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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18화 (218/609)

00218  희망의 충격파  =========================================================================

대피난 작전이 시작되었다.

미군은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피난을 도왔다. 수송기와 헬기가 쉬지 않고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민간 차량 징발은 물론, 군용 트럭과 장갑차까지 동원해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작업이었다.

캘리포니아는 한 개의 나라다. 나라 전체 시민들을 이틀 안에 옮긴다는 것은, 아무리 미국이 대국이라 해도 버겁기 그지없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대피 작업을 도왔다.

그렇다고 무너진 샌프란시스코를 외면한 것도 아니었다. 그쪽 지역에도 가능한 인력을 투입하여, 최후까지 생존자 수색에 몰두했다.

“대지진이 온다고?”

“샌프란시스코는 전진일 뿐이란 말이야?”

“말도 안 돼.”

많은 사람들이 그 무서운 진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이들조차 대통령의 말을 믿고, 따랐다.

“의원님, 이제 그만 피난길에 오르셔야 합니다.”

“아직 하루 넘게 시간이 있어! 내일 떠나도 충분해! 지금도 붕괴한 건물에 매몰된 생존자들이 있다!”

존 캐롤은 마지막까지 현장 구조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부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보유 헬기를 피난 작업을 위해 미 공군에 내놓았다.

온 나라가 모든 힘을 쥐어짜내, 캘리포니아 대탈주 작전을 거들었다.

펜타곤 상황실.

애슈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 장성들은 심각하게 대피 현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미군은 외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즉각적이고 최소한의 전력만 보존한 채, 모든 병력을 캘리포니아 피난 작업에 투사하고 있었다.

심지어 동부 해안에 있던 항모 전단들은 전투기 대신 수직이착륙기, 헬기만 잔뜩 싣고 서부 해안으로 이동 중이었다.

예고대로라면 그들 전단이 이동하기 전에 지진이 발생하겠지만, 지진 도중 혹은 이후에도 헬기는 구조 작업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1% 정도 주민 소거에 완료했습니다.”

“느려, 너무 느려. 이래서야 카운트다운 전까지 20%나 대피시킬 수 있겠나?”

“그런데 정말 지진이 올까요? 어느 지진 연구소에서도 그런 결과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백악관만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

누군가가 제기한 의문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그 말대로, 지진 연구소에서는 백악관의 이번 발표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분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백악관은 예보 출처가 어디인지 공개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의 직접 성명 발표, 그리고 캘리포니아 대탈주 작전 때문에 잠잠할 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의문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대체 백악관은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나, 하고.

“주식 재벌 크렘 회장이 캘리포니아 주정부에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는 들었지만…….”

“그럼 크렘 회장의 말을 믿고?”

“백악관이 왜? 크렘 회장은 지진 전문가도 아니잖소.”

의문을 걷어낼수록 그 자리에는 의혹만 쌓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의문에 갈팡질팡할 때가 아니었다.

‘예측이 틀리면 오히려 좋은 거지.’

애슈틴 장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진을 넘어서는 강대한 지진이라니.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리 피난을 서둘러도 모두 대피시킬 수 없다. 시뮬레이션 전문가들은 1/4만 피난시켜도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시간,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전대미문의 피해가 예상되는 규모, 차라리 예측이 틀리기를 기도했다.

그날 밤, 백악관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다. 상황실은 불이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말 규모 10에 가까운 대지진이 온다는 거요? 앞으로 하루 안에?”

대통령은 본인이 성명 발표까지 했으면서 좀처럼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정확히는 믿고 싶지 않은,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OC(Overseas citizen)는 이미 태풍 메기 때 놀라운 예측율을 보였습니다. 그 뒤로 재해 예측 시스템을 더욱 다듬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어떤 계측 장비도 없이…….”

“기존 관측 데이터를 다른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놀라울 만큼 정교한 예측이 가능해지는 거죠. 만약 OC에게 제대로 된 관측 설비를 갖출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보다 더 일찍 예측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Overseas citizen.

백악관에서 한서진을 가리키는 코드네임이다. OC, 혹은 ‘시티즌’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미 시티즌은 한 번 정확히 재해를 예측한 바 있습니다. 그것도 조악하기 그지없는 관측 데이터로만, 말이죠.”

시티즌.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반도체 설계자이자, 가장 고성능 수퍼컴퓨터를 갖고 있는 인물.

“시티즌의 개인 수퍼컴퓨터가 어느 정도 성능인지는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만, 태풍 메기의 예측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이 대지진 예측을 했다.

어떤 과정으로 그런 결과 예측에 도달했는지까지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그의 예측을 웃어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번만큼은 부디, 시티즌이 틀리기를…….”

최악을 대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니면서, 그 예측이 부디 빗나가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현재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됐다!”

초췌한 몰골로 주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한서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일어섰다. 턱밑에 까끌까끌한 수염이 느껴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시뮬레이션을 돌릴 차례야.”

그는 밤새도록 마력 칩셋의 회로를 개조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결코 순탄하지 않은 일이었다. 마력 칩셋의 회로는 그가 이해하기에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미지 그 자체였으니까.

