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30화 (230/609)

00230  꿈과 현실  =========================================================================

“새 직원이라는 분, 되게 예쁘시던데.”

테이블에 앉으며 송하나가 아무렇지 않게 꺼낸 말에 한서진은 살짝 흠칫했다.

“너무 예뻐서 제가 조금 놀랐어요.”

“그, 그래? 그게 예쁜 건가?”

“엄청 예쁜 거죠. 당장 연예인을 해도 될 것 같던데.”

한서진은 어설프게 웃었다. 신효진이 예쁘장한 편이라는 것은 처음 볼 때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주변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를 너무 과대평가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그 정도 외모야 흔하지 않나?”

“역시 오빠 눈 엄청 높으시다니까. 근데 본인 입으로는 절대 아니래.”

“야야, 내가 눈이 뭐가 높아.”

“지혜 언니한테 들어서 다 알아요. 오빠 눈 엄청 높으시다는 거.”

직원이 다가와서 주문을 받아갔다. 둘은 간단하게 파스타를 시켰다.

“그분은 몇 살이에요?”

“신효진 씨?”

“우리가 그분 말고 다른 분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스무 살이었던가.”

“저랑 동갑이네요. 나중에 친해지면 친구를 해도 될 거 같아요.”

“둘이 친해질 일이 있겠어?”

“사람 일은 모르는 거죠.”

한서진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송하나가 왜 신효진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이어가는지 마음에 걸렸다.

“그분은 어떻게 입사하신 거예요? 공개 채용?”

“우리 같은 조그만 회사에서 무슨 공개 채용이야. 그냥 재무팀장님 소개로 들어온 친구야.”

“전에는 어디서 일했대요?”

“뭐, 어디 큰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다던데.”

“오빠랑 비슷한 처지였네요. 동병상련 느끼셨겠다.”

“……글쎄? 내가 사무직원 채용까지 일일이 관여하지는 않아서 그런 건 별로…….”

한서진은 속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왜 이렇게 자꾸 신효진 이야기만 묻는 거지? 좀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 돼?

파스타가 나왔지만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맛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송하나는 식사 내내 웃는 얼굴이었지만 왠지 그 미소가 평소보다 낯선 느낌이었다.

‘뭐야, 설마 눈치 챈 건 아닐 텐데.’

신효진은 그의 배려로 채용되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재무팀장뿐이다.

그런데 송하나는 왠지 뭔가 알아차린 듯한 것 같다. 아니, 아무런 정황 증거도 없는데, 대체 어떻게?

‘하나가 오해하면 안 되는데.’

물론 신효진도 예쁘고, 송하나와는 다른 종류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성적인 호감은 별로 없다.

애초에 사무소로 채용을 한 것도 비슷한 처지에서 오는 동병상련의 감정, 그리고 통찰안의 반려 판정을 무시할 수 없어서 지켜보기 위해서일 뿐이다.

‘답답하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라고 이제 와서 내가 먼저 말을 꺼낼 수도 없고.’

이미 둘러댄 게 있는데, 거기에 대고 그런 말을 하면 어떨까. 제발 나를 오해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셈이 아닌가.

점심을 먹고 나서 가게를 나서는데, 송하나가 문득 말했다.

“오빠, 오늘 몇 시에 퇴근하세요?”

“한 서너 시간쯤 뒤?”

“저 그럼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오빠랑 같이 저녁 먹어도 돼요?”

“그래도 되긴 한데, 그 동안 어디에 있으려고?”

“사무소에 있으면 안 돼요?”

한서진이 뜨끔해서 미처 대답을 못하는 사이, 송하나가 생긋 웃으며 덧붙였다.

“농담이에요. 근처 우리 그룹 백화점에 가서 시간 보내고 있을게요.”

“귀하, 표정이 어둡군. 몸이 어디 불편하시오?”

‘한서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스칼린은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박사님과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불현듯 그의 찬란한 금발머리카락에 눈이 들어왔고, 비로소 그녀는 여기가 꿈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점심 먹고 내가 깜빡 조는구나.’

직원들과 함께 입맛 없이 점심을 먹고, 사무소에 올라와서 책상에 앉은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아마 그 뒤 잠깐 졸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래알을 문 듯이 입안에 까칠까칠한 감각이 맴돈다. 그녀는 억지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듯한데. 표정이 무척 안 좋소. 잠깐 앉아서 쉬는 게 어떻겠소?”

“괜찮아요, 리온. 정말 그런 게 아니에요.”

