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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34화 (234/609)

00234  꿈과 현실  =========================================================================

“이렇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주한 일본 대사, 나가무라 야스모.

정중히 머리를 숙인 그의 정수리를 보며 한서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이래서 저번에 외교부 장관이 왔었나.’

왜 외교부 장관이 통합 재해 예보 시스템을 구축해달라는 요청을 했는지 얼핏 이해가 안 갔는데, 오늘 확실해졌다. 예보 시스템이 간절한 것은 자국 행정부가 아니라 일본이었던 것이다.

“저번에 외교부 장관님이 비슷한 말을 한 기억이 나네요.”

“한국 정부에도 넌지시 부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해당국 정부의 양해 없이 추진할 수는 없으니까요.”

나가무라 대사는 덤덤히 해명했다. 표정만 봐서는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읽기 힘들었다.

‘일본이라.’

일본은 그에게 무관심한 인접국가일 뿐이다. 그는 일본이라는 나라나 그 문화에 관심이 없다. 어쩌다가 성능이 좋다고 추천받아서 산 전자제품이 알고 보니 일제품이었다던가, 하는 정도가 전부다.

“그렇지 않아도 외교부 장관님이 그런 말을 한 이후, 재해 예보에 관해서 나름대로 생각해둔 게 있습니다.”

나가무라 대사의 눈빛에 일말의 기대감이 차올랐다. 한서진은 속으로 실소하며, 그의 기대감을 깨부수었다.

“재해 예보 시스템은 팔지 않습니다.”

“……!”

“애초에 팔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시스템이니까요.”

기상, 지진 관측 데이터에는 타르타로스만이 읽어낼 수 있는 에테르의 흐름이 담겨 있다. 타르타로스는 그 흐름을 읽어서 재해 예측을 하는 것이다.

시스템을 팔려면 타르타로스를 팔아야 하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타르타로스의 존재를 비밀로 부치고, 케르베로스의 특허조차 내지 않고 있는데.

“다만 제가 독자적으로 실시간 예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은 있습니다. 아마 근시일 안에 실행될 것 같습니다.”

“독자적으로요? 실시간 예보?”

나가무라 대사는 눈이 번쩍 뜨였다.

“누구나 예보를 접할 수 있는 방식입니까?”

“그렇습니다. 개인정보나 요금을 받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그저 주소를 치고 서버에 접속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볼 수 있게끔 할 생각입니다.”

나가무라는 조금 감탄한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재난 정보를 각국 정부기관에 팔기만 해도 큰 이익을 거두실 수 있을 텐데, 무료로 공개를 하신단 말씀이십니까. 대단합니다. 그 큰 뜻에 감명 받았습니다.”

“인명이 달린 일이니까요. 시스템 구축에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특별히 이익을 추구하고 싶진 않군요.”

나가무라 대사의 말대로 재해 정보를 팔면 적당한 돈을 만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서진은 자잘한 이익에 신경을 쓰고 싶진 않았다.

더군다나 인명이 달린 정보를 가지고 장사질을 한다면, 캘리포니아의 영웅으로 쌓아올린 이미지에 오히려 먹칠을 하는 셈이다.

이미 미국 명예시민이 된 몸, 재해 정보는 무료로 공개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저도 기상, 지진 관측 정보는 무료로 얻고 있으니까요. 그걸 한 번 분석해서 공표한다고 돈을 받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됩니다. 전기료, 서버 비용 정도 밖에 안 드는데요.”

“잘하신 결정입니다. 세계 국민들은 한 박사님의 높은 뜻에 큰 감동을 받을 겁니다.”

나가무라 대사는 거듭 칭찬했다.

“그럼 회원가입이나 개인정보 수집 같은 것도 없이, 그저 예보 사이트에 접속하기만 하면 해외 어디에서든 실시간으로 정보를 볼 수 있는 겁니까?”

“PC버전은 일단 그렇게 진행합니다.”

“PC버전이라 함은…….”

나가무라 대사는 안색이 변하며 말끝을 흐렸다. 의미심장한 단어였다. 뭔가 놓친 게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PC 접속은 어떤 제한도 두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모바일 접속은 전용 어플이 따로 있습니다. 아, 물론 어플이라고 해서 요금을 받거나 개인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PC 버전과 차이점이 없다. 하지만 나가무라는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이 진짜라는 것을.

