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22화 (222/609)

00222  카우보이의 프로포즈  =========================================================================

―한서진,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천재죠.

인터뷰 대상자는 두말할 것 없다는 듯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반도체공학기사, 이거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알아주는 자격증이거든요. 명문대 관련 학과 나온 애들도 어려워서 못 따는 자격증이에요. 근데 그걸 고졸 생산직 출신이 직장 생활하면서 일 년 동안 틈틈이 공부해서 땄다는 말엔, 그냥 기가 차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떡잎이 보였다는 거군요.

―한국대에 입학했을 땐 사실 별로 안 놀랐습니다. 그 친구라면 해낼 줄 알았거든요.

인터뷰 대상자는 김경규였다. H반도체 설계팀에서 처음으로 한서진과 인연을 맺은 직장 선배. 그는 핏줄이 도드라진 채 그때의 일을 뜨겁게 상기했다.

―그래도 반도체공학부 수석을 했다는 말에는 엄청 놀랐습니다. 솔직히 그건 상상 못했어요.

―겨우 몇 달 공부해서 한국 최고 대학 붙은 건 당연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친구에게라면 당연한 일이죠.

인터뷰 대상이 바뀌었다.

한국대 반도체공학부 전 학생회장 조현석이었다.

―서진이 형이요? 죽여줬죠. 포르쉐가 멋져서가 아니에요. 교수님들도 그 형은 정말 존중해주시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가장 기억나는 일은 어떤 게 있나요?

―이과박람회였죠. 거기서 내로라하는 외국 기업들이 서진이 형 기술을 서로 사가려고 다투는 거 보고 깨달았어요. 저 사람은 하늘에서 잠시 땅에 놀러온 거구나, 하고 말이죠.

―5nm공정기술이 500억 달러에 팔렸었지요.

―네, 맞아요. 그때는 형이 드디어 하늘로 날아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형은 이미 그전에 하늘에 있었던 거예요.

―SJ인더스트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5nm공정기술을 개발하기 전에 이미 형은 SJ인더스트리를 설립한 상태였으니까요. 그 500억 달러는 이미 형에게 큰돈이 아니었던 셈이죠.

인터뷰 대상이 다시 바뀌었다.

이번에는 전 직장 동료이자, 지금은 충실한 직장 직원인 하정태였다.

―사장님의 천재성은 H반도체에서 함께 일할 때 이미 전율을 느낄 정도로 맛봤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독립을 거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셨을 때, 주저 않고 따라나서기로 결정을 했죠. 덕분에 지금 제 인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한국 개발 시장에서는 최고의 조건으로 대우받으면서 일한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인가요?

―주4일제에 일일 근무 5시간, 시간 외 근무시 별도의 추가 수당,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좋은 조건이지요.

―와우, 그건 미국에서도 매우 좋은 근로 조건입니다. 혹시 연봉은 어떻게 되시나요?

―그걸 밝힐 수 없습니다만, 정말 만족할 만한 액수를 받고 있다고만 해두겠습니다. 아무튼 사장님은 천재일 뿐만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최고의 대우를 해주시는 분입니다.

인터뷰 대상은 계속 바뀌었다. 한국대 교수, H그룹 인사, SJ인더스트리 직원들 다양한 인물들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나온 대상은 스탠포드의 니트론 교수였다.

그는 다짜고짜 말했다.

―장담컨대 그는 세계 과학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업적을 남길 거요. 아니, 이미 남기고 있나?

아마 니트론은 그에 관한 평가를 식상한 표현으로밖에 묘사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휘에 한탄하며, 인터뷰를 끝냈을 것이다.

―그는 최고의 천재요. 나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미국 주요 매스컴에서는 한서진을 집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가 틈나는 대로 방영되었다.

미국 시민들은 그 방송을 통해 한서진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 수 있었고, 알면 알수록 놀라움을 거듭했다.

“SJ인더스트리 오너라고?”

“그렇다네. 지분 86% 이상을 갖고 있다나.”

“대단하네. 그럼 이미 가진 재산만 9,000억 달러쯤 되는 거 아니야?”

“SJ인더스트리 지분과 5nm공정 특허료로 받은 것만 합치면 그 정도쯤 되겠네.”

“5억 달러 상금은 그 사람한테 돈도 아니구나.”

이미 젊은 나이에 막대한 부를 이룬 사람. 하지만 미국 시민들은 오히려 크게 기꺼워했다.

그 재산이 오롯한 자신의 천재성으로 일궈낸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어린 시절에는 가난 때문에 대학은커녕 밥값을 걱정해야 했다는 사실에 다들 경악했다.

“대체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이기에 그런 천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4년이나 공장 근로자로 썩힌 거야?”

“아깝다. 만약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텐데.”

“그 사람에게 미국 명예시민권을 줘야 한다!”

“우리의 영웅을 데려오자! 아메리카로!”

가난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지금의 모든 것을 이뤘다는 것. 그리고 모든 사업 기반이 미국에 있다는 것은 미국 시민들에게 강한 동질감을 이끌어냈다.

한서진은 국적만 한국일 뿐, 이미 미국 시민이나 다를 바 없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열풍에 당황한 것은 한국 여론이었다.

국민들은 처음에는 미국 명예시민이 자국에서 나온다는 것에 자긍심을 품었다가, 미국 시민들의 애정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앗뜨거라 하고 놀랐다.

―한서진을 미국으로 데려가다니? 말도 안 돼! 그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다!

―한서진을 미국에 줄 수 없다! 정부는 대체 뭐 하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부 유출이다. 진짜 정부는 대체 손 놓고 뭘 하고 있는 거냐?

―서진이 형, 제발 미국에 가지 말아요!