자상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스칼린은 눈을 감고, 깊은 심호흡을 뱉었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송하나의 밝은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참 예쁜 사람이었어.’

예쁘다기보다는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그녀는 화려한 빛으로 가득했다.

그 얼굴에 미모, 학벌, 심지어 집안까지 너무 대단하다. 가진 거라고는 조금 반반한 얼굴이 전부인 자신과는 어느 것 하나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여자니까 그런 분하고 사귀는 거구나…….’

음울한 기분이 가슴에 고인다. 신효진은 고개를 들어 리온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한서진과 놀라우리만치 똑같은 얼굴, 그러나 그는 결코 실제가 아니다. 이곳은 진짜가 아닌, 조금 이상한 꿈일 뿐이니까.

가슴을 저미는 아픔의 정체를 불현듯 깨닫고 만 그녀는 쓰게 웃었다.

‘내가 박사님을…… 정말 좋아하나 봐. 꿈에 박사님까지 나오는 걸 보면.’

동경, 그리고 보은의 마음이라고 스스로 거짓말을 해왔다. 하지만 송하나를 본 순간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실은 예고 없이, 냉혹하게 찾아온다더니.

“리온, 당신은 어떤 여자가 좋아요?”

“……어떤 여자라니?”

리온은 순간 당황한 듯했다. 스칼린은 멈추지 않고 계속 대답을 채근했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남자들은 여자 볼 때 뭘 기준으로 보나, 하고요.”

‘신효진’은 리온의 눈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 깊은 눈빛 너머에 있는 실체를 떠올렸다. 지금 그녀는 한서진을 떠올리면서 묻고 있었다.

“역시 예쁘고 똑똑하고 집안이 좋은 여자가…… 남자들도 좋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잖아요.”

그녀는 덤덤히 말했다.

질투나 시기의 감정은 들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감정 자체가 안 생길 만큼 격차가 심한 상대 아닌가.

난처해하던 리온이 이윽고 결심한 듯 표정을 단단히 굳히고 대답했다.

“나는 반려를 볼 때, 마음을 보오.”

“마음……. 거짓말이죠?”

“사실이오.”

리온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 여자가 나와 나의 아이, 그리고 나의 집안을 훌륭히 지지하고 다스릴 수 있는 강인한 마음을 갖추었는지, 오로지 그거 하나만 봅니다.”

“……뭔가 어려운 거 같네요.”

“그렇지요? 그래서 사실 내가 혼인 적령기가 지났어도 아직 홀몸이라오.”

작게 실소하는 리온의 모습에서 스칼린은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문득 그가 같은 대답을 들려준다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이 들었다.

‘난 마음가짐도 보잘 것 없는데.’

잠시 비틀거리자 리온이 빠르게 다가와서 부축해줬다. 그의 손길이 어깨에 닿자 스칼린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오늘따라 꿈에서 한층 더 깨어나기 싫어진다.

“효진 씨, 근무 시간이에요. 이만 일어나요.”

박수진이 가볍게 어깨를 흔들었고, 신효진은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떴다. 그녀가 작게 피식거렸다.

“가서 거울 좀 보고 와요. 화장도 좀 고치고.”

“아, 네. 죄송해요.”

“뭘, 식곤증 오면 그럴 수도 있지.”

신효진은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에는 머리카락이 살짝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무심코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얼굴을 쓰다듬듯이 천천히 이곳저곳을 쓸어내렸다.

작고 갸름한 얼굴.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새하얀 피부.

“이 정도면, 나도…….”

꽤 예쁜 편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그녀는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읽었으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졌다.

‘내가 진짜 미쳤나 봐.’

그녀는 얼른 화장을 고치고 머릿결도 다듬었다. 흐트러진 모습이 가지런히 정돈되며, 아까보다 훨씬 보기 좋게 꾸며졌다.

화장실을 나서서 복도를 걷는데, 사무실 쪽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한서진이 나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밝아져서 걸음을 빨리했다가, 뒤를 이어 나오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흠칫 멈췄다. 여자는 바로 송하나였다.

둘한테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다정한 분위기가 흘렀다. 신효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숨기며,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들었다. 부끄러운 짓인 걸 아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안 와도 되는데. 그냥 바로 백화점 가지.”

“논문 이야기 더 듣고 싶어서 그랬죠, 뭐. 이제 백화점 갈게요. 이따가 끝날 때쯤 연락 주세요.”

“그럴게.”

“쇼핑하다가 예쁜 옷 찾으면 사진 찍어서 보낼게요.”

“응.”

