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78화 (278/609)

00278  스위치  =========================================================================

―대대, 작전 종료다.

장린펑 상교는 냉정한 눈으로 추락하는 A380을 확인했다.

고고도에서 비행하던 점보기가 날개 하나가 박살났고, 중심을 완전히 잃었다. 제대로 된 방향도 잡지 못한 채 측면으로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는 중이었다.

신이 오지 않는 한 뒤집을 수 없다. 지면 충돌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는 선회하며 기수를 돌렸다.

―이제부터 제2대대와 합류하여 베트남 공군을 압박한다.

중국 공군에 영공을 침입당한 베트남은 당연히 방공망을 풀가동시켜서 대응했다. 자칫 전면전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베트남은 작고, 중국은 거대하다.

지금 베트남은 맹호에게 자기 집을 침범당해 으르렁거리는 하룻강아지일 뿐이다. 맹호가 얌전히 물러나는 척하면 겉으로는 짖어도 끝까지 물어뜯지는 못할 것이다.

이날 이후로 베트남과의 사이가 더욱 나빠지겠지만, 그것은 중국에 아무 상관이 없다.

―이왕 출동한 김에 베트남 공군 녀석들에게 우리 중화인민공화국 공군의 힘을 보여주자. 이상.

고속으로 추락하는 기체를 놔둔 채, 대대는 크게 선회하며 기수를 돌렸다.

기체는 쉴 새 없이 회전하며 빠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한서진의 개인 경호실장, 박진우는 필사적으로 기어서 한서진을 향해 다가갔다.

기체가 정신없이 회전했고, 중력이 몇 배로 늘어난 듯 몸을 지탱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움직였다.

‘시티즌만이라도 어떻게든 탈출시켜야 해!’

불과 몇 미터 앞에 한서진이 보인다. 그는 손을 뻗으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죽을 힘을 다해서 움직였다.

한서진을 절대로 지켜라. ‘조국’이 그에게 부여한 사명을 어떻게든 완수해야 했다.

‘낙하산은 이미 장착하셨다. 어떻게든 후방 문을 개방해서 내가 안고 뛰어내리면 돼.’

시간이 없다. 기체는 지금도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낙하산을 펼 만큼 충분한 고도가 남아 있을까? 금방이라도 지면에 충돌하는 것은 아닐까?

온몸을 압박하는 강력한 중력에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유지했다.

이제 겨우 1미터 남짓.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짜내려던 순간,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

한서진이 손을 뻗은 허공에서 빛이 나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새하얀 섬광이 쏟아져 나왔다.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가 섬광을 쥐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빛이 사그라졌다.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서진은 이 어지러운 중력이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일어났다.

“이런 상황이었군. 그래서 내 의지에 응답했군.”

기이하게도, 이 어지러운 와중에서도 그의 목소리만큼은 똑똑하게 들린다.

무언가 이상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음색이지만, 마치 다른 사람이 그의 입을 빌려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박진우는 보았다.

한서진의 손에서 시작된 빛이 온몸으로 퍼져 나가며, 기내 전체를 뒤덮는 것을.

하얗게 작열하는 섬광이 온몸을 휘어 감는다. 순간 박진우는 온몸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기체가 회전을 멈춘 것이다. 고속 추락에서 오는 멀미와 압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박진우는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을 내다본 그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산기슭이 느린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기체는 중심을 유지한 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산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기체의 날개를 확인한 그는 신음했다. 대낮임에도 신비한 빛이 은은하게 발하며 기체를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조심스럽게 기체를 들어서 내려놓는 것처럼, 기체는 천천히 산기슭 위에 동체를 착륙시키고 있었다.

쿠웅!

가벼운 충격음이 울린다. 동체가 마침내 산기슭에 닿으며 정지했다.

“……신?”

박진우는 멍청히 중얼거렸다. 머릿속에서 그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수km 상공에서 날개가 박살나고 추락하는 항공기를 안전하게 땅에 내려놓다니. 신이 아니고서야 이런 기적이 가능할까?

박우진은 멍하니 한서진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은 신입니까?”

“신의 힘은 이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대단하다.”

위엄이 가득한 눈빛은, 자신이 알던 한서진이 아닌 다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에테르의 힘일 뿐이다.”

박진우는 기장을 포함한 승무원들을 살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들은 예외 없이 모두 기절한 상태였다. 추락과 죽음의 공포, 그리고 엄청난 중력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잃은 것이다.

공군 출신인 콜란 기장까지 의식을 잃은 것은 우스웠지만, 어쨌든 박진우는 승무원들을 일단 한 곳에 모았다.

“여기는 어디지?”

한서진이 반말을 했다. 그것은 마치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박진우는 공손히 대답했다.

“난닝시 부근 같습니다. 베트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입니다.”

“항공기로 이동 중이었나?”

“……예, 베트남 영공을 거쳐서 영국으로 가던 중에 일이 터졌습니다.”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었나? 아니면 정말 사람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박진우는 혼란스러웠다.

한서진은 자신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을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게 아니었다.

마치 높은 곳에 우뚝 선 자가 굽어 내려다보는 듯한 위엄이 느껴진다. 그의 눈을 똑바로 보는 게 오히려 황송한 기분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자세히 설명해라.”

명령을 내리는 태도가 자연스럽다. 분명 이상한 질문이지만 한서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박진우는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했다. 신기하게도 왜 그런 걸 묻나 하는 의구심이 일어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기억을 잃기라도 한 거냐, 그런 질문을 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어떻게 감히 ‘이 분’에게 질문 따위를 던질 수 있으랴. 그런 송구한 감정만이 가슴에 가득했다.

