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20화 (220/609)

00220  카우보이의 프로포즈  =========================================================================

“이 판이 땅이라 생각하고, 위에 놓인 블록들을 건물이라고 생각해보죠. 땅이 이렇게 흔들리면 블록들은 이렇게 넘어집니다.”

마우스를 클릭하자, 모니터 속의 판이 좌우로 세게 흔들리며 블록들은 순식간에 넘어지며 어지럽게 쌓였다.

“그러나 판뿐만이 아니라 동일한 진폭만큼 블록도 함께 흔든다면, 아무리 흔들려도 이렇게 멀쩡하겠죠.”

마우스를 다시 클릭했다.

이번에는 모든 블록들이 판과 똑같은 진폭으로 흔들렸고, 당연히 아무리 세차게 흔들려도 넘어지거나 형태가 무너지지 않았다.

“물론 땅은 하나의 판으로만 구성된 게 아닙니다.”

이번에는 수십 개의 판이 떠오르며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면을 붙이며 자리를 잡았다.

“일반적인 지진은 이 수십 개의 판, 즉 연결된 땅덩어리를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흔들어 버리죠.”

나란히 붙어 있던 수십 개의 판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부딪치며 일그러져 버렸다. 당연히 그 위에 쌓인 블록도 엉망진창으로 흩어지고, 넘어졌다.

“그러나 모든 판과 그 위에 올린 모든 블록에 동일한 방향, 동일한 진폭으로 힘이 가해진다면 이렇게 되겠죠.”

수십 개의 판은 동일한 속도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위에 올린 블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판은 서로 부딪치지도 않았고, 블록들은 넘어지지 않았다.

참지 못한 누군가가 물었다.

“그게 캘리포니아 대지진이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거의 피해가 없었던 이유입니까?”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현실성이 있는 이야기인가요? 캘리포니아 전 지역에 그렇게 힘의 방향이 정확하고 균일하게 퍼져 나가는 게, 과연 자연적으로 가능한 일입니까?”

지진 연구소 박사는 기자의 질문에 차분히 반문했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32살입니다만, 왜 물으시는지?”

“당신이 100세까지 산다고 치고,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매주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

“그보다 훨씬 더 가능성 낮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기자는 숙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명쾌한 비유에 감사합니다. 단번에 이해됐습니다.”

“불가능하다, 제로에 한없이 수렴하는 확률이다, 뭐 그런 재미없는 설명보다는 훨씬 낫죠?”

기자들 사이에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큰 상처가 서부 땅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미국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음을 되찾았다.

세계 최강대국이 지닌 여유였다.

지진 연구소 인터뷰를 본 사람들은 피해가 없었던 이유에는 어느 정도 납득했다. 기적의 원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어렴풋하지만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저명한 전문가도 기적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왜 일어났는지 규명이 불가능하기에 기적인 겁니다. 그걸 설명할 수 있다면, 이미 기적이 아니죠.”

흔들리는 차량 대시보드의 구슬들이 본드로 붙인 것처럼 거의 움직이지 않는 동영상은 지진 연구소의 설명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되었다.

그 동영상은 무려 10억이 넘는 이들이 감상했고, 동영상 제공자는 광고 수입으로 하루아침에 큰돈을 벌었다.

큰 절망이 멈추면, 큰 희망이 솟아난다.

샌프란시스코 구조 작업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이전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쏟아졌다.

전미에서 수만 명이 넘는 자원 봉사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생존자 수색에 나섰다. 후원금도 그전보다 몇 배 이상으로 모였다.

구조 작업에 본격적인 불이 붙으면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람들이 간간이 발견되었다. 생존자가 실려 나올 때마다 미국 시민들은 TV를 통해 함께 기뻐하며, 그 인내에 경의를 표했다.

물론 생존자 이상으로 많은 사망자가 나왔지만, 그래도 시민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엄숙히 애도를 보내면서도, 내일을 향한 희망을 꺼뜨리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시민 여러분의 힘을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존 캐롤 의원은 구조 작업에 심혈을 쏟으면서도 틈틈이 후원을 호소하는 영상을 내보냈다. 그는 이번 지진을 통해 넘을 수 없는 인지도를 단숨에 쌓아올렸다.

