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16 악몽의 샌프란시스코 =========================================================================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어마어마한 재산, 인명 피해를 낳은 참사 와중에서도 한 줄기 밝은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바로 존 캐롤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구조 이후에도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자신의 두 발로 뛰어다니며 구조 작업을 도왔다.
주변에서는 사흘 동안 갇혀 있었으니 안정을 취해야 한다, 여진이 올 테니 위험하다며 염려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활동할 때는 이보다 더 한 어려움도 많이 겪었소.”
보통 정치인이 직접 몸을 쓰며 구조 현장을 도우면 거추장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험지에서 수십 년의 의료 봉사 활동을 한 경험은 그의 구조 활동에 날개를 달게 해주었다.
심지어 그는 저명한 의사 출신이었다. 실력이면 실력, 경험이면 경험, 모자란 게 없는 것이다.
그는 구조대원들과 낮과 밤을 함께 하며 생존자 구출 작업을 도왔다. 현장에 파견된 의료진이 우왕좌왕할 때,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그들을 통제했다.
구조 현장에서 그는 어느덧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인력으로 자리 잡았다.
―존 캐롤 의원이야말로 미국 정치계의 희망이다.
―존 캐롤 의원을 백악관으로 보내자!
―사실 존 의원만큼 한결같이 정직한 사람이 없다. 일생을 의료 봉사에 바쳤고, 그게 부족하다 생각해서 정계에 뛰어든 사람 아닌가. 이런 사람을 밀어줘야 한다.
잦은 여진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떠나지 않는 존 캐롤의 인기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공화당 의원들도 부랴부랴 현장에 참여하려 했으나, 그들은 거치적거리기만 했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현장 경험이 많은 존 캐롤과 숙련도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났다.
그렇게 존 캐롤이 압도적인 지지를 쌓아올리는 한편, 미국 여론은 칼라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칼라폰이 대체 뭐야?
―나도 잘 몰라. 코리아에서 쓰는 폰이라던데?
―그 나라가 핵무기 말고 스마트폰도 만든단 말이야? 그거 되게 신기하네.
―아니, 그건 딴 코리아고. 이 코리아하곤 달라.
―김가네가 만들었든 아니든 간에, 어떻게 다른 전화기는 하나도 안 터지는데 그것만 전화 연결이 된 거지?
―내가 듣기로 그거 전파를 쓰는 방식이 아니래.
누군가가 툭 던진 말에 분위기가 술렁였다.
―전파를 안 쓰면 어떻게 무선 통신을 한다는 거야?
―몰라. 전파 안 쓰고 무선 통신이 가능하대. 코리아에서는 지금 엄청 유명해.
―대박이다. 그 개념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거 어마어마한 신기술이잖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에서 최초로, 그리고 극적으로 구출된 생존자들.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 칼라폰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거 미국에서는 언제 판대?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가네요.”
한서진의 목소리는 제법 밝았다. 통화 중인 정지원도 이 상황이 기꺼운 듯했다.
「그러게. 생각지도 못한 데서 칼라 통신이 주목을 받는군. 이러면 미국 서비스가 좀 더 쉽겠어.」
“거기도 텃새가 장난 아닐 거 같은데요. 한국하고는 비교도 안 되겠죠?”
「사실 이미 전부터 로비가 벌어지고 있었어. 여기 통신사들은 지금 한국의 H통신을 주목하고 있거든.」
“조금 걱정이 됩니다.”
「걱정할 것 없다. 우리 힘과 인맥, 로비도 만만치 않아.」
정지원의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넘쳤다.
「게다가 차기 대통령이 우리를 지지하면, 게임은 끝이지.」
“존 캐롤 의원 말씀하시는 건가요?”
「안 그래도 민주당의 강력한 대선후보였는데, 이번 일로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어.」
선거에 있어 절대적인 것은 없다지만, 미국 정치를 잘 모르는 한서진이 보기에도 존 캐롤의 유명세는 압도적이었다.
