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66화 (266/609)

00266  검색 엔진 개발  =========================================================================

타르타로스 2가 웅웅거리는 공명음을 내며 <에테르 검색 엔진>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한서진은 눈을 찡그리며 집중했다. 강화된 통찰안이 타르타로스 주변에서 요동치는 에테르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예전처럼 정교하고 아름다운 하모니는 없다.

마치 고장 난 그래픽 카드로 보여주는 영화처럼, 온통 풍경이 일그러지고 깨져 보인다. 에테르의 흐름은커녕 공간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이질감만이 보일 뿐이다.

어지러움이 강하게 밀려와, 한서진은 통찰안을 바로 껐다. 그제야 정신이 다소 맑아졌다.

‘통찰안은 아직도 이러네.’

언제쯤 통찰안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을까? 있을 땐 잘 몰랐지만 없으니까 더 간절해지게 된다.

한서진은 주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모니터 한쪽에는 에테르의 흐름을 3차원 그래픽으로 변환한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타르타로스 2가 건드린 에테르의 파동이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는다. 그것은 마치 작은 혈관이 큰 혈관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타르타로스 2에서 출발한 에테르의 파동이 드디어 커다란 에테르 줄기를 찾아냈다. 미국까지 연결된 거대한 에테르의 통로다.

말 그대로 지구의 에테르 대동맥. 한국에서 미국까지 이어져 있는 거대한 흐름이자, 통로였다.

타르타로스 2는 통로를 타고 캘리포니아에 접근했다. 작업에 숙달되는 것처럼 탐색 및 처리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자마자 타르타로스 2는 SJ인더스트리의 위치를 찾아냈고, 중앙 서버 Z7까지 발견했다.

슈나우저와 코카 스패니얼로 만들어진,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성능의 수퍼컴퓨터. 그러나 <에테르 검색 엔진>의 스캐닝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규소 집합체에 지나지 않았다.

에테르의 흐름이 Z7의 데이터베이스를 훑었다.

어떤 전기적 흐름도 남기거나 건드리지 않았다. 마치 까마득한 높이의 인공위성으로 지상의 원시인을 훔쳐보듯, Z7에 보관된 자료 중 원하는 부분을 속속들이 수집했다.

“벌써 끝?”

종료 메시지가 뜨자 한서진은 놀라워했다. Z7에 접속하고 1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자료 수집을 마쳤기 때문이다.

Z7이 보관하는 데이터는 무척 방대할 텐데, 그것들을 한순간에 수집해버린 것이다.

“타르타로스 2…… 너 정말 빠르긴 엄청 빠르구나.”

탐색부터 시작해서 종료까지 걸린 시간은 도합 40초 남짓. 오히려 목표물을 탐색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당했다.

타르타로스 2와 <에테르 검색 엔진>의 성능에 전율하던 한서진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산 통합 관리 기능을 작동시켰다.

비교적 간단한 프로그램이지만, 그것을 운용하는 주체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수퍼컴퓨터, 타르타로스 2였다.

타르타로스 2는 SJ인더스트리 중앙컴퓨터 스토리지에서 읽어온 자금 및 회계 데이터를 낱낱이 분석했다.

분석 작업 속도는 매우 빨랐다.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모든 작업이 종료되었다.

“이야, 벌써 끝났네. 어디 보자. 첫 테스트인데 제대로 잘 되었으려나…….”

한서진은 흥겨워하며 출력된 결과를 살피다가 굳어졌다.

모니터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나 있었다.

―분식회계 정황 포착.

―총 1,205,788,190달러

―카론 J 콜린이 392일에 걸쳐 총 137회의 출금 절차를 거침.

무려 12억 달러가 넘는 거액이 새어 나갔다. 그러나 그것보다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카론 J 콜린은 정지원 CEO의 비서실장.

한서진은 힘 빠진 신음을 냈다.

“말도 안 돼.”

그는 다시 한 번 검산을 했다. 혹시라도 오류나 버그가 없는지 낱낱이 살폈다.

그러나 몇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타르타로스 2가 조사한 바로는 12억 달러의 거액이 정지원의 비서실장인 카론 J 콜린의 차명 계좌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1년 1개월 가까운 시간 동안 총 137회에 걸쳐 송금했고, 흔적도 깨끗이 지웠다.

SJ인더스트리는 상장기업이 아닌 개인 기업에 가깝기에 장부 조작이 상대적으로 쉽다. 비교적 외부 감사에 덜 구속받기 때문이다.

