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4 판정승, 판정패 =========================================================================
대통령 내연녀의 이름은 양소현.
대통령이 국회의원이던 시절, 연예인 연습생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스폰으로 시작된 관계는 곧 내연으로 발전했고, 양소현은 연예인 연습생을 완전히 접었다.
지금이 22세이니 4년 전 당시 관계를 시작할 때의 나이가 18세라는 소리다.
그때 김두박의 나이가 60세였으니, 여당의 중진이자 유력 대권 주자가 무려 42살 연하의 여자를 몰래 만난 것이다. 그것도 처자식과 손주까지 있는 사람이.
“이미 정리했다면 과거 흠집내기 스캔들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 하지만 아직도 유지 중이라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합니다.”
“사진을 봤는데 꽤 예뻐. 아무래도 연습생이라서 그렇겠지. 그리고 앳되면서도 묘한 색기가 있는 스타일이야.”
“경국지색이라는 건가요?”
“그 정도로 대단한 외모는 아닌데, 아무튼 늙은이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고도 남을 정도지.”
최철우 부장검사는 덤덤히 설명했다. 김시형은 기가 막힌 얼굴로 다시 한 번 요약집을 살폈다.
“김두박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에 양소현 이 여자를 정일재단에 취직시키고 관계를 계속 유지해왔어. 양소현이가 대통령 내연녀라는 걸 아는 사람은 딱 한 명이야. 재단의 김정인 이사라고, 오랫동안 대통령을 보필해온 측근 중의 측근이지. 장남인 김주일 이사장도 내연 관계인 걸 모른다네.”
“…….”
“김정인 이사가 양소현한테 거액을 전달한 혐의를 포착해서 재단 내부 사적 비리인가 수사를 했었는데, 양소현이 누군지 알고 나서 바로 손을 뗐지. 임기 1년차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릴 수는 없지 않나?”
“……그렇군요.”
수사 자료는 언제고 때가 올 때를 대비해서 캐비넷 안에 여태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누가 수사했습니까?”
“윤승우 검사가 했는데, 그 친구는 양소현이 내연녀라는 것까진 파악하지 못했어. 김정인하고 양소현이 불륜 관계라고 넘겨짚고 있지.”
“지금도 관계가 유지 중인 거 확실합니까?”
“불과 한 달 전에도 정일재단에서 대통령 행사가 열리지 않았나?”
“…….”
“아마 경호실장 포함해서 한두 명만 알고 있을 걸세. 물론 그들도 대통령의 오랜 가신들이지.”
“……그렇군요.”
손이 파르르 떨린다.
현직 대통령의 현재진행형 불륜이라니.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 대한민국은 얼마나 뒤집어질까.
“양소현은 반 년 전에 아이 하나를 출산했어.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거지. 물론 재단 직원들은 출산 사실 자체를 모른다네. 출산 직후 김정인이 재단 비자금 중에서 50억인가를 양소현 명의로 돌려줬고. 물론 해외에 있지.”
“대통령의 아이군요.”
그 말에 최철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생각하나?”
“네? 그럼 제3자의 아이라는…….”
“김주일 이사장이 말이야, 제 아비를 닮아서 예쁘고 어린 여자라면 아주 사족을 못 써요. 양소현이도 몇 번 건드린 것으로 알고 있네.”
김시형은 기겁하고 놀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두 부자가 한 여자를?
“그 여자는 대통령한테 그 사실을 말 안 했단 말입니까?”
“애초에 돈 때문에 접근한 여자야. 아버지와 아들, 양쪽에서 돈 뜯어내는 게 남는 장사지. 그 여자, 아마 나중에 협박 장치로 써먹으려고 사진이나 비디오 같은 것도 남겨두지 않았을까?”
김시형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럼 아이 아버지는…….”
“대통령일 수도, 대통령의 장남일 수도, 아니면 전혀 모르는 제3자일 수도 있지.”
“뭐, 이런 막장이…….”
“김 검사, 원래 현실은 픽션보다 더 막장인 법이야.”
김시형이 수사 방향을 틀었다.
