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3 카우보이의 프로포즈 =========================================================================
하루아침 만에 모든 게 달라졌다.
그전에도 유명했지만 어디까지나 국내 한정이었다. 그러나 미국 명예시민이 됨으로써 국제적인 인사가 되었다.
살아있는 유일한 미국 명예시민, 이제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인물이 된 것이다.
명예뿐만이 아니다.
SJ인더스트리의 창업주이자 사주라는 게 알려지면서 세상은 더욱 경악했다.
어느 평가기관이 예상한 SJ인더스트리의 기업 가치는 무려 1조 달러에 육박한다. 주식, 그리고 500억 달러의 현금을 합치면 9,000억 달러의 거부다.
―포브스는 이제 부호 1위를 영구적으로 그에게 배정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우스갯소리가 더 이상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는 숫자였다.
독재자, 왕족이 아니고 이 나이에 이 정도의 자산을 구축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 것인가.
부와 명예.
그 둘을 동시에 거머쥔 한서진은 이제 겨우 스물일곱에 지나지 않았다.
9,000억 달러의 잠정 자산. 그리고 미국 명예시민.
그의 인생은 이제 막 출발점에 섰을 뿐이다.
한서진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워싱턴을 출발했다.
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그것도 귀빈의 자격으로 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심지어 대통령이 동승하지 않은 지금, 기내에서 그가 제일 높은 지위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공항에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환영 인파가 들이닥쳤다. 경호 인력들이 급히 막아섰지만, 흥분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사방에서 플래쉬가 터지며 고성방가가 고막을 흔들었다.
“xx일보 노중관 기자입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명예시민이 되셨는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조만간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소문이 사실인가요?”
“이럴수록 더욱 조국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여론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서진은 고문 변호사가 알려준 대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는 경호원을 따라 인파를 뚫고 지나쳤다.
환영 인파는 대부분 큰 명예를 얻은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중간 중간 한국을 저버리지 말라는 절규에 가까운 호소도 끼어 있었다.
그때였다.
“양키 고 홈!”
발악 같은 저주와 함께 계란이 날아왔다. 다행히 계란은 그가 아닌 근처에 있던 경호원에게 맞았으나, 계란 흰자가 그의 어깨에도 아주 조금 튀었다.
그 순간 환영 인파가 당황해서 크게 술렁거렸다. 한서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빨리 갑시다.”
경호 인력은 재빠르게 인파 사이를 빠져 나왔고, 대기 중인 차량에 올라탔다.
“미국인 오빠 왔네.”
집에 들어서자 한지혜가 놀리듯이 말했다. 그는 피곤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인마, 오빠 피곤하다. 놀리지 마라.”
“그래도 정문 용케 뚫고 들어왔네?”
“정문 앞에 뭔 사람들이 저리 많아.”
대저택 정문 앞에는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이 한 가득이었다. 기부금을 모금하러 온 사람들은 아닌 듯한데,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리들 모여들었는지 모르겠다.
“근데 오빠, 그럼 이중국적 문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이중국적 그런 거 아니라니까. 명예시민권은 일반 시민권하고 달라. 권리도 의무도 없어.”
“그래?”
“일종의 훈장 같은 거래.”
“그래도 선거나 투표 같은 거 말고, 미국 시민처럼 똑같이 지낼 수 있는 거 아니야? 출입국이라든가, 거주라든가.”
“그건 그렇대.”
단순히 똑같은 정도가 아니라 미국은 평생 최고 국빈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민권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특혜를 받을 수 있다.
투표권이나 선거권 등도 마찬가지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취득할 수 있다. 그 경우는 진짜 ‘보편적인’ 이중국적이 돼버리겠지만.
“오빤 미국 안 갈 거야?”
“말도 안 통하는 나라, 갔으면 좋겠냐?”
“영어야 배우면 되지.”
“난 별로. 그냥 여기가 편해.”
“오빤 진짜 텃새 체질인가 보네. 한 번 태어난 땅은 못 벗어나는.”
“왜, 넌 미국 가고 싶어?”