대주주인 한서진만 납득시키면 모든 보고 절차가 끝난다. 크렘 회장 역시 한서진이 문제 삼지 않는 일을 굳이 따지고 들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한서진은 지금까지 한 번도 꼼꼼하게 회사 경영 상태를 따진 적이 없었다. 모든 것은 정지원에게 일임했다.

즉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장부를 조작하고 공금을 횡령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소리다.

“정지원 사장님이 그럴 리가 없는데.”

12억 달러, 분명 큰돈이지만 정지원이 겨우 그 돈을 위해서 배신한다고? 그 점이 더 말이 안 된다.

무언가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을 떨어뜨리기 위해 정지원을 음해하는 것은 아닐까?

‘단서가 부족해.’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SJ인더스트리 중앙컴퓨터에 보관된 자료를 근거로 한 것이다.

장부 조작도, 출금도, 모두 카론 비서실장이 직접 했다. 정지원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그를 오른팔 직원으로 두고 있다는 정황뿐이다.

‘정 사장님이 그랬을 리가 없어.’

아무것도 없던 시절 도움을 받았다는 것 때문에 그를 믿는 게 아니다. 진정한 이익은 상대의 이익 역시 배려할 때 획득할 수 있다는 그의 합리성을 믿는 것이다.

‘찾아보자. 내가 뭘 놓쳤는지를.’

한서진은 다시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타르타로스 2가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거대한 항공기, A380이 활주로를 달려 날아올랐다.

워싱턴은 물론이고 스탠포드, 실리콘밸리는 이미 한바탕 시끄러워진 상태였다.

“정말인가? 한서진 박사가 미국에 온다고?”

“그래, 몇 분 전에 전용기 타고 한국을 출발했대.”

“한서진 박사 전용기가 A380이었지? 하늘 위에 호텔이라는 그 점보기.”

“맞을 거야. 중형 사이즈도 하나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미국 직항이 안 될 테니까.”

아무튼 열 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많은 이들은 한서진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워싱턴의 클레튼 대통령도 그중 한 명이었다.

“캘리포니아? 워싱턴이 아니라?”

“아마도 SJ인더스트리 일로 방문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한서진 박사는 SJ인더스트리 오너였지요.”

클레튼 대통령은 좀처럼 아쉬움을 지우지 못했다.

“내가 캘리포니아를 방문하는 것은 이상하겠지요?”

“안 됩니다, 각하. 이제는 체통을 지키셔야 할 때입니다.”

안 그래도 백악관이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려 한다고 공화당에서 심심찮은 비난이 쏟아지는 판이다. 겉으로 만큼은 좀 자중할 때도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미국 올 때 에어포스 원에 호위기 편대라도 붙여서 내주고 싶은데…….

한편 한서진은 곧장 SJ인더스트리를 찾으려 했지만,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공항까지 찾아오는 바람에 발이 묶였다.

그와 덕담을 나누고 사진까지 찍은 후에야 겨우 한서진은 볼일을 볼 수 있었다.

“어쩐 일이야? 예고도 없이 갑자기?”

“그냥 회사 구경 한 번 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어떻게 잘 굴러가나 궁금하기도 하고요.”

“회사야 당연히 문제없이 굴러가지.”

정지원은 직접 한서진을 안내해서 회사의 주요 시설을 보여 주었다.

선두에서 둘이 나란히 걷고, 그 뒤로 십여 명이 넘어가는 수행원들이 따랐다.

“상반기 순수익이 6,090억 달러야.”

“단일 기업으로는 대단한 거죠?”

“엄청난 거지. 맥플은 이번 상반기 수익이 310억 달러거든.”

원래 포브스가 선정한 100대 기업에서 1위를 놓치지 않던 맥플은 SJ인더스트리에 그 자리를 내주고 만년 2위로 내려왔다.

한때 한서진이 개발한 비글로 맥플 노트북에서 톡톡히 재미를 봤던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1위와 2위가 무려 2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혹시 통장 봤어?”

“아뇨, 아직.”

“상반기 로열티 입금했으니까 나중에 확인해 봐. 너무 깜짝 놀라지 말고.”

“SJ인더스트리 순수익이 6천억 달러면 대충 그것만큼 들어왔겠네요.”

한서진은 가볍게 쓴웃음을 지었다.

SJ인더스트리의 주력 산업은 슈나우저와 코카 스패니얼, 이 두 가지 반도체 생산이다. 회사는 두 반도체의 포괄적, 독점적 특허 라이선스를 갖고 있다.

한서진은 회사의 대주주이면서, 동시에 두 반도체의 특허권자이기도 하다. 그는 특허 로열티로 수익의 50%를 가져가는 계약을 회사와 맺었다. 그의 사기업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런 좋은 조건이 가능했던 것이다.

