형상화된 마법적 에너지)을 이용한 일반 마법, 그리고 에테르를 직접 투사하는 근원 마법, 그 어느 것이든 사용 가능하다.

허약한 한서진의 몸을 생각하면 전사로서의 능력보다는 마법사로서의 권능을 사용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다 또다시 꿈에서 튕겨져 나가면?’

처음 이곳에서 깨어났을 때, 왕은 백세완 일당을 제압하기 위해 약간의 힘을 사용했다. 왕이 지닌 그릇에 비하면 티끌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힘이었다.

고작 그만큼을 사용하고도, 왕은 이곳 세상의 거부 반응을 받고 현실로 튕겨지고 말았다.

그 위험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권능을 사용하면 강신이 풀려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아까 한 차례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추락하는 기체를 안전하게 착륙시키기 위해, 왕은 최소한의 마력만을 사용했다. 강신이 풀릴 것을 염려한 조치였다.

그 마력 역시 왕의 권능에 비하면 티끌과도 같은 것이지만, 첫 강신 때 사용한 마력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강신이 취소될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때보다는 허용치가 높아진 것인가? 그렇다면 얼마나?’

강력한 마법을 여러 번 사용해도 끄떡없을 수도 있고, 약한 마법을 단 한 차례만 사용해도 강신이 취소될 수도 있으리라.

‘지금은 모험을 할 수 없다.’

이곳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가고, 또한 향후 한서진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신하는 시간을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 마력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박사님. 이제 CIA 안가를 찾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생환 사실도 알리고요.”

중국을 빠져나오자 콜란 기장이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그는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한서진’의 분위기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을 흐르는 공기의 밀도 자체가 달라졌다. 마치 겉모습만 똑같은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미국은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이요……?”

콜란 기장은 어리둥절했고, 경호실장 박진우는 그 말을 듣고 아 하고 탄성을 냈다.

‘명분이라고? 박사님은 설마……?’

박진우는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미국은 명분이 필요하다는 말, 그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깨달은 것이다.

한서진이 중국에 살해당한 상황, 미국은 당연히 복수를 해야 한다. 그는 미국이 최대한의 보복 조치를 취하도록 생환 사실을 숨기겠다는 것이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연구실에서 기계설비만 만지던 사람이,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저기까지 고려했을 줄이야.

‘한 박사님께서는 미국이 철저한 복수를 하길 원하고 계신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동시에 다른 불안한 생각이 스친 탓이다.

‘만약 미국이 적당히 타협한다면?’

미국은 분노할 것이고, 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타협 역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해서 세계 최대 시장이자 공장인 중국과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을까?

미국은 분노하고 또 보복을 하겠지만, 그게 어디까지 타오를 수 있을까?

그 불꽃이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면, ‘한서진’은 얼마나 크게 실망을 할까?

왕은 박진우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중국의 위협은 저주의 개입인가?’

이곳은 꿈이지만, 또 하나의 완벽한 세상이기도 하다.

영혼의 인식을 속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완벽한 무대가 갖춰줘야 한다. 진짜 같지 않은 가짜는 ‘한서진’에게 위화감을 일으키고, 저주의 실패를 낳기 마련이므로.

중국의 항공기 격추는 저주의 실행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완벽한 무대에서 빚어진 사건의 인과관계일 수도 있다.

전자는 저주의 실행, 후자는 단순한 사건의 흐름.

과연 어느 쪽일까?

‘어찌 되었든 꿈속 나의 안전을 위해서는 그 나라를 확실하게 눌러놓아야 한다.’

강신은 언제 풀릴지 모른다. 마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풀릴 수도 있다.

왕은 미국을 떠올렸다.

‘한서진’을 보물처럼 애지중지 여기는 국가. 왕 또한 한서진의 눈을 통해 이곳 세상을 보아 왔기에, 그 나라가 한서진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강신 유지를 위해 함부로 마법을 난사할 수 없는 지금, 왕은 그것을 지켜본 후에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한서진의 ‘사망’은 공개되지 않았다.

런던왕립학회는 한서진이 갑작스러운 사정에 의해 불참하게 되었다는 통보만을 받고 당황스러워 했다. 송하나와 한지혜는 그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백철중 회장은 직접 나서서 정부에 질의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힘을 썼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중국 공군이 베트남 영공을 불법 침입했고, 하필 그 시간대에 한서진의 전용기가 영공을 통과 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백철중은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분개했다.

“그럼 한 박사가 중국 놈들한테 납치라도 당했다는 거냐?”

“아무래도 정황이 그렇습니다.”

“우리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고?”

“정부도 꽤나 당혹스러워 하는 게…… 아무래도 사건관계를 정확히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비서실장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회장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설명했다.

“지금 중국과 베트남은 일촉즉발의 험악한 분위기입니다. 언제 공군이 출동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주도 7함대 분위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미국은 정확한 사정을 알고 있겠지?”

백철중은 송하나를 떠올렸다.

딸은 아무 이유 없이 한서진과 연락이 안 돼서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미 런던에 도착했을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런 소식조차 없으니.

중국이 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열심히 안심시키고 있었다.

“미국은 알고 있을 겁니다.”

“…….”

백철중은 고뇌했다.

비록 자신이 국내 1, 2위를 다투는 재벌 회장이지만, 워싱턴에 특별한 연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진출한 계열사 인맥을 통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지만, 이런 민감하고 중대한 사건에 접근할 수 있는 인사와는 연결고리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건지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혹시 정말 납치당한 건 아니겠지?’

한서진이 납치된다. 한 번쯤 품었던 걱정이 이렇게 피부에 와 닿을 줄은 몰랐다.

자세한 정황을 알 수가 없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결국 백철중은 망설임 끝에 전화를 들었다.

「로건 정입니다.」

“정지원 사장, 나 H그룹 백철중 회장일세. 자네 말고는 연락할 데가 없더군.”

잠시 침묵하던 정지원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한서진 박사 때문에 전화하셨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자네라면 정황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한서진 박사의 예비 장인이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들어주십시오.」

백철중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지원의 서두가 불길한 예감을 주었다.

「워싱턴은 한 박사의 사망 가능성을 100%로 보고 있습니다.」

“사, 사망이라고?”

「한 박사의 전용기는 중국 공군의 공격을 받아 8km 고도에서 추락했습니다.」

========== 작품 후기 ==========

이왕 온 거 람보르기니, 맥라렌, 배트카는 한 번씩 다 드라이브해보고 돌아가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