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61화 (261/609)

00261  그 커플의 일상  =========================================================================

“신은 있지만 종교는 없어요.”

레노지안에는 신성력을 다루는 사제 계층이 존재한다. 그들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 심지어 왕조차 신의 존재를 믿는다.

신에는 이름이 없다. 신을 섬기는 장소나, 존경을 바치는 행위나 풍습도 없다.

신전은 존재하지만, 마법사들이 거주하는 마탑처럼 사제들이 거주하는 곳일 뿐 신을 위한 장소는 아니다.

“사실 저는 아직까지 직접 마을이나 도시에 나가본 적이 없어요. 전부 들은 이야기들이에요.”

“그렇군요. 많은 참고가 됐습니다.”

중요한 정보, 한서진은 신효진의 설명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들었다.

‘뭔가 이상한데.’

자신이 봐온 배경과, 그녀가 겪는 배경이 서로 다르다. 각자의 꿈에 시간적 차이가 있는 것일까?

그가 본 꿈에서 신효진은 화려한 침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전사의 차림을 한 왕과 함께 초룡을 찾아 여행 중이라고 한다.

‘초룡…….’

문득 왕이 초룡을 포획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 거대한 위용은 아직도 가슴을 떨리게 만든다. 어떤 초대형 전용기도 그보다 멋지지는 못하리라.

만약 현실에서 그런 신수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다면, 얼마나 대단할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효진 씨는 지금도 꿈을 꾼다고 했죠?”

“네, 매일 꿔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럼 피곤하지 않아요?”

“전혀 안 그래요. 오히려 엄청 좋은 피로회복제라도 먹은 것처럼 온몸이 가뿐해요.”

신효진은 수줍게 웃으며 입을 가렸다.

그녀는 한서진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이 그저 즐거웠다. 리온과는 또 다른 설렘, 이 두근거림이 마치 사탕처럼 달았다.

“그런데 이 꿈은 어떻게 된 걸까요? 왜 박사님과 제가 같은 꿈을 꾸는 거죠?”

“그건 저도 모르죠.”

“참 신기해요.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한서진은 해맑게 웃는 그녀를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왕비가 신효진이 아니라 송하나였다면 어땠을까?

“꿈에서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줘요. 절대 예사로운 꿈이 아니니까.”

“알겠어요.”

SJ사이트가 태풍의 진로를 예측했다.

현재 태평양에서 북상 중인 태풍의 진입 궤도 및 남해안에 미칠 피해를 예측한 것이다.

그것은 태풍이 별 피해 없이 사그라질 것이라는 일본 기상청의 예측과는 정반대된 것이었다. 일본 기상청은 황급히 자신들의 예측을 철회했다.

SJ사이트는 제주도 및 남해안에 미칠 피해를 예보했지만, 정작 뒤집어진 것은 일본이었다.

태풍의 경로가 일본을 정확히 가로질러 올라가는 형태였기 때문이었다.

―제주도, 태풍의 사정권. 자동차가 뒤집어질 정도로 거센 바람과 폭우가 이틀 정도 지속될 예정.

―남해안, 우산이 뒤집어질 정도의 바람. 시설물 등에는 피해가 없을 듯. 폭우가 하루 정도 예상 됨.

SJ사이트는 짤막하게 예상 피해를 첨가했다. 재해 경보라는 말에 기겁했던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정도면 그냥 하루 이틀 비바람에 고생하면 되겠네.”

“태풍 메기 같은 거라도 오는 줄 알고 쫄았잖아.”

가벼운 마음으로 넘어가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초비상이 걸렸다.

“태풍 메기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심지어 본토를 직격해서 훑다가 동쪽 해안으로 빠진답니다.”

“이게 사실이야?”

“이동 코스, 그리고 제주도와 한국 남해안에 미치는 피해를 종합해서 추론한 태풍 위력을 추론한 겁니다.”

SJ사이트는 구체적인 태풍의 위력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런 태풍이 오고 있고, 해당 지역에 어떤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만 예보했을 뿐이다.

