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05 오리할콘 =========================================================================
‘에테르 검출에 성공?’
한서진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니트론 교수는 이미 간접적인 방식으로 제5의 힘이 존재함을 증명한 바 있다. 아직까지 제5의 힘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메일에는 제5의 힘, 즉 에테르를 직접 검출했다는 내용이 분명히 있었다.
한서진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잠깐, 그럼 만약 타르타로스를 보면 어떻게 되는 거야?’
타르타로스는 상시적으로 주변의 에테르를 끌어 모으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유독 녀석의 주변에는 에테르의 흐름이 진하게 뭉쳐 있다.
에테르 검출 장치 같은 것을 여기로 가져오면? 잠깐 상상해본 한서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절대로 보여드리면 안 되겠네.’
어차피 타르타로스는 공개할 수 없는 물건이지만, 그래도 한층 더 신중해야겠다.
“한국에 오시는구나…… 어, 잠깐만? 도착 시간이 왜 이래?”
한서진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순간 통찰안이 잘못 번역해준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비행기 도착 시간이 어처구니없었던 것이다.
“오늘 도착이라고?”
“오랜만이오, 한 박사.”
다시 만난 니트론 교수는 예전보다 더욱 젊어 보였다. 연구가 잘 풀려서 몸과 마음까지 같이 젊어진 덕일까.
한서진도 반가운 마음으로 그를 맞이할 수 있었다. 다만…….
“교수님, 그런데 박사라는 호칭은 좀…….”
“교수라고 부르지 말래서 내가 나름대로 생각한 건데, 이상합니까?”
“저는 교수도, 박사도 아닙니다. 아직 대학교 학부생 2학년일 뿐입니다.”
“이미 박사 이상의 업적을 이뤘으면서 굳이 지금 학위가 없다고 학생 행세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한 박사로 합시다.”
“아니, 그래도요.”
니트론은 이상한 데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한서진은 여러 번 설득한 끝에 결국 포기했다.
그래, 어차피 학생 놈이 박사 소리 듣고 다닌다고 학교에서 꼰대질 할 만큼 간 큰 교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제5의 힘의 직접 검출에 성공하셨다고요?”
“그래요. 한 박사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어서 아무데나 들어갑시다.”
한서진은 어디로 갈까 하다가 결국 사무소로 방향을 돌렸다.
고층 빌딩의 최상층을 혼자 쓰는 사무소를 보고 니트론 교수는 작게 감탄했다.
“설계 회사를 세웠다는 말을 건너건너 들었는데, 규모가 내 생각 이상이군요. 이 빌딩 전체가 한 박사 겁니까?”
“……아닙니다. 꼭대기층만 임대해서 씁니다.”
“임대라고요?”
니트론은 놀란 눈으로 반문했다.
한서진은 깨달았다. 펜트하우스 사무소는 아메리칸 스타일에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한서진은 니트론을 데리고 들어갔다. 늦은 오후라 이미 직원들은 다 퇴근한 후였다.
“수퍼컴퓨터 Z7 덕분에 내 연구가 이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소.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까지도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었을 거요. 고맙소.”
니트론은 감사 인사로 말을 꺼냈다. 한서진은 기분이 좋은 한편, 민망하기도 했다.
좋은 조각칼을 개발했다고 해서, 그 조각칼로 만든 예술품 걸작이 자기 덕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제작자는 공을 자신에게 돌리고 있으니.
“해답은 스코브리아늄에 있었어요.”
‘미스릴에?’
에테르와 미스릴의 연관성 자체는 놀랍지 않으나, 니트론은 어떤 시각에서 그 답을 찾았는지 궁금했다.
“이제 보여주겠습니다.”
니트론은 들고 있던 육중한 금속제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제야 한서진은 그가 한 번도 가방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사실을 기억해냈다.
저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이것이오.”
니트론이 잠금장치를 풀고 가방을 여는 순간, 푸른 빛을 머금은 은색 광채가 그 안에서 쏟아지듯 흘러나왔다.
방안을 온통 수놓는 황홀한 색채, 그것을 보는 순간 한서진은 온몸이 감전되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입이 굳어버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을 모르는 니트론은 신이 나서 말했다.
“이건 바로 스코브리아늄이 성질 변이를 일으키며 만들어진 물질입니다.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물질이죠. 이 물질의 놀라운 점은 바로…….”