대통령의 내연녀인 양소현과 김정인 간의 금융거래를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주변의 시선을 우려해서 본인이 직접 맡지 않고, 최철우 부장검사 직속 후배에게 맡겼다.
양소현을 놓고 최철우와 화해 아닌 화해가 이뤄진 셈이다.
수사 소식을 보고받은 대통령은 뒤집어졌다.
“뭐라고!”
검찰에서 내연녀를 파고들기 시작하자 대통령은 화들짝 놀랐다. 42살 연하의 내연녀, 심지어 혼외자까지 있다.
안 그래도 정일재단으로 국정 지지도가 흔들리는 와중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죄송합니다, 각하. 검찰이 어떻게 양소현 씨 일을 알게 되었는지 도무지……. 일단 양소현 씨는 해외로 출국시켜놨습니다. 양소현 씨 명의로 된 재산 대부분도 해외에 있으니 당분간 잠잠해질 때까지만이라도…….」
“지금 그게 문제인가? 내 정치 인생이 끝나게 생겼는데!”
빈말이 아니다. 대통령은 처음으로 모든 게 끝날 수 있겠다는 불안감에 식은땀을 흘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원래 한서진한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좀 친해지고 싶었고, 그의 위세를 자신의 지지도에 이용하고 싶었다.
젊은 친구가 돈 좀 있다고 너무 으스대는 듯해서 약간의 교훈을 주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자신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정면으로 들이받을 줄이야.
‘국보법 위반으로 간첩 혐의를 씌우는 건…….’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대통령은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한서진에게 그런 혐의를 뒤집어씌운다고? 지나가는 개도 비웃을 일이다.
대선 자금을 건드렸을 땐 조금 분노하긴 했어도 그뿐, 아무렇지 않았다. 이 바닥에서 불법 정치 자금 써대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내연녀와 혼외자는 크다. 심지어 재단 비자금 중 거액을 내연녀 명의로 빼돌렸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 일이 알려지면 파국이 어디까지 치달을지 가늠이 안 된다.
‘검찰을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고.’
김시형은 이미 통제 불능이다. 게다가 이제 혼자가 아니라 여러 명의 평검사들이 그를 따르고, 지지하고 있다.
검찰 내에 그를 중심으로 정의파라 불리는 일종의 세력이 생겨난 것이다.
대통령은 이제 선택을 해야 했다.
끝까지 나아가든가. 먼저 굽히고 타협하든가.
아마 일생일대의 중요한 기로가 될 것이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김 실장.”
“예, 각하.”
비서실장은 얼른 대답했다. 대통령의 눈빛이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5대 그룹 포함해서, 칠 수 있는 모든 걸 치게. 한서진이를 제외한 모두를 말이야.”
“그 말씀은……?”
“김시형이라고, 일단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그놈부터 손을 봐야겠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 나라에서 대통령직으로 못할 게 뭐가 있겠나?”
비서실장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각하, 그리하면 한서진 박사와 영영 화해할 수 없게 됩니다.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화해도 패배하지 않았을 때나 청할 수 있는 것, 완전히 패한 뒤에는 무조건 굴복밖에 없는 법이야. 자네도 그걸 알지 않나?”
대통령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말했다.
굳건한 의지가 충만하게 타오르는 눈동자 앞에서 비서실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이미 결심을 굳힌 것이다.
맥없이 굴복할 바엔, 싸워서 화해를 쟁취하겠다고.
그러나…….
“대통령님, 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클레튼 대통령이 직통 전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통령은 흠칫했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백악관에서 핫라인을 원하는가?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그는 불길한 느낌에 사로잡힌 채 클레튼 대통령과 직통을 시도했다.
「미국은 7함대의 모항을 제주도로 옮기고 싶습니다. 대아시아 정책 중에서 주한미군의 전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한서진과의 파워 게임에 관련된 이야기를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7함대의 이전 및 주한미군 전력 강화를 논하고 있었다.
