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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45화 (24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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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일정은 아니고 개인 휴가인데, 시간 좀 내줄 수 있냐고 하네.”

“진짜?”

한지혜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한국에서 미국 대통령과 직통하는 오빠를 둔 사람은 아마 자신 밖에 없을 테니.

“당연히 만나야지! 아, 혹시 나도 같이 볼 수 있어?”

“뭐, 가족 모임이니까 어렵진 않을 거 같은데.”

“가족 모임? 더 잘 됐네. 나도 오빠 가족이잖아.”

미국 대통령 가족과 휴가를 보낸다니. 생각만 해도 설렌다. 두고두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너 근데 학교에서는 내 동생인 거 모른다며? 사진 찍힐 수도 있는데 괜찮아?”

“무슨 상관이야. 지금 사진 찍히는 게 무서워서 미국 대통령 가족과 보내는 휴가를 포기하라고? 뭐가 중요한데?”

한지혜는 이미 마음을 정한 모양이었다. 처음부터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럼 하나도 불러야겠다.”

“불러도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가족 모임인데 명분은 있어야지. 최소한 사귀는 사이는 되어야…….”

말을 멈춘 한지혜는 눈을 흘기듯이 한서진을 바라봤다.

“가만? 오빠? 혹시?”

“뭐, 뭐야?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니, 방금 ‘하나도 불러야겠다.’라는 대사가 너무 자연스러웠어. 썸타는 사이에서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야.”

“…….”

“나 날카로운 거 인정해?”

“인정한다.”

한서진은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한지혜는 팔짱을 낀 채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시했다.

“좋으시겠어. 7살 연하의 글래머와 사귀시니까?”

“…….”

“언제부터야?”

“저번에 나 아팠을 때…… 아, 됐어. 내가 내 연애사까지 너한테 꼬치꼬치 보고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한씨 가문의 명예 유지를 맡고 있는 나한테 말 안 하면 누구한테 말하려고?”

한서진은 집요하게 매달리는 동생을 뿌리치고 일어섰다.

청와대 오찬.

초대장을 받은 기업인들이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있었다. 30대 재벌 총수들이 한 공간에 앉아 있으니 위압감이 사뭇 짙었다.

원래는 10대 그룹 총수만 초대한다고 했는데, 외부 시선을 고려해 규모를 늘린 모양이다.

이서나와 같은 테이블에 배정된 백철중은 썩 내키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서나가 넌지시 물었다.

“어디 안 좋으신가 봐요. 안색이 안 좋으세요.”

“알잖냐. 난 원래 이런 자리 불편하다.”

이서나는 피식거렸다.

백철중은 정권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기로 유명했다. 근래는 나아졌지만, 몇 십 년 전에는 정권에 밉보여서 크게 피를 본 적도 있었다.

“게다가 들러리로 불려왔는데 기분이 뭐가 좋겠냐?”

백철중은 정곡을 찔렀고, 이서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이 중 이 오찬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마 다섯 손가락을 넘기는 힘들 것이다. 청와대 내부 사정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대통령은 한서진을 만나고 싶어 한다.

이 오찬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국내 경제 발전을 위한 자유로운 정책적 토론을 위한다는 것은 거창한 명분일 뿐이다.

“한 박사가 좀 늦네요.”

이서나는 빈자리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그들과 같은 테이블이었다.

“초대장을 제대로 발송 안 한 거 아냐? 요즘 정치인들 제대로 일하는 게 뭐가 있어?”

“초대 리스트 관리야 직원들이 하겠죠. 대통령님이 저한테도 넌지시 부탁하던데.”

“부탁?”

“한 박사가 참석하게끔 말 좀 잘해달라고요.”

“허, 어지간히 다급했나 보군. 서나 너한테까지 그런 청탁을 하다니 말이야.”

청와대 내부임에도 백철중은 대통령에 관해 거리낌이 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서나 넌 어떡했느냐?”

