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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77화 (277/609)

00277  스위치  =========================================================================

―나, 미합중국 대통령 클레튼 커린은 미국을 대표하여, 영원한 친교의 뜻을 담아 한서진 박사에게 미국 명예시민증을 드립니다.

우레이 중앙정치국 위원은 심각한 얼굴로 TV 영상을 보고 있었다. 환히 웃는 미국 대통령이 한서진에게 명예시민증을 직접 전달하고,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진다.

“기어이 뺏기는가.”

그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SJ인더스트리에 관해서는 진작부터 다양한 소문이 돌았다. 설립자가 한국인이니, 한국계 미국인이니 등등.

중국 역시 정보력을 십분 활용해 ‘슈나우저의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대학교에서 500억 불의 잭팟이 터졌다. 중국 정부는 한 명의 대학생을 주의 깊게 주시했다. 그리고 그가 슈나우저의 개발자일 거라는 강한 심증을 얻었다.

접근을 하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미 그전부터 그는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것도 본인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SJ반도체는 결국 세계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겁니다.

언젠가 라커칭 국무총리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전자공학 전공 출신으로 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오른 인물이다.

공산당 최고위 간부 중에서 누구보다 반도체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그는 단지 슈나우저의 고속 클럭과 낮은 발열 및 전력 소모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이 반도체는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 원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지식을 얻는 국가는 유일무이한 패권국이 될 겁니다.

라커칭 국무총리의 거듭된 경고, 그러나 모든 최고위 간부들이 그 말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수 조 달러 이상의 돈을 긁어모을 수 있는, 대단히 뛰어난 성능의 반도체라고만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캘리포니아 대지진 사건이 터졌다.

믿을 수 없는 정확한 예보, 그리고 기적적으로 전무한 피해.

라커칭 국무총리는 그때도 같은 주장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과학 지식을 이용해 대지진을 막은 게 분명합니다.

재해 예측에 이어 에테르 학문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화재를 진압하는 마력 칩셋 3가 공개되면서, 공산당 최고위직의 시선이 점점 더 달라지기 시작했다.

최고 지도부 사이에서는 에테르 학문을 미국 손에 넘겨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총서기는 1년이 넘게 거듭된 라커칭 국무총리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에테르 지식은 반드시 우리 중국이 가져야 합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영원히 좁힐 수 없는 격차가 벌어질 겁니다.

그리하여 라커칭의 정치적 후계자인 우레이 위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5개 전투기 편대가 목표물을 포위 중입니다. 베트남 공군이 움직였지만, 감히 어찌하지는 못할 겁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믿음직스럽다. 우레이 위원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들도 이해할 수밖에 없을 거요. 테러범이 핵탄두를 실은 민항기가 지나가는데, 가만 놔둘 수는 없을 테니.”

물론 테러 명분을 베트남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지만.

「어차피 목소리만 큰 나라입니다. 이참에 더욱 기를 죽여 놓겠습니다.」

영공 침해를 놓고 베트남이 극렬한 항의를 전달했지만, 중국 지도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영토 분쟁으로 평소에도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다.

한 번 묵직하게 눌러주고, 동시에 한서진의 신병도 확보한다.

이 날을 위해서 베트남 국경 인근의 일반 도로를 비밀리에 보강하는 작업까지 했다. 대형 민항기를 안전하게 착륙시키기 위해서다.

“잊지 마시오. 목표물은 세계의 미래 그 자체요. 우리 중국이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해야 하오.”

어느 쪽으로 결판이 나든, 결국 흐지부지 될 것이다.

원래 사이 안 좋은 베트남은 그렇다 치고, 미국 역시 결국에는 잠잠해질 것이다.

한서진을 뺏긴다면 종래에는 체념하게 될 것이고, 잃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단지 분노만으로 14억의 거대한 세계 공장에 불을 지를 수는 없을 테니까.

보고는 속속들이 들어왔다.

「7함대, 일본, 괌 기지 전투기들이 출발했습니다. 우리 본토가 목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목표물이 기수를 돌렸습니다. 포위 편대의 통제를 순순히 따르고 있습니다.」

우레이 위원은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미국은 한서진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중국 영공 침해도 서슴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러나 미군 전투기는 너무 멀리 있고, 목표물은 이미 중국 영공으로 진입했다. 심지어 A380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도 만들어 놨다.

국가의 모든 것을 걸고 벌인 작전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목표물이 추락 중입니다!」

“뭐라고? 아니, 대체 왜?”

「죄, 죄송합니다. 목표물이 갑자기 도주를 시도해서 위협사격을 했는데, 그만 날개에 맞았습니다. 균형을 완전히 잃은 채 추락 중입니다.」

우레이 위원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미국에 넘길 바에는 반드시 부셔야 할 대상. 그러나 완전히 중국 소유가 된 상황에서 그만 부수고 말았다.

남의 보물을 부수는 것과 내 보물을 부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우레이 위원은 속이 무척 쓰렸다.

“나중에 당 지도부에서 엄한 질책이 있을 거요.”

노트북이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노트북뿐만이 아니라, 고정되지 않은 모든 물체가 사정없이 사방에 부딪치며 나뒹굴었다. 한쪽 날개가 부서진 기체는 완전히 균형을 잃은 채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기분이다. 눈앞의 모든 것이 쉬지 않고 반전하고, 뒤집어지고, 엎어진다.

원심력에 밀려 벽에 붙은 채로, 한서진은 간신히 눈을 뜨고 사방을 살폈다. 기내는 난장판이었다. 승무원과 경호원들도 자기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언뜻 유리창 너머로 발아래 펼쳐진 사막이 보인다.

