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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51화 (25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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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1부는 뜨거웠다.

“현 대통령 집권 이후 연구자금 지원이 전해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낸 성과물은 하나뿐입니다. 그마저도 명목만 갖췄을 뿐, 실질적인 실적은 없습니다.”

“전형적인 지원금 떼먹기군요. 김주일 이사장 구속 영장은?”

“영장은 아직…….”

제한시간 안에 판사가 영장을 발부해주지 않으면 김주일을 풀어줘야 한다. 김시형 검사는 외압이 들어갔나 하고 생각했다.

‘이상하진 않지.’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다. 어느 판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구속영장을 승인해줄까.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판사들의 눈에는, 임관한지 몇 년 안 된 평검사 애송이가 정의감에 미쳐 날뛰는 꼴로만 비칠 것이다. 제정신이라면 발부를 해주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제한시간이 흘렀고, 이틀간의 취조에 시달린 김주일은 초췌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은 눈빛으로 김시형을 노려보았다.

“선량한 시민을 제멋대로 체포하고도 어디 그 자리 잘 보전하나 두고 봅시다.”

김주일 이사장은 반쯤 협박에 가까운 말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김시형은 조소로 흘려 넘겼다.

‘귀중한 이틀.’

단순히 취조나 압박을 위해 체포한 것이 아니었다. 약점을 파헤치기 전 적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김시형 검사는 두툼한 수사 자료철을 확인했다. 저들이 김주일을 커버하는데 눈이 팔린 동안, 충분히 수사를 진행했다.

―절대 멈추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십시오.

서진혁 변호사의 당부를 떠올리며, 김시형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임시 국회 개시를 앞두고 여의도가 술렁였다. 중진급 의원들은 청와대와 한서진 간에 벌어진 파워 게임을 눈치 챘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논란이 들끓었다. 어떤 이들은 한서진의 건방진 태도를 비난하며 청와대를 옹호했고, 어떤 이들은 대통령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이건 한국에 사는 미국 재벌을 건드린 거랑 뭐가 달라? 국가 원수가 이렇게 어리석어도 되나?

―아무리 잘났어도 명백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디서 함부로 나라님을 무시한다는 거야!

중도 세력까지 합치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골수파 세력도 앞으로 대통령이 신중한 행보를 보여야 하지 않나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김시형 검사는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정일재단 사학비리 수사를 지속했다.

그는 한서진의 저택에 저녁 식사 초청을 받았고, 다음 날 그가 신청한 재단 이사진 구속영장이 통과되었다.

대립 구도를 파악한 이들이 더 이상 무작정 대통령측 편만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국가 지원 공금의 횡령, 실적 부풀리기 및 조작, 각종 특혜와 리베이트, 교수 임용 관련 비리, 등등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끝도 없이 넝쿨이 딸려 나왔다.

김주일 이사장은 결국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한밤중에 청와대 비서실장이 은밀히 찾아왔다. 한서진 대신 서진혁 변호사가 무뚝뚝하게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입니까?”

“한국대 감사를 중지하고 아무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인정하겠습니다. 대신 정일재단을 향한 칼을 멈춰 주십시오.”

“우리는 그저 사학 비리를 고발했을 뿐입니다. 검찰은 우리 칼이 아니라 행정부의 칼이죠.”

“김시형 검사가 한서진 박사의 뜻에 따라 칼을 휘두르고 있는 건 사실 아닙니까?”

“그 분은 정의를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죠. 비리가 있다면 처벌될 것이고, 없다면 무죄일 뿐입니다.”

비서실장의 얼굴에는 답답한 기색이 가득했다.

검사장한테 압박 전화를 넣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김시형 검사의 뒤에 한서진이 있었을 줄이야.

“대통령님은 어쨌거나 이 나라 최고통치권자입니다. 한 박사도 기어이 대통령님과 싸워서 좋을 게 없습니다.”

“먼저 싸움을 건 것은 그쪽이지요.”

