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206화 (206/609)

00206  오리할콘  =========================================================================

“정황상 에테르라는 미지의 힘을 사용한 문명이 존재했던 것은 거의 사실이오.”

이미 합의했던 대전제지만, 네 사람은 다시 한 번 그 사실을 확인했다.

“미스릴과 오리할콘은 아마 에테르라는 에너지를 다루기 위한 물질 매개체임에 틀림없어요.”

박효산의 말에 현진국도 조심스럽게 가능성을 얹었다.

“미스릴 언어 체계를 보면 지구상에 존재했던 문명은 아닌 듯한데…….”

“외계 문명?”

“저 역시 그 가능성을 높이 치고 있습니다.”

에테르란 에너지를 사용한 외계 문명이 지구에 흔적을 남겼다. 네 명이 모두 공감하는 추론이지만, 그것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에테르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

여기서 다들 잠깐 말문이 막혔다.

한서진은 몹시 양심이 찔렸다. 에테르로 가능한 것은 이미 자신이 여러 번 구현했다.

비글, 슈나우저, 코카 스패니얼, 그리고 케르베로스.

모두 에테르의 힘을 이용한 반도체이다. 특히 실리콘이 아닌 미스릴을 소재로 쓴 케르베로스는‘3대견 반도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성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아무리 팀이라 해도 그 사실을 밝힐 순 없는지라, 한서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제가 봤던 그 고서에는 오리할콘에 에테르를 저장하는 성질이 있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적당한 비유일지는 모르겠는데, 미스릴이 반도체 연산장치라면, 오리할콘은 배터리에 빗댈 수 있지 않을까요?”

“적절한 비유 같군요, 한 박사.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오리할콘에 에테르가 담긴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의문점은 그런 식으로 넘겼다.

현진국에 이어, 존재하지도 않는 고서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긴 했지만.

‘통찰안을 밝힐 수는 없으니.’

답답하지만 진실을 말할 순 없었다. 이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일단 오리할콘에 저장된 에테르를 쓸 수 있는지 한 번 시험을 해봅시다.”

오리할콘에 담긴 에테르 에너지를 어떻게 활용할까.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이라 다소 막막했다.

‘타르타로스를 이용하면 될 거 같긴 한데.’

타르타로스는 에테르를 다루는 성질이 있다. 아마 몇 번 시도하면 어렵지 않게 오리할콘을 다룰 수 있으리라.

하지만 타르타로스를 공개할 순 없으니 이 방법은 기각.

박효산이 자신만만하게 말을 꺼냈다.

“역시 모를수록 단순하게 부딪치란 법이 있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니트론은 제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현진국과 한서진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두 분,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신가요?”

“간단한 것부터 시도를 해볼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박효산은 캐비닛을 뒤져 뭔가를 가져왔다. 한서진은 그것을 보고 황당해서 물었다.

“전구와 전선은 왜 가져오신 거예요?”

“모를수록 일단 단순하게 가는 거다.”

박효산은 전선을 전구에 연결하고, 전선 양쪽 끝을 오리할콘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팍! 하고 전구가 깨져나갔다. 전선을 연결함과 거의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니트론이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휴우, 역시 맨손으로 안 만지길 잘했네.”

“이거 전압이 보통이 아닌가 본데요. 전구가 단숨에 나갈 정도라니.”

“전기 에너지의 형태로 방출된 건가?”

“그건 아닌 듯합니다. 그랬다면 잠깐이라도 빛이 들어왔을 겁니다. 근데 아무래도 안전복은 입어야겠습니다. 장소도 옮기지요.”

“이건 내 전공이 아니군요. 나는 빠질까 합니다.”

현진국이 일단 빠졌고, 일행은 안전한 시설을 갖춘 실험실로 장소를 옮겼다. 안전복 등 안전장치를 갖추고, 실험을 지속했다.

모터 등 다양한 동력 장치를 연결해봤지만 연결하는 족족 터져 나갔다. 변압기 등 다양한 변환장치를 달아도 마찬가지였다.

‘으으…….’

다른 이들 눈에는 그냥 터져 나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서진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오리할콘에서 흘러나온 에테르가 어떻게 작용하며, 어떻게 동력 장치를 망가뜨리는지.

통제되지 않는 출력은 과전압을 일으키듯 사정없이 동력 장치를 부수고 있었다.

‘줄어들고 있다.’

오리할콘에 담긴 에테르의 빛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었다. 저장된 에테르가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소모 정도는 그리 크지 않았다.

