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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15화 (215/609)

00215  악몽의 샌프란시스코  =========================================================================

물리적으로 모든 칼라폰은 대등한 수평적 연결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칼라폰에 내장된 칼라 칩은 전파 등을 초월하여 직접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연결되는지는 한서진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그런 성질을 통신 기능으로 활용할 뿐이다.

칼라 통신망의 중앙 서버는 개별 칼라 칩 간의 연결과 해제를 일일이 지시하여, 통신 기능을 조율한다.

칼라폰 소유자가 다른 칼라폰 소유자와 통화를 할 때에는, 서버 칼라의 허락을 얻어 직접 접속을 한다. 반면 비칼라폰 소유자와 통화를 할 때에는 중계 역할을 하는 서버 칼라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준은 로밍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칼라폰은 서버의 명령을 얌전히 따라, 통신 기능을 비활성화했을 뿐이다. 언제든 서버의 명령에 따라 통신 재개가 가능하다.

“샌프란시스코의 모든 중계국이 망가진 터라 건물 내부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하지만 칼라폰이라면 바로 연락이 가능할 겁니다.”

“그 이준이라는 한국인 관광객이 존 캐럴 상원의원이라는 분하고 친합니까?”

“아닙니다. 서로 일면식도 없습니다.”

“그럼 왜……?”

“두 사람이 같은 현장에 있었다는 것, 그게 현재로서는 유일한 가능성이니까요. 저희도 실낱같은 희망에 도박을 거는 겁니다.”

이준은 마침 존 캐럴 의원과 우연히 같은 건물에 있던 유일한 칼라폰 소지자였다. 그래서 페이 차일드는 그와의 연결을 통해 건물 내부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존 캐럴도, 이준도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

“근데 이준이란 분이 같은 건물에 있었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안 겁니까?”

“그 건물에서 존 캐럴 의원의 강연이 있었습니다. 간단한 빅 데이터 추출법으로, 이준, 아니 칼라폰 소지자가 청강자 리스트에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개인적으로 존 캐럴 의원의 팬일 겁니다.”

한서진은 순간 오싹해졌다.

어찌 보면 별 거 아닌 결론이다. 그러나 같은 건물 안에 있던 인물 중 연결 가능성이 있는 사람, 그것도 외국인을 단숨에 찾아낸 점이 놀라웠다.

심지어 지진이 발생하고 이제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역시 미국이란.’

그저 대단했다.

한서진은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할 거리도 없었다.

미국은 칼라 통신망의 잠재성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고, 자신의 사업 기반은 모두 미국에 있다.

미국은 함께 걸어야 할 동반자이지, 적대관계가 아니다. 범죄에 협조해달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존 캐럴이라는 분이 대단히 중요한 사람인가 보군요.”

“차기 민주당 대권주자이자 현 미국 대통령의 오랜 지기이기도 합니다.”

“알겠습니다.”

대표 자리에 앉은 한서진은 모니터 옆으로 슬쩍 페이 차일드를 확인했다. 시선이 부딪치자 그가 가볍게 끄덕인다.

한서진은 H통신의 정상용에게 연락을 취한 뒤, 마스터 계정으로 칼라 서버에 접속했다. 서버는 설계 사무소에서 구축한 것이기에, 이런 일은 H통신측보다 이쪽에서 직접 제어하는 게 더욱 확실하다.

개인 정보를 불법으로 열람하는 것도 아니고, 차단된 통신 기능을 활성화해줄 뿐이니, 문제는 없다.

‘있다!’

한서진은 이준의 단말기 신호를 찾았다. 칼라 통신망에 정상적으로 잡히는 걸로 보아, 단말기 자체는 무사한 듯이 보인다.

“일단 단말기는 멀쩡합니다.”

“오, 정말입니까?”

“지금 통신 차단을 풀었습니다. 이제 통화가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페이 차일드는 곧바로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한서진에게 다시 한 번 목례를 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뭘요, 미국은 제게도 의미가 깊은 나라입니다. 나쁜 일도 아닌데 이 정도 협조야 해드려야지요.”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으으…….”