“대통령님이 한 박사님을 꼭 만나보고 싶어 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대 감사 건은 그분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랫사람들의 과잉충성이 빚은 사고이고, 그분도 몹시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서진혁은 옅은 웃음을 흘렸다. 과잉충성이라.

“우리 역시 청와대와 끝까지 다투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사학비리를 고발한 것은 방어적인 조치였죠.”

“그럼…….”

비서실장의 얼굴에 어떤 기대감이 떠올랐으나, 이어진 말이 가볍게 짓밟았다.

“그러나 김시형 검사님은 정의감이 몹시 투철한 분이더군요. 이미 우리 손을 떠난 일입니다.”

“서 변호사님!”

“우리 쪽에 말씀하실 게 아니라 김 검사님을 설득하거나 통제해야 할 일입니다. 행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비서실장은 분을 품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돌아갔다.

한서진은 자신이 던진 돌이 어떤 풍파를 일으키는지 모른 채, 에테르 연구와 통찰안을 다루는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후자는 경과가 썩 좋지 못했다.

‘통찰안은 당분간 그냥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맘 편하겠네.’

발동과 중지는 이제 어느 정도 자유로웠다. 어지러움도 많이 가셨다.

그러나 통찰안이 보여주는 사물의 본질을 인식할 수가 없다. 아직 그의 수준이 한참 미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한서진은 연구 주제와 지금까지의 성과물을 차분히 정리했다.

비글, 슈나우저, 코카 스패니얼, 케르베로스 등 에테르 반도체와 엘릭서.

타르타로스를 이용한 재해 예측 시뮬레이션, 그리고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은 칼라 통신망.

에테르 산불을 단숨에 꺼버린 마력 칩셋과 에테르를 저장할 수 있는 오리할콘.

이 모든 미지는 에테르와 그것을 다루는 미스릴에서부터 출발하며, 통찰안은 진실로 다다르는 길을 보여준다.

‘신효진 씨와 손을 잡는다면 확실히 더 나을지도 몰라.’

왕이 존재하는 세상은 놀라운 에테르 문명을 이뤄냈다. 그 문명을 이곳 현실에도 재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정도면…… 이제 충분하지 않을까?’

한때 세상을 이 두 손에 움켜쥘 수 있을 듯한 야심에 불탄 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 야심은 꺼지지 않았으나, 현재 이룬 것만 해도 충분히 세상을 가졌다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닐까?

한서진은 가만히 생각했다. 내 욕심은 어디까지 닿아 있을까? 혹시 나는 세상을 송두리째 쥐고 싶기라도 한 걸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송하나의 목소리에 한서진은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았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어렸다.

“아, 그냥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요즘 생각할 게 많네.”

“혹시 우리 학교 감사받는 거 때문에 그래요? 요즘 그거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이 많던데.”

“그래?”

“네, 재계에서도 상황 어떻게 돌아가는지 계속 주시하고 있나 봐요. 아빠도 여기저기서 질의 많이 받는데요.”

“나 때문에 회장님만 번거로우시구나.”

“전혀요. 아빠는 태풍의 중심에 섰다며 오히려 좋아하시더라고요.”

납득이 된다. 재벌 총수까지 오른 사람인데, 주변의 그런 이목이 좋으면 좋았지 싫지는 않을 것이다.

“효진 씨는 어때?”

한서진은 조심스럽게 운을 떼며 송하나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녀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뭐가요?”

“백화점 홍보 모델 일하는 거, 어떤가 해서.”

“잘 풀리고 있어요. 아무래도 조만간 CF도 찍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신효진 씨가 에이전시가 없어서 난감해하고 있죠.”

“그래? 그 정도로 잘 풀려?”

한서진은 다소 의아했다. 모델 일이 그렇게 잘 풀리면서 왜 설계사무소에 계속 나오는 것일까?

설계사무소가 타회사 사무직에 비해 급여가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잘 나가는 모델 페이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될 것이다.

