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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간담회.
심각한 청년 실업, 취업을 앞둔 대학생을 대상으로 격려와 위문을 하는 차원에서 대통령 간담회 일정이 잡혔다. 장소와 대상은 한국대학교였다.
강연이 아니라 대학생 및 교수들과 함께 편안히 담소를 나눈다는 취지였다. 그래서 간담회라고 했다.
교육부의 전방위적인 감사 압박을 받고 있던 대학측으로서는 만세를 부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대통령의 방문은 감사로 꼬투리 잡을 일을 막아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학생들도 대통령이 온다는 말에 나름 기대를 품었다.
젊은 층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대통령이지만, 그래도 일국의 원수 아닌가. 모교 방문이 득이 되면 득이 됐지, 해가 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양반이 쓸데없이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
한편 현 대통령의 성향을 잘 아는 일부 교수들은 느닷없는 간담회에 의심부터 품었다.
“한서진 박사가 청와대 오찬을 거절했다는 말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대통령이 한서진 박사를 만나려고 열심히 구애만 하고 소득이 없다고 했었지.”
“그럼 이 간담회, 대놓고 한서진 박사 만나러 오겠다는 거 아닌가요?”
“근데 의미가 있나? 한서진 박사가 안 오면 그만 아니야? 안 그래도 학업이랑 사업으로 바쁜 사람인데.”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공직자도 아니고, 그저 민간인인 개인을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평범한 개인이라면 대통령의 호출 한 번에 앗뜨거라 하고 달려가겠지만, 한서진이 어디 평범한 개인인가.
“잠깐만요. 교육부에서 우리 학교에 실시한다는 감사 그거, 교육부가 아니라 더 높은 곳에서 내려온 지시라는 말이 있던데.”
“뭐야, 그럼 설마?”
“전방위적인 감사와 대통령의 학교 방문, 이거 대놓고 한서진 박사 저격하는 거 아닙니까? 학교 곤란해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만나러 오라는?”
심지어 청와대 오찬을 빼먹고 미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는 썰까지 맞물려 그럴 듯한 추론이 나왔다.
“그럼 이거 한서진 박사가 나오면 되는 거 아니야?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네.”
몇몇 교수는 그렇게 간단히 말했다. 주로 노회한 교수들의 의견이었다.
그러나 젊은 교수들은 달랐다.
“한서진 박사도 이유가 있어서 대통령을 피하는 걸 텐데, 모교를 걸고 협박한다고 대통령을 순순히 만나면요? 그거 결국 굴복하는 거 아닙니까?”
“굴복은 무슨. 그냥 대통령 한 번 만나는 게 뭐가 어때서? 오히려 두고두고 가문의 영광이지.”
“미 대통령하고 친구 먹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권력자가 오라고 쪼르르 달려갑니까?”
“아, 사업하는 사람이잖아. 이 나라에서 사업하는 사람치고 대통령 눈 밖에서 벗어나면 좋을 게 없어.”
“사업이야 미국에서 하는 거고, 국내에 있는 설계사무소 그거는 말이 회사지 영리 활동 전혀 안 합니다. 공공기관이고 뭐고 눈치 볼 게 없다고요.”
“그렇다고 대통령이 부르는데 무시해? 젊은 친구가 한참 어른, 그것도 나라님이 먼저 손 내미시는데 빼기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야.”
한서진은 아무 말도 없는데, 정작 교수들끼리 그렇게 의견이 치열하게 갈렸다.
한서진이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 말아야 한다.
그렇게 갑론을박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교육부 감사는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대통령 간담회 날짜도 하루 이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드디어 다가온 간담회 날.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은 이른 아침부터 대학을 찾아와 캠퍼스를 수색하며 경호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찌나 철두철미하게 사전 준비를 했는지, 피해를 입은 대학생과 교수들의 불만이 드높았다.
“미국 대통령이 강연하러 왔을 때도 이 정도까지 뒤집어놓지는 않았는데.”