“말은 제대로 전했어요. 이번 오찬, 대통령이 한 박사님을 보고 싶어 해서 만든 자리 같다, 뭐 그렇게요.”

적극적으로 권유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이서나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2년만 지나면 이빨 빠진 호랑이 될 텐데요.”

그에 비해 한서진은 2년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위상이 높아져 있을 것이다. 누구를 중시해야 할지는 고려할 가치도 없다.

아니, 2년 뒤를 볼 것도 없이 지금 당장만 해도 한서진이 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서나야, 우리 내기나 할까? 나는 한서진 군이 안 온다는 쪽에 걸지.”

“내기가 안 돼요. 저도 그쪽에 걸 거니까.”

“에잉.”

작게 툴툴거리는데 비서가 들어와서 정중히 말을 전했다.

“대통령님 들어오십니다.”

착석해 있던 기업인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후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대통령이 들어섰다.

그는 웃고 있지만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백철중 테이블의 빈자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이리라.

“……편안히 음식을 즐기며, 국가 경제 발전에 대한 자유로운 고견을 기탄없이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어요.”

식사 전 짧게 오찬의 취지를 밝히는 음색은 집중하면 알 수 있을 만큼 살짝 굳어 있었다.

오찬이 시작되었다.

이 자리의 진정한 목적을 모르는 이들은 자유롭게 경제 발전에 관한 화두를 나누고 있었다. 5대 그룹 총수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출범한지 이제 2년 된 정권, 아직 힘이 새파랗게 살아 있을 시기다.

2년 뒤면 대통령도 힘이 빠지겠지만, 지금은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직위다. 그룹 총수들은 대통령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누기 위해 가식적인 웃음을 짓고,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백철중과 이서나는 그 자리에 끼지 않았다.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는 선에서 그쳤다.

애초에 목적부터 틀어진 행사, 적극적으로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비서실장이 급히 들어와서 대통령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순간 대통령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서나와 백철중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보셨어요?”

“봤다. 뭐가 터진 것 같군.”

“무슨 일일까요?”

“글쎄…….”

오찬 분위기는 어느새 식은 듯이 가라앉았다. 대통령의 미간이 눈에 띌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 대통령 전용기가 제주도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사전에 미리 통보되지 않은 귀빈의 방한에 공항은 한바탕 뒤집어졌다. 외교부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사전에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미국 측에서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았으니까.

뒤늦게 사실을 전해들은 외교안보수석은 식은땀을 흘리며 워싱턴과 통화를 나눴다.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대통령님 가족의 개인적인 휴가라 국빈 방문 절차는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통보가 늦은 점은 사과드립니다.

아무리 개인적인 휴가라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는 행사다. 사전에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통보 절차와 조율이 이뤄져야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 측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미 대통령 전용기가 코앞까지 올 동안.

“며칠 전에 7함대가 제주도에 기항한 게 설마 이거 때문이었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쩐지, 갑작스럽게 함대 참석 행사를 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만…….”

“대체 왜 미리 통보를 안 해준 거야? 덕분에 우리만 엿 먹게 생겼잖아!”

된통 큰일 치르게 생겼지만 어쩔 수 없다. 상대는 최고 중요한 동맹국이자 세계 최강대국이다. 대통령 방문을 좀 늦게 통지했기로서니 그걸 가지고 따지고 들 수 있을 리가 없다.

외교부는 급히 이번 대통령의 방한에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있는지를 놓고 분석에 들어갔다.

개인적인 휴가라고 하지만, 그 말을 순순히 믿을 만큼 바보는 없다. 아무리 경직된 관료주의와 부패도로 욕을 먹고 있다 해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사전 통지를 깜박 잊었다고?

순수하게 제주도의 바다를 즐기러 왔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정말 바보일 것이다.

“한서진 박사 일정을 체크해! 지금 어디 있나?”