피해 예상 지역 주민들은 오히려 이런 예보가 더 정확하고 알기 쉬워서 좋았다.

그러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일본으로서는 다급하기만 했다.

“그래서? 태풍의 정확한 위력이 얼마라는 거야? 예상 피해는?”

“그건 알 수가 없습니다. SJ사이트에서는 태풍의 자세한 제원 예측을 해주지 않았어요.”

“대체 왜?”

“SJ사이트는 미국과 한국에 닥칠 재해 피해만 예측하지, 그 외는 신경을 쓰지 않잖습니까.”

태풍은 일본을 직격으로 지나가며 일본과 한국에 동시에 피해를 입힌다. 그러나 SJ사이트는 오로지 한국에 닥칠 피해만을 예상해서 내놓을 뿐이다.

일본 외교부는 한국에 정식으로 요청해서 태풍의 자세한 제원을 부탁했다. 성과가 없을 거란 건 알지만, 내각에서 달달 볶으니 어쩔 수 없이 제스처라도 취한 것이다.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SJ사이트에 관해서는 우리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한서진과 대통령 간의 파워 게임은 일본 정계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한국 정부는 수치심 때문에 일반 대중에 쉬쉬하고 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알음알음 다 알고 있었다.

특히 한국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일본 및 미국 언론들은 자국 내에서 파워 게임 사안을 자세히 다루었고, 그것은 번역을 통해 한국 여론에 재수입되기도 했다.

태풍은 정확히 SJ사이트에서 예측한 경로를 따라 지나갔고, 예측한 피해를 남겼다. 그래서 한국은 큰 혼란 없이 태풍을 넘길 수 있었다.

일본 역시 SJ사이트의 정보를 입수했기에, 그리고 한국 예상 피해를 통해 간접적으로 태풍의 위력을 예측하여 무사히 대응할 수 있었다.

이번은 무사히 넘어갔지만, 일본 내각은 안심하지 않았다.

SJ사이트는 이번 태풍이 한국에 큰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정보를 제공했을 뿐이다. 만약 조금만 일본 쪽에 치우쳤다면, 그래서 한국에 피해가 없다면 예측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각은 더욱 조바심이 나서 몸이 달아올랐다.

일본뿐만 아니라 잦은 재해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SJ사이트가 서비스 지역을 넓혀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한국 외교부를 두드리는 방문은 끊임이 없었지만, SJ사이트는 좀처럼 입장 표명이 없었다.

한서진을 찾는 사람은 많다. 스마트폰과 메일함은 언제나 스팸 전화와 스팸 메일로 넘쳐 난다.

그 스팸들은 불특정 대다수를 상대로 발송된 게 아니다. 한서진이라는 특정 개인을 찾아온 것이다.

사업 제안부터 시작해서 기부 요청, 애걸에 가까운 온갖 부탁, 심지어는 결혼을 해달라거나 하루만 데이트를 해달라는 여자들도 있었다.

필터링 프로그램으로 거쳐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결국 한서진은 허용된 번호만 연락을 받고 있다. 그 외에는 회사나 학교, SJ인더스트리와 H그룹을 통해서 걸러 받는다.

그렇게 한 번 걸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는 연락은 매일같이 끊이지를 않는다.

“서비스 지역 확장이요? 이미 수차례 말씀드렸습니다만, SJ사이트는 지금도 시스템 자원을 한계까지 끌어서 쓰고 있습니다. 서비스 지역 확장은 지금으로서는 안 됩니다.”

자기 나라에도 재해 예보 서비스를 제공해달라는 외교적인 부탁부터.

“반도체 생산은 SJ인더스트리에서 맡아서 합니다. 저는 특허권자이고 대주주일 뿐, 경영자가 아닙니다. 경영은 저도 아는 바가 없다고요.”

프리미엄을 줄 테니 자기 회사에 반도체를 납품해달라는 모 글로벌 전자회사도 있고.

“강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되지만 제가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한 번 진지하게 고려해 보겠습니다.”

