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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03화 (203/609)

00203  산불, 전대미문  =========================================================================

풋마사지가 끝나고, 한서진은 정말 미안한 얼굴로 양해를 구했다.

“미안, 가봐야겠어.”

“급한 일 생긴 거죠? 알겠어요.”

송하나는 이해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아마 속으로는 산불 관련이라고 감을 잡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집까지는 데려다줄게.”

“아니에요. 전 기사님 부르면 돼요. 걱정하지 마시구 그냥 들어가세요.”

“그렇지만…….”

한서진은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송하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결국 그는 그녀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안하다. 집까지 데려다줘야 하는데.”

“괜찮아요. 들어가세요.”

한서진은 인사를 마치고,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 속에서 손을 흔드는 송하나의 모습이 멀어졌다.

그는 대학 반도체 연구소로 차를 몰았다. 제조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대학 연구소가 편했다.

급히 들어서는 그를 보고 안홍철이 물었다.

“한서진, 무슨 급한 일 있어?”

“잠시 연구실 설비 좀 쓰겠습니다.”

그는 스치듯이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연구실에 들어섰다.

그는 급히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연구실 외부와는 회선이 단절된 컴퓨터였다.

그는 타르타로스에 입력된 황금색 문양을 로드했다. 곧이어 모니터에 기하학적인 무늬가 떠올랐다.

그는 바로 도면 작업을 시작했다. 반도체에 문양을 새겨서 넣은 것이다. 만 분의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도체 설비로 찍어내는 게 가장 확실했다.

‘조금이라도 틀려선 안 돼.’

그는 강한 확신을 품고 있었다.

이 신비한 문양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세한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심한 도면 작업을 마친 그는 곧바로 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잉곳 생성을 생략하고, 원판축의 회전 원심력을 이용해 반듯한 미스릴 평면 웨이퍼를 곧바로 만들어냈다. 포토 공정을 시작하며 정밀한 회로 인쇄에 들어갔다.

“됐다.”

절삭까지 끝나고 마침내 제품이 완성되자 그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았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 만든 것은 반도체 제품이 아니다. 아무런 전자 회로도 새겨 넣지 않았으니.

반도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자 회로를 생략하고, 그 대신 꿈속 세상에서 건너온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이다.

“근데 이걸 어떻게 쓰는 거지?”

후련함은 잠시, 한서진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에테르 스톰이 대체 뭐지?’

어감을 보면, 에테르 폭풍을 불러일으킨다는 그런 의미 같은데. 이걸 가지고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일단 해보자.”

웨이퍼 하나에서 찍혀 나온 반도체가 수백 개다. 이만하면 여유분은 충분하리라.

산불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미 어마어마한 면적의 삼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무수한 동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매캐한 연기는 그칠 줄 모르고 창공을 가렸고, 불을 진압하려는 이들의 필사적인 고함과 절망만이 가득했다.

이미 강원도 산불은 국민 모두가 주목하는 대재해였다. 태풍 메기 때 이상으로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잿더미만 남은 지역에서도 불이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인화 물질 자체가 모두 연소되었는데도 불길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에 빗대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옥에서 온 불.

어느덧 사람들은 강원도 산불을 그렇게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헬기를 빌려달라고?」

“예, 상공에서 산불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가 헬기가 없어서요.”

「위험할 텐데. 가지 말게.」

“괜찮습니다. 그냥 촬영만 할 거라서요. 제가 불을 끄겠다거나 그런 게 아닙니다.”

백철중은 내키지 않아 했으나 한서진의 간곡에 부탁에 결국 자가 헬기를 내주었다.

한서진은 헬기를 타고 곧바로 강원도 쪽으로 향했다.

이미 산불은 위로는 치악산과 오대산까지 뻗은 상태였다. 전진 속도는 느렸지만 확실하게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자기 세력권을 넓히고 있었다.

어느덧 헬기는 치악산 근처에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매캐한 냄새가 밀려왔다. 저 멀리 지평선을 가린 검은 연기가 보인다.

