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74 전초전 =========================================================================
중국, 러시아, 미국이 남한을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SJ인더스트리가 실적 발표를 했다.
회사는 상반기 이익 6,090억 달러, 세금만 2,40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실적을 냈다. 이에 한국에서 상당수 국민들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놀랐다.
“겨우 반년에 600조 원을 벌었다고?”
“진짜 대단하다. 아니, 단일 기업이 어떻게 그런 수익을 낼 수 있는 거야?”
“저게 가능한 숫자이긴 한 거야? 아무리 반도체 시장 독점한다지만 이건 너무 말이 안 되는데.”
“기업 수익 세계 2위가 엑슨 모빌인데, 작년 총 순수익이 3,500억 달러인가 할 걸. 근데 SJ인더스트리는 반년 만에 6,090억 달러. 대체 몇 배 차이야.”
“석유도 아니고 반도체 두 종류만 찍어내서 파는데 그런 어마어마한 수익이 가능하단 말이야?”
SJ인더스트리는 미국과 한국에 공장을 여럿 두고, 전 세계를 상대로 반도체 판매를 하고 있었다. 컴퓨터 종류는 말할 것도 없고, 거의 모든 고성능 전자기기에 SJ 반도체가 들어간다.
시중에 판매되는 메모리의 95% 이상은 코카 스패니얼이다.
어느 몇 몇 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낸 통계였다. 크기와 절전, 메모리 용량에서 기존 제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반기 실적 발표 이후, 한국 여론은 한서진의 재산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럼 한서진 박사는 지금 보유한 현금이 대체 얼마나 된다는 소리야?”
“그거 알아? SJ인더스트리가 6천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는 건 한서진 박사한테 특허 로열티로 그만큼을 줬다는 뜻이래.”
“뭐야? 진짜?”
“로열티로 수익의 50%를 주기로 되어 있을 걸.”
“쩐다. 그럼 한서진 박서는 이미 로열티로 6천억 달러를 받았다는 건데.”
“회사 몫 6천억 불에서 또 배당을 가져갈 수도 있지. 한서진 박사 지분이 86.5%니까 거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거지.”
“와, 그 회사는 1주에 얼마나 할까? 설마 내 연봉을 털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얼마 전에 T평가회사에서 SJ인더스트리 기업 가치를 1조 달러로 잡았는데, 그 회사 총 발행주가 딱 1만 주라더라.”
“그럼 1주에 1억 달러?”
“그렇지.”
SJ인더스트리의 기업 가치는 1조 달러를 진즉에 넘어섰다. 거래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비상장 기업인데도, 주변에서는 1조 달러니 2조 달러니 하는 평론이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한국의 50대 재벌들을 다 합쳐도 한서진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올까. 우습게도 농담이 아닌 거의 사실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기왕이면 한국 기업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많이 아쉽다.”
“그러게. 고용도 창출하고 내수 시장도 엄청 커졌을 텐데. 완전히 남의 떡이 돼버렸네.”
그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고용 창출? 내수 시장? 무슨 개소리야. 애초에 한국은 SJ인더스트리 같은 기업이 성장할 수 없는 토양이야. 미국에서 창업한 건 정말 잘한 거지.”
“한국에서 창업 했다가는 SJ인더스트리 반도체가 아니라 진성반도체란 이름 달고 나왔을 거다. 한서진 박사도 시시한 월급이나 받으면서 단물 다 빨렸을 거고.”
“지금이야 한서진 박사가 워낙 부자고, 또 캘리포니아 은인이라 미국이 애지중지해서 아무도 함부로 못 대하는 거지, 만약 한국에서 창업했으면…… 으으, 이런 역사적인 기업이 빛을 보지도 못하고 스러졌을 거다.”
창업한지 겨우 2년 만에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그러나 SJ인더스트리는 한서진의 역량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현대 물리학계를 뒤집어놓을 에테르 학문.
한서진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에테르 학문의 창시자였으며, 에테르 반도체는 그 중 작은 일부일 뿐이다.
미국과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들은 에테르를 선도하는 국가가 다음 세기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마력 칩셋 3와 에테르 반도체는 아직 시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7함대의 제주도 주둔에 대한 중국의 반발 역시, 아직 전초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 국방과학기술대.
‘신텐허 프로젝트’를 맡은 부서는 밤낮으로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일찍이 수퍼컴퓨터 부문에서 미국을 거의 따라잡은 중국은 고성능 대형컴퓨터를 만드는 기술만큼은 지지 않는다고 자부해왔다. 그리고 근래에 결실을 맺었다.
“신텐허-1이 드디어 Z7의 성능을 넘는데 성공했습니다.”
극비리에 방문한 공산당 고위 간부는 만족스러운 듯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러나 프로젝트 총책임자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500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 말에 고위 간부의 얼굴이 팍 굳어졌다.
책임자는 조용히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내부적 병렬연결, 클러스터링 연산 방식…… 그 어느 것도 500의 한계를 깨뜨리지 못했습니다. SJ인더스트리는 그 점을 알고 진즉에 손을 놓은 모양입니다.”
500개의 슈나우저를 묶어 만든 수퍼컴퓨터 Z7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존 어떤 수퍼컴퓨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낸다. 심지어 캐비닛 정도의 작은 크기를 자랑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여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에테르 반도체를 지배할 수 없다면, 최고의 수퍼컴퓨터라도 지배할 수 있어야 했다.
“슈나우저 모방은?”