자기들 대학에 와서 강연 한 번 열어달라는 모 유명 국제대학의 애원도 있으며.

“반도체공학 전임 교수 자리요? 제가 지금 대학교 3학년생인 건 알고서 이러시는 겁니까? 네? 상관없다고요? 아니, 학위도 없는 제가 무슨 강의 개설을 합니까? 네? 이미 수강 예상 신청이 폭발 중이라고요? 저기요, 총장님?”

심지어 학과를 개설할 테니 제발 와서 교수 자리를 맡아달라는 모 유명 대학들도 있었다. 어중이떠중이 대학들이 아니라 국제 공과대학에서도 두 손에 꼽히는 유명 대학들이었다.

한 번 걸러서 오는 연락들이다 보니 하나같이 신분만큼은 확실하다. 그러나 고위공직자, 유명 대학 총장급 인사들의 연락이라 해서 마음 놓고 받고 보면, 저런 터무니없는 요구들뿐이다.

“전화 받는 것도 힘드네.”

한서진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소매를 걷었다. 옆에서 태블릿 화면을 넘기던 송하나가 슬쩍 웃었다.

“세계 제일의 유명인이잖아요. 어쩔 수 없죠.”

“죄다 나 말고 회사에 할 이야기, 나한테 해봤자 들어줄 수 없는 이야기만 해대니 나도 답답해서 그래.”

“그나저나 어디서 강의를 개설해 달래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어머, 거기는 정말 최고 대학이잖아요.”

송하나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워했다.

“정말 거기서 강의 개설해 달래요? 연구 교수가 아니라?”

“강의든 연구든 간에, 나는 학위가 없는데 교수로 와달라니 황당하지.”

“학위가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사람들 모두 오빠를 박사로 알고 있는데.”

“이게 다 클레튼 대통령 때문이야.”

미국 명예시민권을 수여할 때 대통령이 박사라고 부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오해가 조금은 덜해졌을까?

“근데 뭘 그렇게 보고 있어?”

“H통신 업무 보고서요. 정상용 대표님이 저한테 보내주신 거예요.”

“업무 보고서는 왜?”

“아빠가 H통신 맡아서 경영 연습 해보래요. 그래서 참관식으로 조금씩 참여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회사에 직접 출근도 해요.”

“회사에 출근을 한다고?”

“네, 아무래도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 경영 수업을 따로 받은 적은 없거든요.”

한서진은 임원회의에 참관자로 참석한 송하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잘 빠진 검은 정장을 입고 당당하게 앉아 임원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른 상황에서 경영자 회의 참가해봤자 시간만 낭비할 것 같은데.”

한서진은 걱정스럽게 말했고, 송하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창한 거 아니에요. 그냥 일반 직원들 틈에 섞여서 일하고 있어요.”

“그럼 별 소용없지 않을까? 후계자가 지켜보러 왔다면 직원들 경직돼서 보여주기 식으로만 일할 텐데.”

“아니에요. 직원들은 제가 누군지 몰라요. 그냥 평범한 신입사원인 줄 알아요.”

“평범한 신입사원…….”

괴리감이 느껴진 한서진은 가만히 입안에 굴려 보았다.

송하나 같은 여자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온다? 대체 누가 평범한 신입사원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한서진은 정색하고 말했다.

“너 같은 애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면 연차 좀 되는 상사들이 교묘하게 희롱할지도 몰라. 조심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위장 잠입 깨질까 봐 참고 넘어가면 안 돼. 그런 건 바로바로 잘라. 알았지?”

“진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의 염려가 기분 좋았는지, 송하나는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어차피 여직원들뿐이에요. 아, 센터장님은 남자이시지만.”

“센터장?”

뭔가 아리송한 단어에 한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장님도, 팀장님도 아니고 센터장이라니?

“무슨 쪽 부서에서 일하는데?”

“콜센터요.”

송하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계약직도 아니고 단순 알바예요.”

============================ 작품 후기 ============================

언더 커버 보스, 슛 들어갑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