“가고 싶다면 보내줄 거야?”
“어렵지 않지.”
“일단 졸업하고 나서 생각해볼게.”
친오빠가 국제적으로 대단한 유명 인사가 되었는데도 한지혜는 의외로 덤덤했다.
“근데 오빠, 왜 감쪽같이 속였어?”
“뭘 속여?”
“SJ인더스트리가 오빠 거라는 거 말이야. 나 그거 듣고 엄청 놀랐는데.”
“……뭐, 사정이 좀 있었어.”
“500억 달러는 SJ인더스트리 지분 가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와, 진짜 500억 달러 이야기 들었을 때도 뒤로 넘어질 뻔했는데, 오빠가 북쪽 독재자 뺨치는 부자라니.”
“그 정도까지는 아닐걸.”
“9,000억 달러 이상이라며?”
“그거야 평가기관이 지들 멋대로 부풀려서 예상한 거고. 액면가는 몇 억 달러 정도밖에 안 돼. 주식 거래도 지분 조정할 때 몇 번 밖에 안 했고.”
거래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주식을 남들이 제멋대로 수천억 달러니 1조 달러니 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다. 왜 저렇게 남의 재산 평가액에 관심이 넘쳐나는지 모르겠다.
“생모는 어떻게 했어?”
한서진이 차분히 묻자 한지혜는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비밀경호원 60명 배치하고, 그 여자한테는 알아듣게 이야기했어.”
“…….”
“어차피 같이 사는 남자는 아무것도 몰라. 그 여자만 입 다물고 있으면 괜찮을 거야.”
“그래, 네가 고생했다.”
“누가 납치해서 몸값 요구해도 우린 모른 척 무시할 거라고 하니까 충분히 겁먹더라. 알아서 몸 사릴 거야.”
한서진은 미국 명예시민을 받으면서, 이참에 SJ인더스트리의 사주라는 것도 묶어서 세상에 알렸다.
더 이상 SJ인더스트리와의 관계를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었고, 명예시민권을 받고 난 뒤에 밝혀지면 자칫 다른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바로 생모였다.
SJ인더스트리의 오너의 생모라는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생모가 잠자코 있어도 주변에서 온갖 협잡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몸값을 받아내려는 납치 시도는 애교다.
그래서 한지혜는 비밀경호원 60명을 상시 배치했다. 60명의 비밀 경호 인력이 3교대로 돌아가면서 24시간 생모를 경호 겸 감시한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생모에게도 경호사실과 책임자가 누군지를 알렸다.
“차라리 보안이 편리한 집을 새로 하나 얻어주는 게 우리가 더 편하지 않을까?”
“안 돼. 그 여자가 오빠 돈으로 편하게 지내는 건 못 봐.”
비효율적인 경호지만, 한지혜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고, 한서진도 굳이 동생을 꺾을 마음이 없었다.
“아무튼 네가 알아서 잘해.”
“내명부는 내게 맡겨 둬. 잘 관리해서 나중에 하나한테 인수인계 할 테니까, 오빠는 신경 쓰지 마.”
송하나의 이름이 나오자 그는 피식 웃었다. 동시에 다른 여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신효진…….’
유일하게 반려 판정이 뜬 여자. 가슴을 송곳으로 살살 긁듯이 속이 조금 쓰리다.
왜 그녀가 반려인지, 그냥 차라리 모른 체 묻어두고 지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들지만, 통찰안의 계시를 무시하는 것은 큰 두려움이었다.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통찰안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까.
한서진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회장님, 접니다. 네, 지금 귀국했습니다.”
겨우 몇 주 밖에 안 됐는데, 백철중은 한서진이 조금 어려운 듯한 표정이었다.
“이거 참, 자네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감이 안 잡히는군.”
“그냥 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시면 됩니다. 우리 사이가 달라질 건 없지요.”
“그래도 미 대통령, 아니 미합중국의 친구 아닌가. 우리나라 대통령보다 급이 높을 텐데, 내가 어떻게…….”
“자꾸 그러시면 제가 오히려 서운합니다.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알았네, 그럼.”
