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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14화 (214/609)

00214  악몽의 샌프란시스코  =========================================================================

“무엇이든 물어봐주세요.”

신효진은 두근거림을 누르고 대답했다. 그녀는 프로그램에 선정됐다는 사실 덕분에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팍팍한 현실 때문에 힘들었는데, 이런 좋은 일이 생길 줄이야.

“저번에 보니 신효진 씨는 어머니 병원비 관련해서 지원을 받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랬습니다.”

“신효진 씨의 가정환경이나 그 밖의 어필할 점이 있으면 자세히 말해주세요.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럼 지원 규모를 늘릴 수도 있거든요.”

“아, 네.”

신효진은 열심히 설명을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자신은 어떤 처지인지, 등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전부 말했다. 심지어 중학교 성적과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다는 것까지 털어놓았다.

이미 조사를 해서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더 직관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한서진은 적당히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며, 대화를 능숙하게 이끌어나갔다.

그가 세세한 부분에서 공감을 해주고 안타까운 감정을 드러내자, 신효진은 더욱 열심히 설명했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지원을 기대하면서.

“알겠습니다. 어머니의 치료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저, 정말요?”

“오늘부터 어머니의 모든 병원비는 회사가 부담하게 될 겁니다. 물론 상한금액이 있지만, 아마 그것을 넘어서진 않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효진은 눈에 띄게 기뻐하며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한서진은 차분히 그녀를 주시했다. 통찰안이 발동하며, 그녀의 진실을 비춰주었다.

「적합.」

「반려.」

통찰안이 보여준 그녀의 판단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그녀는 반려이고, 송하나는 그저 적합일 뿐일까. 한서진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

중요한 질문이 몇 번이고 목구멍을 넘어오려다가 다시 들어갔다.

‘혹시 최근에 남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이상한 일을 겪은 적이 있나요?’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통찰안을 얻었듯, 그녀에게도 어떤 신비한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닌지.

그러나 대뜸 그런 질문을 한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동안 그녀를 조사한 결과는 깨끗했다. 무언가 기적 같은 것을 얻은 흔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런 복지지원 프로그램으로 위장해서 그녀에게 접근한 것이다.

“제가 신효진 씨 전담입니다. 어머니 일이든 그 밖의 다른 일이든, 힘든 게 생기면 언제든 마음 편히 상담하세요.”

“정말이요? 고맙습니다.”

“여기 제 연락처입니다.”

자연스럽게 친밀도를 쌓는다면, 그녀가 뭔가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사람은 사적인 관계가 깊어질수록 방어본능이 약해지는 법이니까.

“행정부가 단단히 뿔이 났어.”

백철중이 보자마자 꺼낸 말이었다. 한서진은 듣자마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렸다.

“전파 문제 때문입니까.”

“세수가 줄어드는 게 걱정되는 거지. 허허 참, 주파수 사용료 그거 얼마나 한다고.”

백철중은 못마땅한 듯이 혀를 찼다.

“통신 기술 보안이니, 통신 시장 붕괴니 여러 가지 헛소리를 하는데, 결국 그거야. 돈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거지.”

“뭐라고 하던가요?”

“통신요금을 좀 올리라더군. 너무 싼 거 아니냐고.”

“싼 게 왜 문제가 되는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만.”

“요금이 저렴하면 부가세 걷히는 것도 줄어들잖나.”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연유가 있을 줄이야.

“저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한국 시장은 테스트적인 측면에 강해서요.”

“알고 있네. 자네에게는 미국 시장이 더 중요할 테지.”

백철중은 잠시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건가? 워낙 특별한 기술이다 보니 미국이 예민하게 반응할 것 같은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미국은 저를 반쯤 자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어서요. 제 사업 기반이 전부 미국에 있으니 괜찮습니다.”

“알고는 있는데, 그래도 가끔 불안해서 말이지. 코큰 놈들이 얼마나 욕심쟁이인데 이런 좋은 아이템을 버젓이 놔둘까, 하는 걱정이 가끔 든다네.”

