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7 검색 엔진 개발 =========================================================================
<에테르 검색 엔진>은 에테르를 매질로 이용하여 원하는 대상이나 정보를 스캔하는 것이다.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 어떤 방화벽 시스템도 의미가 없다. 에테르를 이용해 저장 장치에 담긴 정보 그 자체를 판독하는 것이기에, 상대는 막을 수조차 없고 흔적 또한 남지 않는다.
‘그래도 한계는 있어.’
그런 놀라운 성능이 한편으로는 에테르 검색 엔진의 약점이기도 했다. 타르타로스 2가 에테르 검색 엔진을 가동할 때 시스템 자원을 최대 90%까지 사용한다는 점이다.
성능이 뛰어나기에, 그만큼 시스템도 무거워진다.
디지털 정보나 종이 문서 정보를 판독하는 데에도 이만큼의 시스템 자원을 소모하는데, 특정 사람들을 추적하거나 특정 광물 같은 것을 탐색하는 작업 등은 더욱 버거울 것이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아니, 엄청나다.
세상의 모든 전자 정보를 검색하고 판독할 수 있으니까. 첩보기관이나 권력자들이 이걸 알면 경악할 것이다.
전자문명에서 에테르 검색 엔진은 신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힘이라 할 수 있다.
그 힘은 오롯이 자신에게 있으며,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빼앗길 염려 또한 없다.
에테르 검색 엔진으로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하는 동안, 한서진은 들뜨지 않고 오히려 덤덤했다.
‘할 수 있는 건 많은데, 굳이 하고 싶은 건 없네.’
에테르 검색 엔진을 이용하면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이미 엄청난 돈을 갖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통장에는 무지막지한 숫자가 쌓이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는 돈을 버는 것에는 흥미를 잃었다.
권력 또한 마찬가지다. 검색 엔진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지금 지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큰 힘을 갖고 있지만 들뜬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도구지만, 이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있기에, 큰 감흥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냥 당분간은 구글링 하는 데나 쓰자. 편하고 좋겠네.’
세상 모든 전자 데이터에 도킹할 수 있는 만능 해킹 툴은 그렇게 인터넷 검색 엔진으로 전락했다.
“한 잔 할까?”
정지원이 양주 한 병을 들고 나왔다. 한서진은 끄덕이며 패드컴퓨터를 옆으로 치웠다. 자리에 앉으며 정지원이 물었다.
“뭐 보고 있었어?”
“잠깐 통장 잔고 좀 확인했어요.”
“이야, 그거 나도 좀 궁금한데.”
“남의 통장 잔고가 왜 궁금해요?”
“세상에서 가장 통장 잔고가 궁금한 남자 1위로 네가 꼽힌 건 알고나 있어?”
“……진짜요?”
“미국에서는 지금도 온갖 예능 코너에서 네 썰이 쏟아져. 가장 결혼하고 싶은 남자, 가장 뇌세포가 섹시할 것 같은 남자, 또 가장…….”
“그, 그만하세요.”
한서진은 민망해서 그의 말을 잘랐다. 그는 씩 웃으며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다.
“그래서, 얼마야? 그냥 궁금해서 그래.”
한서진은 아무 소리 없이 패드컴퓨터의 잠금을 풀고 화면을 보여 주었다. 열세 자리 숫자를 확인한 정지원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엄청난데? 자랑해야겠다.”
“아, 왜 그래요. 하지 마세요.”
“이거 돈을 너무 L국에만 몰아두는 거 아니야? 아무리 L국이 부호들이 좋아하는 자산안전처라지만, 거의 전 재산을 넣어두는 것은 좀 그렇다.”
“처음에 저더러 L국을 이용하라고 권한 건 정 사장님입니다만?”
“그때야 세금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그랬던 거고,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잖아. 에스코너, 이제 그만 미국으로 가져 오자.”
지주회사격인 에스코너는 한서진의 현금 계좌와 SJ인더스트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L국적의 법인이었다.
“미국으로 가져오면 세금이 엄청날 텐데……. 이번에 받은 상반기 특허료 6천억 달러도 절반 이상 뜯길 걸요.”
“걱정하지 마. 너더러 세금 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넌 그냥 잠자코 있으면 돼.”