“힘을 내세요. 버텨야 합니다. 반드시 구조될 겁니다.”

무너진 건물 내부는 어두웠다. 생존자들은 스마트폰 등 발광 제품을 모두 내놓았고, 돌아가면서 등불로 활용했다. 그것도 상시 켜지 않고 필요할 때에만 잠시 켰다가 껐다.

통화는 불가능했다. 일대의 중계국이 모두 박살난 터라 아예 신호 자체가 잡히지 않았으니.

중앙에는 한 동양인 청년이 가물가물한 의식을 붙잡고 있었다. 그의 복부는 피에 물들어 있었고, 출혈을 막기 위해 옷으로 단단히 압박을 해놓은 상태였다.

백발의 60대 백인 노인, 존 캐럴 상원의원은 그의 손을 잡고 거듭 귀에 속삭였다.

“버텨야 합니다. 잠들면 안 됩니다.”

“으으…….”

“반드시 구조될 겁니다.”

그것이 기약 없는 희망임을, 존 캐럴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절망을 밀어냈다.

“간단한 도구라도 있었으면…….”

핏기가 사라지는 청년의 얼굴을 보고 존 캐럴은 한탄했다. 지진으로 인한 파편이 배에 박혔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한 상태, 어서 빨리 수술을 해야만 한다.

“의원님, 우리는 구조되기 힘들겠죠?”

“전화가 전혀 안 되는 걸 보면 주변이 완전히 박살났다는 건데……. 구조 인력이 될까요?”

“차라리 우리가 건물을 헤치고 탈출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기저기서 절망과 혼란에 찬 음성이 들린다. 그럴수록 존 캐럴은 확고하게 선을 그었다.

“안 됩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안전한 길이에요.”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아요. 반드시 구조될 수 있을 겁니다. 체력을 아껴야 하니 가능한 움직이지 말고, 감정을 가라앉혀요.”

정치인답게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애써 혼란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존 캐럴은 다시 부상을 입은 청년에게 눈을 돌렸다. 깊이 가라앉은 눈빛에 불안한 마음이 언뜻 서렸다.

‘정말 위험한데. 한시라도 빨리 수술을 하지 않으면…….’

그때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청년의 가방에서 벨소리가 났다. 생존자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이건?”

“전화가 되는 거야?”

그들이 서둘러 전화기 전원을 켜는 동안, 존 캐롤은 재빨리 가방을 뒤져 벨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역시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그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기는 샌프란시스코 구조대입니다. 혹시 이준 씨 핸드폰입니까?」

신이시여! 존 캐롤은 감격해서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얼른 설명했다.

“난 존 캐롤 상원의원이오. 핸드폰 주인은 부상을 입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곳에는 17명의 생존자가 갇혀 있소.”

「아! 존 캐롤 의원님!」

상대방의 목소리가 급격히 밝아졌다.

「살아계셨군요! 알겠습니다! 지금 핸드폰을 통해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다만 일대 현장이 모두 붕괴한 터라 구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소리 죽여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생존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환호했다. 존 캐롤도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가, 이준을 보고 다시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요?”

「건물 파편을 모두 들어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립니다. 아무리 빨리 잡아도 나흘은 잡아야 할 듯합니다. 혹시 그곳에 식수가 있습니까?」

“식수는 없소.”

큰 문제였다. 사람은 물이 없이는 사흘도 버티기 힘들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식수와 식량을 전달할 통로 확보 작업부터 하겠습니다.」

“식수보다는 수술 도구와 항생제를 먼저 준비해 주시오. 여기에 중상자가 있소. 이대로는 하루도 버티지 못할 거요.”

「예? 하지만 의사가 없다면…….」

존 캐롤은 조소했다.

“의사가 왜 없다고 생각하시오?”

정치인을 하기 전, 그의 직업은 외과 의사였다.

「여기는 샌프란시스코 지진 참사 현장입니다. 보신 바와 같이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들이 붕괴했습니다. 이미 도시는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전미에서 파견된 구조대가 생존자를 찾아 나서고 있지만, 생존자 수색이 쉽지 않습니다. 아! 지금 막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17명의 생존자를 찾았다는 소식입니다!」

생존자를 찾았다는 보도에 침울해 있던 전미는 일제히 흥분으로 달아올랐다. 미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마음으로 생존자 구출을 기도했다.