정신을 집중하자 또렷이 보였다.

산불의 내부에 숨어 있는 짙은 에테르의 흐름. 그것은 미칠 듯이 날뛰며 불길을 사방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정말…… 살아 있는 것 같다.’

한서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에테르가 저 불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니 다리가 떨려왔다.

그는 가방을 확인했다. 안에는 미지의 문양을 그려 넣은 미스릴 반도체가 가득했다. 그는 반도체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좀 더 가까이 가죠.”

“위험합니다.”

“고도를 높여도 좋으니, 최대한 산불 위를 지나가요. 연기가 없는 곳을 피해서.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조종사는 어쩔 수 없이 한서진의 말을 따랐다.

고도를 높인 헬기는 계곡을 따라 넘실거리는 불꽃 위를 지나갔다. 조종사는 연기가 적은 곳을 골라 능숙하게 지나갔다. 바람을 잘 타서인지, 열기가 바로 수직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창문 잠깐만 열겠습니다. 촬영할 게 있어서요.”

“조심하세요.”

조종사가 걱정스럽게 당부했다.

한서진은 창을 살짝 열고는, 손에 쥐고 있던 반도체를 불꽃 위로 떨어뜨렸다. 손톱만한 반도체는 빠르게 낙하하며, 곧이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폐하?”

창백하게 굳은 왕의 얼굴을 보고 노신하는 몹시 걱정스럽게 불렀다. 왕은 침실에서 상체만 일으킨 채로,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체 꿈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혹시 스톰 변환 마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인지요? 아주 간단한 마법이라 전송에 실패할 리가 없을 터인데…….”

“……그건 아니오.”

왕은 쥐어짜내듯이 말을 이었다.

“마법 지식은 분명히 제대로 전달되었소. 꿈속의 짐 역시 그것이 불을 끌 수 있는 단서라는 확신을 얻은 모양이오. 저급한 품질이지만 마법진을 새긴 마법 수정도 수백 개나 직접 만들어냈소.”

노신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문제 될 게 없지 않습니까?”

“그 마법 수정을…… 에테르 불꽃에 던져 넣었소.”

순간 노신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던져 넣었단 말이오.”

왕은 호흡을 곱씹듯이, 천천히 힘을 주어 계속 말했다.

“마법 수정의 힘을 발동시킨 게 아니라, 그냥 통째로 불꽃 속에 던져 넣었단 말이오.”

“…….”

노신하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왕이 느끼는 절절한 황당함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아무 일도 없잖아?’

한서진은 실망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혹시 양이 모자라서 그런가?’

그는 설마 하는 마음에 반도체를 한 움큼 쥐고 다시 불꽃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망감만 더욱 커졌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조종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일단 기수 돌리고, 어디 안전한 곳에 잠시 내리죠.”

“알겠습니다.”

조종사는 곧바로 기수를 돌려 화재 지역을 이탈했다. 그리고 머지않은 공터를 찾아 착륙했다.

“이 지역에 오래 있으면 위험합니다. 언제 불길이 이곳까지 번질지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번지는 속도도 느리잖아요, 저거.”

한서진은 가볍게 대답하고는, 태블릿 컴퓨터를 꺼냈다. 그는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타르타로스에 접속했다.

‘그냥 불에 던져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올바른 사용법이 따로 있나?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계산 결과를 훑으며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별안간 무릎을 탁 쳤다.

“맞아! 혹시 그거라면?”

마음이 다급해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서둘러 헬기에 탔다.

“서울로 돌아가죠. 어서요.”

“알겠습니다!”

조종사는 반색하며 급히 헬멧을 썼다.

곧이어 헬기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반도체는 반도체답게 써야지.”

엄밀히 말해 이것은 반도체의 형상만 하고 있을 뿐, 정상적인 전자회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런 회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슈나우저, 코카 스패니얼, 케르베로스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의 지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회로 문양이지만, 그 규칙이 에테르를 움직여 놀라운 성능을 발휘하게 한다.