“효진 씨, 톱 배우에 비해서 결코 꿇리는 마스크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 그냥. 아무래도 부하 직원이니까,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

“제가 잘 케어해주고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서진은 문득 송하나가 신효진을 왜 그렇게 살뜰하게 챙겨주는지 궁금해졌다. 모델하기에 좋은 외모와 이미지를 가져서라는 이유가, 정말 전부일까?

“근데 오빠는 정말 행정부와 끝까지 싸울 거예요?”

송하나의 눈동자에 짙은 호기심이 떠올랐다. 백철중의 핏줄이라서인지, 그쪽으로 관심이 끓는 모양이다.

“글쎄.”

“아빠도 사실 궁금해 하세요. 오빠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그래야 우리 그룹도 대비를 할 수 있으니까…….”

“어디까지 간다라……. 하나, 네가 보기에는 어떤 거 같은데?”

“이미 오빠 손을 떠난 화살 아닌가요? 오빠보다는 그 김시형 검사라는 분 의중에 달렸죠.”

한서진은 송하나의 야무진 대답이 의외였다.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단 말인가.

“무슨 뜻인데?”

“오빠는 반도체 연구 말고 다른 건 별로 관심 없으시잖아요.”

“…….”

“그래서 SJ인더스트리 경영도 정지원 이사님께 아예 맡겨버리셨고, H통신도 비슷하고요. SJ설계사무소는 사실 회사라기보다는 오빠 작업실에 가깝죠. 그래서 경영이나 재정 관련된 건 하정태 부장님한테 맡기셨고, 국내 일반 재산 관리도 재무팀에 전부 떠넘기셨고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구나.”

“오빠는 전형적인 연구자 스타일이에요. 자기가 좋아하는 연구만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유형이죠. 제가 잘못 봤나요?”

“아니, 네 말을 듣고 보니 맞는 거 같아.”

한서진은 피식거렸다.

그녀 말대로, 자신은 전반적인 경영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에테르와 통찰안을 연구하는 것만 해도 벅찼고, 큰 짜릿함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회사 경영 같은 자잘한 것들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버린다.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해요. 오빠는 주변 사람을 지나치게 믿으시는 거 같아서…… 어느 정도 중요한 건 오빠가 직접 챙기셔도 될 텐데.”

“소유권 확실하니 상관없어. 그리고 사실 회사들은 나한테 그리 중요한 게 아냐.”

한서진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두 눈을 보란 듯이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진짜 중요한 보물은 바로 이거지. 회사가 아니라.”

“맞아요. 오빠 두뇌보다 더 중요한 보물은 없죠.”

“어…… 두뇌를 말한 게 아니라.”

눈을 말한 건데, 라는 말은 속으로 집어삼켰다.

통찰안은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비밀이다. 그녀가 민망한 착각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런 착각을 즐기고 싶다.

정일재단 비리는 그리 완벽한 범죄는 아니었다. 여기저기 증거와 증인이 널려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별 탈이 없었던 것은 사학 비리를 크게 들쑤시지 않는 불문율 덕분이었다.

잘못 쑤시면 사회각계층 어디까지 불똥이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학 비리는 언론, 정치, 재계에 발을 걸치고 있으니. 심지어 정일재단은 사실상 현 대통령의 사재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김시형 검사가 큰마음 먹고 칼을 뽑아들고 휘두르자 넝쿨이 덩어리째로 딸려 나왔다. 칼로 찌르는 곳마다 큼지막한 넝쿨이 뭉쳐 있었다.

매듭을 푸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매듭이 끝도 없이 뻗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청와대와 한서진 사이의 파워 게임을 놓고 신중히 탐색하던 젊은 검사들도 드디어 가세했다. 정일재단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놓고 치러지던 단일 전투가 집단 전투로 변한 것이다.

정일대에는 학생들이 사학 비리를 규탄하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이쯤 되니 대중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김시형 검사가 찌른 칼은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위까지 닿았다.

「총 비리 규모 1,100억 원대로 추정, 그중 230억 원은 지난 대선에 흘러간 것으로 의심돼.」

수사 과정에서 흘러나간 루머가 제대로 큰 불을 붙였다.

============================ 작품 후기 ============================

잡았다, 요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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