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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47화 (247/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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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튼 커린 대통령, 갑작스러운 방한!

―제주도에서 가족 휴가 겸 7함대 시찰.

―한서진 박사 가족과 보낸 휴양, 사실인가?

미 대통령의 방한 일정 동안 국내 매스컴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뒤덮였다.

7함대가 제주도를 방문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군 행사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대통령의 함대 시찰도 겸하고 있었다.

여기에 한서진이 제주도에서 미 대통령과 휴가를 보냈다는 공공연한 찌라시가 보도되면서, 언론은 더욱 불타올랐다.

“사진, 사진 없어?”

“김포공항에서 탄 것은 확인되는데 그 이후로는 찍힌 게 전혀 없습니다. 보안이 철통같아요.”

“제주공항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 취재팀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이리저리 아무리 찔러봐도 시원한 답이 없어요.”

정황을 보면 한서진 가족이 미 대통령 가족과 만난 것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기사에 함께 실을 물증이 없었다. 이를테면 사실관계를 확인해주는 인터뷰라든가, 대통령 가족과 함께 찍힌 사진이라든가.

7함대가 인접한 인근 해역은 미군이 철저히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에 취재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휴양 뒤 7함대 시찰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대통령을 붙잡고 인터뷰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당신, 한서진하고 만났냐고.

“한서진 박사 가족을 인터뷰하면 안 될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차라리 진성그룹 이서나 회장 사무실에 쳐들어가서 마이크를 들이대는 게 더 효과 있을 거다.”

“정황은 확실하니까 그럴듯하게 쓰면 안 될까요?”

“두루뭉술하게 잘 뽑아 봐. 직접적으로 지목하진 말고, 미 대통령과 7함대 시찰 위주로 포커스를 잡는 척 하면서 슬쩍 곁들이란 말이야.”

“걱정마십쇼, 국장님.”

사회 곳곳을 인맥과 자본, 상권으로 장악하고 있는 재벌들과 달리 한서진은 국내에 큰 기반이 없다. 국내 회사는 매출 0원의 설계사무소 하나뿐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는 인맥의 굵기가 무시무시하다. 한국대, 이서나, 백철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언론과는 조금도 연관 없고, 조그마한 광고 하나도 맡기지 않았지만, 재벌 총수보다 건드리기 두려운 상대였다.

“한서진 박사나 주변 인물들이 보고 전혀 기분 나쁘지 않게 조심해서. 알았지?”

김두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요즘처럼 불쾌한 적이 없었다.

한서진이 자신의 정중한 오찬 초대는 무단으로 거절하고, 미국 대통령과 가족 여행을 가버린 것이다.

“젊은 친구가 아주 맹랑해. 미국에 쌓아둔 돈 좀 있다고 이 나라 왕이라도 된 줄 아나?”

한서진이 대단한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벼락부자, 졸부일 뿐이다.

미국으로 가버린다면 모를까, 이 나라에서 살고자 한다면 기득권층을 무시할 수 없다. 아니,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려서 그런가, 화합이 뭔지도 모르는군.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각하.”

비서실장은 얼른 맞장구를 쳤다. 지금은 대통령의 심기를 다독이는 게 최우선이었다.

“미국 명예시민이고 미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고 해서 이 나라 국민이 아닌 건 아니지요. 이 나라 국민으로 살고 싶다면 마땅히 그에 해당하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대통령은 안색이 살짝 풀어졌다. 비로소 약간의 걱정이 눈썹 아래에 어렸다.

“그래도 미국 대통령하고 친한데……. 함부로 건드리는 건 무리겠지?”

“적극적인 터치는 힘들겠지만 소극적인 접근이라면 미국도 함부로 하지 못할 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내정 간섭이니까요. 대통령이 자국민을 다루는 것에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비서실장은 속마음과는 다른 생각을 내뱉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오찬 초청을 거절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한 주인을 다독이는 게 우선이었다.

“적당한 때에 불러다가 넌지시 말씀하시지요. 아무리 그래도 어른이 부르는데 대답도 없이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요. 너무 경직되지 않게 분위기 잡으면 그 친구도 잘 알아들을 겁니다.”