“단순히 복제하는 것 자체는 기술적으로 95% 이상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100%도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회로의 특허가 공개된 슈나우저는 충분한 반도체 공정기술만 있다면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 물론 특허 침해가 될 테니 미국의 눈을 피해서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반도체 생산을 하지 않았다. 떳떳하게 유통하지도 못할 제품을 무리하게 생산할 필요는 없었다. 돈만 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 않은가.
미국은 중국의 수퍼컴퓨터 제조 기술을 두려워해 슈나우저의 직접적인 수출은 금지하고 있지만, 우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샤오민 교수, 중요한 것은 에테르 회로의 비밀을 알아내는 걸세.”
“알고 있습니다만, 에테르 회로는 기존 전자공학 회로와는 궤 자체가 달라서 어렵습니다.”
“무작위로 보이더라도 일정한 패턴이 있는 거 아닌가. 모든 수퍼컴퓨터 자원을 투입한다면 무분별한 패턴에서 법칙을 추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 텐데?”
“아직까지는 어렵습니다.”
에테르 회로.
슈나우저와 코카 스패니얼의 설계 회로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 안에 감춰진 비밀을 읽어내는 것은 중국의 저명한 과학자들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중세인들이 핵물리학을 처음 맞닥뜨린 것처럼 큰 좌절의 벽에 부딪쳤다.
회로를 아무리 뜯어보고 분석해도,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5살짜리 어린아이가 0과 1로 무수히 나열된 기계어를 보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 있을까? 그저 0과 1의 끝없는 반복으로만 느껴질 것이다.
그런 설명에 당 고위 간부는 더욱 얼굴을 굳혔다.
“한 박사는 이제 겨우 스물일곱이네. 그런데 내로라하는 우리 중국의 과학자들과 그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는 말인가?”
“적어도 에테르 학문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한 박사는 에테르 학문을 어디서 습득했단 말인가?”
“…….”
“설마 상상을 통한 이론물리만으로?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방대한 협업과 지식의 교류가 필요한 현대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어떠한 지식이나 전문적인 설비 없이 새로운 이론 법칙을 여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금도 끊임없이 솟구치는 의구심이 있다. 바로 한서진은 어떻게 에테르 학문을 시작했느냐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또 현대 물리학에 에테르에 관련된 내용이나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현대 과학을 뒤집어버릴 수 있는 에너지를, 아무런 도구도 없이 무에서 스스로 찾아냈다.
이 괴리를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당한 과학자들이 그런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들은 선뜻 한서진에게 지식의 근원을 질문하진 못했다. 자칫 한서진한테 찍혀서 차세대 학문에서 배척받을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지식을 탐구하는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과학자들이, 지식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에테르는 현존하는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마력 칩셋 3만 해도, 어떤 기술적 원리에서 그런 현상이 가능한지 짐작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역시 그런가?”
“니트론 교수를 제외하면 과학자들의 개별 역량은 우리 중국이 미국에 결코 뒤지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에테르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한 박사가 니트론 교수보다 우위에 있을 거라 보고 있습니다.”
“그럼 자네는 한 박사가 에테르 관련 지식을 얼마만큼이나 독점하고 있다고 보나?”
“그건 한 박사가 공개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샤오민 교수는 단단한 표정으로 주장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반도체 기술자가 되자마자 어느 날 갑자기 양산형 에테르 반도체 두 개를 연달아 발표한 사람입니다. 심지어 그 회로도 특허로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화재 진압용 마력 칩셋 3 또한 원본 설계와 공정 프로그램을 프리로 오픈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결코 보이지 않을 행보다. 자신이 가진 100%를 그대로 세상에 공개하는 사람은 없으니.
“그리고 한 박사가 비밀리에 보유하고 있다고 추측되는 전용 수퍼컴퓨터…… 그 성능은 적어도 양산형 에테르 반도체를 월등히 넘어서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놀라운 날씨 예측이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그건 다른 쪽에서도 이견이 많아. 단지 뛰어난 수퍼컴퓨터로 기존 관측 데이터를 해독한다고 해서 그런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SJ사이트는 공식적으로 세계 기상청에서 공유하는 기상 관측 데이터를 해석해서 예측을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뛰어난 전문가들은 그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아무리 사진 편집 프로그램이 뛰어나다 해도, 사진 원본 자체가 부실하다면 그 품질을 넘어설 수 있을까?
샤오민 교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 답 역시 한 박사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고위 간부는 별로 놀라지 않은 채,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히 반응했다.
“결국 한 박사가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이군.”
약혼 이후, 송하나는 거의 매일 새연동 저택을 드나들었다.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냈다.
매일 보지만 지겹기는커녕 오히려 헤어지는 시간이 아쉬웠다. 한서진은 새삼 사귀기 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몇 시간만 안 봐도 벌써 그리운데, 썸만 타던 지난 2년 동안 어떻게 참을 수 있었던 거지?
‘이래서 고기를 한 번도 안 먹을 순 있어도 한 번만 먹을 순 없다는 거구나.’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려보낼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을 주걱칼로 긁어내는 듯이 아파 온다. 진짜 콱 데려와 버려?
샤워를 마치고, 젖은 머리카락을 닦고 있던 송하나가 문득 물었다.
“오빠, 영국 왕립 학회 방문이 모레였나요?”
“……어. 취소할까?”
“그걸 왜 취소해요.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인데.”
“그래도 우리 일주일이나 못 보잖아.”
송하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통보하듯이 말했다.
“안 돼요. 강연 잘 하고 오셔야 해요.”
============================ 작품 후기 ============================
“결국 실탄프로덕션이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 연재 주기까지 지배합니다. 악랄한 독점 기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