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68화 (268/609)

00268  검색 엔진 개발  =========================================================================

“원래 세상엔 별의별 미친놈이 많다.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잊어버려라.”

“전 신경 안 써요. 하지만 제 동생은 다르더라고요.”

“동생분이 어지간히 화가 났나 보구나.”

“뭐,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한서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는데, 제가 어쩌겠어요.”

한지혜는 조치준의 신상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지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실시간으로 지켜봤던 네티즌도 결과가 재미있게 흘러가는 것에 팝콘을 튀기며 기대할 뿐이다. 대부분 한서진이 어떻게 신상을 알았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정지원은 피식 웃고는, 다른 무거운 이야기를 꺼냈다.

“칼라 통신망 말인데.”

“아, 네.”

“이왕 네가 미국도 왔으니, 이참에 확답을 들어야겠어. 미국에는 언제 서비스할 거야?”

“조만간 할 거예요. 한국에서 시행착오 좀 더 다듬은 후에.”

“여기 통신사들이 필사적으로 로비 중이야. 시간을 끌수록 좋을 건 없어.”

“시간을 끄는 건 아니에요. 혹시 제가 놓치는 건 없는지 살펴보는 중이죠. 돈보다는 연구와 증명이 더 중요하니까요.”

정지원은 슬쩍 웃었다.

칼라 통신망이 미국에 상륙하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현존하는 어떤 통신 서비스도 칼라 통신망의 성능에는 비할 수가 없으니.

그런데 한서진은 그 돈에는 별 욕심이 없어 보인다.

“에테르 연구는 어때?”

“나름 잘 되고 있어요.”

“마력 칩셋을 우선적으로 팔아달라고 여기저기서 난리던데. 나한테까지 부탁이 들어왔어. 전미소방관협회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어쩔 수 없어요. 생산 능력이 많이 부족해요.”

타르타로스 2를 개발하면 칩셋 3의 대량 생산이 열릴 줄 알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타르타로스 2를 만들자 오히려 이것저것 연구할 게 더 많아졌다.

덕분에 마력 칩셋 3 생산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애초에 한서진은 사명감보다는 에테르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칩셋 3를 개발한 것이었으니.

“칼라 통신망은 그렇다 치더라도, 칩셋 3는 진지하게 대량 생산을 고려해 봐. 인명이 달린 제품이야. 만약 네가 대량 생산을 소홀히 여기는 게 알려지면 비난이 일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한서진은 잠자코 끄덕였다.

―코발트 PC방 43번 PC에서 지금 제 블로그에 과격한 댓글을 달고 있는 조치준 씨.

그 순간 조치준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신나게 글을 써내려가던 손이 우뚝 멈췄다.

‘뭐, 뭐야?’

그는 순간적으로 PC 번호를 확인했다. 43번 PC가 맞았다. 벽에 걸린 피시방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그는 떨리는 손으로 타이핑했다.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내 이름이 조치준이라고? 좀 더 잘 찍어보지 그래? 이 양키 새끼야.

―XX동 아이로드 빌라 1층에 사는 조치준 씨 맞잖아요? 23살에 이제 공익 8개월 됐고, 핸드폰 번호 뒷자리는 7861이고.

그 순간 조치준은 컴퓨터를 강제로 끄고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떨렸다.

그의 안색은 완전히 사색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내 신상을 알았지?’

로그인을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이곳은 처음 와본 피시방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아냈을까?

상대는 자신의 나이와 이름, 공익근무요원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주소와 전화번호는 끝까지 밝히진 않았지만 역시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조치준은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무서워졌다.

금방이라도 경찰이 나타나서 자신을 잡아갈 것만 같았다. 그는 비로소 후회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조치준은 그동안 죽은 듯이 조용히 지냈다. 인터넷에 강경 댓글을 남기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던 취미 활동도 삼갔다.

