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7 마력 칩셋 =========================================================================
수도권 외곽의 어느 중화학공장에 불이 났다.
인근 소방서에서 급히 출동했고, 헬기까지 동원해서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화학 약품에 옮겨 붙은 불은 소화 물질을 아무리 끼얹어도 꺼질 기미가 없었다.
거대한 공장이 불길에 휩싸여 있다. 서둘러 진압하지 않으면 이 일대에 옮겨 붙어 온통 불바다가 될 것이다.
“제발 꺼져! 꺼지란 말이야!”
소방대장은 악을 쓰며 소화 물질을 끼얹었다. 그때 얼굴이 검뎅 투성이가 된 부하 소방대원이 급히 말했다.
“대장님! 저 빨리 숙소에 좀 갔다 오겠습니다! 개인 캐비닛에 두고 온 게 있어서요!”
“뭐야, 임마? 너 미쳤어?”
“죄송합니다!”
소방대원은 급히 꾸벅이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소방대장은 어안이 벙벙해서 바라봤다. 이 긴급한 사태에 자리를 이탈해? 그것도 숙소에 뭘 두고 왔다고?
“미친 놈!”
소방대장은 이를 갈며 대원에게서 신경을 껐다. 일단 화재 진압이 끝나면 갈아버리든지 죽이든지 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불을 끄는데 집중해야 했다.
화재는 좀처럼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불길이 더 거세지는 듯했다. 하필 위험 화학 약품이 많은 중화학공장이라서 더 안 좋았다.
그때였다. 숙소로 돌아갔던 대원이 헐레벌떡 돌아왔다.
“대장님! 저 왔습니다!”
“미친 새끼야! 넌 짐 싸고 쳐 나가! 소방관 자격이 없는 새끼니까!”
“이거 가지러 갔었습니다!”
대원은 손바닥을 펴서 조그만 칩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 무슨 핸드폰 메모리라도 되나? 소방대장은 어이가 없었다.
“너, 정말 돌았구나. 안 그러던 놈이…….”
“제가 얼마 전에 한서진 박사 화재 진압 실험에 참관했었잖아요! 그때 나눠준 건데 혹시나 해서 하나 챙겼었거든요!”
“뭐, 뭐야?”
그제야 소방대장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유명한 실험은 그도 몇 번이나 돌려봤다. 내심 저런 게 보급되면 소방관 일하기 참 편하겠다고 생각했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써보려고요!”
“이거, 그냥 던지면 되는 거지?”
“네, 잠시만요.”
대원은 함께 챙겨온 찰흙을 뜯어 칩을 감싸며 주먹밥처럼 만들었다.
“너, 뭐 하냐?”
“이거 가벼워서 그냥 던지면 안 날아가니까 이렇게 해서 던지려고요. 잠시만 여기 계세요.”
대원은 방화 헬멧을 쓰고 최대한 불붙은 공장 건물 가까이 접근했다. 그걸 보고 상황을 모르는 다른 팀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저 새끼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서 물러나라고 해!”
“방화복 꼴랑 걸치고 다가가서 뭐 하려고? 지금 이 판국에 인증샷이라도 찍겠다는 거야?”
소방대장은 저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 장면은 남겨놔야 한다는 강박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불타는 건물을 향해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다 멈춘 대원은 있는 힘껏 투구 자세를 취했다. 웃기게도 소방대장은 순간 녀석이 고교 시절 야구를 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포즈 괜찮은데.’
위급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엉뚱한 생각이 들었고, 대원은 역동적으로 투구를 마쳤다.
마력 칩셋을 감싼 찰흙 덩어리는 불타는 건물 벽에 정확히 부딪쳤다.
―치이익!
공기가 불타는 듯한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공장 일대를 뒤덮은 불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출동해 있던 소방팀은 일제히 얼어붙었다.
“…….”
“…….”
“……이거, 뭐야?”
그들은 자세한 영문을 알지 못했다. 웬 미친 대원 하나가 불붙은 건물에 가까이 다가가더니 뭔가를 던졌고, 기다렸다는 듯이 순식간에 불이 꺼진 것이다.