“크렘 회장 쪽 인맥도 있고 괜찮습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정지원 팀장, 아니 정지원 사장님이 먼저 말을 해줄 겁니다.”

“근데 정말 사실인가? 아직까지 미국 쪽 인물하고 한 번도 접견해본 적 없다는 거 말일세.”

“예, 사실입니다.”

빈말이 아니라 한서진은 미국 정부측 인물의 방문 따위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민간적인 차원의 접근은 많이 받았지만 말이다.

정지원은 보이지 않게 원격 경호를 해주고 있을 거라 했는데, 한 번도 그런 낌새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대체 지켜보고 있기는 한 건지 가끔 의심스러울 정도다.

백철중은 화제를 슬쩍 돌렸다.

“하나는 학교생활 잘 하고 있나?”

“물론입니다.”

“자네가 잘 챙겨주고 있겠지? 난 자네만 믿고 있다네.”

“…….”

“그 침묵은 무슨 의미인가?”

“실은 제가 요즘 학교를 자주 못 가서…… 아무튼 하나가 잘 지내고 있는 건 확인했습니다.”

백철중은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 너무 일에만 몰두하면 안 되네. 가정과 학업에도 충실해야지. 학교 강의는 빼먹지 말고 잘 출석하게.”

“……노력해보겠습니다.”

뭔가 말이 살짝 이상한데? 학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가정에 충실하라니?

아무튼 H통신을 비롯한 몇 가지 사업적인 이야기를 대강 마치고, 한서진은 일어서려고 했다.

“잠깐, 지금 해외 속보가 떴는데……. 허, 이럴 수가.”

“해외 속보요? 무슨 일입니까?”

한서진은 의아했다. 무슨 일이기에 해외 속보에 백철중이 저런 놀라운 표정을 짓는 것일까.

“10분 전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났다네. 상당한 규모의 대지진이라는군.”

“샌프란시스코요?”

한서진은 경악했다.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실리콘밸리가 있고, 실리콘밸리에는 SJ인더스트리가 있다. 대지진이 샌프란시스코를 덮쳤다면, 실리콘밸리에도 큰 피해가 미쳤을 것이다.

그는 급히 정지원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나 통화권 이탈이라는 메시지만 나왔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혹시 지금 정 사장이 연락이 안 되나?”

“네, 단순히 전화를 안 받는 게 아니고 전화기가 꺼졌거나 다른 장애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큰일이군. 샌프란시스코면 실리콘밸리에도 타격이 미쳤을 텐데.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지진이 발생한 시각은 겨우 10분 전.

아직 자세한 현장 파악은 어려운 시간이었다. 곧이어 포털 해외 뉴스 코너가 전부 샌프란시스코 지진 속보로 가득 뒤덮였다.

규모 8을 넘어서는 대지진이라는 보도에 한서진은 망연자실해졌다. 그 정도 규모면 수백km에 걸쳐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

지진 발생 후 1시간 정도가 지나자 상공에서 헬기가 촬영한 사진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건축물들이 형편없이 붕괴했다. 저 중에서 과연 몇이나 살아남았을지, 제대로 가늠이 되질 않았다.

‘정 팀장님! 제발!’

한서진은 간절한 마음을 담고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망연자실해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지만 한서진은 부리나케 받았다.

“여보세요.”

「서진아, 나야.」

상대는 정지원이었다. 건강한 목소리에 한서진은 온몸에서 긴장감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연락이 계속 안 돼서 걱정했습니다.”

「여기 기지국이 망가져서 통화가 안 돼. 지금 이거 위성 전화로 하는 거다.」

“사장님은 지금 무사하신 거죠?”

「사장님? 무슨 사장님?」

정지원은 어리둥절했다. 늘 팀장님이라고 부르던 게 입이 배였다 보니, 사장님이란 호칭에 헷갈린 것이다.

“정지원 사장님이요. 지금 무사하신 거냐고요.”

「나야 무사한데…… 근데 나한테 지금 사장이라고 부른 거야? 갑자기 웬일이냐?」

“아무튼 무사하다면 됐습니다.”