“오리할콘.”
한서진이 멍하니 중얼거린 말에 니트론은 멈칫했다.
“한 박사?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오리……할콘…….”
오리할콘. 그 은색 자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한서진은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오리할콘, 통찰안이 보여주는 물질의 이름.
그 안에 갇힌 에테르 에너지의 유동성이 똑똑히 보인다. 한서진은 니트론이 어떻게 에테르 검출에 성공했는지, 비로소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물질의 이름이 오리할콘…… 그렇다면 한 박사는 이미 이 물질을 제조했었다는 말입니까?”
니트론은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자신이 최초가 아니라는 실망감, 그리고 새로운 지식에 대한 기대감. 두 상반된 감정이 한데 섞여 있었다.
한서진은 차분히 설명할 말을 골랐다. 오해 없이, 신중하게 그를 납득시켜야 했다.
“스코브리아늄 언어라는, 알려지지 않은 언어가 있습니다. 아니, 정말로 언어인지 아닌지조차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한서진은 USL, 즉 미스릴 문자에서 시작된 현진국, 박효산 교수와의 인연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물론 통찰안과 그 꿈에 관해서는 철저히 숨겼다.
“저 역시 오리할콘을 실제로 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니트론은 신의 말을 듣는 교인처럼 신중한 얼굴로 흐트러짐 없이 그의 설명을 들었다.
“스코브리아늄 언어는 지구상의 어떤 기록에서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하셨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에서는 스코브리아늄을 미스릴이라 부르고, 제5의 힘을 에테르라 부른단 말이오?”
“네.”
“그리고 스코브리아늄 언어가 외계 문명이 사용했던 언어, 그것도 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 현재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어, 허어.”
니트론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탄식을 거듭 내뱉었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돌아보았다.
“하면, 좋습니다. 명칭은 통일하는 게 좋겠지요. 스코브리아늄 대신 미스릴이라 부릅시다.”
놀라움이 조금 가라앉았는지, 니트론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헌데 한 박사는 어떻게 스코브리아늄 언어, 아니 미스릴 언어를 읽을 수 있는 거요? 지구상에 기록이 남지 않은 언어라 하지 않으셨소?”
한서진은 숨을 고르고, 최대한 무게감을 담아 대답했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허참…….”
“더 이상은 저도 말씀 드릴 게 없습니다. 그 부분은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비밀을 내포한 암시다. 스탠포드의 권위자는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알겠어요. 한 박사가 어떻게 그것들을 알게 되었고, 읽을 수 있게 되었는지는 나도 더 묻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미스릴 연구에 한 발짝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중요하지요.”
“감사합니다.”
큰 고비는 일단 넘겼다. 한서진은 보이지 않게 숨을 돌렸다.
“그럼 효산이와 현 교수라는 분이 지금 협동으로 미스릴과 미스릴 언어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는 말입니까?”
“네.”
“아니, 그 재미있는 걸 왜 나한테는 참여 기회를 주지 않은 겁니까? 서운합니다, 한 박사.”
“워낙 소규모 프로젝트라 스탠포드의 상징인 교수님께 감히 그런 제안을 드리는 게 죄송해서…….”
“허허, 내가 미스릴 연구에 남은 인생을 걸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이러면 어떡합니까. 너무합니다, 한 박사. 나도 참여시켜 줄 겁니까, 안 시켜 줄 겁니까?”
“차, 참여시켜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니트론도 미스릴 프로젝트 팀에 참여했다.
“제5의 힘, 아니 에테르라 부르기로 했지요? 아무튼 태풍 메기를 보고 나는 뭔가 미심쩍다는 걸 느꼈습니다. 날씨라는 게 본래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신의 영역이라고는 하나, 태풍 메기는 그 이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었어요.”
태풍 메기.
그 전대미문의 위력 앞에서 많은 이들은 인간의 한계를 외쳤지만, 니트론은 반대로 인지 범위 밖에 있는 변수의 존재를 가정했다.
“만약 에테르가 낳은 이상 현상이라면…… 조만간 비슷한 재앙이 또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 가정을 하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군요.”
박효산이 굳은 얼굴로 말을 받았다.
태풍 메기와 강원도 산불.
겉보기에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멀리 미국 땅에 있는 교수는 정작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원도 산불은 시작부터 이상한 점이 많았습니다.”