“하긴, 자네 말이 맞네. 대통령이라는 게 뭔가? 이 나라 최고 권력자 아닌가?”

“각하께서 바로 그 직위에 앉아 계시지요.”

“암, 내가 바로 이 나라 대통령이야.”

대통령은 자기 자신에게 고하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서진의 뒤에는 미국이 있다. 하지만 그건 그가 미국인일 때 이야기다.

그는 엄밀히 말해서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아직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 하는 걸 보면 아마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아갈 것이다.

당연히 이 나라를 움직이는 사회주도층과 면밀한 친분을 쌓아야 할 것이다. 바로 자신 같은.

“자리 한 번 만들어보게. 내가 어른이고 이 나라 대통령이니, 너그러운 마음에서 한 번은 더 참아보겠네.”

“다행히 한서진 박사는 한국대 소속입니다. 그리고 한국대는 국립대학이죠.”

“역시 자네야.”

대통령의 눈길이 신문으로 향했다. 큼지막하게 박힌 헤드라인 글씨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한서진 박사, 미 대통령과 수상 바이크 즐겨.」

C일보. 진위가 확인된 기사는 아니다. 흔한 증거 사진 하나도 실려 있지 않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눈은 조금의 의심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했는데.”

니트론 교수는 한국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한국대는 세계적인 석학이 둥지를 틀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거들었다.

박효산의 스승인 그는 한국대 소속 교수는 아니었지만, 한국대 전임교수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으며 연구에 몰두했다.

“에테르 코드는 정말 놀랍기 그지없어요.”

한서진이 에테르 반도체에 사용한 비밀회로. 연구팀은 그것을 가리켜 에테르 코드라 불렀다.

“이건 전자공학적으로 무의미한 회로인데, 반도체 회로에 추가했다고 이런 성능을 낼 수 있다니…….”

니트론 교수팀은 에테르 코드를 분석하는데 주력했고, 현진국과 박효산은 USL, 즉 에테르 언어를 분석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주력 분야가 달랐지만 그들은 화합하고 협력하며,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다.

전자현미경에서 눈을 뗀 니트론은 한서진을 보며 진심 어린 탄성을 터트렸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힘. 그런데 고작 이런 코드를 추가했다고 그 힘을 움직일 수 있다니…… 마치 마법과도 같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도 같다. 중세인들이 보기에 현대의 컴퓨터 반도체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리라.

니트론은 그런 의미에서 마법이라고 말했지만, 한서진은 다른 의미로 뜨끔했다.

꿈속 세상은 마법이 당연한 곳이다. 에테르는 분명 과학보다는 마법에 가까운 힘이었다.

‘과학, 그리고 마법이라.’

그곳의 문명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한서진은 문득 그것이 궁금했다.

에테르를 약간 다루는 능력만으로 반도체 기술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 에테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곳 문명의 진정한 저력은 어느 정도나 될까.

‘신효진 씨는 나보다 잘 알겠지.’

한서진은 가만히 그녀를 떠올렸다. 조만간 그녀에게 터놓고 물어보긴 해야 할 듯싶다.

“연구소 매입은 끝났고, 현재 내부를 단장하는 중이니 조만간 편하게 연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응? 난 지금도 괜찮은데. 여기 한국대 연구소도 제법 괜찮군요.”

니트론은 괜찮다고 했지만 한서진은 아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남의 집, 말하지 못할 불편함이 있을 것이다.

연구소를 나선 한서진은 단대 건물로 향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정신을 집중했다.

―찌이잉.

가느다란 떨림이 머리를 스치며, 통찰안이 개방되었다. 순간 의미 불명의 무수한 글자와 기호들이 뒤섞여 나타났다.

아찔한 어지러움이 닥쳤지만 중심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 비하면 가벼운 멀미 수준이다.

그는 통찰안의 발동을 중지했다. 거짓말처럼 모든 풍경이 사그라졌다.

‘여전히 모르겠어.’

어렴풋이 알고 있다. 통찰안이 이상해진 게 아니라,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아마 왕이 사용하는 통찰안의 권능이 이렇지 않을까. 그저 자신이 통찰안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할 뿐이다.

