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6 스위치 =========================================================================
비상벨을 듣고 잠에서 깨어난 한서진은 당황했다.
“하이잭이라고요?”
“중국 공군입니다.”
“중국 공군이 왜 여기에? 중국 영공을 지나지 않는 항로로 잡지 않았나요?”
“현재 위치는 베트남 영공입니다. 중국 최신 전투기 20기가 이곳 영공을 침입해서 협박 중입니다.”
승무원은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한서진은 이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미치기라도 했나?
‘어떻게 이런 짓을 해?’
최근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고 세계 최대 인구수를 자랑한다지만, 미국은 엄연한 세계 최강대국이다.
그런 미국을 대놓고 거스르는 짓을 한다고? 아무리 중국이 독재 정치, 부패, 막무가내로 유명하다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박사님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셔야 합니다. 백악관을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기내에서 백악관 상황실과 화상 통신이 연결되었다.
잔뜩 굳은 클레튼 대통령의 얼굴에서, 한서진은 비로소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실감이 났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구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한 박사도 절대로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마십시오.」
비록 통역을 거치긴 했지만, 그의 뜻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굳건한 감정을 안겨 주었다.
한서진은 무겁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백악관은 초비상이 걸렸다.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이 납치를 당했다 해도 이보다 더 다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급히 상황대책본부가 꾸려졌고, 대통령은 다른 일체의 업무를 뒤로 한 채 이 사건에 매달렸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중국 전투기 5개 편대가 한 박사의 전용기 A380을 현재 추적 중이며 기수를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테러 의심이 있으니 기체를 조사하겠다는 명분입니다.”
“테러라고요?”
객관적으로 말도 안 되는 억지다.
한서진은 이미 세계적으로 명망 높은 인사이고, 테러 따위를 실행할 이유도 없다.
그런 사람이 타고 있는 전용기가 테러 의심이 간다고? 제정신이 박힌 국가라면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호위로 따라붙었던 7함대 함재기가 기수를 돌렸고, 7함대와 일본에서 추가로 전투기를 발진시켰습니다. 또 남중국해 인근을 순찰 중이던 괌 기지 전투기도 급히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 전력이면 중국 공군을 이길 수 있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일단 작전지역 인근에도 접근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일단 A380은 약간의 채프 교란과 미사일 락온 방해 기능을 제외하면, 전투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마저도 한서진한테 양해를 구하고 겨우 우겨 넣은 기능이다. 애초에 점보 여객기에 그런 기능을 넣는 것부터가 억지스러웠는데, 정말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이야.
클레튼 대통령은 불현듯 후회가 치밀었다.
“항로 수정만 해도 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군요. 중국 지도부의 결단력을 너무 얕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중앙 정부의 의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방 군벌의 단독 결정이라는 겁니까?”
“일단 중앙 정부에서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포착되고 있습니다. 현재 정보부에서 필사적으로 확인 중입니다.”
벌써 중국 공군이 접촉하고 벌써 5분이 지났다. 마치 5분이 아닌 5시간 같았던 시간이다.
해당 지역은 이미 전파 교란이 실시되고 있는 중이었다.
미군의 월등한 전자전 능력이 아니었다면, 진작 전용기와 통신이 두절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A380 중앙컴퓨터에 칼라 칩이 장착돼 있던 덕분에, 중국 공군의 방해해도 불구하고 통신이 가능했다.
촉박을 요하는 일인지라 대통령은 A380 기장인 콜란 기장과 실시간으로 직접 대화를 나눴다.
「이미 한 차례 위협사격을 했습니다. 현재도 락인이 된 상태입니다.」
「기수를 돌려 자기들을 따라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5분 안에 결정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최후통첩 불응시 격추시키겠다고 합니다.」
「이 기체가 핵탄두를 운반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서진의 전용기가 핵탄두를 운반한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다.
저 통보는 아마 차후 국제 사회에 보여주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른바 명분이다.
한서진이 핵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의 전용기에 핵탄두가 실려 있었다고 주장하면 된다. 한서진은 모르는 일로 하고, 적당한 물증만 갖추면 중국은 눈을 뜨고 코를 베어도 어깨를 펼 수 있다.
억지스럽지만 그것이 국제 사회의 법칙.
“중국이 작정을 했군요.”
중앙정부의 결단이든, 지방정부의 독단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간에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전도 각오하고 일을 벌인 것이다.
「저들이 위협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마지막 경고임을 통보했습니다. 당장 기수를 돌리지 않으면 격추한다고 합니다!」
콜란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백악관 상황실을 뒤흔들었다.
국방부 장관이 부르짖듯이 외쳤다.
“각하, 중국은 절대 전용기를 격추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한 박사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상황 또한 그들에게 유리한데 격추를 할 리가 없습니다!”
대통령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그는 숨을 깊이 고르고 천천히 말했다.
“미스터 콜란, 일단 기수를 돌리세요.”
“각하! 중국은!”
“격추?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할 수 있어요!”
대통령은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중앙 정부의 뜻이든 지방 군벌의 독단이든, 저들은 처음부터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지고 실행한 겁니다! 내가 갖느냐, 갖지 못할 바엔 남도 갖지 못하게 하느냐!”
여기서 말하는 ‘나’는 중국, 그리고 ‘남’은 미국.
“그리고 우리의 선택지는 하나입니다. 끝까지 구출을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
상황실이 고요해졌다.
만약 한서진이 뛰어나고 유망한 외국인에 불과했다면, 미국의 선택지는 중국처럼 하나 더 늘었을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할 바에는 남에게도 주지 않는 것.
그러나 그는 명예로운 미국 시민이다.