가슴이 콩닥거린다. 대화 내용을 보면 누가 봐도 다정하고 오래 된 연인이다.

자신이 끼어 들 틈 같은 것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의 옆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적도 없었다.

짝사랑을 동경과 보은이라 착각했고, 송하나와 맞닥뜨리며 자기 마음을 똑바로 직시했을 뿐.

그녀는 숨을 크게 고르며 표정을 다잡고는 모퉁이에서 복도로 다시 나섰다.

“어머, 박사님. 식사하시고 지금 들어오시는 거예요?”

“아, 효진 씨. 식사는 했어요?”

“네, 직원분들이랑 같이 먹었어요.”

“맛있는 거 드셨나 모르겠네요. 사람이 밥을 잘 먹어야 오래오래 건강한데.”

한서진은 친절한 웃음으로 대답해주었다. 그 미소로 잠시 꿈에서 봤던 리온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나는 반려를 볼 때, 마음을 보오.

문득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울린다. 아마 한서진이 자신에게 그렇게 속삭여줄 일은 없겠지. 그것은 오로지 꿈이기에 가능했던 공상일 뿐이다.

‘난 마음도 어차피 별 볼일 없는 걸.’

평생 가난과 고생, 원망에 찌든 자신의 마음이 과연 건강할까? 사람의 마음을 해부해서 볼 수 있다면, 자신의 마음은 온통 검게 썩어 문드러져 있지 않을까?

“이만 들어갑시다. 오후 업무도 봐야지요.”

닿지 못할 현실은 때로 꿈보다 더 부질없는 것. 신효진은 하얗게 웃으며 끄덕였다.

“네.”

송하나는 그 뒤로도 사무소를 자주 찾아왔다.

거의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찾아와서 한서진과 함께 점심시간을 보냈다. 주4회 출근이니, 많아야 하루 정도만 빠지고 모두 찾아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남자가 대부분인 설계 직원들은 송하나가 올 때마다 한서진이 부럽다며 난리였다.

신효진은 그런 마음을 이해했다. 여자인 자신이 봐도 눈이 부신데 남자들은 어떻겠는가.

‘저런 사람이 나랑 동갑이라니…….’

어느덧 신효진은 송하나의 잦은 방문에 익숙해졌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한서진은 애초에 자신과 다른 물에 사는 사람이었고, 송하나는 같은 물에서 만난 짝이었다. 이런 짝사랑의 감정을 품는 거 자체가 은혜를 베푼 그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그녀는 애써 자기 자신을 달랬다.

종종 그와 송하나의 다정한 모습이 가슴을 긁어 흠집을 새길 때가 있었다. 다행히 그럴 때는 꿈이 많은 위로가 돼주었다.

강하고 인품이 넘치는 리온, 한서진의 생생한 모습을 독점하는 꿈속은 마음을 달랠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 모습이 비록 자신만의 꿈에 지나지 않아도.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공용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뜻밖에도 송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효진은 저도 모르게 놀라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대답한 신효진은 얼른 휴게실을 나서려 했다. 송하나와 단둘이 있는 공간은 처음이었고, 불편했다. 자신의 주제 넘는 짝사랑이 들킬까 봐 불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신효진 씨라고 했죠?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저하고요?”

신효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송하나의 미소가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웃음이, 그녀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저 예쁘고 고운 얼굴에서 독이 묻은 비수가 쏟아지지 않을까,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까…….

“제가 그동안 신효진 씨를 유심히 봐왔는데.”

신효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떡해. 혹시 몰래 박사님을 훔쳐보던 걸 들킨 건 아닐까?

“혹시 부업해볼 마음 없어요? 제가 보기엔 딱인데.”

“……부, 부업이요?”

신효진은 당황해서 슬그머니 눈을 떴다. 송하나의 미소는 자신의 우려와 달리 화사했다.

“주4일에 하루 6시간 근무죠? 그럼 시간 많이 남지 않나요?”

“그, 그렇긴 해요.”

“남는 시간에 적당히 할 만한 일이 있는데, 페이도 괜찮을 거예요. 해볼 생각 없나요?”

“……무슨 일인데요?”

그녀의 웃음은 그저 밝았다.

어두운 자신의 마음과 완연히 대조되듯이.

“우리 백화점에서 홍보 모델 구하고 있는데, 신효진 씨 이미지가 딱이더라고요.”

============================ 작품 후기 ============================

“여자를 볼 때 어떤 걸 보세요?”

“세일러복을 봅니다.ㅋ”

“너, 리온 아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