풍경이 가파르게 가까워지고 있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현기증이 밀려나온다.

그 안에 섞인, 이루 말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가 뇌세포를 잠식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내가 죽으면, 하나는?

아직 해야 할 게 무수히 많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건가?

두려움, 공포, 절망이 한데 섞이며 가슴을 타오르듯이 끓였다.

그는 굉음과도 같은 비명을, 가까스로 토해냈다.

“도와 줘! 제발!”

그때였다.

짜릿한 감각이 온몸을 역류하며, 뜨거운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 한서진은 불현듯 눈앞을 보고 신음했다.

‘저, 저건?’

바로 눈앞의 허공이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차원이 찢어진 듯한 틈새, 그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틈의 중심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한서진은 그것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단련된 남자의 손이다. 마치 악수를 청하듯이 손이 가까이 다가온다.

한서진은 온몸을 압박하는 원심력을 겨우 뚫고,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한 줄기 거대한 벼락이 추락하는 기체를 정확히 관통했다.

……아 줘.

……아 줘.

……도와 줘…….

……제발.

왕은 흠칫해서 눈을 떴다.

의식을 거들고 있던 노신하, 그리고 수많은 마법사들의 시선도 일제히 변했다.

“폐하?”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지 않았소?”

“……소신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만.”

마법진의 중심에 앉아 있던 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노신하는 굳은 눈빛으로 왕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마법사들은 주문을 멈추고 입을 다문 채 정적을 유지했다.

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들렸는데. 분명히 무슨 소리가.”

노신하가 마법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중 다른 소리를 들은 이가 있느냐?”

“저는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저 또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마법사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그러나 왕은 의구심을 지우지 않은 표정으로 여전히 먼 곳을 두리번거렸다.

“그럴 리가 없소. 분명히 들었소. 어떤 간절한 외침이…….”

그때였다.

왕이 밟고 선 마법진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각막이 화끈거릴 정도로 짙고 선명한 광채였다.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눈에 보일 정도로 짙은 농도로 허공을 휘감으며, 불꽃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노신하가 놀라서 부르짖었다.

“폐하!”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큰 충격을 받은 듯이 허공을 주시했다.

그건 마치, 다른 신하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을 혼자 노려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구나. 그랬어.”

왕은 큰 깨달음을 얻은 듯이 중얼거렸다.

“부족했던 것은 이곳의 마력도, 짐의 의지도 아니었다.”

막대한 권능을 지닌 왕의 육체와 의지, 그리고 무수한 마법사들의 보조.

그러나 그런 큰 힘을 모으고도, 지금까지 저주의 벽을 쉬이 넘어서지 못했다.

왕은 비로소 이유를 깨달은 얼굴이었다. 부족했던 것은 마력도, 마법사들의 숫자도, 그리고 자신의 권능도 아니었다.

달콤한 꿈의 틀에 갇힌 채 안주하는 또 다른 자신. 그의 의지와 욕망, 간절함이 부족했던 것이다.

“폐하.”

“들리오. 느껴지오.”

“폐하, 그것은…….”

왕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큰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에는 커다란 흡족함이 가득했다.

“또 다른 짐, 리미트리스 드림에 갇힌 짐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소.”

“폐하,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아니, 해야 하오.”

왕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주가 완성되려 하고 있소. 그것을 막아야 하오.”

꿈속의 자신이 죽으면, 현실의 왕 또한 죽는다. 그것이 저주의 실체이자 완성.

“그의 비명이 들리고 있소.”

“폐하!”

“잠시 다녀오겠소.”

왕은 주저 없이 허공에 손을 뻗었다. 미친 듯이 허공을 일그러뜨리던 마력이 그의 손끝에 뭉쳤다.

동시에 그의 손이 허공에서 점점 사라졌다.

그것은 손이 녹아내리는 게 아닌,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손끝에 다른 이의 체온이 느껴지는 순간, 왕은 미소 지었다.

저주에 갇힌 자신, 그의 살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가 느껴진다. 왕은 또 다른 자신의 손을 잡은 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차원을 뚫고 넘어갔던 왕의 손이 완전히 빠져 나왔다. 그의 손끝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았다.

그 순간 마법진이 일제히 뒤흔들리며 빛이 탁 꺼졌다. 동시에 왕은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허억, 헉, 허억…….”

왕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숨소리뿐만 아니라 표정, 태도, 존재감 자체가 한순간에 변했다. 마치 그 짧은 틈에 다른 사람으로 영혼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폐하…….”

노신하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마법사들은 어쩔 줄 모른 채 경직돼 있었다.

왕은 숨을 크게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동자에는 놀라움과 혼란이 가득했다.

“여, 여기는 대체…… 아니, 나는 어떻게 된…….”

노신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왕은 혼란 가득한 눈으로 주시했다.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 그리고 익숙한 분위기.

저 노인은 누구였더라?

‘아!’

그제야 ‘한서진’은 기억났다.

처음 ‘꿈속’에 진입했을 때 만났던, 검은 로브로 온몸을 가린 인자한 눈빛의 노인. 처음 보는 얼굴이자, 기억에 없는데도 선명하게 익숙했던 사람.

그가 무릎을 꿇으며 했던 말이 생생히 기억났다.

―폐하, 그곳의 모든 것은 폐하를 현혹시키는 꿈이자, 거짓입니다. 그것을 결코 잊지 마소서.

노인은 그때와 똑같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진실 된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폐하.”

============================ 작품 후기 ============================

네, 그렇습니다. 한서진의 노오오오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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