물론 그런 불만이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간담회를 위한 경호 준비를 마쳤다. 대통령과 이야기라도 한 번 해보려고 간담회 장소를 찾은 학생들은 황당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사전에 미리 신청을 해야 한다고요?”
“경호 문제 때문에 부득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태연히 대꾸했다. 학생들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우리 학교 간담회인데, 그냥 우리 학교 학생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일국의 대통령입니다. 경호 규정상 당연한 겁니다.”
결국 사전 신청에 관해 듣지 못한 학생들은 힘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혹은 나중에 녹화방송을 통해 간담회를 접해야 했다.
간담회 참석자 수는 2,000명으로 제한했다. 이래서야 그냥 강연하고 뭐가 다르냐는 말도 나왔지만, 누구도 그런 불평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대통령이 엄중한 경호를 받으며 학교에 도착했다.
“한서진이는?”
비서실장은 머리를 조아렸다.
“참석자 명단에는 없습니다만…… 참여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감사에서 찾아낸 불법성만 해도 상당하니까요. 이대로 무마시키지 못하면 대학측으로서는 타격이 너무 큽니다.”
“음, 역시 자네는 머리가 좋아.”
교육부를 내세워 압박 감사로 학교를 밀어붙이고, 뒤에서는 모르는 척 대통령 간담회를 연다.
결국 대학 측은 한서진을 내세워 대통령의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와대의 공작이라는 것을 눈치 채도 상관없다. 증거는 없고, 교육부는 정당한 직권을 행사했을 뿐이니까.
“버티고 있지만 한서진 박사는 나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모교가 곤란해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비서실장은 자신만만했다.
한서진이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임기 2년 대통령의 권력은 하늘을 찌른다. 마음만 먹으면 이 나라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한 파워다.
국립대 하나쯤 곤란하게 털어버리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계산이었는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영양가 없는 간담회를 억지로 마칠 때까지 한서진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대학생과 교수들 앞에서 불쾌한 심기를 감추고 웃는 얼굴을 보여야 했던 대통령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비서실장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상합니다. 분명 상황은 알고 있을 텐데, 교수들이 제대로 설득을 못했나 봅니다. 아니면 모교가 표적감사로 털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일 수도…….”
“자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두 시간 동안 어린 것들이 징징대는 거 겨우 참고 들어줬는데, 정말 일을 이따위로 할 건가?”
“죄송합니다, 각하.”
대통령의 눈빛에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이 나라 대통령이 여기까지 행차했는데, 감히 코빼기도 비추지 않다니.”
결국 대통령이 돌아간 후, 표적감사는 더욱 심해지고 끈덕지게 변했다. 특검의 표적 수사라 해도 이보다 더 찐득하고, 괴롭지는 않을 것이다.
대학 측은 A용지를 구입하기 위해 쓴 1,000원까지도 모조리 내역을 제출해야 했으며, 연구 예산과 설비 운용은 물론이고 보안 절차를 지켰는지를 해부당해야 했다.
가로수 한 그루까지도 예산대로 심어졌는지 확인을 해야 했고, 강의 시간을 정당히 지키지 않은 교수는 감사위원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해명을 해야 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국내 최고 대학인 한국대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규모가 크다 보니 법대로 하면 학교를 송두리째 없애고도 남을 ‘생활 불법’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잦은 휴강, 예산 남용, 절차 위반, 행정 법규 미준수, 논문 검증, 학위 취득 과정, 등등…….
총장은 차마 한서진을 원망하진 못하고, 하소연만 늘어놓았다.
“이러다가 우리 학교가 정말 큰일 나게 생겼어. 아무래도 한 박사 때문에 행정부에서 이러는 거 같아. 자네가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되겠나?”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일단 기다리라는 말씀 밖에는…….”
“자네도 우리 학교 교수, 아니 학생 아닌가? 부디 구경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주게.”