미 대통령의 이런 파격적인 방문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항공 신고 내역이 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혼자?”

“아닙니다. 탑승 내역을 보면 친동생, 그리고 H그룹 백철중 회장의 막내딸과 동승했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은…… 에어포스 원 착륙과 거의 같습니다!”

휴가를 핑계로 한 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한국 일정. 사전에 통지되지 않은 점.

그리고 때를 맞춘 듯한 한서진의 제주도 여행.

이런 정황을 보고도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한서진 박사를 만나러 왔군. 미 대통령이 직접…….”

상황을 종합한 외교부 차관은 전율이 일었다.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한국을 깜짝 방문했다. 오로지 한 명의 개인을 만나기 위해서.

미국이 한국의 그 어떤 기업이나 인물보다 한서진을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다는 퍼포먼스 아닌가.

지금쯤 김두박 대통령의 얼굴이 얼마나 구겨졌을지, 차관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한서진과 미 대통령은 거의 동시에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둘은 악수를 나누며 반가움을 나타냈다.

“소개하지요. 이쪽은 제 와이프, 그리고 제 아이들입니다.”

대통령은 동행한 가족들을 소개했다. 기품이 넘치는 영부인이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한서진과 비슷한 연배인 자녀들도 활기차게 인사했다.

한서진도 자기 일행을 소개했다.

“이쪽은 제 친동생, 한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제 여자친구입니다.”

“오, 걸프렌드! 반갑습니다.”

대통령은 크게 웃으며 두 여자와 악수를 나누었다. 한지혜는 떨림 가득한 얼굴로 악수를 한 뒤,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저어, 셀카 좀 찍을 수 있을까요? 같이…….”

대통령은 박장대소를 터트렸고, 한서진은 괜히 민망해서 시선을 피했다.

“오누이가 아주 똑같이 닮았군요. 얼마든지요.”

한지혜는 그 자리에서 대통령과 셀카를 찍었다.

두 가족은 게이트를 통과하는 대신, 미리 준비한 미군 헬기를 타고 공항을 떴다. 미 대통령의 위세를 생각하면 그 정도 편의쯤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덕분에 냄새를 맡고 공항에 잔뜩 몰려들었던 기자들, 기념비적인 사진을 찍기 위해 떠나지 않고 기다리던 여행객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헬기 편대가 향한 곳은 어느 조용한 해변이었다. 7함대에서 기항 및 장병 휴가를 위해 제주시로부터 며칠 간 빌린 장소였다. 일반인의 출입은 당연히 통제된 곳이었다.

그곳에는 캠핑과 휴가를 위한 모든 시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때가 살짝 이르긴 했으나, 수상 스포츠를 즐기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날씨도 화창하고 좋았다.

한지혜는 금세 대통령 자녀들과 친해져서 자기들끼리 저쪽에서 놀고 있었다.

이쪽에는 통역 및 대통령 부부, 그리고 한서진과 송하나만 남았다.

“여자친구가 참 아름답습니다. 혹시 배우입니까?”

“아닙니다. 아직 대학생이에요. 국내 1, 2위를 다투는 H그룹 오너의 막내딸 됩니다.”

“오, 그렇군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한서진도 즐거웠다. 비록 통역을 사이에 두긴 했지만, 클레튼 대통령과 대화하면 뭔가 시원한 느낌이 든다. 외교부 장관이나 안보수석과 이야기할 때는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와 가족 휴가를 보내려고 이렇게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거든요.”

“닥터 한이 바빠서 오지 못하니 제가 와야지요. 친우로서 당연한 겁니다.”

일국, 그것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찾아 먼 거리를 날아왔는데, 별다른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자신이 다소 낯설었지만, 한서진은 웃음으로 감췄다.

============================ 작품 후기 ============================

“감히 내 초대를 무시해?”

“쏴리, 미국에서 중요한 친구가 와서. 그리고 간다고 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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