“분명 어떤 에너지가 담겨 있고, 그것이 배출되는 것은 사실인데…….”

“에너지가 어떤 형태로 흘러나오는지 알 수가 없네요. 전압 측정에도 일절 반응하지 않고, 그렇다고 자기장도 아니고.”

전선 같은 것을 연결하면 에너지가 타고 흘러나오는데, 손으로 만졌을 때는 반응이 없다. 물론 처음부터 손을 만진 것은 아니고, 실험용 쥐를 빌려와서 여러 번 시도해본 것이다.

다양한 측정 시도를 하던 중 마침내 일이 터졌다. 물탱크에 연결했을 때였다.

치이이익!

“으, 으아악!”

“물러나세요!”

물탱크를 채운 물이 수증기로 증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기 시스템이 빠르게 가동해서 수증기를 밖으로 내보낸 덕분에, 실험실이 수증기로 가득 차는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체감상 순식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물은 빠른 시간 안에 증발해 버렸다.

멍하니 보고 있던 니트론이 입을 열었다.

“박 교수, 이거 물이 얼마였지?”

“5톤 정도 됩니다. 수온은 아마 15도 정도 될 테고요.”

“5톤이나 되는 물을 이렇게 빨리 증발시킬 정도의 에너지라니…… 그것도 일부 에너지라는 것을 감안하면…….”

니트론은 홀린 듯이 중얼거렸다.

“이거 대박인데.”

실험은 오리할콘이 동작하지 않을 때까지 꼬박 진행되었다.

마침내 모든 에테르가 소진되고 나서야 실험은 멈췄다. 그리고 박효산과 니트론은 데이터를 토대로 본래 오리할콘이 보유했을 에너지 계산에 들어갔다. 물론 암산이었다.

“이 정도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대충 휘발유 10만 리터는 되겠는데. 휘유, 이거 하나면 내 차가 150만km는 달릴 수 있겠어.”

“왜 하필 비교를 해도 휘발유입니까?”

“가스차 타다가 드디어 이번에 휘발유로 바꿨거든. 근데 뭐가 좋은진 아직 잘 모르겠다.”

“…….”

박효산은 침묵했고, 한서진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오리할콘을 주시했다.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것 만한 부피인데, 휘발유 10만 리터와 맞먹는 에너지를 내다니. 새삼 에테르의 위용에 경외감을 느낄 뿐이다.

“이건 에너지 혁명이다.”

니트론은 작게 중얼거렸고, 박효산도 동의한다는 듯이 무겁게 끄덕여 보였다.

핵에너지 출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에너지 방출 과정에서 아무런 오염 물질 배출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안정적으로 획득 및 사용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면, 산업 질서는 다시 한 번 재편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문득 박효산이 말했다.

“저, 교수님. 근데 이거 괜찮은 겁니까?”

“응, 뭐가?”

“생각해보니 이거 엄청난 연구 주제잖아요. 근데 외국에서 이렇게 멋대로 실험을 해도 되는 겁니까? 교수님도 미국에서 중요하게 관리하는 석학일 텐데요.”

“아, 상관없어. 대충 얘기는 했으니까.”

니트론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거 만드는 방법은 나밖에 모르는데. CIA든 NSA든 트집 잡을 게 없지.”

“네? 미스릴을 불에 던져 넣어서 만들었다면서요?”

“설마 그냥 던져 넣었겠냐. 나름 특수 가공 처리를 한 다음에 넣은 거지.”

“그랬습니까?”

“아무런 가공을 하지 않은 것까지 해서 총 20가지 다양한 샘플을 던져 넣었는데, 이것만 오리할콘으로 변한 거야. 그리고 그 가공법은 나만 알고 있지. 왜, 서운하냐?”

“아닙니다.”

니트론의 장난스러운 말에 박효산은 오히려 웃었다.

“그게 낫죠. 괜히 정보 요원 방문이라도 받으면 골치 아프잖습니까. 머리에 총구멍이 나는 것보다는…….”

“걔들 요즘 그런 식으로 안 해. 말 통할 것 같은 사람은 점잖게 대화부터 한다.”

“그래도 말이 안 통하면은요?”

“최대한 대화로 타협을 이끌어내려고 하지. 그리고 웬만하면 거의 다 타협이 돼. 걱정하지 마라.”

오리할콘의 스펙을 확인하는 실험을 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또 가장 중요한 오리할콘 제조법은 ‘공식적으로’ 니트론만 알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다소 예민하게 받아들일지언정, 불안함에 떨지는 않을 것이다.