정지원과 통화를 끊자, 백철중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도 지금 상황에 잔뜩 흥분해 있었다.
「이건 칼라 통신망을 널리 퍼트릴 절호의 기회야. 자네, 제대로 기회를 잡았구만.」
“안 그래도 정 사장님과 그 이야기를 좀 했습니다. 미국 시장 진출이 좀 더 일찍 이뤄질 것 같습니다.”
「각오 단단히 하게. 그쪽 통신사들의 로비와 담합이 장난 아닐 테니까.」
“예, 그렇지 않아도 마음 단단히 잡는 중입니다. 아참, 요즘 행정부에서는 어떻던가요?”
H그룹의 전방위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H통신을 슬슬 건드리는 정부 인사들이 있었다.
재계 2위 그룹이 아니었다면 홀라당 뺏겼을 거라고 백철중이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정부의 보이지 않는 간섭이 심했다.
「음, 요즘 들어 갑자기 귀찮게 하던 게 차츰 줄었네. 포기를 한 건지, 아니면 숨을 고르고 있는 건지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이야. 아마 샌프란시스코 지진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아.」
국무총리는 주한미국 대사의 조용한 방문을 받았다. 미리 예정되지 않은 조용한 면담, 총리는 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오려는지 바짝 긴장했다.
“유레카 통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총리의 얼굴이 굳어졌다.
“현재 한국 행정부에서 안전성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유레카 통신의 기술 원리를 공개하라고 H통신에 압박을 넣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글쎄요. 그런 작은 일까지 제가 일일이 챙기지는 않지만, 아마도 사실무근일 듯하군요. 설마 하니 사기업에 그런 부당한 요구를 하겠습니까.”
“지금의 행정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요. 설령 상대가 재계 2위의 대기업이라 해도.”
외교적으로 무례나 다름없는 직설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국무총리는 불쾌하기보다는, 어떤 계산이 그 안에 숨어있을지 두려움을 느꼈다.
외교관이란 단어나 말투, 표정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계산된 방향에 따라 움직인다. 하물며 세계 최강대국이자 한국의 최우선 동맹국의 대사 아닌가.
“유레카 통신의 인체무해성, 그리고 기술적 안정성은 우리 미국에서 따로 검증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무의미한 추궁을 멈춰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내정 간섭입니다.”
“아닙니다. 자국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외교적 대응이죠.”
“…….”
총리의 얼굴에 의아함이 서렸다. 지금 대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미 대사는 가벼운 조소를 지었다. 전부 계산된 표정이었다.
“칼라 칩 특허권자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한서진 씨는 우리나라 국민입니다만?”
“유감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는 왜 미국에 대부분의 재산을 두고 있을까요?”
“그건, 어디까지나 사업적 일환으로…….”
“그는 단지 이민이 번거롭고 귀찮아서 한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인이나 다름없다고 여기고 보호하고 있습니다.”
억지스러운 말이다. 미국 시민권도 없는 이를 미국 시민처럼 여기고 있다니. 그것도 미 정부가 직접.
“어디까지나 한서진 씨의 국적은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라 해서 부부가 아닌 것은 아니지요. 우리 미국과 미스터 한은 그런 관계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대사.”
“마찬가지로, 법률혼을 유지하고만 있다 해서 무조건 진짜 부부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미국은 사실혼, 한국은 껍질만 남은 법률혼.
대사는 그런 식으로 비유했고, 총리는 제대로 된 반박을 할 수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서진의 모든 사업적 기반은 미국에 있다. 한국에 들여온 현금도 엄청나지만, 전체 규모를 보면 그건 생활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권 서류 같은 것이야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까. 그런 행정 절차적인 요소가 국적을 분별하는데 그리 중요한 게 아닐 때도 있습니다.”
“…….”
“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칼라 칩의 비밀을 뜯어내고자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 마십시오.”