“일단 우선적으로 칼라폰 전용 어플로 내놓을 계획입니다.”

나가무라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가 이내 펴졌다. 그는 사교적인 미소를 지으며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과금도, 개인정보 제공 요구도 없다.

그러나 칼라폰 전용이라는 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적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

특히 캘리포니아 대지진을 겪은 미국에서 칼라폰의 인기가 한층 더 폭증할 것이다. 통신 성능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독점 재난 어플까지 깔려 있으니.

“혹시 각국 정부가 PC사이트에서 제공받은 재난 정보를 문자로 일괄 발송하는 건 어떻게 됩니까?”

“그거야 재난을 막기 위해 당연한 조치지요.”

명분까지 확실하다.

왜 다른 단말기에는 어플을 깔아주지 않느냐고 비난할 여지조차 없다. 완전한 무료 공개에다가, 공개하는 정보의 시간이나 품질에 차등을 두는 것도 아니니.

“이거 앞으로 각국 기상청이 할 일이 없어지겠군요.”

나가무라가 웃으며 말하자 한서진도 실소했다. 당치도 않다는 듯이.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전 기상 예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게 아니라, 재난 예보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일반 날씨 변화는 예보 안 합니다. 큰 피해가 예상되는 폭우나 태풍, 지진 같은 것만 예보할 생각입니다. 시스템 과부하 문제 때문에 그 모든 걸 일일이 계산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은 거짓말이었다.

타르타로스의 성능이라면 지구 전체 지역을 커버하고도 남는다. 관측 정보야 얼마든지 간단히 얻을 수 있으니.

다만 할 일이 많은데 자잘한 날씨 변화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 폭우가 올 것인지 말 것인지는 중요한 인명, 재산이 걸린 문제다.

하지만 한두 시간 동안 소나기가 올 것인지 말 것인지는, 누군가가 세탁비로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일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전 지역을 커버하는 규모입니까?”

“아니오, 그렇진 않습니다.”

한서진은 테이블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지금 리소스로는 본진을 커버하는 것도 벅차거든요.”

“본진이요?”

나가무라 대사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SJ사이트가 오픈했다.

캘리포니아 대지진을 예고한 한서진이 감독하는 재해 예보 전문 사이트라는 말에 전 세계에서 접속자가 폭증했다.

정작 사이트의 규모는 단출했다. 일반 고등학생의 개인 SNS 사이트보다도 빈약했다.

자유게시판은 물론 방문자가 짧게 인사를 남길 수 있는 방명록도 없었다.

사이트는 특정 지역을 조회해서, 해당 지역에 앞으로 닥칠 가능성이 높은 재해를 미리 예보하는 기능이 전부였다.

처음부터 접속자와 상호교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일방적으로 예보 정보만 공급하는 플랫폼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네티즌은 예보를 가지고 논의하기 위해서 다른 사이트에 모이거나, 혹은 개인적인 교류를 가져야만 했다.

―이 날만 기다렸다! 닥터 한이 드디어 재해 예보 시스템을 공개했네.

―근데 시스템 구축해서 각국 재난처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할 줄 알았는데 직접 감독하네.

―내가 관련 썰 들었는데, 재해 예보 가지고 미리 장난치는 인간들 나올까 봐 직접 감독한다는데? 사실 큰 재해가 온다는 걸 10분 전에만 미리 알아도 엄청난 시세차익 거둘 수 있잖아?

―역시 우리 명예시민다운 분이다. 신성한 재해 예보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 이거지.

SJ사이트는 한국어와 영어를 지원했으며, 재해 예보가 가능한 지역은 한반도와 미국 본토뿐이었다.

―근데 예보 지원 지역이 생각보다 좁네? 한국과 미국뿐이잖아.

―시스템도 한계가 있겠지. 한 박사는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니, 당연히 이 두 나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하는 게 맞잖아.

―일본이 저 재해 예보 시스템 손꼽아 기다렸다던데, 뒤통수 맞은 기분이겠어. 주한일본 대사가 한 박사 찾아가서 간절히 부탁했다는 썰까지 있더라.

―근데 왜 날씨는 아무것도 안 뜨냐? 나만 오류인가?

