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21화 (221/609)

00221  카우보이의 프로포즈  =========================================================================

미국 명예시민.

미국국적이 없는 외국인 중 특별한 업적이 있는 사람에게 명예시민권을 부여한 사람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모두 7명이 받았으며, 그중 생전에 받은 사람은 겨우 두 명에 지나지 않고, 심지어 그 중 한 명은 영국 수상이다.

의회의 승인과 대통령의 동의가 필요하며, 미국이 외국국적의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다.

“저도 처음에는 캘리포니아 명예시민 뭐, 그런 거 말하는 줄 알았어요. 주지사가 선심 쓰듯이 주는 거요.”

“근데 그게 아니라 진짜로 대통령과 의회가 주는 ‘미국 명예시민’이라고 하네요. 엄청난 거죠. 진짜 받는다면 현재 생존해 있는 유일한 미국 명예시민이 되는 거잖습니까.”

“정말로 미국의 영웅이 되는 거죠.”

당황해서 하얗게 굳어 있던 한서진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진 예보 한 번 했다고 그런 명예로운 걸 쉽게 안겨줘요?”

“그 한 번의 예보가 캘리포니아를 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예보였잖습니까.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대탈주 작전 선언하고 미국 시민들이 얼마나 열광했는지 모르시는군요.”

“결과적으로는 아무 피해도 없었는데…….”

“걔들한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 제보가 결정적으로 옳았다는 게 중요하죠.”

캘리포니아 대지진, 나라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그 비극은 예보대로 일어났다. 덕분에 미국은 이틀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오직 그 점이 중요할 뿐이다.

‘이게 무슨…….’

한서진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정지원은 보안을 유지해도 미국이 지진 예보 제공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 거라 했다. 서둘러 확인을 해봐야했다.

통화가 이뤄지자마자 정지원은 인사 대신 엉뚱한 말부터 꺼냈다.

「축하한다.」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미국 명예시민 말이야. 미국이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인데, 네가 이걸 받는구나. SJ인더스트리는 앞으로 더욱 탄탄대로겠어.」

“그럼 미국은 제가 예보했다는 걸…….”

「당연히 이미 알고 있지. 내가 뭐라고 했어. 걔들이 알고 있을 거라고 했잖아.」

“윽.”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냥 받아 줘. 어차피 미국 시민의 권리나 의무가 따르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명예 호칭’이니까. 상장 하나 받는 거라고 생각해라.」

“이걸 어떻게 상장 같은 거에 비유합니까. 중고등학교도 아니고요.”

「야, 그래서 안 받을 거야?」

그 말에 한서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불필요하게 큰 관심은 별로 받고 싶지 않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가 품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국 명예시민은 단순한 관심이 아닌, 명예롭기 그지없는 칭호다.

「너도 욕심나는구나?」

“……솔직히 안 그럴 사람은 없잖아요.”

처칠 수상 같은 이가 받았던, 미국 명예시민.

심지어 자신이 받으면 살아있는 유일한 미국 명예시민이 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둘째 치고, 그 희소한 영예로움은 얼마나 짜릿할 것인가.

“그런데 겨우 지진 예보로 그런 걸 주는 게 가당키나 한가요? 저도 조금 조사해봤는데, 진짜 엄청난 사람들한테만 주었던 호칭이더군요. 저는 아무래도 자격이 안 될 거 같은데.”

「자격이 충분히 되지.」

수화기 너머로 정지원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나지막하게 웃음소리를 냈다.

「미국이 너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아끼는데, 명예시민권 부여는 충분히 가능하지.」

“그런가요?”

「그리고 하나 더, 우리 미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어. 국가 사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없던 영웅도 만들어내야 할 판이야.」

혹시 미국에서 어떤 언질을 들은 게 있는 걸까. 정지원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너라면 영웅이 될 수 있어.」

미국 명예시민권 부여.

그 국가적 논제를 놓고 전미가 뜨거운 토론의 장에 휩싸였다. 아니, 그것은 토론이라고 부르기에는 무가치했다.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명예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었으니까.

소수 애널리스트들은 그런 중요한 명예 호칭 부여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 않겠냐고 의견을 제기했지만, 흥분에 휩싸인 대중들의 비난에 시달렸다.

