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60 마력 칩셋 =========================================================================
“Table A팀의 부팀장, 구프게니 키신이라고 합니다.”
러시아계 미국인의 자기소개에 클레튼 대통령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처음 듣는 부서명에,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이는 50세쯤 되었을까. 키는 작지만 또렷한 이목구비에 눈빛이 강하게 살아 있다. 군인 출신은 아닌 듯했다.
대통령은 동행한 CIA 국장을 향해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구프게니 부팀장은 미국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미국인이지만 한 번도 러시아를 밟아본 적이 없는, 충실한 미국 시민이자 신뢰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지금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지를 묻는 게 아니잖습니까, 국장.”
“이제부터 그 점을 신경쓰실 듯해서 미리 설명을 드린 겁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대통령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그는 다시 구프게니 키신 부팀장에게로 눈을 돌렸다.
아무리 뜯어봐도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Table A? 주요 기관에 그런 이름을 가진 부처가 있었던가?
“CIA 하위 특무부서인가요?”
“아닙니다. CIA 소속이 아닌, 독립행정기관입니다.”
“독립행정기관? 그런데 내가 왜 임기 내내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지요?”
미국은 거대한 나라고, 그에 어울리는 수많은 조직을 갖추고 있다. 당연히 대통령이라고 모든 부서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독립행정기관이라면 CIA나 FRS에 못지않은 주요 직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곳일 텐데, 임기가 다 되어가도록 그 존재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Table A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에 정비를 마치고 본격 출범한 기구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실체는 존재했었습니다만, 2차 대전을 계기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비밀 기구로서 막강한 독자성을 주었습니다.”
“막강한 권한이 아닌, 막강한 독자성?”
대통령은 국장의 묘한 뉘앙스에 숨어 있는 의미를 놓치지 않았다. 국장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Table A는 첩보기관이 아닙니다. 기관 자체가 지닌 힘이나 권한은 매우 약하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럼 무슨 일을 하는 기관입니까? 왜 70년 넘게 알려지지 않았지요? 심지어 대통령인 나조차…….”
“Table A는 네바다 51구역의 핵심 중추입니다. 연구기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51구역…….”
대통령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네바다주 사막에 위치한 공군기지. 그러나 그것은 대외적인 정체일 뿐, 실제로는 미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극비 연구를 담당하는 곳이다.
수많은 음모론에서 언제나 이름이 빠지지 않지만, 미국은 줄곧 모르는 체로 일관해왔다. 굳이 긍정도 부정도 할 필요가 없다는, 최강대국으로서의 자신감 덕분이었다.
“Table A는 수십 년 동안 시대를 선도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독점해왔습니다. 미국이 지금의 위상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Table A 덕분이지요.”
“…….”
“연구의 진행 과정, 이론이나 기술 공개 등은 전적으로 Table A의 자체 소관입니다. 이것은 프랭클린 대통령이 당시 기관 설립자에게 문서로서 약속해준 사항입니다.”
“설립자…….”
대통령은 퍼뜩 구프게니 키신이 부팀장이라고 소개한 말이 생각났다.
“왜 팀장이 오지 않은 거요?”
“팀장은 언제나 연구에 바쁘십니다. 그리고 대통령이라 해도 그 정체를 밝힐 수 없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한은.”
“마치 연방준비위원회 같군요.”
국장은 당치도 않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금융과 자본을 이용해 미국 시민과 전 세계를 돈의 노예로 부리려는 자들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헌신하는 과학집단을 동일시할 수는 없지요. Table A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줄곧 어둠에서 미국을 위해 일해왔습니다.”
“아무튼 Table A가 대통령도 섣불리 못 건드리는 독자적인 연구기관이라는 것은 알겠소. 그런데 대통령인 나한테 무슨 말을 하기 위해 새삼 찾아온 겁니까?”
“마음이 상하셨다면 사죄드립니다, 대통령 각하.”
구프게니 부팀장은 정중히 목례를 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연구자는 아니지만 Table A의 유지보수와 관리, 행정부와의 교섭 및 전령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Table A의 부팀장의 역할이지요.”
“…….”
“2차 대전, 폰 노이만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할 당시 이미 Table A의 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사실 Table A이 핵심적으로 주도해서 완성했습니다. 당시 행정부에서는 프랭클린 대통령과 단 두 명의 핵심 인사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Table A의 정체성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좋아요. 계속하세요.”
대통령은 생각했다. 지금 들은 건 100년 정도는 공개 불가능한 극비 사항쯤 되지 않을까 하고.
“Table A는 미국의 기초과학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과학 및 공학에 은밀히 발을 걸치고, 지식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윈텔과 IBM, 록히드마틴 등의 기업에도 Table A가 낳은 인재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런 사실 자체를 모르는, 평범한 미국 시민일 뿐입니다.”