자기가 한 짓에 놀라서 얼어붙어 있던 대원은 이윽고 소방대장을 향해 뛰어왔다. 소방대장은 그의 생생한 표정까지 빠뜨리지 않고 남김없이 찍었다.
“대박! 형님, 진짜 이거 대박입니다!”
“누가 네 형님…… 좋아, 오늘 하루만 봐준다.”
「xxx화학공장 화재진압 영상.」
「슬쩍한 마력 칩셋이 대참사 막다.」
「소방대원의 과감한 결정, 제2, 제3공장에 불 옮겨 붙는 것 막아.」
한 UCC 영상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활활 불이 붙은 중화학 공장, 방화복을 입고 가까이 다가가는 소방대원, 멋진 투구폼에 이어진 투척, 그리고 순식간에 꺼져버린 불…….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헐, 이렇게 큰 불도 그냥 꺼버리는 거냐?
―공개 입증 실험 못 봤냐? 그 큰 캠프파이어도 껐는데 무슨 뒷북치고 있네.
―그래도 그렇지, 이건 화학 공장에 난 불이라 웬만해서는 불길 잡기도 힘든데, 무슨 손톱만 한 칩 하나 던져 넣는다고 꺼지는 게 말이 되냐?
―대세는 에테르 문명이다. 한서진 박사가 새로운 기술 문명을 일궈낼 거다.
언론은 마력 칩셋을 던져 넣은 소방대원을 마치 영웅처럼 취급해서 다루었다. 그의 인터뷰는 UCC 영상으로 널리 퍼졌고, 사람들은 에테르를 곧장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사실 한서진 박사 말대로라면 이미 우리는 에테르 문명을 누리고 있던 거지. SJ인더스트리 반도체는 에테르의 미시적 효과를 이용해서 성능을 높인 거라잖아.
―혹시 재해 예측 모델도?
―그거 가능성 있다. 소름.
공개 입증 실험과 대강연에 이어, 중화학공장 화재 진압은 결정적인 쐐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셋만 모였다 하면 에테르 이야기를 했다. 에테르가 문명을 어떻게 바꿀지를 놓고 온갖 상상과 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방관 시험을 준비 중인 수험생입니다. 마력 칩셋이 널리 보급되면 소방관이 결국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기술이 발달한다고 꼭 사회가 무너질 것처럼 구는 이런 머저리들이 꼭 있더라. 마력 칩셋이 널리 퍼지면 소방관도 쉽게 화재 진압할 수 있고, 인명과 재산도 보호할 수 있는데 그런 개소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냐?
―어디에나 꼭 있더라. 기술 발달이 무조건 디스토피아 부른다고 망상 쏟아내는 것들.
에테르와 한서진.
그들의 등장은 문명의 거대한 지각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칩셋 No.3의 보급을 청원합니다.」
소방관들이 서명을 모아 탄원을 전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탄원대상은 지자체나 중앙행정부가 아니라 한국대학이었다. 한서진이 한국대학교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한서진은 일반 개인이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들로서는 대화 창구를 찾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래서 부담이 적은 한국대에 탄원을 넣은 것이다.
한서진은 입장 표명을 놓고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총장에게 부탁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칩셋 No.3를 저가로 보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정식 생산 및 유통을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마력 칩셋 No.3는 유독물질이 아니므로 특별한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의미 불명의 회로를 새겨 넣은 규소 덩어리일 뿐이니까.
언론과 여론은 행정기관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재빨리 선수를 쳤다.
―클레튼 대통령, 칩셋 No.3 극찬.
―전미 소방기관에 즉시 배치하기로 결정!
미국이 신속하게 칩셋 No.3의 배치를 결정하자 한국 여론은 더욱 거세게 달아올랐다. 왜 신속히 칩셋 No.3를 도입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일었다.
―마력 칩셋 No.3를 국내에 널리 유통한다는 건 기존 화재시설의 구도가 깨진다는 거지. 당연히 관련 업체의 압박과 로비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할 거다.
