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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46화 (24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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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 참석자들도 미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방한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대통령의 안색이 왜 갑자기 변했는지 이해했다.

‘클레튼 대통령이 갑자기?’

30대 재벌, 국내 최대 기업 집단을 이끄는 오너들이다. 판단 능력이 결코 녹록치는 않다.

그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에 몰두했고, 덕분에 오찬 분위기는 한순간에 들떠버렸다.

차갑게 식은 분위기 속에서 오찬을 끝내고, 대통령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석자들은 급히 청와대를 빠져 나왔다. 백철중은 차에 오르면서 황당한 보고를 받았다.

“하나가 제주도를 갔다고? 한 군 남매랑 같이?”

“네, 그렇습니다.”

비서는 공손히 대답했고, 백철중은 탄성 비슷한 중얼거림을 흘렸다.

“정말 클레튼 대통령이 한 군을 만나러 온 건가?”

미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아시아 개인을 한 명 꼽으라면, 누구나 한서진을 지목할 것이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첨단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는 SJ인더스트리, 하이테크 반도체를 혼자 설계하는 천재성, 날씨 예측 모듈, 그리고 온 미국인이 숭배하는 명예시민…….

미 대통령은 제주도에 도착했고, 한서진도 동일한 시기에 제주도로 향했다. 누가 봐도 두 사람 간의 만남이다.

이미 언론은 면담의 목적이 뭔지를 놓고 뜨거운 불이 붙었다. 그러나 백철중의 생각은 미 대통령의 목적에 닿아 있지 않았다.

“왜 하나와 함께?”

두 사람 사이가 좋은 건 H그룹 모두가 안다. 백철중 역시 둘이 하루빨리 사고를 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 중 하나다.

엄밀히 말해 둘은 아직 연인이 아니다. 좋은 오빠 동생 사이에서 좀처럼 진척이 없어서 답답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 대통령 가족을 만나는 자리에 같이 간다?

백철중은 신음을 흘렸다.

“설마…….”

한서진은 클레튼 대통령이 마음에 들었다.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나 최강대국의 수장이 될 수는 없다. 무수한 복마전을 뚫고 그 자리를 쟁취한 사람답게, 클레튼 대통령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와 매력이 넘쳤다.

권위의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이 소탈했고, 해박한 지식과 매끄러운 언변으로 사람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럴 때면 영어를 못하는 게 약간 아쉽다.

늦은 오후, 대통령 부부와 한서진 커플은 바베큐 파티를 준비했다. 영부인은 이런 야외 행사에 익숙한지 직접 나서서 하나부터 열까지 챙겼고, 송하나도 옆에서 열심히 거들었다.

한서진도 대통령과 함께 바베큐를 태우지 않고 굽는 작업에 열중했다.

“오늘의 메인 요리입니다. 태우는 것은 당연히 용납되지 않습니다. 육즙 한 방울까지 맛있게 익혀내는데 우리 모두의 즐거움이 달려 있죠.”

“좋은 말씀입니다.”

남자들이 이런 것에 더할 나위 없이 경건해지는 것은, 만국공통일지도 모른다.

숯불을 뒤적이며, 대통령은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한서진 박사와 친분을 다지기 위해서 왔습니다. 박사는 미국의 살아 있는 역사적 위인이니까요. 아마 미국의 모든 정치인들, 그리고 국민들은 지금의 저를 몹시 부러워할 겁니다. 제가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라, 한 박사와 당당하게 가족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점 때문에서요.”

목적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거주하는 박사의 평안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저의 평안?”

“아시겠지만 많은 국가들이 박사의 두뇌를 탐내고 있습니다.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이미 짐작하실 거라 믿습니다.”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는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 인정한 친우를 함부로 건드리는 간 큰 세력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제스처는 한 번씩 필요합니다.”

한서진을 건드린다는 것은 미국을 건드린다는 것과 같다. 단순히 미국 시민 몇 명에 위해를 가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누구든 간에 박사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우리는 그 행위를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입니다.”

나지막하지만 굳센 음성이 마음을 한없이 든든하게 해준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미국에 정말 중요한 사람인 듯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지요. 적어도 박사가 저 같은 인물보다는 수백 배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대통령보다 수백 배 중요하다는 것은 과한 게 아닐까요.”

“저는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하지만, 누구도 박사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한지혜가 대통령 자녀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신나게 놀았는지 곳곳에 흙이 묻어 있다. 그러고 보니 한지혜가 언제부터 저렇게 영어를 잘했나 싶다.

“와, 바베큐 파티네.”

“맛있겠다.”

“술은 어디 있어요?”

“소스통 좀 까 봐. 접시, 접시.”

저녁 야외 만찬을 준비하느라 다들 난리법석이었다. 다소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한서진은 문득 깨달았다.

다들 대화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한지혜는 물론이고 송하나마저 영어가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하나야. 너마저……!’

이 중에서 통역이 필요한 것은 자신뿐이었다. 한서진은 순간 외딴섬에 홀로 떨어진 듯한 고독을 느꼈다.

수평선이 어둠에 저물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서진은 잠시 소화를 시킬 겸 송하나와 해변을 걸었다.

미군이 외곽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서 그런지, 넓은 해변에는 외부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 참 대단해요.”

불현듯 송하나가 입을 열었다. 한서진은 손을 잡은 채로 그녀를 돌아봤다.

“뭐가?”

“미국 대통령이 오빠 한 명 만나러 전용기까지 타고 한국까지 찾아왔잖아요. 진짜 상상도 못할 일인데.”

“그렇긴 해. 우리나라 정치인과는 다르지?”

“아이,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오빠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죠. 자랑스러워요.”