“세금에 예외가 어디 있습니까?”
“감히 살아있는 미국 명예시민한테 세금을 거둘 멍청한 것들은 없어. 미국이 그 정도 예우 정신은 있다.”
결국 한서진은 정지원의 설득에 따라서 재산 이전 작업에 착수했다.
L국에 있는 재산 전부를 옮기진 않았다. 4,000억 불의 현금은 남겨놓은 것이다.
“그래도 조용히 쓸 수 있는 비상금 정도는 쥐고 있는 게 좋지.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알고?”
나머지 현금과 SJ인더스트리 지분 소유권은 모두 미국으로 옮겼다. 캘리포니아는 한서진이 재산 대부분을 가져오자 주지사가 직접 전화로 환영 메시지를 전달했다.
대대적인 재산 이전 작업에 한국과 미국은 난리가 났다.
―들었냐? 한서진 박사가 캘리포니아에 현금 대부분을 예치해뒀대. 수천억 달러라는데?
―어마어마하구나. 수천억 달러라니……. 그럼 우리 돈으로는 수백조 원인 거네?
―한서진 박사, 우리나라에도 재산 꽤 있지 않아?
―미국 재산에 비하면 턱도 없지.
―그래도 대저택에, 전용기에, 현금이랑 H통신까지 전부 다 따지면 꽤 되지 않을까?
―대저택 끽해야 몇 조 원이고, 전용기는 둘 다 합쳐봐야 5억 불도 안 되고, 국내 현금은 아마 몇 억 불 정도일 걸? 국내 재산 다 따져봐야 40억 불도 안 된다.
국내 재산은 40억 달러 미만, 반면 미국 재산은 현금만 수천억 달러에 SJ인더스트리 지분까지.
시샘하는 여론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지도 몰랐다.
―명예시민권 받더니 이제 자기는 미국 사람이라 이건가. 너무하네. 나라에서 어떻게 밀어줘서 그렇게 큰 건데, 잘 됐다고 이제 와서 나 몰라라 배신하네.
―근데 나라가 뭘 어떻게 밀어줬다는 거야? 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임.
―한서진 박사가 북한이나 전쟁국가에서 태어났으면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을까? 평화롭고 안정된 국가 체제에서 근심 없이 성장하고 공부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엄청난 지원이야. 당장 제3국가들 가보면 소년병들이 죽어나간다고.
―그러니까 평화로운 국가 환경 덕분이다?
―그렇지. 우리나라가 좀 부패는 있지만, 이 정도면 세세한 인프라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 건데. 이런 환경이 아니었으면 한서진 박사는 지금처럼 못 됐다.
―맞는 말이다. 한서진 박사는 조국에 보은을 해야 한다. 개인 재산이 얼만데 시시하게 몇 천억 원 기부하는 걸로 그 큰 은혜를 퉁치려 하다니, 사람이 너무 이기적이야.
―……저거,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소름인데.
숫자는 언제나 민감하다.
한서진의 한국 재산과 미국 재산의 비율이 알려짐에 따라 한국 여론이 기이하게 변화했다. 언론이 주도하는 게 아닌, 일반 대중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담론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두 나라 재산 비율이 100:1도 안 된다는 건 너무 심했다.
―100:1이 뭐냐. 1,000:1도 안 될 걸?
―1,000:1 좋아하시네. SJ인더스트리 주식 가치 제대로 따지면 10,000:1도 안 될 거다. 너네 SJ인더스트리 올 상반기 6개월 순이익이 6,000억 달러라는 건 알고나 있냐?
한서진은 국민들에게 대단한 자랑이었지만,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컸던 만큼 드러난 재산 비율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다.
물론 미국에 있는 한서진은 그런 여론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일이 터졌다.
―더러운 매국노 새끼.
한서진은 개인 블로그 하나를 운영하고 있었다. 일일 방문자가 1,000만 명이 넘는 초대형 블로그였다.
네티즌과 소통하기 위한 블로그는 아니었다. 그는 댓글이나 질문에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다. 주로 자신이 제작한 제품에 관한 설명, 그리고 오버클록 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글을 올린다.
그 글에 익명으로 악플이 달린 것이다.
