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65화 (265/609)

00265  검색 엔진 개발  =========================================================================

“회계 감사용?”

한서진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자신은 그저 주력 직속 자산을 편히 관리하기 위해서 만든 프로그램일 뿐이었다.

송하나는 배시시 웃으며 덧붙였다.

“오빠 전용 수퍼컴퓨터는 성능이 엄청 좋다고 들었어요.”

“응, 일단 그래.”

엄청 좋은 정도가 아니라, Z7 시리즈는 타르타로스 2에 비하면 장난감 계산기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 타회사 자금 흐름 같은 것도 파악하기 쉬울 거 같은데요. 약간의 해킹 기능도 좀 넣고 하다 보면요.”

“근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있지요. 이번에 대통령 사건 보셨잖아요.”

송하나는 상냥한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넝쿨 한 가닥 잡아당기니까 끝도 없이 딸려 나오잖아요.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일 걸요.”

“…….”

“그런 거 미리 파악해두면 나중에 행정부에서 오빠 또 귀찮게 할 때 바로 조용히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럼 오빠는 스트레스 안 받으시고 연구에 다시 집중할 수 있구요.”

“하긴…… 충분히 그런 식으로 활용할 순 있겠다.”

한서진은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괜찮은 발상이 잇달아 떠올랐다. 통합 재무 관리 프로그램에 약간의 기능만 추가하면 다양한 방면에서 활용이 가능할 듯했다.

‘에테르를 이용할 수 있으면…….’

타서버에 접근할 때 전자 회로가 아닌 에테르를 활용한다면? 이론적으로 어떤 정보든 수집이 가능할 것이다. 심지어 상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게 된다.

“좋아! 해봐야겠어.”

한서진이 팔을 걷어붙이자 송하나는 조금 불만스러운 듯이 말했다.

“근데 오빠, 우리 오늘 데이트는…….”

“……아, 맞다. 나가자.”

중요한 걸 깜박할 뻔했다.

국방부 장관은 요즘 들어 주한미군의 움직임이 거슬렸다.

수송기의 이동 및 출입이 예전보다 열 배 가까이 활발해진 것이다. 수송기 출입이 잦다는 것은 결국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미군 기지에서 뭔가를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있거나, 아니면 뭔가를 미군 기지로 들여오고 있거나.

‘미국놈들, 대체 무슨 꿍꿍이지?’

미국이 한서진을 애지중지하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청와대와 주한미군 전력 강화 이야기가 한창 오가는 중이다.

미국이 크게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존 주둔 미군의 전력 증강 및 기지 개수 증대.

다른 하나는 7함대가 제주도에 모항을 두는 것.

대통령은 나름대로 자존심도 있고, 또 한서진한테 여러 모로 쌓인 게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주한미군 전력 강화 협상에 선뜻 응하지 않고 있었다. 증강 전력에 관한 주둔비는 미국이 전적으로 부담하겠다는,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었음에도.

―여기서 주한미군의 전력을 더 키우면 중국과 러시아가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소.

―중국에 진출한 국내 자본, 기업들이 불이익을 입을 거요.

―중국 수출 시장을 고려하지 않을 순 없소.

행정부는 그런 핑계를 둘러대며 교묘하게 시간을 끌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협상파기를 위해서인지, 아니면 시간을 끌며 다른 추가 이익을 위해서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미국은 역시 대국이었다.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협상에 임했다. 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살짝 위협을 곁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미군 기지를 드나드는 수송기의 움직임이 몹시 활발해졌다.

‘군사설비 교체를 하는 것은 거의 확실한데.’

정황을 보면 군사설비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보인다.

협상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놓고 전력 증강을 할 수 없으니, 그런 식으로 일단 일을 진행하는 것이리라.

달리 생각하면 미국은 이번 협상을 무조건 이뤄낸다는 의지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각하도 그 점을 알고 계시겠지. 그래서…….’

일부러 더 협상을 지연하는 것일 테고. 상대의 확고한 생각을 알고 있으니.

‘근데 대체 뭘 들여오는 거지?’

주한미군사령관 코루트 대장은 근래 들어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극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한반도 무조건 사수라니.’

말 그대로 무조건, 이는 군사 작전에서 대단히 큰 결의와 각오를 뜻한다.

먼저 7함대가 일본 기지를 포기하고 제주도와 괌을 주력 기지로 삼는다고 한다.

사실 7함대는 굳이 제주도를 주력 기지로 삼지 않아도 한반도 방위 임무에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제주도를 주력 기지로 삼는다는 것은 중요한 상징성을 띈다. 한국을 중요시 여긴다는 미국의 의지를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에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두 나라는 이미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을 것이다.

“SDP-1, 총 20,500기의 수량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즉시 각 기지에 배치하게.”

코루트 사령관은 잠시 생각하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

“서울에 포탄 한 발도 떨어지지 않게 막을 수 있는 포지션으로 배치하게.”

한반도 무조건 사수, 그 안에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한서진을 무조건 지켜내는 것. 그를 지키지 못하면 한반도 사수는 의미가 없다.

SDP-1은 미국의 최신형 저고도, 단거리 요격 미사일이다. 북한이 가진 저고도 미사일과 포탄에 치명적인 천적이다. 북한이 그것들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2만 발이 넘는 SDP-1 앞에서는 무력화될 것이다.

“SDP-1은 이게 끝인가?”

“아닙니다. 1차분 물량을 들여왔을 뿐,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물량을 추가 투입한다고 합니다. 언뜻 듣기로는 적어도 최소 10만 발 이상을 갖출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북한 놈들이 알면 기겁하겠어.”