즉 회사의 순수익이 6,090억 달러라면 50%의 특허 로열티를 이미 지불하고 남은 금액이라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다시 6,090억 달러를 배당하면, 그는 보유 지분인 86.5%만큼 가져갈 수 있다.

“로열티를 수익의 80% 이상으로 해도 좋았을 텐데. 라이선스 계약, 다시 계약할까?”

정지원이 아쉽다는 듯이 말하자 한서진은 피식 웃었다.

“그럼 크렘 회장님이 싫어하실 텐데요. 칼 루이스 부사장님도 비슷할 거고요. 정 사장님한테도 너무 손해잖습니까.”

“다음 신제품 반도체는 꼭 80% 이상으로 계약하자.”

“그러죠.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한서진은 나란히 걸으며, 사업 전반적인 설명을 들었다. 모처럼 가지는 대주주 면담 보고 자리였다.

SJ인더스트리 반도체는 세계 컴퓨터 산업을 지배한다. 타 회사의 CPU와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저가형 제품 위주로만 돌아간다.

중급 이상만 돼도 SJ인더스트리 외의 제품은 찾아볼 수가 없다. 타 제조업체에서 생산 자체를 안 하기 때문이다.

윈텔, 맥플, IBM, 구글 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글로벌 회사들이 주 소비층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돈을 싸들고 찾아온 회사들이 제품 좀 사자고 야단법석이다.

SJ인더스트리는 영업의 편의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거래가 아니면 아예 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소량의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영세업체나 연구소, 개인 등은 SJ인더스트리에서 물품을 받아 유통하는 대형유통업체의 쇼핑몰에서 구매하고 있다.

“3년치 생산물량은 이미 전부 팔렸어.”

“그럼 3년 동안은 이미 매출과 수익이 결정된 거 아닌가요? 긴장하는 맛은 없겠네요.”

“추가 물량을 찍어내서 반전 요소를 만들어야지.”

한서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정지원이 멈칫했다.

“무슨 일인데?”

“역시 촉이 귀신같으시네요.”

“뭐가…… 잘못됐어?”

“아니요. 그냥 정 사장님이 제 생각보다 더 힘들고 치밀하게 영업을 해오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한서진은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여태까지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네요.”

12억 달러는 정지원의 사리사욕에 쓰이지 않았다. 그것은 대부분 워싱턴 의회의 로비 자금에 들어갔다. 또 미국의 주요 언론사의 기자나 간부급 인물들의 주머니로도 들어갔다.

명예시민권이 쉽게 수여된 것은 미국 시민들이 뜨겁게 열광한 것도 있지만, 그런 정지원의 꾸준한 노력이 윤활유 역할을 한 것도 분명히 있으리라.

돈의 흔적을 쫓으면서 한서진은 자신이 그동안 전혀 몰랐던, 정지원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그는 치열한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반도체의 성능만을 믿지 않고, 비즈니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지금의 SJ인더스트리를 만들었다.

‘왜 나한테 진작 말을 안 했어요?’

예전이라면 그렇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지원은 한서진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는 대리인으로서 더럽고, 불편하고, 귀찮은 것은 모두 본인의 선에서 잘라냈다. 한서진의 귀에까지 들어가지 않게 차단했다.

만약 그를 만나지 못했으면, 지금처럼 뒤통수 맞을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앉은 자리에서 막대한 로열티와 배당금을 받아 챙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아무리 믿을 만한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어도, 횡령, 배신 등의 걱정을 벗지 못했을 것이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정지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지만, 한서진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이야기로 돌렸다.

“돈의 흐름을 추적하니까 세상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보이더라고요.”

“원래 자본주의 세상이 그래. 돈을 알면 다른 게 전부 보이지. 근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여기서 말씀드리기는 곤란하고요. 나중에 천천히 알려드릴게요. 만약 준비가 되면요.”

천천히 걸으며, 한서진은 생각했다.

에테르 검색 엔진은 정말 놀랍고 대단한 힘이다. 그 어떤 보안이나 기밀, 정보도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앉은 자리에서 세상 모든 인간들의 비밀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이 힘을 적극 활용했을 때의 파급력을 떠올리니 가벼운 전율이 일었다. 신기하게도 거기까지였다. 긴장된다거나 두려운 마음은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

‘나도 레노지안 왕에 조금 가까워진 걸까?’

한서진은 에테르 검색 엔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닌, 어떤 것을 할지를 차분히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저라면 게임하다 마주친 욕설 유저들 신상 터는데 쓰겠습니다. 여러분들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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