「물론 주둔비용의 부담을 이 상태에서 더 늘리지도 않을 겁니다.」
전력은 증강하지만 비용은 그대로. 이것은 정부의 외교적 공적이 된다. 국민들은 미국을 상대로 외교적으로 큰 성과를 냈다며 기뻐할 것이다.
「한서진 박사는 미합중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주한미군 전력 증강에는 그분의 보호 목적이 가장 큽니다.」
클레튼 대통령은 한서진에 관한 언급은 그 정도에 그쳤다. 현재 정일재단 사학비리를 무대로 국내에서 벌어지는 파워 게임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알아차렸다.
미국 대통령은 지금 은근히 권유하고 있는 것이다. 한서진과 어서 화해하라고.
이렇게 선물을 안겨줄 때 실리를 챙기라고. 만약 이를 거절하면 주한미군 전력강화에 대해서 정부가 숟가락을 얹을 수 없을 거라고.
최우방국인 미국 대통령이 직통까지 연결하며 권유를 해왔다. 그것도 상당한 선물을 안겨주며.
이를 거절한다는 건 엄청난 부담이었다.
“귀국의 배려에 감사하며……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대통령은 백기를 들었다.
재단을 관리하는 대통령 가문의 대리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재단의 비리를 낱낱이 공개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처벌이 끝나는 즉시 재단의 모든 것을 국가에 귀속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의외의 항복 선언에 김시형은 상당히 놀랐다. 적지 않은 시간을 법적 투쟁으로 보내도 불가능했을 결과가 떨어진 것이다.
몇 조 원의 가치가 있는 재단을 국고에 내놓다니. 이런 결과는 상상도 못했다.
“대통령 가족들 피눈물 좀 쏟았겠는데.”
대리인은 국고 귀속 후에도 기존 가족 구성원은 재단 경영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그쯤 되자 검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설득했다.
“김시형 검사, 저쪽이 전격으로 항복 선언했는데 이사장까지 굳이 처벌해야 할 필요가 있나? 자네가 끝까지 이 사건을 물고 늘어졌어도 이만한 결과는 못 끌어내.”
“…….”
“저쪽에서 스무 발 물러나줬으니 자네도 한 발 정도는 물러나주게. 그렇지 않으면 더 진흙탕이 될 수도 있어.”
“……기껏 받아낸 양보도 물거품이 될 수 있겠지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테고요.”
체념이 섞인 말에 검사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지, 그렇고말고.”
저쪽은 몇 조 원의 손실을 결정했다. 말이 몇 조 원이지 거의 전 재산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김시형이 칼을 들이대면? 저쪽 역시 재단 환원을 철회하고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실익이 없는 무한 투쟁이 이어지는 것이다.
김시형은 신물이 올라왔다. 아무리 옳아도 모든 것을 얻지 못한다는 현실, 그것은 무척 입맛이 썼다.
“김주일에 관한 기소는 멈추겠습니다. 그러나 이사들은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검사장은 살았다는 얼굴로 칭찬했다. 그리고 조금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이 일로 자네가 인사 조치될 일은 없을 테니 신경 쓰지 말게. 설령 인사 조치가 있더라도 더 좋게 되면 됐지, 나쁘게 되진 않을 거야.”
김시형은 쓴웃음을 지었다. 검찰에서도 한서진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 아닌가.
한서진은 아직 어떤 후원도 시행하지 않았다. 그저 후원을 약속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짧은 약속 한 마디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몇 조 원의 가치를 지닌 정일재단은 국고로 귀속되었고, 사학 비리에 관련된 이사들은 모두 처벌을 받았다.
김주일 이사장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가 유예되었지만, 며칠 후 쫓겨나가듯 해외로 나가야 했다.
출국 전 그는 대통령 관사로 불려갔고, 그날 관사에서 온갖 고성과 비명, 골프채로 사람을 패는 소리 등이 울렸다고 소문이 돌았지만, 그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은 대통령 성명발표를 통해 7함대의 제주도 이전 및 주한미군 전력강화를 공식적으로 알렸다.
그렇게 파워게임은 대통령의 판정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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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지색까진 아니더라도 경가(家)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