그것들은 일반 전자 회로에 에테르 언어를 숨겼다. 그와 달리 이것은 순수하게 에테르 언어로만 찍어냈다.

한서진은 아키텍처에 아까 찍어낸 새 반도체를 삽입하고, 타르타로스에 연결했다. 그리고 아키텍처에 전원 장치를 연결하려 했다.

순간 그는 당황했다.

“이게 갑자기 왜 이래?”

전원을 연결하지도 않았는데 아키텍처에 불이 들어왔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새 반도체들이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가 아니지.”

한서진은 얼른 침착함을 되찾고 주모니터 앞에 앉았다.

타르타로스가 새로운 연결 장치가 인식되었음을 알렸다. 방금 연결한 새 반도체 그룹이었다.

「소스를 알 수 없는 명령어가 확인되었습니다. 해당 명령어를 실행하시겠습니까?」

타르타로스에 깔린 OS가 실행 의사를 확인했다. 한서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YES를 눌렀다.

바로 그 순간, 밀폐된 방안에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한서진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뭐, 뭐야?”

바람의 근원은 바로 타르타로스였다.

겨우 중심을 잡은 그는 멍하니 타르타로스를 바라보았다. 본체를 둘러싼 에테르의 흐름이 폭풍처럼 요동치는 것이, 그의 두 눈에 똑똑히 보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게, 에테르 스톰……?”

“꺼지란 말이다! 이 악마야!”

얼굴 가득 검댕을 덮어쓴 중년 남자는 울먹이며 저주를 내뱉었다. 그는 두 손에 호스를 쥔 채, 1층 전원주택 지붕에 물을 마구 끼얹고 있었다.

피난 권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 이곳은 자신이 살아온 터전이었다. 겨우 산불 따위에 내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집 주변에는 나무도 없고, 탈 만한 것도 없다. 여기까지 불이 번질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람을 타고 날아온 작은 불똥이 이 사단을 만들었다. 불똥이 지붕에 내려앉았을 때만 해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붕 소재는 불에 타지 않는 재질이었으니.

그러나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불똥은 꺼지기는커녕, 지붕 위에서 점점 그 크기를 불려갔던 것이다.

어느덧 모닥불만 하게 변하자 그는 기겁을 해서 호스를 가져와 지붕에 물을 끼얹었다. 사정없는 물줄기, 당연히 모닥불 크기의 불꽃은 금세 잡혀야 정상이다.

그런데 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물을 끼얹어도, 불꽃은 천천히 크기를 불려갔다.

“신이시여! 제발! 부디!”

그는 울부짖으며 물을 거듭 끼얹었다. 이미 지붕에는 지름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물을 끼얹어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는 비로소 저 산불이 얼마나 위험한 대재앙인지를 깨달았다. 이것은 절대 일반적인 불이 아니다. 보통의 불이 이렇게 잔혹하고, 기이할 수가 없다.

“꺼지란 말이다! 이 악마야! 제발!”

그는 미친 듯이 외쳤다.

그때였다.

콰르릉, 하고 마른하늘에 요동이 쳤다. 굉음에 놀란 그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것이다.

곧이어 쏴아아, 하고 사정없는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악마처럼 넘실거리던 불꽃은 빗방울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불꽃은 완전히 꺼졌다.

남자는 그제야 온몸에 힘이 빠져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하, 하하…… 하하하!”

기진맥진한 남자는 기쁨과 후련함에 탄 웃음을 내뱉었다.

세상이 떠내려갈 듯한 엄청난 소나기가 산불 위로 쏟아졌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불꽃은, 소나기의 기세를 이기지 못한 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불이야! 산불이야!”

“자, 여기 이 소화기로 불을 꺼!”

“이거 어떻게 쓰는 거죠? 아, 이렇게 쓰면 되나?”

“야이 미친X아! 그걸 불속에 통째로 던지면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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