사흘 동안 아무 일도 없자 조치준은 무탈하게 넘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네? 뭐라고요?”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로 고소되었어요. 서로 나와서 진술을 해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경찰서에 갔는지 기억이 안 났다. 서에는 한서진이 아닌, 처음 보는 중후한 남자가 정장을 입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변호사라 소개했다. 합의 의사는 전혀 없으니 사죄를 할 필요도 없고, 법정에서 보자는 말에 조치준은 그만 엉엉 울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엄마 아빠가 알면, 아니, 구청에서 알면 저 죽어요!”

1층 응접실에 들어서는 한지혜의 얼굴이 모처럼 밝았다.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들여다보고 있던 한서진은 동생을 흘끔 돌아봤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조치준 그 인간, 엉엉 울면서 봐달라고 빌었거든. 그거 보니까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거 있지.”

“그랬어?”

한서진은 다시금 태블릿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지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따졌다.

“오빠는 자기 일에 왜 그리 관심이 없어?”

“그건 너한테 일임했잖아. 네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

“아, 그럼 이 동생을 찰떡같이 믿어서…….”

“시루떡으로 해두자. 찰떡은 너무 과하다.”

“아무튼 알았어! 내가 그놈 콩밥은 못 먹여도 꼭 벌금형은 받아내고 말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블랙리스트에도 올려서 영원히 관리해야지.”

“블랙리스트?”

“우리 한씨 가문을 모욕한 놈이니까 당연히 기록해놔야지. 잊어먹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한서진은 피식 웃었다.

“근데 오빠,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나 정말 깜짝 놀랐어.”

“정보통이 있단다. 이 오빠가 누구라고 생각해?”

“와, 역시 그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CIA가 실시간으로 오빠를 보조하고 있다던데…….”

CIA가 보조해? 첩보기관이라고는 화이트 요원인 페이 차일드 밖에 만나본 적 없는데?

한서진은 대강 넘어가기로 했다.

“대충 비슷해.”

“아참 오빠, 노벨상 받는다는 거 사실이야?”

“갑자기 무슨 노벨상?”

“에테르 논문하고 입증 실험 덕분에 오빠가 올해 노벨상 최고 유력자라고 지금 말이 엄청나던데, 아니야?”

한서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풀썩 웃었다.

“올해 후보자 추천은 이미 다 끝났어. 죽었다 깨어나도 올해는 못 받아. 물 건너갔다.”

“그럼 내년은?”

“나 이제 논문 발표했어. 근데 무슨 벌써 노벨상이야.”

“그래도 상금이 꽤 된다던데. 엄청 명예로운 거잖아.”

“돈만 생각하면 칼라 통신망 미국에 열고 칩셋 3 대량으로 찍어내서 팔았지. 너, 이 오빠 통장 잔액이 몇 자리 수인지는 알고나 있어?”

“흠, 진짜 하나 말대로네.”

“뭐?”

갑자기 송하나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지? 한서진은 의아해서 태블릿에서 눈을 떼고 동생을 주시했다.

한지혜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걔가 그랬거든. 오빠는 돈이나 명예보다는 에테르 연구에 더 열심이라고. 돈 버는 건 이제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다고.”

“뭐, 하나가 제대로 보긴 했네.”

돈도, 명예도, 지위도 넘치도록 얻었다. 권력을 쥐진 않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서슬 퍼런 권력의 칼을 휘두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어떤 것보다 에테르 탐구를 중요시하게 된다. 통찰안을 사실상 활용할 수 없는 지금, 타르타로스를 이용해 에테르를 다루는 것은 마약보다 짜릿한 희열이 있었다.

“근데 있지, 오빠.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보지 마. 너 지금 표정이 매우 사악해.”

“하나랑 어디까지 갔어?”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노코멘트다.”

“설마 아직 손도 못 잡아본 건 아니지?”

“내가 선수는 아니지만 바보는 더더욱 아니거든. 됐고, 들어가서 밥이나 먹어.”