미국 명예시민권은 말 그대로 명예로운 호칭이다. 일반적인 국적 변경하고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은 한서진이 미국 시민이 되는 거라고 오인했다.

미국 명예시민을 배출한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은 사라졌고, 국내 최고의 젊은 두뇌를 미국에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빠, 정말 미국 시민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전부 다 그렇게 말하던데.

송하나의 톡 메시지에는 궁금증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한서진은 답장을 보냈다.

―명예시민은 일반 시민권이랑 달라. 그리고 어차피 난 지금 사는 곳에서 계속 살 건데, 달라질 건 없어.

―전 오빠가 더 큰 나라에서 날개를 펼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도 충분해. 그나저나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네, 근데 요즘 오빠가 학교 안 오셔서 심심해요.

그러고 보니 송하나를 본지도 꽤 됐다.

그전에는 캘리포니아 대지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요즘에는 미국 명예시민 때문에 밖이 워낙에 시끄러워서, 여유를 내기가 어려웠다.

사무소에 출근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회사 빌딩에 기자들과 사람들이 진을 치고 대기 중이기 때문이었다.

직원들도 업무 수행에 차질이 심한 터라 한서진은 아예 유급 휴가를 주었다.

‘언제쯤 잠잠해질지, 원.’

정지원으로부터 살짝 귀띔을 들으니, 좀 더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백악관과 언론이 열심히 띄워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의회에서도 별다른 반대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승인은 문제없이 날 거라고 한다.

한번은 국무조정실에서 차관급 인사가 전화로 그의 의사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한서진이 생각하기에도 조금 어처구니없고,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혹시 미국으로 이민을 갈 생각인가요?」

황당한 한서진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반문했고, 상대는 말을 얼버무렸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별 소득 없는 통화 내용이었다.

국내 여론이 한서진의 ‘이중국적 문제’를 놓고 혼란스러워하는 와중, 미국에서 마침내 공식 발표가 났다.

―8번째 미국 명예시민 부여, 마침내 의회 승인!

비행기가 덜레스국제공항에 내렸다.

문이 열리고, 한서진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했다. 붉은 카펫이 길게 깔려 있고, 의전병들이 좌우로 사열된 채 엄숙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에서 플래쉬가 터졌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었다. 그들은 바리케이드를 뚫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 했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큰 함성과 경건한 군악 연주 속에 선 채, 한서진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수백 대의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가 지금 이 순간을 생생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 본 적이 없던 한서진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학교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을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게감이 압도했다.

“미합중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한서진은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TV에서나 보던 인물, 자신과는 평생 무관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권력자가 자신한테 악수를 청하고 있다니.

그는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레지던트.”

머릿속이 팽팽 돌며 어지러웠다.

이 경우 앞에 써를 붙여야 하나? 뒤에 붙여야 하나? 아니면 그냥 안 붙이는 건가? 어느 게 맞는 거지?

대통령은 환하게 웃으며 포옹을 했다.

“귀하의 크나큰 은혜에 미국을 대표하여 감사를 표합니다. 귀하는 앞으로 우리 미국의 영원한 친구이자 시민입니다.”

눈이 멀어버릴 듯한 플래쉬 세례가 사방에서 쏟아진다.

굉음에 가깝던 사람들의 환호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마치 청각이 마비되어버린 듯하다.

붉은 카펫을 대통령과 나란히 걷고, 준비 되어 있는 대통령 리무진에 탔다.

리무진은 백악관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카퍼레이드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도로 좌우에 도열한 채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한서진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미 대통령과 함께 대통령 전용차를 타고, 백악관으로 향하고 있다니.

“불편한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써.”

대통령이 뭐라고 말을 했고, 통역이 친절하게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서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통령께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부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부탁이면 정말 좋겠습니다. 미스터 한의 첫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군요.”

한서진은 어설프게 웃으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같이 셀카 좀 찍을 수 있을까요?”

대통령은 듣는 사람의 가슴까지 시원해질 정도로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물론이지요. 최고로 기쁜 부탁입니다.”

수많은 군중의 환호 속에, 의전 행렬은 마침내 백악관에 입성했다.

한서진은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걸린 의전실에서 대통령과 마주 보고 섰다.

실내 인물들은 얼핏 긴장한 듯이 보였다. 행사를 진행하는 백악관 직원들은 물론이고, 기자들도 굳은 얼굴을 한 채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두꺼운 검은 가죽으로 된 상자의 중심에는 붉은 천에 감싸인 암갈색 증서가 보였다.

「HONORARY CITIZEN'S DOCUMENT

United States of America

SIR HAN SEO JIN」

증서에는 엄숙한 미국 문양과 글씨가 금색으로 박혀 있었다.

고요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이 시민증이 담긴 상자를 두 손으로 쥐었다.

“나, 미합중국 대통령 클레튼 커린은 미국을 대표하여, 영원한 친교의 뜻을 담아 한서진 박사에게 미국 명예시민증을 드립니다.”

대통령이 상자를 두 손으로 건넸고, 한서진도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아들었다. 그는 상자를 한 손으로 옮겨 쥐고,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었다.

쉴 새 없는 플래쉬가 터지는 가운데, 그 역사적인 장면이 전 세계에 생생히 보도되었다.

8번째 미국 명예시민.

생전에 미국 명예시민권을 부여받은 세 번째 사람.

그리고 현재 살아있는 유일한 미국 명예시민.

악수한 손을 놓을 생각을 않은 채 환하게 웃는 대통령을 보고, 한서진은 이제야 비로소 실감이 났다.

============================ 작품 후기 ============================

천조국이 드디어 프로포즈에 성공했습니다!

노예에서 제후로 승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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