―가용한 모든 자원을 생존자 구출에 남김없이 투입할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서 성명 발표를 했다.

특히 생존자 중에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 존 캐롤 상원의원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전미가 들끓어 올랐다.

그는 외과의사 출신으로, 후진국에서 이십 년이 넘게 의료 봉사를 한 현대의 슈바이처였다.

메스만으로는 사람을 구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느낀 그는 정치에 입문했고, 빈곤한 사람들의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 그래서 그를 숭배하는 지지자들이 엄청났다.

“존 캐롤 의원을 반드시 구해야 한다!”

“무조건 구해야 해! 그는 미국의 희망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유일한 생존자 일행이며, 그 중에는 덕망 넘치는 차기 대권주자가 끼어 있다.

전미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관심 속에서, 구조대는 식수와 식량을 전달할 통로 확보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매몰 위치를 파악하고, 조그마한 통로를 뚫어 식수와 식량을 전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 과정을 낱낱이 촬영하기 위해 모든 방송사들이 달려들었다. 모든 미국인, 그리고 세계인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지켜보았다.

구조대장이 존 캐롤과 통화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보도되었다.

“존 캐롤 의원님, 지금 케이블을 통해 수술도구와 식수를 내려 보내고 있습니다. 혹시 보입니까?”

「아, 보입니다. 지금 잡았어요.」

현장 구조팀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구조대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며 기뻐했다.

매몰 현장에서는 급히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 의료 부문에서는 문외한인 수행원 생존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존 캐롤은 조금 걱정스러워하며 메스를 쥐었다.

“매스를 손에서 놓은 지 너무 오래 됐어.”

“의원님은 반드시 해내실 겁니다.”

칼끝에 모든 집중력을 담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술이 시작되었다. 비록 소리뿐이지만, 칼라폰을 통해 그 장면이 생생하게 세상에 보도되었다.

몇 시간에 걸친 수술이 마침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미국은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준은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마침내 통화를 했다. 이미 가족들의 거처에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은 매스컴이 상주해 있는 채였다.

「이준아, 엄마다. 괜찮은 거지, 응?」

「네, 엄마. 저 괜찮아요.」

가족 간의 첫 통화는 전 세계를 감동의 눈물로 적셨다.

구조대는 이준의 수술이 끝나자마자 본격적인 구조 작업에 착수했다. 중장비로 건물 파편을 들어올리고, 생존자들이 무사히 빠져나올 통로를 확보하는 작업이었다.

좋은 일은 겹쳐서 왔다.

다른 곳에서도 두 팀의 생존자 그룹이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다행히도 존 캐롤 그룹처럼 심각한 부상자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흘 만에 존 캐롤 일행이 빠져나올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었고, 중상을 입은 이준이 제일 먼저 구출되었다. 그리고 차례차례 생존자들이 빠져 나왔다.

존 캐롤은 가장 마지막으로 나왔다.

먼지를 뒤집어쓴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그의 눈빛은 조금도 힘을 잃지 않았다. 그가 통로를 빠져 나와 일어서는 순간, 수백 개가 넘는 플래시가 동시에 터졌다.

존 캐롤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의연히 말했다.

“저희들의 구출을 함께 기도해주신 국민 여러분, 가족 여러분, 그리고 구조대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차기 대통령 탄생이네.

―감동이었다. 난 비록 공화당이지만 다음 대선은 민주당을 찍겠어.

―나도 공화당 골수지지자인데, 이번에는 좀 흔들려도 괜찮을 것 같다.

―근데 샌프란시스코 기지국이 모두 망가져서 통화가 전혀 안 됐을 텐데, 어떻게 존 캐롤 의원과 통화가 가능했던 거지?

―부상자 소지폰이 유일하게 통화가 터졌다는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일대 기지국이 없는데 어떻게 통화가 터져?

============================ 작품 후기 ============================

칼라의 신성함이 전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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