구프게니 부팀장은 거기서 잠시 말을 끊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기관의 간단한 연혁 및 소개였지만, 대통령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대통령인 자신조차 몰랐던 미국의 극비라니, 손끝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이 고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서진 박사의 에테르 연구는 Table A를 아득하게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대통령의 얼굴이 바짝 굳어졌고, 구프게니 부팀장은 비교적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Table A는 오래 전부터 비글, 슈나우저, 코카 스패니얼을 분석하고 그 작용 원리를 알아내고자 애썼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발표한 마력 칩셋의 원리와 작동 구조 또한 밝혀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조금의 성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
대통령은 그만 살짝 입을 벌렸다.
대통령조차 모르는 곳에서 수십 년 간 미국의 과학기술을 뒷받침해온 독자기관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놀라운데, 그 기관조차 한서진의 연구에는 두 손을 들었다니.
“Table A도 포기할 만큼 한서진 박사의 연구가 대단하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Table A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에테르의 존재를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군요.”
“통일장 이론 과정의 한 갈래이기도 합니다만, 이론물리학 파트에서는 제5의 힘의 존재를 가정하고, 그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겨우 자그마한 단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헌데…….”
이어질 말이 예상된 대통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고작 단서를 잡았을 뿐인데, 한서진 박사는 이미 실용화를 시켰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Table A의 수준을 월등히 넘어섰습니다. 그것도 개인 혼자서 말입니다.”
70년 가까이 그늘에서 미국의 과학을 지탱해온 기둥.
그런데 서른도 안 된 젊은이가 불과 몇 년 만에 그들을 비웃듯이 훌쩍 넘어서 버렸다. 에테르에 한해서지만, 그렇다 해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좋습니다, 좋아요. Table A는 수십 년 간 미지의 힘에 관한 연구를 해왔고, 한서진 박사는 하루아침에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한서진 박사는 우리 미국의 명예시민이자 영원한 벗이지요. 그렇지 않나요?”
“…….”
“여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고작 한서진 박사의 역량이 Table A를 넘어선다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는 아닐 테지요?”
“각하, 에테르는 인류 문명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중요한 힘입니다. 그것을 각하께 분명하게 말씀드리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건 나도 잘 압니다.”
“외람되지만 각하께서는 에테르학의 정확한 가치를 모르고 계실 겁니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할 겁니다.”
대통령에게 당당히 반박하는 구프게니의 눈빛은 뜨거운 긴장감이 가득했다.
“고작해야 석유를 대신하고, 통신 기술의 놀라운 발전이 있고, 컴퓨터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것이다, 이 정도로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기타 공학 분야에서 전반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테고, 화재 진압이 수월해지며, 정확한 재해 예측이 가능할 거라 여길 테지요.”
“…….”
대통령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열거한 것들만 해도 어느 강대국이든 체면을 불사하고 달려들 만한 가치가 있다. 현재 국방부와 정보부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의 전쟁까지 각오하며 달려들 것이라는 시나리오 하에, 모든 작계를 검토 중이다.
그래서 한반도를 절대적으로 사수한다는 전제 하에 주한미군을 재편성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구프게니 부팀장은 앞서 열거한 변화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고 있다.
“저희 Table A에서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말은 누구나…….”
“그 중 몇 가지만 언급해보겠습니다. 각하께서는 만약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컴퓨터 프로그램 속의 가상현실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영화 매트릭스 같은 걸 말하는 거요? 설마 진짜로 이 세상이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물론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현실이지, 컴퓨터 시스템 속이 아니니까요.”
구프게니 팀장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에테르 문명은 세상을 마치 그런 곳처럼 되게끔 바꿀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눈을 부릅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론상 에테르는 어디에 닿아 있고, 모든 만물을 구성하는 ‘어떤 것’입니다. 입자라 해도 좋고, 에너지라 해도 좋습니다.”
“…….”
“에테르를 제어하는 시스템 회로란 최종적으로 앉은 자리에서 지구상의 모든 사람, 물질을 제어할 수 있는 ‘현실 프로그램’을 창조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건…….”
“에테르의 파동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지구 반대편에서 전해오는 명령에 꼼짝도 하지 못할 겁니다. 작은 코딩 언어 하나로 적국의 핵잠수함을 찾아내 파괴할 수 있고, 지진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문득 손끝을 내려다보았다. 어느덧 식은땀이 멎었지만, 그 대신 미미하면서도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서진 박사는 그걸 해낼 수 있소? 아니,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화재를 진압하는 정도지요. 어쩌면 한서진 박사 대에서는 그런 발전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은 저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각하께서는 과연 50년 뒤 에테르 문명이 어디까지 닿아 있을지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불과 몇 백 년 사이에 인류는 이만한 기술 문명을 이루었다. 에테르 문명의 50년, 100년 뒤는 과연 어떨까?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아직까지는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적국들이 이 가능성을 알게 된다면…….”
대통령은 비로소 Table A가 찾아온 이유를 깨달았다.
지금까지 한서진을 귀한 보물 정도로 여기고 귀중하게 대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보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이자, 미래 그 자체였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정말 중요하다는 건 나도 알고 있소.ㅎㅎ”
“아니, 각하. 잠시만요.”
잠시 숨을 크게 고르고, 구프게니는 외쳤습니다.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말 중요하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