“미안합니다, 한 박사. 오리할콘 제조법은 나도 알려줄 수가 없어요. 미국의 국익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고, 나나 한 박사 모두가 위험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 내 이번 한국행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래도 연방정부는 한 박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한 박사가 나와 같이 이 연구를 하고 싶다면 그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미국으로 오세요.”

아쉽지만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한서진이 원하는 것은 에테르의 근원을 알아내고, 그 꿈속에 비밀에까지 닿는 것. 이는 누구하고도 공유할 수 없는, 공유해서도 안 되는 은밀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제조법은 나도 알 수 있으니.’

이미 통찰안을 통해 오리할콘의 구조를 확인했다. 미스릴과 타르타로스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오리할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오히려 니트론이야말로 더 이상의 오리할콘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에테르 과부하가 낳은 산불에 미스릴을 넣어서 에테르를 만들었다. 동일 현상이 재현되지 않으면 다시 제조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교수님, 혹시 남은 오리할콘이 있습니까? 이게 전부는 아닐 것 같은데요.”

“음…… 그건 내가 말해줄 수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니트론은 정말 미안한 듯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하지만 한 박사가 언제든지 나와 같이 연구를 하겠다면, 모든 정보를 오픈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니, 진지하게 생각해주세요.”

박지우는 해외출장이 잦은 영업직에 일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핸드폰 약정이 종료되자 유레카 통신으로 주저 없이 갈아탔다. 100배 이상 빠르다는 말에 두 말 않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거 좋네.”

조금 미심쩍은 우려도 있었지만, 개통 직후 사용을 해본 결과 만족스러웠다. 아니, 만족을 넘어선 그 이상의 충족감이 있었다.

통화 품질이 부드러운 것은 물론, 100배 이상으로 빠른 통신 속도는 다른 통신사에서 느끼지 못한 쾌적함을 주었다.

“유레카로 바꿔. 아직도 구닥다리 통신 회사 쓰고 다녀?”

H통신 광신도가 된 그는 틈만 나면 주변 사람들에게 유레카 통신의 장점을 설파하고 다녔다.

긴가민가하던 주변인들은 실제로 그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속도를 체감해보고는, 이구동성으로 꼭 갈아타겠다고 말했다.

박지우는 그날도 해외 출장을 나갔다.

중요한 바이어 미팅이 잡혀 있어, 사흘 동안 꼬박 출장 준비에만 매달렸다. 덕분에 그는 해외에 나가고 나서야 로밍 신청을 안 했음을 깨달았다.

“아, 이런. 실수했네.”

자동로밍이 등록된 업무용 폰이 따로 있으니 업무 수행에는 지장이 없지만, H통신 폰은 한 번도 로밍 신청을 하지 않았다.

“젠장, 밤에 모바일 게임이나 하려 했는데, 다 틀렸네.”

박지우는 한숨을 쉬며 새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무심코 모바일 어플을 실행시켰다.

“어? 되네?”

박지우는 얼른 접속했다. 속도도 한국에 있을 때처럼 빨랐다.

‘H통신이 그새 미국까지 진출했나?’

신이 나서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게임이 뚝 하고 종료되었다. 동시에 화면에 ‘신호 없음’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는 당황했다.

“어어, 이거 잘 되다가 갑자기 왜 먹통이야?”

거듭 시도했지만 ‘신호 없음’이란 메시지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핸드폰을 침대에 내던졌다.

“로밍 신청도 안 한 단말기가 해외에서 통신망을 이용했다고? 그것도 무려 30분이나?”

“죄송합니다. 관리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었나 봅니다. 바로 수정을 했습니다.”

백철중의 추궁에 정상용은 쩔쩔매며 고개를 숙였다.

유레카 통신은 기지국을 쓰지 않기에, 해외에 있어도 자유롭게 국내 통신망에 접속이 가능하다.

그래서 로밍 신청을 하지 않은 폰이 국외로 나가면 통신망에 접속하지 못하게 프로그램으로 막아놓는데, 잠시 빈틈이 발생했던 모양이다.

백철중은 엄한 목소리로 타박했다.

“조심하게. 안 그래도 기지국이 없는 것 때문에 여기저기 의심하고 있는데…… 아직 칼라 통신망의 진짜 실체가 알려져선 곤란해.”

“죄송합니다, 회장님.”

============================ 작품 후기 ============================

“흥, 우리 신성한 칼라의 결속력을 그딴 하찮은 코딩 따위로 끊을 수 있을 것 같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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