―그런 게 무슨 돈이 된다고?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뭐든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돈이 된다. 칩셋 No.3를 국내에 대대적으로 도입하면 그 총액 규모가 얼마나 될 거 같냐?
―지금쯤 이익 배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놓고 공직자들 머리깨나 싸매고 있을 걸?
―근데 설마 한서진 박사가 이런 걸로 떼돈을 벌려고 할까?
―한서진 박사는 안 그러려고 해도, 다른 놈들은 그러고도 남는다. 원래 나라에는 도둑이 많아.
정지원과 통화하는 게 참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간 워낙 일이 많아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요새 마력 칩셋 덕분에 아주 핫하더구나.」
“하하…… 뭐, 그렇게 됐습니다.”
「저번에 나한테 부탁한 것도 비슷한 거지?」
“…….”
한서진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망설였다.
캘리포니아 대지진 때, 정지원은 영문도 모른 채 한서진이 건네준 반도체 칩을 지진 지역에 던져 넣었다. 덕분에 규모 10에 육박하는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는 무사할 수 있었다.
「지금 그때 캘리포니아의 기적에 에테르를 끼워 넣어서 해석하려는 사람들도 제법 있어.」
“흔한 음모론이군요. 저도 어느새 그런 위치가 됐나요.”
「이 대화는 도청하고 있지 않아. CIA든 누구든.」
한서진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어차피 정지원은 자신이 지진을 막기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시간 관계상 마력 칩셋의 제조와 투척을 미국에 있는 그에게 부탁했으니.
“나중에 직접 이야기할 여지가 있을 겁니다. 전화로는 곤란해요.”
회피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은연중의 긍정을 암시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정지원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렇구나. 에테르라는 게…… 그렇게나 놀라운 힘이었구나.」
“네, 그래요.”
「비글 개발 때만 해도 뭔가 이상했어. 분명히 전자회로적으로는 이런 성능이 나올 수가 없는데, 그래서 뭔가 세상이 모르는 게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이런 것이었을 줄이야.」
“에테르의 존재에 관해서는 여러 번 암시가 됐죠. 니트론 교수님도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하시던 주제고.”
「카우보이가 걱정 꽤나 하겠는데.」
“미국이 왜요?”
정지원은 만족스러운 듯한 웃음소리를 냈다.
「집 밖에 두기에는 너무 큰 보물이니까.」
“전에는 보물이 아니었던 건가요?”
「그 전에도 이미 보물이었지. 근데 가치액을 1/100쯤으로 착각한 거지. 아니, 그 이상일지도.」
전화를 끊기 전, 정지원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카우보이가 좀 귀찮게 떼를 쓸 수도 있어. 그게 다 사랑해서 그러는 거니까 너무 미워하지는 마라.」
“미국으로 모셔야 합니다.”
CIA 국장은 열변을 토했다. 대통령과 측근들은 심각한 얼굴로 들었다.
“에테르 문명은 석유와 전기의 발견 이상으로 현대 문명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겁니다.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놀라운 지식입니다.”
“이제 겨우 부스러기 하나를 맛봤을 뿐입니다.”
대통령이 작게 말했지만 국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작은 부스러기가 지금 세상을 온통 뒤흔들고 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
“가설로만 남은 이론이 아닙니다. 한서진 박사는 어쩌면 이미 머릿속에서는 에테르의 근원까지 분석을 끝내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과감한 실험 입증이 가능한 겁니다.”
“그건 인정합니다.”
“십 년 안에 에테르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차마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적국의 수장이라면 전면전을 불사하더라도 한서진 박사를 납치하겠습니다.”
“그래서 주한미군을 강화하려는 것 아닙니까.”
“주한미군을 아무리 강화한들 미국 본토의 방어력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습니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무모한 전략을 취한다면, 얼마든지 상상 이상의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국장은 피를 토하듯이 부르짖었다.
“모셔와야 합니다. 그래야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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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사랑해서 이러는 거니까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