정지원은 간단히 설명했다. 지진 규모가 큰 건 맞지만, 진원지에서 꽤 멀리 있었던 터라 안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단 회사는 무사한 것 같다. 다친 직원이 좀 나오긴 했는데 다행히 사망자는 없다. 설비도 무사하고. 그래도 당분간 생산에는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어.」

“어차피 생산라인 부실하잖아요.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어떤가요?”

「파악을 해봐야 알겠지만, 아마 지옥일 거라고 하더라.」

무의미한 질문이었다.

어린아이도 사진만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샌프란시스코는 지옥으로 변했다는 것을.

몇 명이나 희생되었느냐가 아닌, 몇 명이나 겨우 살아남았을까를 염려하는 게 빠를 정도다.

「미리 양해를 구할 게 있는데, 지진 복구와 피해자 지원에 회사에서 상당한 성금을 내야 할 것 같다. 보기 드문 대지진이라 기업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나 참, 이런 순간에도 회사 이야기군요. 그건 정 사장님이 알아서 하세요. SJ인더스트리는 정 사장님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했잖아요.”

「알겠어. 근데 정 사장이라고 하니까 좋기는 한데, 뭔가 좀 어색하기도 하다.」

“사장 단 게 언젠데 여태까지 팀장님이라고 불렀다고 지금 핀잔주시는 겁니까?”

「그동안 많이 서운했다. 알지?」

그럴 상황이 아닌 건 알지만, 가벼운 실소가 나왔다.

한서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정지원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마음이 놓였다.

‘지진이라…….’

문득 타르타로스로 지진 예측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타르타로스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태풍 등의 주요 악천후가 발생하게 될 경우, 미리 그의 스마트폰으로 경고 문자를 발송한다. 다만 예보 프로그램 규모가 완전하지 않아, 한반도 정도만 국한해서 예측을 하고 있다.

지진도 그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할 순 없을까?

‘한 번 프로그램을 짜볼 순 없을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별안간 직원이 들어와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어, 대표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페이 차일드라는 미국인 남성인데요, 아시는 분인가요?”

금시초문인 이름이지만, 미국인 남성이라는 말에 한서진은 흠칫 놀랐다.

“안내해주세요.”

“예.”

잠시 후 직원의 안내를 받아 페이 차일드라는 남자가 들어섰다.

나이는 마흔 초반쯤 되었을까. 평범한 인상, 평범한 체격을 지닌 백인 남성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갑작스런 방문에도 시간을 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인사를 한 페이 차일드는 대뜸 조그만 기계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한서진은 그가 뭔지 몰라 갸웃거렸다.

“도청 방지 장치입니다.”

“도청 방지? 당신은 누구죠?”

“제 이름은 페이 차일드, 대외적으로는 국토안보부 소속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여러 모로 의미심장한 뜻이 담긴 말이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저는 신분이 노출된 정보 요원에 가깝습니다. 화이트 요원이라 생각하셔도 됩니다.”

“화이트 요원…….”

한서진은 바짝 긴장했다. 처음으로 미국 정부측에서 자신에게 접근을 한 것이다. 대체 무슨 용무로?

“저희는 칼라 통신망이 전파와 거리의 장애 없이 어디서나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정확한 원리는 알지 못합니다만.”

“……그런데요?”

설마 미국에서 드디어 칼라 통신망에 손을 뻗으려는 것인가. 한국에서만 통신 사업을 벌인 게 못마땅했던 것일까?

그러나 한서진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현재 미국의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칼라 폰의 통신 기능을 활성화해주십시오. 그와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미국의 어떤 사람, 이라고요?”

대관절 무슨 말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그 사람은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온 이준이라는 한국인으로,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한 빌딩에 매몰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 사람을…… 혹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까?”

“아닙니다. 이준은 평범한 한국인입니다. 다만 같은 건물에 존 캐럴 상원의원이 매몰되어 있습니다..”

페이 차일드는 무거운 어조로 설명했다.

“그분의 생존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 작품 후기 ============================

(빤히)

“……짐이 한 짓이 아니다.”

(빠안히)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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