‘내가 성장해야 돼. 아니, 강해져야 돼. 그래야 통찰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

이전의 통찰안이 어린아이도 쓸 수 있는 과도였다면, 지금의 통찰안은 전투기나 그 이상의 무기에 비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자신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형님, 오셨습니까?”

“어. 근데 넌 졸업 안 하냐?”

학생회장 출신인 조현석은 작년에 4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저 대학원 진학했습니다. 지금 1학년입니다. 박효산 교수님 연구소에 들어왔습니다.”

“진짜? 근데 왜 내가 못 봤지?”

“갈 때마다 형님 없으시더군요. 저도 아쉬웠습니다.”

조현석은 일행이 있었다. 후배인 듯한데, 한서진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동경과 선망의 눈으로 한서진을 우러러 보았다. 한서진이 제발 말 한 마디 걸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말을 걸었다.

“이쪽은 후배님들?”

“네. 그렇지만 전부 신입생은 아닙니다. 형님은 학과 생활을 잘 안 하시니까요. 얘들아, 인사해. 이 분이 바로…….”

“안녕하세요.”

후배들은 기회다 싶어 얼른 꾸벅 인사했다. 자기 학번과 이름을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봐야 한서진은 기억도 못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안 그래도 얼굴 도장 찍으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데, 그걸 일일이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현석과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저쪽에 송하나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라 동기 여자애 셋과 함께였다.

일행이라기보다는 여왕과 시녀들이 걸어가는 듯해, 한서진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

둘은 시선이 마주쳤지만 눈빛으로만 인사했다.

학교에는 굳이 사귄다고 커밍아웃 선언을 하지 않았다. 한서진은 한국 최고의 유명인, 연애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가십거리가 된다.

송하나 또한 학교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벌 3세이자 H그룹을 물려받을 몸이다.

여러 모로 불필요한 관심은 예방하는 게 좋았다. 둘은 학교에서 사귀는 내색을 하고 다니지 않았다.

“형님, 이번에 수업이랑 실습 거의 안 들어오셨는데, 학점은 괜찮은 겁니까?”

“논문으로 대체하기로 했어. 그리고 난 어차피 졸업만 하면 되니까 괜찮아. 취직할 것도 아닌데 A+ 받아서 뭐 해.”

“취직……. 형님은 취직을 할 게 아니고 취직을 시켜주셔야 할 분이시죠.”

조현석은 어색하게 웃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 회사 오너가 ‘취직할 것도 아닌데’라고 말하니 뭔가 웃겼다. 중동 왕자가 길가에 떨어진 500원짜리를 줍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때였다.

저쪽에서 한서진을 발견한 조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한참을 찾아다녔는지 그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잠시 숨을 고른 후 그가 헉헉대며 말했다.

“마침 학교에 계셨네요. 저기, 총장님이 급히 찾으시는데요. 어디서 만날 수 있느냐고. 진짜 진짜 급한 일인가 본데 전화 한 번 주시면 안 되나요?”

“총장님이 저를요?”

한서진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총장으로부터 온 부재중전화가 찍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는 서둘러 총장실로 향했다. 한서진이 들어오자 총장은 벌떡 일어나서 반겼다.

“오, 한 박사. 어서 와요. 바쁜 몸이라 어디 있는지 알면 내가 찾아가려 했는데, 직접 행차까지 하시고…….”

누가 봐도 제자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심지어 학부생한테 박사라고 한다.

하지만 한서진은 이제 그런 건 다 포기했다. 팔자에도 없는 공공연한 학위 위조, 까짓 거 즐겨주지.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그게, 교육부에서 갑자기 전방위적인 감사가 나왔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지금 대학 측도 몹시 당황해서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어요. 내가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서 전화를 돌렸는데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요.”

“감사요?”

한서진은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총장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덧붙였다.

“매우 높은 곳에서 나온 지시 같은데…… 혹시 한 박사가 알아봐줄 수 없나 해서요.”

한서진은 덤덤히 대답했다.

“왠지 알 것 같습니다.”

============================ 작품 후기 ============================

“저 자리에 내가 있어야 했는데.”

“한서진 대신 미 대통령과 휴가를 보내야 싶었다고요?”

“…….”

“……헐. 설마 그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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