―한국 들어오지 말고 미국 엉덩이나 핥다가 뒈져버리길 기도할게. 어디 가서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하지 마라, 양키 새끼야.
한지혜의 연락을 받고 한서진은 급히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댓글창이 난리도 아니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하천을 온통 진흙탕으로 만들고 있었다.
다른 네티즌들이 합심해서 몰아붙였지만, epp라는 악플러는 끄떡없이 한서진에 대한 원색적인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비로그인으로 저러는 거 보면 집이 아니라 피시방 그런 곳에서 저러는 거 같아. 절대 걸릴 일 없다는 거지.」
한지혜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한서진의 음성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래, 그러니까 저렇게 대놓고 떠드는 거겠지. 말하는 거 보면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아닌 거 같다.”
「오빠는 화도 안 나? 이 벌레 한 마리가 지금 우리 남매를 무슨 매국노처럼 만들어놨는데?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놈은 꼭 잡고야 말겠어. 오빠도 말리지 마!」
“내가 언제 너 말린 적 있었냐? 너 마음대로 해.”
한서진은 여유로웠다.
진흙탕에 누워서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땡깡을 부리는 바보를, 구름 위에서 느긋하게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혈압이 머리끝까지 치솟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서진은 마치 남의 일을 대하듯이 차분하게 악플러 epp의 언변을 감상했다.
‘이런 놈들은 왜 이렇게 사는 걸까?’
문득 녀석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성장 환경에서 자라났고, 어떤 환경에서 서식하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 행동에는 어떤 의미나 이익이 있을까?
가볍게 찌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서진은 프로그램을 켜고 타르타로스 2에 접속했다. 칼라 칩이 장착된 태블릿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쾌적한 접속 환경을 제공한다.
그는 빠르게 타이핑을 하며 에테르 검색 엔진, ASE(Aether Search Engine)를 실행시켰다.
태블릿 화면에 타르타로스 2가 전송하는, 에테르 줄기를 찾아 뻗어나가는 탐색 에너지의 흐름이 나타났다.
타르타로스 2는 서울을 중심으로 거대한 나선형의 에테르 파동을 만들어냈다. 서울에서 시작된 파동은 점점 크기를 넓혀가며 한반도 전체를 뒤덮었다.
그 순간 어느 한 지점이 붉게 명멸했다. 마침내 위치를 찾은 것이다.
「부산 동래구 XX동 코발트 PC방 43번 PC.」
예상대로 피시방이었다. 이 정도만으로는 범인을 특정할 수가 없다.
한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는 예상했고, 방법도 이미 생각해두었다.
“저 놈의 핸드폰을 뒤지면 되지.”
타르타로스는 곧장 43번 PC이용자의 스마트폰에 접속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 저장된 정보를 빠르게 스캔했다.
한서진은 태블릿에 떠오른, 범인의 정보를 대강 확인하고는 블로그에 들어갔다. 녀석은 아직도 한창 분탕질을 치는 중이었다.
한서진은 로그인을 하고, 새 글을 올렸다.
―부산 동래구 XX동 코발트 PC방 43번 PC에서 지금 제 블로그에 과격한 댓글을 달고 있는 조치준 씨,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짓이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신나게 악플을 달던 조치준은 말이 뚝 끊겼다. 분명 포스팅을 확인했을 텐데 반응이 없다.
한서진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잠시 후 비로소 조치준, 악플러 epp가 댓글을 달았다.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내 이름이 조치준이라고? 좀 더 잘 찍어보지 그래? 이 양키 새끼야.
한서진은 피식거리고는 댓글을 달았다.
―XX동 아이로드 빌라 1층에 사는 조치준 씨 맞잖아요? 23살에 이제 공익 8개월 됐고, 핸드폰 번호 뒷자리는 7861이고. 내 말이 틀렸으면 반박해보시죠?
다시 댓글을 올리고 몇 초 후, 타르타로스 2가 보고했다.
「43번 PC의 전원 종료.」
「PC 이용자의 스마트폰, 해당 지역을 이탈 뒤 빠르게 이동 중.」
============================ 작품 후기 ============================
ASE : 용살검―초룡을 죽일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보구다.
“가볍게 찌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주의사항 : 벌레를 찌르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