“미국의 은인에게 명예시민권을 부여하는 게 뭐가 어때서!”

“당연히 부여해야 한다!”

“우리 미국이 이렇게나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정작 후보자가 누구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르는 와중에 명예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외침만이 드높았다. CNN 등 대형 매스컴은 미국이 얼마나 영웅에 목말라 있는지를 강조하며, 백악관의 결정에 은근한 지지를 나타냈다.

공화당을 이끄는 매드칼 상원의원은 미국 전역을 휩쓰는 이 열풍이 불쾌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지진 전문가에게 영예로운 미국 명예시민권을 부여하자고? 아무리 대지진을 예보했다지만…….”

그는 백악관의 의도를 영웅에 목말라 있는 시민들을 달래주기 위한 정치적 일환으로 보았다. 그래서 더 용납이 어려웠다.

그 명예로운 호칭을 감히 민주당의 지지도 향상을 위해 남용해야 하다니, 언제부터 미국이 이런 비겁한 나라가 되었는가?

‘대지진을 예보한 공은 크다. 하지만 명예시민에는 부족해.’

대통령 자유훈장 정도면 충분할 텐데.

그는 공화당을 이끄는 거두로서 이번 명예시민권 부여를 저지할 생각이었다. 성난 군중의 역풍을 맞겠지만, 이것이 미국의 자존심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라 생각했다.

미국 명예시민, 그 고결함이 민주당의 정치적 이득과 대중의 변덕을 달래주기 위해서 더럽혀지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그렇게 벼르던 그는 부통령의 은밀한 방문을 받았다. 아마 의회 승인 절차에 앞서 사전 교섭을 위해서이리라.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백악관의 이번 결정에 몹시 황당한 감정을 느낍니다. 대지진을 예보한 공은 인정하지만, 명예시민을 받기에는 부족하오. 자유훈장이라면 모를까.”

매드칼 의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부통령을 더욱 압박했다.

“백악관이 언론과 여론을 은근히 부채질하고 있는데, 나중에 청문회에서 반드시 문제가 될 거요.”

“지진 예보자에게 미국 명예시민권을 부여하려는 근본적인 필요성은 국가 정치적인 목적 달성을 위함입니다.”

부통령의 덤덤한 말, 하지만 매드칼은 그 안에 담긴 묘한 뉘앙스를 읽었다.

“국가 정치적인 목적?”

“그렇습니다.”

“민주당의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란 말이오?”

부통령은 자신 있게 국가를 들먹였다. 매드칼은 그 점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체 자신이 모르는 무엇이 있기에?

“지금부터 보여드릴 것은 저와 대통령을 포함해서, 겨우 다섯 명만이 알고 있는 탑 시크릿입니다. 이 내용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미국 시민의 이름으로 맹세하겠소.”

매드칼은 덤덤히 맹세했고, 부통령은 봉인을 뜯어 안에 담긴 서류를 건넸다.

겨우 세 장의 서류를 읽어나가는 동안 매드칼의 눈에는 점점 핏발이 섰다. 마침내 서류를 완독한 매드칼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통령을 돌아봤다.

“그래서 ‘시티즌’에게 명예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혼인신고를 할 마음도 없이 사실혼에만 만족하는 미녀가 심지어 반지조차 안 끼고 다닙니다. 의원님 같으면 남자로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불안해서 두고 못 보지. 암, 그렇고말고.”

“사실혼이라 생각하는 것도 사실 우리 쪽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저쪽은 그저 가벼운 하룻밤의 연애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해했소. 그러니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거 아니오?”

정치적으로는 경쟁 관계, 그러나 국익이라는 대계 앞에 그것은 불필요한 갈등일 뿐이다.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소.”

“감사합니다.”

부통령은 그 자리에서 서류를 파기한 후 돌아갔다.

혼자 남은 매드칼은 위스키를 한 잔 따라 마시며, 천천히 눈을 감고 아까 보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SJ인더스트리의 주인이자, 악마견들의 아버지가 그 인물이었을 줄이야.’

