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17화 (217/609)

00217  희망의 충격파  =========================================================================

“진짜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고?”

한서진은 망연자실한 채 타르타로스의 계산 결과를 확인했다.

샌프란시스코를 무너뜨린 강진이, 사실은 본진에 앞서 온 전진이라는 것이다.

규모 8.0이 넘어가는 그 강진이, 겨우 서막에 지나지 않는다니. 두 주먹에 소름이 돋았다.

한서진은 샌프란시스코 구조 영상을 확인했다.

어느덧 안정권에 접어든 구조 작업은 착실하게 생존자를 구출하고, 사망자를 수습했다.

생존자보다는 사망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대지진, 그럼에도 미국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존 캐롤이라는 등불이 밝게 빛나 오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등불을 꺼뜨릴 폭풍이 곧 온다.

‘앞으로 43시간.’

이틀이 채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규모는…….

「진짜냐?」

정지원이 심각한 어조로 되물었다. 한서진의 말에 거의 태클을 걸지 않는 그가 한 번 더 확인한 것이다. 그만큼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예, 43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적어도 제 계산은 그렇습니다.”

「규모 10 이상이고?」

규모 10,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수치.

샌프란시스코를 넘어서, 캘리포니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규모다. 인간이 지금껏 거의 경험해본 적 없는 재해라 할 수 있다.

정지원은 어떻게 그런 정확한 예측이 가능했는지 묻지 않았다.

이미 한서진은 케르베로스로 자체 제작한 개인 컴퓨터를 이용해 태풍 메기의 정확한 경로를 예측하지 않았던가.

“사실 저도 정확한 규모라고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무슨 말이야?」

“제가 계산한 것은 지진의 운동 에너지 양이라서요. 그걸 국제 지진 표시 기준으로 치환을 한 겁니다. 오차 범위를 고려하면 규모 10보다 더 약할 수도, 더 강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가능성 높아?」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원 지점을 아직 정확히 특정하지 못해서요.”

「…….」

“확실한 건 저번의 강진보다는 훨씬 강하다는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한숨을 쉬는 게 느껴졌다. 정지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알겠어. 중요한 자료와 설비를 빨리 챙겨야겠네. 행정부에도 어서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할 테고.」

이 순간, 두 사람은 완전히 똑같은 고민을 했다.

“믿을지나 모르겠군요.”

「과연 믿어주기나 할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한서진은 전화를 끊고, 눈을 감았다. 미약한 떨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정지원에게 예측 결과를 말해줬으니,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 적어도 다짜고짜 세상에 대고 떠들어대는 것보다는 미국이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차라리 내가 틀린 거면 좋겠네.’

눈을 뜬 그는 한숨을 쉬며 타르타로스를 주시했다.

하지만 타르타로스는 틀리지 않는다. 태풍과 산불, 그 두 가지 재해를 완벽하게 예측했다.

만물을 움직이는 힘, 에테르 그 자체를 분석하여 결과를 내놓기에, 틀리지 않는다.

‘방법이 없을까?’

태풍 메기가 하루 일찍 떠났을 때, 타르타로스를 의심했다. 녀석이 에테르에 어떤 작용을 해서 태풍을 조기에 쫓아낸 것은 아닌가 하고.

에테르를 분석할 수 있다면, 반대로 에테르에 영향력을 가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발상에서 얻은 의심은, 아직 그의 안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산불 때처럼 방법을 찾아낼 순 없나?’

타르타로스가 보여준 기이한 회로, 그것을 미스릴에 새겨서 만든 마력 칩셋. 당시 그것을 산불에 던져 넣자 에테르를 머금은 폭우가 내리며 산불이 손쉽게 진압되었다.

‘대체 어떤 원리로 불을 끈 걸까?’

에테르를 머금은 산불은, 마력 칩셋이 불러온 에테르 스톰을 맞고 꺼졌다.

그러나 그 후에 수도 없이 재현을 시도했지만, 마력 칩셋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서진은 한동안 마력 칩셋 연구에서 손을 놓았다. 성과가 없으니 지친 것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이틀도 안 되게 남겨놓은 지금, 그는 마력 칩셋을 다시 꺼내서 관찰에 집중했다.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차분히 생각했다.

‘여기에 새긴 회로는 에테르를 제어하는 일종의 명령어 코딩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다면 그 명령어가 담고 있는 진의는?

‘보여 다오. 제발!’

한서진은 눈을 부릅뜬 채 마력 칩셋, 그리고 그때 새겨 넣은 회로 문양을 주시했다.

지구상의 누구도 의미를 알지 못할 기괴한 문양, 그것을 부숴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제발! 제발!’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때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문양에 담긴 의미를 꿰뚫어보기에 통찰안의 힘이 아직 미숙한 것이다. 아니면 이 문양이 담고 있는 지적 수준이 그만큼 높던가.

고대인이 컴퓨터 게임기 사용법을 배울 순 있어도, 그 구성 원리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는 통찰안을 누그러뜨린 채, 숨을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을 해보자. 마력 칩셋이 발동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점은?’

바로 에테르를 머금은 산불의 존재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간단하게 인과관계를 소거해나가던 한서진은 가정 하나를 떠올렸다.

‘혹시 일회용이 아니라…… 에테르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명령어인 건가?’

에테르 스톰을 일으켜 산불을 끈 게 아니라, 산불이 머금은 에테르를 폭풍우로 바꿔버린 거라면?

선후가 완전히 뒤바뀐 인과관계다. 한서진은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고찰했다.

‘에테르가 제5의 힘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자연계의 근원이라고 가정한다면…….’