“쳇, 재미없어.”

한지혜는 툴툴거리며 돌아섰다. 그때 한서진이 갑자기 불렀다.

“잠깐.”

“……왜?”

“처벌 끝나면 나한테도 결과 좀 말해줘.”

한지혜는 기분 좋은 듯이 씩 웃었다.

“초탈한 척 하면서도 궁금하긴 하단 거네?”

“기왕 하는 거,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 줘.”

“걱정하지 마. 뼈에 똑똑히 새겨줄 테니까. 아주 각인을 남겨주려고.”

한지혜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다짐하듯이 말했다.

또 한 번의 실패.

빛을 잃은 대형 마법진이 서서히 지워져간다. 왕은 피곤한 모습으로 마법진의 중앙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실망한 얼굴은 아니었다.

노신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질문했다.

“어떻습니까, 폐하.”

“저주 속 세상의 짐, 그 의식에 조금 더 가까워졌소. 좀 더 힘을 내면 닿을 수 있을지도…….”

노신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꿈속에서 왕비와 상당히 친해졌소.”

“다행이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이한 점이 있소.”

왕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꿈속의 기억을 떠올렸다.

왕비, 신효진은 꿈속의 자신인 한서진을 남몰래 연모한다. 신기한 점은 한서진이 알면서 모르는 체 하는지, 정말 모르는 건지 왕도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마치 그 부분에 한해서, 한서진의 의식이 왕의 접근을 단단히 차단하기라도 한 것처럼.

기이한 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런데 제게 하실 말씀이 뭔가요?

―치이익, 치익, 치이익…….

―계속 말씀해 주세요.

―치이익…….

언젠가부터 신효진과 대화할 때면 꿈에 잡음이 낀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어느 순간 꿈이 희미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무슨 대화가 벌어지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 인식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그것은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왕비가 자신을 저주의 제물이자 매개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왕의 설명을 들은 노신하는 굳은 얼굴로 설명했다.

“폐하께서 저주의 근원에 다가가는 것을 차단하고자 꿈이 거부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꿈속의 왕비가 저주의 근원에 관한 단서를 말하는 순간마다 그런 잡음이 끼는 것이지요.”

“그럼 꿈속의 왕비는 레노지안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저주가 불완전하여, 왕비는 꿈속에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 게 틀림없습니다. 꿈속의 평범한 여자 평민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하고 있는 걸 테지요.”

“…….”

왕은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잡음이 낄 때, 꿈속의 왕비는 과연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일까.

“만약 짐이 꿈에 강림하여…… 직접 왕비에게 접근하여 설명을 들어도 동일한 일을 겪을 것 같소?”

“꿈의 거부력을 폐하께서 얼마나 짓누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결국은 저주가 이기느냐, 폐하께서 이기느냐, 그런 단순한 싸움이지요.”

“왕비가 꿈속에서 그곳이 거짓이고, 레노지안이 진짜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저주가 소멸하거나, 최소한 그 위력이 현저히 약해질 것은 분명합니다.”

한서진이 왕비의 꿈을 자각시켜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꿈속의 세상과 꿈속의 자기 자신을 진짜라 여기고 있으니. 이곳 레노지안을 그저 꿈으로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노신하가 진중히 말했다.

“비싼 대가를 치르긴 했어도, 강림은 이미 한 번 성공했던 일입니다. 한 번 갔던 길을 다시 짚어가는 것은 비싼 대가 없이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왕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모든 것은 폐하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눈을 감은 왕은 차분히 의식을 깊이 가라앉혔다. 무의식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세상을 찾아 나섰다.

근래 왕이 집중하고 있는 마법 의식의 목적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했다.

꿈에 직접 강림하는 것, 왕의 의식을 유지한 채 한서진의 몸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근래 실탄프로덕션이 집중하고 있는 업무의 목적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합니다. 바로 딱지를 닦는 것이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