만약 중국이 움직인다면 그 시발점은 북한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북한과 남한을 서로 맞붙게 하고, 그 뒤 중국이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나서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군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과 포탄 체제를 무력화할 SDP-1을 대량으로 들여온 것이다.

물론 중국이 남한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을 대비한 방어 계획도 잡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7함대에서는 조기경보기를 이용해 한반도에 가해지는 위협을 24시간 감시하고 있는 중이다.

“이건 뭐 제2의 백악관 취급이군.”

한서진은 송하나와 함께 오후를 보냈다.

워낙 유명세를 치르다 보니 평범한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 매우 어렵다.

파파라치들이 눈을 빛내면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와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찍히기라도 하면 대번에 뉴스에 올라간다.

바깥을 나갈 때는 짙은 선글라스에,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은밀한 이동은 기본이다. 정문 밖은 파파라치들이 죽치고 있는, 위험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겨우 저택을 빠져 나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커플은 비로소 한숨을 토했다. 일단 파파라치들은 무사히 따돌린 것 같았다.

송하나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한 거 같아요.”

“그럼 다음에는 이불 안에서 데이트할래?”

“오빠!”

한서진은 키득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녀는 눈을 살짝 찡그린 채 째려봤다. 그런 모습조차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데이트는 즐거웠다. 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는 사복 경호원을 거느리긴 했지만.

함께 강변을 거닐고, 야경이 좋은 호텔 고층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영화관 한 타임을 통째로 전세 내서 단 둘이서만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관 독점 부분에서 송하나는 조금 감격했다.

“돈이면 다 되더라고.”

“그래도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그냥 영화관을 샀어. 편하네.”

송하나는 그만 풀썩 웃어버렸다.

“오빠, 영화 좋아하셨어요?”

“싫어하진 않아. 그리고 밖에서 둘만 있기 좋잖아.”

“둘만 있으면 뭐 하시려구요?”

“이런 거?”

한서진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당겼다. 부드러운 어깨를 품에 안은 채 키스했다.

스크린에서는 한창 클라이막스 장면이 나오고 있었지만, 둘은 한참이나 서로에게 열중했다.

헤어지는 순간은 늘 아쉽다.

한서진은 송하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섰다. 내일 또 만날 수 있지만, 마음 한편은 그저 아쉬운 감정으로 가득했다.

“집에 가자. 가서 연구나 하자.”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송하나와 전화 통화를 했다. 앞뒤가 격리된 고급 세단은 이런 점이 참 좋다.

드디어 집에 온 그는 송하나와 통화를 마치고, 타르타로스 2 주모니터 앞에 앉았다.

벌써부터 손이 근질근질했다.

“좋아, 어디 해볼까.”

자산 통합 관리 프로그램은 거의 완성된 상태다. 한서진은 여기에 아주 간단한 정보 수집 능력을 넣을 생각이었다.

‘해킹 툴이 아니라 그냥 정보 수집 기능을 넣는 것뿐이야. 어차피 난 해커가 아니니 방화벽을 뚫는 것도 무리고.’

그는 해킹에 관해서는 아주 얕은 지식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타르타로스 2가 뛰어난 수퍼컴퓨터라 해도, 기본 프로그램 코딩 자체가 빈약하면 제대로 된 해킹 성능을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해킹이 아닌, ‘단순 정보 수집 코딩’이라면 얼마든지 자신도 짤 수 있었다.

‘무차별로 데이터를 긁어모은 뒤, 그것을 비교 패턴 방식으로 정보화한다.’

한서진의 발상은 아주 간단했다.

정보 수집에 에테르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다른 서버나 컴퓨터에 전기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고, 에테르를 타고 접근한다는 방법이다.

에테르는 현대 기술로는 보이지 않고, 검출할 수도 없는 힘. 아무런 증거도 남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회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고, 컴퓨터의 전원이 꺼져 있어도 데이터를 긁어올 수 있다.

전원이 꺼져 있어도 하드디스크의 데이터는 그대로 존재하며, 에테르를 이용해 그것을 스캔해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해.”

타르타로스 2는 1과 마찬가지로 이론상 지구 어느 곳에도 에테르를 통해 연결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무수하고 다양한 에테르 형상 중에서 전자적 정보만을 특정하는 것이다. 건물, 사람, 과일, 동물 등의 에테르 형상을 제외하고, 서버나 컴퓨터, 서류문서 등 의미 있는 정보의 형상만을 골라내는 작업이다.

아마도 이 작업이 코딩 과정 중에서 가장 어려울 듯하다.

한서진은 씻지도 않고, 잠도 못 잔 채 밤새도록 코딩 작업에 매달렸다.

‘통찰안이 있으면 금방 끝났을 텐데.’

그대로 베끼기만 하면 되니까. 쓰질 못하니까 한결 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날을 꼬박 세운 한서진은 출근도 생략한 채 하루 종일 코딩 작업에만 매달렸다. 회사에서 전화가 오는 것도, 송하나한테서 연락이 온 것도 잊은 채 작업에 열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늦은 저녁, 그는 드디어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됐다!”

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뿌듯함을 느꼈다.

자산 통합 관리 프로그램에 중요한 기능이 추가되었다. 에테르를 이용해 인공적인 정보를 탐색하고, 강제로 수집하는 능력이었다.

에테르로 스캔을 하는 방식이라 일반적인 물리적, 전자적 해킹과는 달리 흔적 자체가 전혀 남지 않는다.

“그럼 시험 삼아 SJ인더스트리 서버부터 한 번 뒤져볼까?”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지만 성취감에 중독돼서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다. 한서진은 피곤도 잊은 채 타이핑을 시작했다.

“내 검색 엔진이 얼마나 잘 작동하려나.”

============================ 작품 후기 ============================

에테르 검색 엔진일 뿐이에요.

해킹 툴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단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