―┖ 멍청아. 이건 기상 예보 사이트가 아니라 재해 예보 사이트라고. 니가 오늘 데이트에 우산을 들고 나갈지 말지까지 한 박사가 신경써야 되겠냐?

―하는 김에 일반 기상 예보까지 할 수도 있는 건데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거 나만 불편해?

―┖ 응 너만 불편해.

―┖ 너만 불편한 듯.

PC사이트는 제한 없이 접속이 가능했다. 그러나 모바일 어플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칼라 단말기가 있어야 했다. 아니면 모바일에 깔린 웹 브라우저로 PC버전으로 접속을 하던가.

양쪽 다 제공하는 정보의 품질, 시간은 차이가 없었다. 똑같이 무료였고, 접속 지역을 제한하지 않으며, 개인정보 제공이나 회원가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다.

―근데 알람 기능은 모바일 어플에서만 되네.

―그러게. 사이트에서는 개별 알람까지는 안 해주네.

‘실시간 열람’은 언제든 자유지만, 모바일 어플에는 개별 알람 기능이 있었다.

사용자가 현재 위치한 지역과 별도로 선정한 지역에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재해를 알려주는 기능이다. 덕분에 칼라폰 소지자는 매번 사이트에 접속하는 번거로움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래도 좀 너무한다. 기왕 할 거면 PC버전이나 모바일 어플이나 똑같이 만들지, 왜 이런 차등을 두었지?

―예보 시스템 가지고 칼라폰 밀어주겠다 이거지. 한서진이가 칼라 통신망 소유주잖아.

―헐. 정말이야?

사람 목숨 가지고 장사를 하려 한다는 불평불만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불만은 거센 반박 여론에 부서졌다.

―재해 정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기껏 사비 들여서 시스템 구축하고, 무료로 공개해주는데도 저 지랄을 하는 거? 호의가 계속되면 지껀 줄 안다더니.

―한 박사님이 그냥 시스템 유료하고 여러 나라 정부에도 팔아먹어서 큰돈 버셨으면 좋겠다. 그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 제공할 거 아니야. 원래 발명자가 돈을 많이 벌어야 이런 좋은 게 널리널리 퍼진다구.

―┖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우리나라는 예보 지역에 해당이 안 돼서 안타까워…….

미국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SJ사이트에 관해서 대대적인 보도 정보를 내보냈다. 한 번 대재해를 겪은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서둘러 칼라폰을 공급하라고 들고 일어섰다.

“우리는 안전해질 권리가 있다!”

“주정부는 서둘러 칼라폰 수입을 허가해라!”

캘리포니아를 시작으로 각 주에서도 칼라폰 허가를 서두르라는 시민들의 여론이 불처럼 번졌다. 미국 통신시장을 휘어잡고 있는 기업들이 필사적으로 로비를 했지만, 그런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라리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재해 정보를 매각하는 방식이 더 나았을 텐데.」

정지원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철철 넘쳤다. 한서진은 그냥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칼라폰의 미국 상륙이 늦어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미국의 자국기간통신 보호, 기존 통신업체들의 로비, 시장질서의 혼란 방지 등등…….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정작 대중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워싱턴은 지금이라도 네가 뜻을 돌리길 바라고 있다.」

“그냥 무료로 제공하겠습니다. 이런 걸로 돈 버는 건 조금 민망하네요.”

바로 워싱턴이 재해 정보를 무료로 공개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서진이 뜻을 돌리길 원했다. 전 세계를 커버하는 재해 예보망을 구축하여, 예보 기능 자체를 무기화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이었다.

어떤 나라에 발생할 큰 재해를 완벽히 예측할 수 있다면, 그 나라를 상대로 외교적 이점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패권이 한층 두터워지는 것이다.

나아가 기후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가스나 전력 등 냉난방에 필요한 자원의 가격과 식량 생산 변동의 추이까지 미리 내다볼 수 있다.

큰돈이 되고, 무기가 된다. 미국이 좀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정지원도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알겠다. 그렇게까지 네 뜻이 확고하니, 워싱턴도 이제 뜻을 굽힐 거야.」

============================ 작품 후기 ============================

“시스템 용량의 한계로 두 나라만 서비스합니다.”

“그냥 우리나라에도 해줘요! 돈 많이 줄게! 제발!”

“어허, 인명이 달린 일을 가지고 돈을 받을 순 없어요. 무조건 무료 정책을 고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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