일부러 마력 칩셋 회로를 훼손해서 그린 뒤, 통찰안으로 새로운 수정안을 관찰한다.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여, 조각난 데이터를 모아 타르타로스를 이용해 다른 패턴을 조합해낸다.

이 과정에 지진파 경로 분석 함수 방정식이 필수로 들어갔다. 마력 칩셋의 변경된 회로, 그리고 기존 지진파 관련 공식. 이것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제3의 회로를 고안해내고자 한 것이다.

무수한 빅데이터 속에서 무차별적인 데이터 충돌을 일으켜, 올바른 정답을 뽑아내는 방법.

발상 자체부터 무식하다. 해변의 무수한 모래알을 하나하나 일일이 뒤져 황금 가루알을 찾아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타르타로스의 놀라운 연산 속도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을 가능케 했다.

그는 완성된 회로도를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결과는 금방 나왔다.

「성공확률 22%」

“22%…….”

기대했던 것보다는 낮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22%의 긍정성이 부여된 것 아닌가.

한서진은 숨을 고르다가 퍼뜩 깨달았다.

“됐는데, 다 됐는데…… 젠장!”

마력 칩셋을 어떻게 미국까지 운반한단 말인가?

예측 시간까지는 이제 9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그 시간 안에 미국에 도착해서, 마력 칩셋을 세팅한다고?

“시간, 시간이 부족해. 제길!”

거시적 규모에서 능동적으로 에테르를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힘들게 찾아냈다. 지진의 피해 감소에 성공할 가능성이 무려 22%나 된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을 눈뜨고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그 순간 한서진은 다른 방안을 떠올렸다.

‘잠깐! 꼭 여기서 마력 칩셋을 운반할 필요는 없잖아?’

캘리포니아로 회로도를 전송해서, 그곳에서 미스릴에 회로를 직접 새겨 넣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한서진의 낯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협력자……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그의 머리에 곧 두 사람이 떠올랐다.

한 명은 두말할 것 없는 정지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니트론 교수.

정지원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니트론 교수도 오리할콘 제조법에 관해서는 숨겼지만, 그래도 이 부분에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누구보다 미국 시민의 희생을 원하지 않을 테니.

‘누구, 누구로 하지?’

신뢰만으로 치면 정지원이다. 그러나 니트론 교수는 실력 면에서 좀 더 확실하다.

1분이 귀할 때였다. 한서진은 금방 마음을 정했다.

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캘리포니아는 미처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캘리포니아를 벗어나는 데는 사실 몇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그것은 도로 상황이 평범할 때나 그렇다.

지금처럼 캘리포니아의 모든 주민들이 쏟아져 나와 도로가 미어터지는 상황에서는, 몇 시간 안에 주를 벗어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예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펜타곤 상황실은 불난 집처럼 다급하게 돌아갔다.

“현재까지 피난 완료율은 얼마나 되나?”

“약 22% 정도입니다!”

“젠장! 너무 적어! 이제 곧 예고 시간이 다가오는데!”

백악관의 예측이 정말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지진 예보가 정말로 실현될까?

애슈틴 장관은 차라리 백악관이 루머에 넘어가 경거망동한 것이길 빌었다. 약 3,04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아직도 주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백악관이 대국민 몰카쇼였다며 조크를 해도 오히려 기분 좋게 웃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에 대통령이 은퇴하면 SNS에 악플은 달겠지만.

캘리포니아 거리는 더욱 처참했다. 막힌 도로에는 차에서 빠져 나와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의 비명으로 가득했다.

“망할, 30분도 안 남았어!”

“진짜 곧 지진이 온다는 거야? 그럼 우리를 여기 이렇게 두면 안 되잖아!”

“헬기, 헬기는? 왜 안 보여!”

미군은 헬기와 수직이착륙기를 동원하여, 마지막까지 대피를 돕고 있었다. 그러나 3,000만 명이 넘어가는 숫자 앞에서 그런 노력은 마치 무용지물처럼 보였다.

“대통령은? 대통령 성명은 없어?”

“뭐라고 말 좀 해봐!”

정말 지진이 오는 거냐고, 불안감에 빠진 이들은 발을 동동 굴러댔다.

만약 대통령의 성명이 맞다면, 이제 와서 피난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악이 가득한 도로 위에서 갑자기 소음이 뚝 끊겼다.

“…….”

“…….”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정적 속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크리틴, 방금 느꼈지?”

“엄마도요?”

“나, 나 느꼈어. 분명, 방금…….”

쿠웅!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하고, 뚜렷하게 느껴졌다.

피난민들의 안색이 약속이라도 한듯 창백해졌다. 그들은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그 진동을 자신만이 느낀 게 아니라는 것을.

쿵! 쿠우웅!

강도는 약하지만, 깊은 울림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진다.

그건 마치 땅속 깊은 괴물이 대지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기 전, 느긋하게 입을 벌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대디! 대디!”

“맘!”

“지, 지진이다! 지진이야!”

공포에 질린 비명은 마치 본격적인 교향 연주를 알리는 서막곡 같았다.

짧은 변주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대지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대륙의 모든 지진계 바늘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 작품 후기 ============================

콩이시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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