한서진은 피식거리며 송하나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솔직히 놀랐어요. 오빠가 이런 자리에 저를 데리고 오실 줄은…….”

“뭐가 어때서. 미국에서는 가족 행사에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데리고 가는 게 일상적인 문화라던데.”

“…….”

흰 목선 아래 부드럽게 도드라진 쇄골의 곡선을 스치듯이 보며, 한서진은 문득 미래를 생각했다.

송하나와 결혼하고, 사랑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마 행복하겠지? 그런데 행복의 크기가 얼마나 클지는 선뜻 가늠이 되지 않는다. 참 행복한 고민이다.

어둑한 황혼 속에서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를 직감한 듯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한서진은 한 팔로 어깨를, 다른 팔로 허리를 감쌌다.

팔에 감기는 얇은 감촉과 가슴에 와 닿는 뭉클한 볼륨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이 두근거림을 그녀가 알아주길 원했다.

“……오빠.”

부끄러움에 찬 목소리를 그대로 입술로 덮어버렸다.

온몸이 감전된 듯 짜릿한 행복감과 두근거림이 강타했다. 그녀도 두 팔을 들어 목을 껴안아왔다.

청량한 바닷바람이 머릿결을 스치는 가운데, 둘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 있었다.

3박 4일 동안 대통령 가족과 보낸 휴가는 즐거웠다.

대통령은 다양한 수상 스포츠에도 능숙했으며, 연세에도 불구하고 운동으로 다져진 좋은 몸을 갖고 있었다.

잔근육이 가득한 그의 몸을 보고 한서진은 많이 반성했다. 오늘부터는 무리고, 내일부터 헬스해야지.

제주도 관광지도 여럿 들렀다. 한서진은 경호를 걱정했지만, 다행히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통령과 악수 한 번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는 능숙하게 흘러 넘겼다.

아쉬운 휴가가 끝나고, 대통령은 본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이것으로 주변국에서는 확실히 알았을 겁니다. 박사를 건드리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건 이미 명예시민권 받았을 때 다 알았을 것 같은데요.”

“박사가 한국에 거주하는 것 때문에 오산을 할 수도 있는 거지요. 욕심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법입니다.”

클레튼 대통령은 휴가 내내 단 한 번도 한서진에게 미국 생활을 권하지 않았다. 어디어디에 좋은 연구시설이 있으니 한 번 방문하라는 제안은 했어도, 생활 터전을 옮기라는 말은 암시조차 건네지 않았다.

한서진은 그 점이 신기해서 넌지시 말했다.

“전 사실 미국으로 이사 오라는 말씀을 한 번쯤은 하실 줄 알았는데, 그런 말씀은 전혀 없으셔서 놀랐습니다.”

그 말에 대통령은 씩 웃었다. 여유가 넘치는 미소였다.

“박사가 미국 명예시민이자 영원한 친우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어느 곳에서 생활을 하든 그것이 뭐가 중요합니까? 미국은 박사가 지구 어느 곳에 있든 보호할 의지와 능력이 있습니다.”

한서진은 조금 감동했다. 이것이 최강대국 대통령의 여유이자, 국격이라는 것인가.

“참, 박사의 보호를 위해 주한미군의 규모를 증대하고 최신 설비도 도입할 예정입니다.”

“그러실 필요까지야…….”

“지금 울타리로는 우리가 안심이 되지 않아서요. 그러니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분위기가 변하자 한서진도 조금 긴장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릴 것은 미국 안보의 Top Secret에 속하는 내용입니다.”

Top Secret이라는 말에 한서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찬물을 머리에 끼얹은 듯한 느낌이다.

“미국은 본토 방위를 위해 다양한 작전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도 그 일축을 담당하고 있지요. 한국에는 육군 위주, 그리고 일본에는 해군 병력 위주로 주둔하고 있습니다.”

서문이 예사롭지 않다. 한서진은 바짝 긴장해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귀담아 들었다.

“관련 작계의 핵심은 최악의 전쟁 상황시 주둔미군이 한반도를 신속히 후퇴해 일본과 합류하여, 일본을 서부 최전선으로 삼아 미국 본토를 수호한다는 내용입니다.”

한서진도 음모론으로 여러 번 접했던 내용이었다. 그 실체를 대통령이 직접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등줄기에 저절로 식은땀이 흐른다.

“최악의 전쟁 상황이라면, 어떤 것을…….”

“중국, 혹은 러시아와 벌이는 전면전이죠.”

“……!”

“물론 발발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만, 영원히 제로일 수는 없죠. 미국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안색이 창백해진다. 한서진은 건조한 음색으로 물었다.

“그런 엄청난 기밀을 왜 저에게……?”

“하지만 그 작계는 바뀌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미국은 한반도를 무조건 사수하는 방향으로 전선을 구축할 겁니다. 왜냐면 친우가 살고 있는 땅이기 때문이죠.”

“…….”

“그걸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긴 잠수가 끝난 것처럼 심호흡이 크게 터졌다. 대통령의 옅은 미소를 보자 비로소 긴장감이 땀처럼 빠져 나갔다.

그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네요. 절대로 발설하면 안 되겠어요.”

“아, 발설하셔도 됩니다. 대신 우리 미국의 삐짐을 달려 주셔야겠지요.”

“……하하, 꼭 사랑 고백이라도 받은 기분이네요.”

“사랑고백이라. 그렇게 봐도 맞겠군요.”

카우보이의 사랑은 우직하고, 뒤를 보지 않으며,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그런 뜨거운 사랑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직접 어필을 하기도 한다.

============================ 작품 후기 ============================

“당신이 무얼 하든, 어디에 살든, 내가 이토록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 하나만큼은 기억해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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