공화당도 구조 및 후원 홍보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었으나, 극적으로 구출되고 또 오랜 현장 경험으로 구조 활동에 임하는 그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이미 미국 시민들에게 있어 큰 영웅이었다.

‘타르타로스, 어떻게 된 거냐.’

자신이 짠 에테르 제어 프로그램은 지표면을 향하는 에테르 에너지를 지하 등 안전한 방향으로 틀어버리는 것이었다. 에너지를 막기보다는, 그 방향만 살짝 돌려버린다는 개념이다.

그래서 지표면에 지진파가 미쳤을 때, 그는 틀렸다고 직감했다. 성공했다면 지표면에는 영향이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에테르 충격파, 대기권 밖으로 방출 성공.

한서진은 주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로그를 확인한 결과 그는 어떻게 된 건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타르타로스는 에테르를 억누르거나 비껴가게 한 게 아니라, 그저 위로 흘려버린 것이다.

지상의 모든 것이 흔들렸지만, 흐름을 동일화시켰기에 오히려 피해는 없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흐름이 어긋났다면 대참사를 피하진 못했을 것이다.

‘왜 내 명령대로 하지 않고? 아니,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지만……. 혹시 내 명령대로 하면 실패율이 높아서 자의대로 판단한 건가?’

어쨌든 많은 사람들을 구했으니,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뿌듯한 보람감이 가슴을 가득 메웠다.

정지원을 제외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테지만, 뭐 어떤가.

많은 사람들을 구했고, 타르타로스의 놀라운 성능도 또 한 차례 확인했다.

나라를 붕괴시킬 수도 있는 대지진을 거뜬히 막아내다니. 그것도 거의 피해 없이.

‘마치 꼭 신이라도 된 기분이야.’

신이 된 듯한 이 뿌듯함. 그 덕분에 사람들이 자신의 공적을 알지 못하더라도 서운하지 않았다.

타르타로스만 있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 더 연구해야 해. 에테르, 그리고 타르타로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아무리 마셔도 가라앉지 않는 갈증이 났다.

한서진은 이 모든 비밀을 쥐고 있는, 그 꿈속의 나라의 모습을 떠올리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미국은 역시 미국이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참사의 절망을 캘리포니아의 기적으로 이겨내며, 오히려 국가 사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대참사에도 불구하고 시민, 정치인들은 화합을 하며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나라들은 그런 미국의 모습에 경의를 품고, 부러워했다.

함께 극복을 이겨낸 덕분인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는 인종, 종교, 성 차별 의식이 비약적으로 줄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주민의 무사 탈주를 함께 빌어둔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대위기는 오히려 갈등 해소와 화합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구조 작업이 궤도에 올라 안정될 때 즈음, 억누르고 있던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백악관은 어디서 지진 예고 정보를 얻었나?

애널리스트들이 본격적인 관심을 드러냈다.

그 어떤 지진 전문가도 캘리포니아 대지진을 예측하지 못했다. 헌데 백악관은 마치 미래를 미리 본 것처럼 작정하고 대대적인 주민 소거 작전을 실시했다.

만약 기적이 없었으면 캘리포니아는 나라 존속이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백악관은 그런 대재앙을 미리 알고, 모든 힘을 동원하여 소거 작전을 실시했다.

덕분에 ‘어떻게 알았나?’하고 의문을 사면서도, 그 훌륭한 결단력에 많은 시민들이 감명을 받았다.

“역시 미합중국의 대통령이다.”

그런 칭송과 의문이 백악관으로 쏟아졌고, 캘리포니아 정치인들을 설득하러 다녔던 크렘 회장은 수많은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시달려야 했다.

“난 외국의 뛰어난 과학자로부터 캘리포니아 대지진 예측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전부입니다.”

“크렘 회장님! 그 과학자가 대체 누군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건 말해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원하지 않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미국 시민들을 미칠 듯한 궁금증에 빠뜨렸다. 대체 어떤 저명한 ‘지진 전문가’가 미국에 그런 축복을 베풀었을까?