미 대사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한 경고를 남겼고, 총리는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존 캐롤 의원이 한 번 통화하고 싶어 해. 칼라폰 덕분에 살 수 있었다며 꼭 감사를 전하고 싶대.」
정지원으로부터 온 연락이었다.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와 직접 통화라니. 한서진도 솔직히 조금 두근거렸다.
아직 한국에서는 대통령은커녕 장관급도 제대로 못 만나봤는데, 미국에서는 대뜸 대통령 후보가 찾을 줄이야.
며칠째 지진 예측 프로그램을 타르타로스에 적용하는 작업 중이던 한서진은 기꺼이 수락했다.
“다음번 세계 대통령과 인연을 만들어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최고의 인연이지.」
“그나저나 샌프란시스코는 다행히 큰 여진은 없군요.”
재해 현장은 몇 차례 여진이 발생했으나, 다행히 구조 작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존 캐롤은 잦은 여진에도 불구하고 재해 현장을 떠나지 않은 채 구조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 더욱 높은 인지도를 쌓고 있었다.
한서진이 보기에도 이 유명세를 유지만 한다면, 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 일시적인 인기도 아니고, 그는 원래 넓은 지지층을 가진 유력한 대권주자였다.
「안녕하시오. 존 캐롤 상원의원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놀랍게도 첫 인사를 한국어로 했다.
아마 중요한 표현 몇 개만 급히 배운 듯, 어눌하기 그지없는 발음이지만, 노력 자체가 놀라운 것이었다.
「귀하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더듬더듬 감사 인사를 마친 후에는, 통역을 통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강 들었습니다만, 칼라 통신은 정말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극악한 상황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건지 참 대단합니다. 우리 미국에도 반드시 칼라 통신이 서비스되면 좋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SJ인더스트리를 통해 전미에 칼라 통신을 서비스할 계획입니다.”
「그거 참 좋은 소식이군요.」
존 캐롤은 처음부터 한서진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다. 칼라폰 덕에 목숨을 건진 게 어지간히 큰 감동이었나 보다.
「앞으로도 귀하의 번영을 기원하겠습니다.」
특별할 건 없는 대화지만, 강력한 미국 대통령 후보와 직접 통화를 했다는 것은 가슴에 뿌듯함을 남겼다.
한서진은 통화를 마치고 마저 작업에 몰두했다.
“휴, 됐다.”
며칠에 걸친 프로그램 적용 작업이 드디어 끝났다. 어설프기 그지없는 프로토 버전이지만, 일단 구축 가능성을 가늠하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일단 한반도 날씨는 거의 예측 가능하고, 아예 예측 어플 같은 걸 만들어서 서비스해볼까? 재밌을 것도 같은데.’
지역 설정은 샌프란시스코와 그 일대로 했다. 일단 당장 지진 피해를 입은 곳이니, 바로 실전에 적용할 수 있어서였다.
여진의 규모와 횟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프로그램의 정확도도 가장 빨리 확인할 수 있고.
‘여진이라…….’
한서진은 타르타로스를 감싼 에테르의 흐름이 빠르게 요동치는 것을 확인했다.
수없이 많은 저 에테르의 선은 아마 미국 지각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다. 그 변화무쌍한 법칙을 올바르게 규명할 수만 있다면, 신에 버금가는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바로 자연재해의 완벽한 예측이라는, 그 기적을.
‘그리고 언젠가는…….’
에테르의 흐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며, 지식을 쌓는다.
이 작은 결과가 하나둘씩 모이고 쌓여, 그 꿈의 비밀을 파헤치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후련한 마음으로 타르타로스의 계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최종 결과가 나왔다.
커피를 가지러 잠시 자리를 비웠던 한서진은 모니터 앞에 앉으려다 말고 굳어버렸다.
“뭐? 그게 본진이 아니라고? 그냥 본진 전의 전진?”
본진, 가장 규모가 큰 지진을 뜻하는 말.
타르타로스는 ‘진짜’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피디님, 영화 샌 안드레아스 재밌게 보신 건 알겠는데…… 이거 촬영 비용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
“잠깐, 당신! 설마 우리 출연료까지 손댄 건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