하마터면 교수라고 말할 뻔한 총장은 얼른 말을 고쳤다. 한 박사, 한 박사란 말이 입에 배다 보니, 학부생임에도 하마터면 교수라고 부를 뻔했다.
그가 이룬 위업을 보면 종신교수 자리를 주어도 한참 부족하지만. 아니, 그가 받아주기만 해도 감지덕지이리라.
한서진이 모교에 애정이 깊어 그래도 어떻게 나서줄 줄 알았는데, 정작 간담회에는 얼굴도 비추지 않다니.
얼굴 비추고 대통령과 웃으며 몇 마디만 주고받았어도, 감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물러갔을 것이다.
죽을상을 하고 있는 총장 얼굴에 한서진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본심을 털어놓았다.
“총장님, 난처하신 입장은 이해합니다.”
총장은 울고 싶었다. 지금 난처한 정도가 아니라고! 대학 전체가 뒤집어지게 생겼단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뜻을 한 번 들어주면 계속 들어줘야 하니까요. 기싸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네, 설마…… 대통령과 싸울 생각인가? 혹시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한다거나…….”
“설마요. 그럴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애초에 전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 그럼 왜? 왜 이렇게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건가?”
“각을 세우는 건 제가 아니고 대통령인데요.”
“…….”
한서진의 차분한 대답에 총장은 순간 멍해졌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제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공직자도 아니고, 정치나 정책과 관련돼서 어떤 의무를 진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이 부른다고 가야 할 이유가 없죠.”
L국에 에스코너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편법은 했어도.
“그렇지만…….”
“전 행정부와 얽히기 싫습니다. 하고 있는 연구와 일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없거든요. 그냥 조용히 제 일만 하고 싶을 뿐입니다.”
순수이 과학자로서의 길만을 걷겠다. 총장도 그런 마음은 십분 이해했다. 하지만!
“한 교수 마음은 이해하네. 그렇지만…….”
“대통령은 제 이미지를 자기에게 유리하게끔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대를 해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도 모교의 처지라는 게 있지 않은가? 조금만 고려해주면 안 되겠나?”
얼마나 초조했으면 총장은 그를 교수라 불러놓고 그것을 의식조차 하지도 못했다.
“한 번 상대해주면 계속 저를 이용하려고 할 겁니다. 그럼 저만 피곤해집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한서진의 태도는 확고했다. 총장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자신이 뭐라 해도 그가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망할 정치꾼 같으니!’
총장은 대통령을 향해 속으로 원망을 퍼부었다.
아니, 애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최고 권력자면 뭐하나, 2년 뒤에는 꼼짝없이 내려와야 할 거면서.
게다가 한서진이 어디 보통 사람인가? 자신이 대통령이었으면 어떻게든 환심을 사기 위해 아양을 떨었을 것이다.
막말로 대통령 하는 짓 마음에 안 든다고 미국으로 이사 가서, 워싱턴을 움직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권위에 눈이 멀었어.’
옛날부터 권위의식이 매우 강했던 사람,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 권위의식이 눈을 제대로 흐렸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손 놓고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니까요.”
“방법이 있나?”
귀가 번쩍 띄는 소리였다. 한서진은 멋쩍게 웃으며 조용히 설명했다.
“정일사립대학 아시지 않습니까. 서울에 있는…….”
“알지. 그런데 정일대가 왜?”
정일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서울소재 명문사립대학으로, 빵빵한 재단 재정 덕분에 부유한 대학 리스트에서 늘 빠지지 않는 대학이다.
“그 재단 이사장이 김 대통령 맏아들이잖습니까.”
“한 박사, 설마?”
“파헤쳐보면 우리 대학보다 적게 나오지는 않을 걸요.”
그날 오후, 검찰청에 장문으로 된 두툼한 고발장이 접수되었다. 사학 재단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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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구마를 찔 테니 너는 얼음을 준비하거라.”
“왜요, 어머니?”
“사이다에 넣어야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