적국의 협박에 굴해서 넘길 바에 차라리 망가뜨리겠다는 것, 그런 선택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저들은 여차하면 한 박사를 망가뜨릴 겁니다. 우리 미합중국의 명예시민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각하.”
“콜란 대령, 듣고 있습니까?”
「예, 각하.」
이미 퇴역한 군인임에도 콜란 기장은 깍듯하게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단단한 결의가 묻어났다.
“비록 당신은 지금 현역 미군이 아니지만…… 그래도 부탁합니다. 마지막까지 반드시 한 박사를 지켜 주십시오. 그는 우리 미국의 시민이자, 희망입니다.”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각하.」
목소리에는 힘이 넘치고, 망설임이 없다.
그 순간 콜란 기장은 현역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기수를 돌리며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군 전투기들이 초음속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콜란 대령은 기체 조종을 부기장에게 맡기고, 손수 한서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저들은 결국 중국 영토로 끌고 갈 겁니다. 그러나 인근에는 어차피 A380이 착륙할 만한 공항이나 공군 기지, 활주로가 없습니다. 적어도 1시간 30분 이상은 더 날아가야 합니다.”
1시간 30분. 콜란 대령 및 백악관은 그 시간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인근 중국 지역에서 점보 여객기인 A380이 착륙할 만한 곳은 몇 안 되니까.
“그 시간이면 현재 제주도, 괌, 일본 공군 기지에서 날아오고 있는 스텔스 전투기들이 따라잡기에 충분합니다.”
그리 되면 중국 영토 내에서 전투기 간의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한서진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고 흙빛이 되었다.
“그럼 중국과 전면전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미 백악관은 선전포고 연설문을 다듬고 있을 겁니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입니다.”
“…….”
“최선을 다해 한 박사님을 지킬 겁니다. 그러나 만약 최악의 경우가 되면, 한 박사님은 즉시 낙하산을 메고 탈출하셔야 합니다. 이걸 항상 몸에 지니고 계십시오.”
콜란 대령은 조그만 부품을 한서진의 안주머니에 고정시켰다.
“특수한 추적 장치입니다. 수색 부대가 한 박사님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콜란 대령은 조종실로 돌아갔고, 한서진은 기체 최후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후방 문을 열고 바로 탈출한다는 계획, 이미 낙하산도 등에 장착했다.
‘방법이 없을까? 타르타로스 2를 이용하면…….’
타르타로스를 이용해 지구 반대편 에테르의 움직임에 간섭하는 기술은 이미 구현했다. 그리고 자신의 노트북은 타르타로스와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타르타로스 2를 이용해, 이곳 에테르의 파동을 흔들어 버리면? 그래서 중국 전투기에만 의도적인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면?
‘성공할지 모르지만 한 번 해보자.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 1시간 30분이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는 급히 노트북을 열고 타르타로스에 접속했다. 백지부터 프로그램을 짜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클레튼 대통령이 신신당부 했듯이.
「지금 전송한 좌표에 착륙해라.」
장린펑 상교가 좌표를 전송했다. 콜란 대령은 그것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바로 얼마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이다.
“여긴 공항이 아닌데? 공군 기지도 아니고?”
좌표 지역은 큰 도로가 있을 뿐, 아무런 활주로가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콜란 대령은 퍼뜩 깨달았다.
“이 자식들! 처음부터 여기 직선 대로를 활주로 대신으로 쓸 생각이었어!”
3km 가까운 직선 도로. 허허벌판이라서 기체 날개가 방해받을 일은 없다. 도로만 완벽히 통제한다면 충분히 활주로로 활용할 수 있다.
단 도로 지면이 A380의 무게를 지탱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저들에게는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위험이리라.
시간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은 틀렸다.
「즉시 고도를 낮추고 착륙을 준비해라.」
장린펑 상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콜란 대령은 퍼뜩 화면을 확인했다. 미군 위성이 보내온 위치 정보가 중국 전투기 위치를 표시하고 있었다.
후방에 4기, 만약 이대로 한서진이 탈출한다면 저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 것이다.
저들은 갖지 못할 바에는 부서뜨릴 테니까. 그런 각오로 일을 벌인 이들이다.
‘할 수 없다.’
콜란 대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기수를 크게 꺾으며 우측으로 선회했다. 덕분에 기체가 크게 기울었다.
“한 박사님! 탈출을 준비 하십시오! 후방문을 오픈하면 바로 뛰어내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옆에서 부기장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기장님! 이건!”
“우린 시간이 없어! 착륙하면 전부 끝이야! 차라리 달아나는 척 하면서 후방 감시 전투기들 시선을 돌리고, 그 틈에 한 박사를 탈출시킨다! 채프고 교란 장치고 전부 준비해! 전투기들이 낙하산을 못 보도록!”
기수를 크게 돌리며 그들의 육안 감시를 따돌리고, 그 틈에 한서진을 뛰어내리게 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저들이 정말 격추시키려 해도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해서 최소 1분은 걸릴 것이다.
그 1분 동안 어떻게 해서든 탈출 루트를 만들어낸다. 그 대가로 기체는 걸레가 될 테지만, 대신 VIP는 안전하게 탈출시킬 수 있게 된다.
희생을 각오한 결정, 그러나 순간 요란한 충격이 기체 전체를 울리는가 싶더니, 기체가 어지럽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날개가…….’
기체는 한쪽 날개가 부서진 채 회전하며 추락하고 있었다. 그것을 깨닫는 콜란 대령의 눈으로, 넓은 사막이 빠른 속도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일개 시민을 보호하고자 하는 조국의 노력은 정말 위대하고 또 위대합니다.
판사님, 저는 조국의 시민사랑을 찬양하기 위해 이번 챕터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