지진파도 에테르의 분출일 뿐이다. 운동 에너지를 구성하는 것도 결국 에테르일 뿐.

에테르 산불을 진압했듯이, 지진도 마력 칩셋으로 억누르는 것이 가능할까?

‘세상에…….’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몸이 오싹 떨렸다. 어느새 손에는 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작은 발상, 하지만 한서진은 그 안에서 믿을 수 없이 큰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어느덧 주모니터 앞에 앉았다. 키보드를 타이핑하며, 타르타로스에 명령어를 입력했다. 손가락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사람의 표정, 그에 동조하듯 타르타로스를 감싼 에테르의 흐름도 묵직하면서도 거대한 파동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크렘 회장은 차분히 반문했다. 확인을 요구하지만, 의구심을 품고 있지는 않은 말투였다.

정지원이 작년 태풍 때 일본 선물 시장에서 거액을 벌었다는 것은 이미 미국 금융가에서도 유명했다. 그는 태풍이 어떻게 움직일지 미래를 내다본 것처럼 신속히 움직였고, 그 덕분에 4,000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그 덕분에 월가에 은밀히 소문이 돌았다.

정지원이 놀라운 성능의 날씨 예측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월가의 금융경제인 사이에서는 미신처럼 떠도는 소문이지만, 크렘 회장에게는 소문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정보였다.

“사실입니다. 그러니 철저히 대비를 했으면 합니다.”

「규모 10에 걸치는 대지진이 샌프란시스코에 일어난다고요? 더 이상 샌프란시스코의 문제만이 아니군요.」

미국은 수십 개 국가의 연합체, 규모 10은 이는 자칫 서부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을 만한 대재앙이다.

「미스터 한이 구축한 예보 시스템은 날씨만이 아니라 지진까지도 예측이 가능한 겁니까?」

“전에도 그랬듯이, 그 질문에 저는 직접적인 대답을 해줄 순 없습니다.”

「그럼 다른 걸 물어보지요. 귀하는 이 지진 정보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습니까?」

“99%.”

「…….」

“인간은 실수를 하는 법이니 1%의 여지는 남겨두지요.”

인간이기에 99%일 뿐, 신뢰하는 마음 자체는 100%이다. 그런 강한 믿음이 담긴 말에 크렘 회장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역시 귀하가 허튼소리를 하는 인물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증명하셨지요. 그러나.」

지금처럼 서론이 길다는 것은 좋지 않은 느낌을 주곤 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보겠습니다만, 과연 주정부가 얼마나 믿어줄 지는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귀하도 알다시피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인간은 받아들이기 힘든 커다란 진실을 외면할 때가 있다.

심지어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난다는 예고. 그것을 누가 진지하게 믿어줄 것인가.

미국 최고의 투자 재벌, 크렘 회장의 명예와 권위를 빌린다 해도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저는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할 뿐입니다.”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저 역시 노력해보겠습니다.」

크렘 회장은 연방 정부, 캘리포니아 주정부 등 가용한 인맥에 남김없이 전화를 돌렸다.

이틀 안에 더욱 큰 지진이 올 가능성이 있으니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게 좋겠다고. 물론 그들은 하나같이 반문했다.

“증거가 있습니까?”

“어느 연구소에서 내놓은 예측이죠?”

“다른 연구소에서는 그런 말이 없던데요?”

그들은 크렘 회장의 말이라 해도 쉽사리 믿지 않았다.

지진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아직 인간에게 어렵다. 심지어 더 큰 지진이 이틀 안에 온다니, 그것은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도 지금 즉시 구조 작업을 멈추고 대피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진 여파를 덜 받은 캘리포니아 다른 지역은 아직 정상적으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주지사는 그들을 모두 대피시켜야 한다는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확실한 근거 없이 구조 작업을 중지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매몰자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렘 회장의 이름값으로도 설득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전화를 끊으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답답한 감정이 가슴을 맴돌았다.

‘차라리 99%가 아닌 1%가 맞아떨어지기를 바라야 하나.’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비서가 다급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회장님, TV를 켜겠습니다.”

“무슨 일인가?”

“지금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직접 성명 발표를 한답니다.”

이 시기에 갑자기 대통령이? 투자회사를 운용하는 그에게는 놓쳐선 안 되는 정보다. 그는 급히 TV를 켰다.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예정에 없던 긴급 성명 발표였다. 과연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존경하는 미합중국 시민 여러분, 저는 미합중국 대통령 클레튼 커린입니다.」

무겁기 그지없는 낯빛, 아마 지금 전미는 무거운 침묵에 싸여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연방 정부는 미군을 포함한, 동원 가능한 모든 행정력을 쏟아 부어 캘리포니아 전 주민 대피 작전을 실시할 것입니다. 이미 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크렘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연방 정부에 있는 인맥에도 언질을 주긴 했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주정부 인사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헌데 백악관이, 그것도 대변인이 아닌 대통령이 직접 나설 줄이야.

「앞으로 46시간 안에 샌 안드레아스 단층에 지금껏 없었던 대규모 지진이 온다는 분석 결과가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며칠 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은 그 서막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미합중국의 정의와 질서를 수호해야 할 대통령의 임무를 띠고,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대통령은 카메라를 똑바로 주시하며, 힘 있게 말을 이었다.

「캘리포니아 시민 여러분, 즉시 대피하십시오. 국가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캘리포니아. 그 넓은 땅의 주민들을 이틀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대피시킨다는 것.

백악관이 그 터무니없고 불가능해 보이는 결정을 굳히는 데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판사님, 실탄프로덕션은 국가 행정력의 위대함을 찬양하기 위해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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