박진우는 하나라도 빠뜨린 게 있을까 싶어 열심히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군.”

한서진은 차분히 끄덕였다. 사색에 잠긴 눈빛은 예전에 알던 그의 것이 아니었다.

“으으…….”

그때 승무원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서진은 그쪽을 흘끔 보고는 다시 박진우에게 눈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경직된 듯이 얼어붙었다.

지금까지 군인, PMC 용병 일을 하며 무수한 사선을 헤쳐 나왔다. 두려움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의 눈동자가 직시하자 온몸의 세포가 바르르 떨린다. 그의 존재감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켜 버릴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명령이었다.

무엇을 말하지 말라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그런 불필요한 것들은 전부 생략되어 있다. 박진우가 반발을 하거나 거절할 것은 애초에 가정하지도 않은 위엄이다.

박진우는 그의 명령에서 거부할 수 없는 속박을 느꼈다.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따라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는 힘들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떨림이 조금씩 멎으며, 신기한 감각이 가슴에 고인다.

누군가의 명령이 이렇게 당연하고 안심되며, 그에 복종하는 것이 편안할 줄이야.

“생환 사실은 비밀로 하겠다.”

왕은 깨어난 승무원들에게 짧게 지시했다. 신기한 것은 누구도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최면이나 세뇌와는 전혀 달랐다. 왕의 위엄에 자연스럽게 흡수되며 적응한 것이다. 마치 본능과도 같이.

콜란 기장 역시 속으로 그의 달라진 태도와 말투가 의아하긴 했으나, 위급 상황에서 그런 것을 깊이 생각하는 게 바보짓이라고 여겼다.

오히려 콜란은 그가 냉철하게 현재를 짚어주고, 자연스럽게 그룹을 리드하는 모습에서 기묘한 존경심까지 느꼈다.

콜란은 박진우를 포함한 몇 몇 이들과 짧게 의논했다.

“CIA 안가를 찾으려면 찾을 순 있겠지만 너무 위험해.”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입니다. 언제 중국 수색대가 들이닥칠지 몰라요.”

“의외로 인근 통제만 해놓고 수색 작업은 느긋하게 하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통제라인이 그어지기 전에 벗어나야 해요.”

그때 왕이 가볍게 대화를 중지시켰다.

“출발한다.”

마치 길을 잘 아는 듯이 왕이 앞장을 섰다. 승무원 및 경호원들은 서둘러 그의 뒤를 쫓았다. 조금만 정신을 놓았다 하면 저만치 거리를 벌린 채 기다리는 통에, 그들은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쫓아야 했다.

“하, 한 박사님 몸놀림이 엄청 가벼운데?”

“맨날 훈련받고 구르는 우리보다 더 잘 뛰시잖아?”

“약골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동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박진우는 아까 기내에서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신비스러운 빛을 뿜어내던 그의 위엄, 그리고 마법처럼 안전하게 내려앉은 항공기.

‘에테르라는 게 그런 것도 가능한 건가?’

에테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그는 에테르에서 이미 얼마만큼의 성과를 이룩한 것일까.

‘큭!’

가볍게 생각했을 뿐인데 가슴이 무거워진다. 감히 그분을 의심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비록 아주 사소한 조각일지라도.

“그런데 한 박사님께서 생환 사실을 비밀로 하시겠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중국은 애초에 한 박사님을 납치하거나 아니면 살해할 작정임에 틀림없어. 항공기가 격추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이제 우리 미국과 본격적인 협상을 하겠지.”

“협상이라고요?”

“미국은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어.”

부기장은 이를 바드득 갈며 말을 이었다.

“박사님께서 살아있다면 끝까지 대응하겠지만, 돌아가셨다고 알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아무리 훌륭해도 죽은 사람 때문에 일을 더 키울 수는 없으니. 적당히 양보를 받아내는 선에서 타협을 선택할 거야.”

“하지만 미국의 자존심이!”

“상대는 중국이야.”

승무원들은 그가 생환을 비밀로 하겠다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중국을 제대로 곤란에 빠뜨리기 위해서, 결정적인 카운터를 위해서 생환 사실을 숨기겠다는 것이리라.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아군을 먼저 속여야 한다. CIA 안가와 접촉해서 탈출하면 안전은 확보하겠지만, 중국이 눈치 챌 가능성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어떡하실 생각일까?’

콜란 기장은 헉헉대며 그를 쫓아가면서도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가 중국에 복수하고자 한다면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휘두를 수 있는 칼이 넘쳐 나서, 오히려 그 중 하나를 고르는 게 더 힘들다.

SJ반도체를 아예 끊어버릴 수도 있고, 넘쳐나는 현금으로 괴롭힐 수도 있다.

다른 나라들과 공조하여 무역으로 괴롭혀줄 수도 있고, 외교 폭로로 이용해 국제적으로 큰 망신을 줄 수도 있다. 또 미국의 군사력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가 어떻게 중국을 응징할지 상상이 어렵지만, 매우 무거운 응징을 준비하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당분간 생환 사실까지 숨기겠다는 것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 일행은 우습게도 중국이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아주 잠깐이었다.

============================ 작품 후기 ============================

“한서진.”

“넵, 폐하.”

“본좌가 다 처리해 줄 테니까 거기서 잠깐 꿀이나 빨고 있거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