백철중은 조금 어색한 듯하면서도 한서진의 변하지 않는 태도가 기꺼운 듯했다.
“SJ인더스트리 사주라는 것까지 시원하게 밝혔더군.”
“미국 명예시민이 된다면 아무래도 세상의 주목을 더 받을 테니, 언젠가는 드러날 수도 있겠지요. 어차피 알려진다면 차라리 한꺼번에 밝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판단일세.”
백철중은 흐뭇하게 웃었다.
“덕분에 이제 자네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어.”
“권력자라니요, 전 공직 쪽에는 작은 고문직 하나도 없습니다.”
“공직이 반드시 권력을 뜻하지는 않지. 적어도 이 나라에서 자네를 두려워하지 않는 재벌, 정치인은 이제 없을 걸세.”
500억 달러의 청년 재벌일 때만 해도 정재계에서는 섣불리 그를 건드리지 못하고 두려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9,000억 달러 이상이라고 한다.
“지금쯤 정부는 몹시 난처할 거야. 어어 하다가 자네가 대통령마저 넘어서버렸으니.”
“난처할 게 있나요. 저는 행정부와 별로 얽힌 것도 없는데요. 차관급이랑 전화 두어 번 한 게 답니다.”
두어 번 고위 공직자와 전화 연결이 된 게 전부였고, 그나마도 별다른 이야깃거리는 없었다. 그래서 한서진은 행정부 쪽은 아예 신경을 끄고 있는 상태였다.
백철중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차관급과 전화 두어 번 한 게 다라고?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허어, 난 적어도 이미 장관급이랑 독대 몇 번은 한 줄 알았는데…… 이번 정권은 뭘 믿고 자네를 그렇게 방치한 거지?”
“글쎄요. 제가 찍은 정권은 아니라서 저도 별로 관심은 없습니다만.”
백철중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누가 듣고 있지도 않음에도.
“그런 말, 어디 가서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네?”
“자네는 어떤 식으로든 이미 국가적 스타야. 그런 자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대중, 국민들은 크게 반응할 걸세. 누구를 지지한다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섣불리 했다가는 세상이 혼란스러워져.”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앞이니까 저도 편히 말한 겁니다.”
“그거 기분 좋은 말이군.”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행정부와는 놀랄 만큼 접점이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500억 달러에 특허기술이 낙찰되었을 때는, 장관급 인물이 한 번쯤은 찾아올 법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한서진은 한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 행정부가 날 싫어하나?’
만약 자신이 공직자라면, 자신 같은 청년 재벌이 등장한다면 어떻게든 예의주시하며 교류를 텄을 것이다. 그래서 한서진은 행정부의 움직임이 이해되지 않았다.
백철중은 웃음을 그치고 진지하게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별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반도체 연구를 할 겁니다. SJ인더스트리의 설계부서만 따로 뚝 떼어서 이곳 한국에 차렸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반도체야 뭐 자네가 세계 최고니까 그렇다 치고……. 그나저나 재해예측은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지금 지진전문가, 기상전문가들이 자네 때문에 미치려고 하던데.”
미국 명예시민권 부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한서진이 태풍 메기, 그리고 캘리포니아 대지진을 정확히 예측한 사실이 세상에 공표되었다.
겨우 두 번의 예측이지만, 그것 때문에 지금 기상 및 지진 전문가들이 난리가 난 상태였다.
어떻게 비관련자가 제대로 된 설비도 없이, 공개된 관측 정보만 가지고 그런 정확한 예측을 했을까. 백철중 역시 궁금증에 시달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죄송하지만, 그건 비밀입니다.”
“……이런.”
“지금 논문 정리 중이라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논문? 지진 관련 주제인가?”
“포괄적으로는 그것도 소주제로 포함해서 다룹니다만, 대주제는 그게 아닙니다.”
백철중의 두 눈에 가득한 호기심을 관찰하는 것은, 상당히 즐거웠다.
“제5의 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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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언하아! 계란 던진 거요! 저거 가만 둘 겁니까!”
“놔둬라. 내명부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