니트론은 최초 신고 내용부터 시작해서 강원도 산불에 드러난 기이한 점을 설명했다. 한서진을 비롯하여 모두의 낯빛이 조금씩 굳어갔다.
현진국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니트론 교수님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습니까?”
“그게…… 연방 정부에 협조 요청을 좀 했습니다. 오리할콘도 그렇게 해서 만들었고요.”
“오리할콘을요?”
“만약 그 산불이 정말 에테르의 이상 작용이 낳은 것이라면 쉽게 진압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미스릴을 그 안에 던져 넣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발상을 떠올렸습니다.”
니트론은 조심스럽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박효산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아니, 교수님은 어떻게 미스릴을 산불에 던져 넣으신 겁니까? 미사일이라도 쏴서 실어 나른 겁니까?”
“협조 요청을 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산불이 꺼지고 나서 가져다주더구나.”
“…….”
“주한미군도 산불 진화 작업을 도왔다던데, 그 와중에 슬쩍 미스릴 하나 던져 넣은 모양이지.”
들으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다. 남의 나라의 불행을 살짝 이용한 건 맞는데, 그렇다고 해를 끼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진화 작업을 돕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니트론도 그 점을 이해하는지 얼굴에는 영 미안한 기색이 가득했다.
“미스릴은 금보다 더 안정적인 물질이에요. 어떤 고온이나 압력에도 결코 물성 변화를 일으키지 않죠. 그러나 그 산불에 겨우 몇 시간 노출된 것으로 완전히 다른 물질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리할콘은 에테르를 저장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한서진은 팔짱을 낀 채 확정짓듯이 말했다.
“이 안에는 지금 에테르가 잔뜩 담겨 있어요.”
그 시각, 정지원은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말쑥하지만 평범한 인상의 백인 남자. 나이는 마흔 초반쯤 되었을까.
‘페이 차일드라고 했었나. 매번 까먹는군.’
이미 몇 번 만난 사이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늘 그렇듯 불쾌한 잔상만 남긴다. 하지만 정지원은 언제나 그렇듯 불편한 감정을 철저히 숨겼다.
지금처럼 무표정한 포커페이스로.
“스탠포드의 니트론 교수가 미스터 한을 만나러 한국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렇습니까.”
“니트론 교수가 가지고 간 물질이 어떤 건지 아십니까? 연방정부는 현재 그 물질을 주요전략물질로 지정하려는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헌데 개인 물품처럼 가방에 넣고 휭하니 한국까지 가버린 겁니다.”
“그건 니트론 교수에게 따져야 할 문제가 아닙니까.”
정지원은 속으로 웃었다. 니트론은 국가 주요 과학자다. 본인 앞에서는 따질 생각도 못하니, 여기까지 와서 하소연을 하는 것이리라.
“스코브리아늄 연구는 연방 정부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헌데 이렇게 무분별한 해외 출장을 감행하면, 우리로서는 경호가 곤란해집니다.”
“그렇습니까.”
“미스터 한이 스코브리아늄 연구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가급적 스코브리아늄 연구는 안전한 국내에서 했으면 합니다만.”
정지원은 냉담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는 전에도 했을 텐데요. 미스터 한은 외국 생활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철새가 아닌 텃새지요. 자기가 둥지를 일군 곳에서 노니는 것을 좋아하는 분입니다.”
“미스터 정이 설득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상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정지원은 그의 뜻을 이해해줄 마음이 없었다.
“난은 함부로 옮겨 심으면 뿌리가 썩습니다. 뿌리를 내린 곳에 두고, 감상이 하고 싶으면 직접 발걸음을 해야지요.”
“그럼 하다못해 시민권이라도 취득하게 하시지요. 그 점을 불안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모든 사업 기반과 전재산 대부분이 여기 미국에 있는데, 그깟 서류 한 장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이건 미스터 페이도 전에 인정하신 사실 아닙니까?”
결국 페이 차일드는 연구 자료가 유출되지 않도록 간접적으로 신경을 써달라고 신신당부만 남긴 채 돌아가야 했다.
그제야 정지원은 표정을 풀었다.
“겨우 시민권 하나 없는 걸로 저렇게 불안해하다니. 양키 남자가 어지간히 짝사랑에 아파하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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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는 자꾸만 반지를 안 끼고 다니는 내 여자 때문에 오늘도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불안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