얼굴도, 이름도 모를 ‘지진 전문가’를 향한 미국인들의 관심과 애정이 뜨겁게 전미를 달궜다.

캘리포니아를 연고로 하는 어떤 메이저리그 스타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안다면 자신의 올해 연봉을 전부 바칠 거라 약속했다. 그 공약은 SNS를 타고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미국은 지금 영웅에 목말라 하고 있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다독여줄 영웅을 필요로 한다.

영웅에 갈증 난 미국, 딱 그 말대로였다.

시민들은 영웅을 필요로 했다. 존 캐롤만으로는 그들의 갈증을 채워줄 수 없었다.

자칭 네티즌 수사관이라는 이들이 나서서 그 지진 전문가가 누구인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조사비용을 후원하자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후원금이 충족되기도 했다.

어느 헐리우드 톱스타가 이런 공약을 내걸었다.

“그 영웅이 누군지 알려준다면 1천만 달러의 사례금을 주겠소.”

헐리우드 영화 제작사들은 그 영웅을 찾아 캘리포니아의 기적을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며 난리법석이었다.

메이저 언론에서도 빠뜨리지 않고 이름 모를 영웅의 존재를 다루었다.

―미국의 메시아를 찾아라!

그렇게 전미가 영웅을 찾아 끓어오르고 있을 때, 드디어 백악관에서 굳게 닫힌 입을 열었다.

한편 미국이 ‘히어로 러쉬’의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줄 알 리 없는 한서진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슬쩍 들어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캘리포니아 대지진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지진파가 그런 식으로 발동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현상이라니까.”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잖아. 그걸 왜 네 이론적 틀에 맞춰서 따지려고 해? 그냥 본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나?”

“그 코르발이라는 지진 박사,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설명이랍시고 내놨잖아. 내가 인터뷰 읽으면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니까. 이과로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어떻게 용납해.”

“그놈의 이과 타령은.”

몇 몇 직원들이 쉬는 시간을 빌려 캘리포니아 지진 사건 토론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단순히 기적의 메커니즘 규명을 떠나, 대지진을 예보한 전문가가 누구인지, 그를 향한 미국인들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등을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누가 예고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 정체가 알려지기만 하면 돈방석에 앉겠네.”

“미국 부자들이 그 사람한테 바치겠다는 성금 다 합치면 벌써 5억 달러가 넘지 않았나?”

“나 같으면 당장 냉큼 나라고 밝히겠다. 아, 백악관하고 비밀 유지 약속이 되어 있나?”

한서진은 쿡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정체가 알려지면 돈방석에 앉을 거라니. 이 무슨 개그란 말인가.

“아, 대표님도 있으셨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재미있게 듣고 있었어요.”

“사실 대표님한테야 5억 달러는 큰돈이 아니겠지만, 지진 연구자한테는 어마어마한 상금 아닙니까. 저도 누군지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예보 좀 해주고 그러면 좋을 텐데.”

한서진은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글쎄요. 의외로 돈이 별로 궁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죠. 알고 보니 사실은 지진 연구자가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에이,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정확한 예보를 합니까. 틀림없이 일본 쪽 저명한 지진학자일 거예요.”

한서진은 순간 의아했다. 왜 하필 구체적으로 일본이라 언급한 걸까?

“일본이요?”

“미국 언론에 떴는데, 그 사람이 아시아 사람일 거라는 말이 나돌고 있어요. 그래서 일본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 나라는 지진 전문가가 넘쳐나는 곳이니까.”

“아하, 그렇군요.”

왠지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던 때였다.

“미국명예시민권 받고, 진짜 역사에 길이 남겠네요. 통과된다면 유일하게 살아있는 미국명예시민이 되는 거잖아요. 정말 엄청나네.”

“네? 미국명예시민이라고요?”

“지금 대통령이 영웅에게 미국명예시민권 주자고 발의해서 미국 전체가 매우 뜨겁습니다.”

한서진은 우뚝 굳었다.

============================ 작품 후기 ============================

“당신이 100세까지 산다고 치고, 오늘부터 죽을 때까지 매주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음…… 100%?”

“저기, 잠시만요. 누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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