태풍과 지진의 정확한 예측, 반도체에 관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해박한 천재성, 그 밖의 모든 요소와 미래성을 따진 그의 종합적인 가치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100배 이상.’

미국의 헤게모니를 100년은 더 연장시켜줄 주요 인물. 그런 인물에게 미국 명예시민권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

한서진은 페이 차일드의 방문을 받았다.

오랜만에 보는 그는 평소보다 더욱 자신을 조심스럽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명예시민에 관해 긍정적으로 보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최종 확답이 필요합니다.”

정지원을 통해서 들은 모양이다. 한서진은 가볍게 쓴웃음을 짓다가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시민으로서 권리나 의무가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그저 우리 미합중국이 귀하에게 드리는 최고의 존중과 명예라고 보시면 됩니다.”

“혹시 미국을 방문할 때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되겠죠?”

“비, 비자요?”

페이 차일드는 다소 당황했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미국을 방문해주신다면 어떤 번거로움도 없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영원히 귀빈 대우를 받으며 미국 어느 곳이든 자유로이 드나드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실 비자 받으러 대사관 드나드는 게 영 귀찮았는데, 이렇게 출입국 프리패스권을 주시는군요.”

물론 농담이었다. 그리고 페이 차일드도 그것을 알아듣고 미소 지었다.

“우선 귀하에 관한 소개를 어느 선까지 공개하는 게 좋을지, 가이드라인을 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귀국이 저에 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예민하기 그지없는 반문, 그러나 페이 차일드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까지도 미리 대비한 것이다.

“SJ인더스트리의 지분 86.5%를 보유한 L국의 에스코너가 귀하의 소유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비글, 슈나우저, 코카 스패니얼, 그리고 케르베로스를 개발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케르베로스의 자세한 성능은 알지 못하지만, 삼대 악마견에 비할 바가 없이 어마어마할 것이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한서진은 케르베로스의 성능이란 말에 침묵했다.

“그리고 삼대 악마견 반도체에는 제5의 힘에 관한 귀하의 독창 이론이 적용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페이 차일드는 이것저것 미국이 자신에 관해 알고 있는 리스트를 말해주었다.

‘나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서진은 오히려 안심했다.

‘타르타로스의 정확한 성능과 그 꿈에 관해서는 전혀 몰라.’

명예시민권을 받음으로써 자신과 미국은 두터운 결속을 맺을 수 있게 된다.

“케르베로스는 안 됩니다. SJ인더스트리가 제 소유라는 것까지는 밝혀도 괜찮을 듯하군요.”

“알겠습니다.”

SJ인더스트리의 오너라는 게 밝혀지면 필연적으로 에스코너까지 닿게 된다. 하지만 공론화하지 않는 이상 크게 부각될 일은 없을 것이다.

페이 차일드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준비를 하겠습니다.”

“미국의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CNN 등 대형 매스컴에서 나온 보도 발표가 전미를 뒤흔들었다.

캘리포니아 대지진을 예측한 미국의 영웅이 바로 한국에서 재학 중인 대학생이라는 것이었다.

그 믿을 수 없는 내용에 미국이 술렁이는 것은 물론,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한국은 나라 전체가 뒤통수를 맞았다.

“캘리포니아 영웅이 우리나라 대학생이라고?”

“말도 안 돼. CNN이 미친 거 아니야?”

한국에 미국 명예시민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전 세계가 혼란의 와중에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미국 매스컴은 다시 한 번 불을 질렀다.

「미국을 구원한 영웅, 그는 놀랍게도 한국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500억 불의 자산가이자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 SJ인더스트리의 오너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심지어 그는 캘리포니아 대지진에 앞서 비공식적으로 태풍 메기의 경로를 정확히 예측한, 세계 최고의 재해 전문가라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한국이라는 조그만 웅덩이에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이 반지를 받아주오!”

“집에 거의 안 들어갈 건데?”

“그래도 좋으니 받아만 주오!”

“살림, 육아, 소득 활동, 집안 행사, 일절 안 할 건데?”

“그래도 좋으니 받아주시오!”

“필요할 때면 집안 재산 빼다 쓸 건데?”

카우보이는 그래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됐고, 그냥 반지를 받아줘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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