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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201화 (201/609)

00201  산불, 전대미문  =========================================================================

「XTN 뉴스입니다! 현재 시각, 태백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크게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현장 특파원, 보도합니다!」

―네, 여기는 태백산 화재 현장입니다. 뒤를 보시면 산이 온통 불길에 휩싸여 있습니다. 지금 이곳은 지옥입니다.

「대체 어느 정도 규모의 화재인가요?」

―현재 가늠된 것만 대략 7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이 불길로 뒤덮였습니다. 화재에 놀란 동물들이 정신없이 탈출하며 간간이 민가를 습격하기도 합니다만, 다행히 아직까지 인명 피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방당국의 대책은 어떻습니까?」

―현재 관할소방당국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화재가 번질 가능성이 있는 지역의 모든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한편, 가용한 모든 소방자원을 동원하여 화재 진압에 나서고 있습니다.

늦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오후.

어느 계곡에서 시작된 화재가 순식간에 태백산을 뒤덮었다. 다행히 불길의 전진 속도가 느리고, 산불 신고가 일찍 들어온 덕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소방 헬기들이 대거 투입되어 화재 진압을 시도했지만, 불길이 잡힐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불길은 비록 전진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자기 영역을 넓혀가며 산맥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태백산 국립공원 전체가 현재 화재에 휩싸여 소각된 상태입니다! 피난한 지역 주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한시라도 빨리 화재가 진압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태풍 메기가 한반도를 강타해서 큰 상처를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발생한 대재해, 정부의 조속한 대책 수립을 촉구합니다. 이상 XTN이었습니다.」

“산불 진짜 심하다. 저거 잡을 수나 있나?”

TV에서 속보로 나오는 태백산 산불 영상을 보며 한서진은 혀를 찼다.

가운을 입고 옆에 앉은 송하나도 영상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불이 엄청 크네요. 동물들은 다 어쩌죠?”

“안 된 거지, 뭐. 빨리 불을 잡아야 할 텐데.”

“저 장면 보면서 이러고 있으니까 양심에 걸려요.”

“우리가 낸 불도 아니잖아.”

둘은 지금 마사지샵에 와 있었다. 발 마사지 코스를 받으러 온 것이다.

송하나가 자주 오는 가게라고 했다. 다리의 뭉친 근육을 풀고 피로를 덜어내는데 좋다는 말에 한서진도 혹해서 와봤다.

전신코스도 있다고 하는데, 그건 말도 못 꺼내봤다. 나중에 사귀면 꼭 해봐야지, 하고 속으로 벼르기만 할 뿐.

잠시 후 마사지사 둘이 들어왔다. 30대 초반의 여자들이었다.

그들이 앞에 앉으며 마사지 준비를 했다. 한서진은 슬쩍 옆에 앉은 송하나를 살폈다. 그녀는 산불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속보 영상이 넘어가자 비로소 시선을 돌렸다.

“시작하겠습니다.”

여자 마사지사 한 명이 송하나의 가운을 걷어 올리며 허벅지까지 다리를 드러냈다. 능숙하게 오일을 바르고, 조그만 조약돌 같은 것으로 다리 피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다른 마사지사도 그에게 똑같은 서비스를 시작했다.

“각질 제거하는 거예요.”

“아, 그렇구나. 이거 느낌이 좀 이상하네.”

한서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송하나의 다리를 문지르는 손길을 바라봤다.

지금처럼 그녀의 다리를 당당하게 쳐다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참에 실컷 봐둬야지.

‘얘는 참…… 다리도 진짜 예쁘네.’

하얗고 매끈한 피부, 늘씬하고 길게 뻗은 다리. 명품 다리라는 게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산불, 금방 꺼지겠죠?”

“여름이니까 오래 가진 못할 거야. 나무고 숲이고 전부 물기 투성인데. 규모가 좀 크기는 한데 번지는 속도도 느리고.”

“빨리 꺼졌으면 좋겠어요.”

송하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모바일뱅킹에 들어가 뭔가를 확인했다.

“뭐 하니?”

“용돈 얼마 남았나 확인하고 있어요.”

“용돈은 왜?”

“산불 끄고 나면 뒷수습하는데 돈 들잖아요. 용돈 남은 걸로 성금 내려구요.”

아이고, 이 기특한 것. 한서진은 그런 생각이 갸륵해서 그저 흐뭇했다.

“근데 의외네. 용돈 받아쓰니? 난 회장님이라면 카드를 주실 줄 알았는데.”

“카드도 주시고 따로 용돈도 주시고 그래요.”

“용돈 얼마나 남았어?”

“32억 정도 남았어요. 저번에 태풍 성금 내느라 이거밖에 안 남았네요.”

“…….”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마사지사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표정에 별반 변화가 없었다.

여고생이 용돈 쓰고 남은 게 32억 원이라니. 그걸 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저들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게 그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다.

‘참, 하나가 여기 단골이랬지. 그럼 하나 같은 손님들만 받는 곳인가?’

그렇다면 마사지사들의 반응이 납득이 된다. 그러고 보니 송하나가 저번에 맞춤 정장을 구매하러 데려간 곳도 청담동 매장이었는데. 무척 비싼.

“혹시 이번 달 용돈이야?”

“설마요. 그냥 매달 주시는 용돈 모은 거 쓰고 남은 거예요. 따로 카드도 있는데 매달 그렇게 용돈을 어떻게 줘요. 우리 아빠도 그렇게는 못해요.”

한서진은 피식거렸다. 백철중 회장이라면 한 달에 수십억씩 용돈 주는 것쯤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재산이 몇 조인데.

아마 아직 어려서 용돈을 적게 주는 것이리라. 그렇다 해도 일반인의 기준으로는 상상 초월이지만.

“그래도 용돈으로 성금도 내고…… 하나 착하네?”

“돈은 쓰라고 있는 거잖아요. 이럴 때 써야죠.”

“그래도 착하네.”

야무진 표정이 오늘따라 한층 예뻐 보였다.

그녀가 문득 말했다.

“근데 저거 산불 어디까지 번질까요?”

“글쎄, 한 번 계산해볼까?”

“그런 것도 가능해요?”

“계산 자체야 가능하지. 결과까지 맞을지는 모르지만. 잠시만 기다려 봐.”

한서진은 손을 뻗어 태블릿 컴퓨터를 집어 들었다. 화면을 켜고 타르타로스에 접속했다.

송하나는 고개를 빼며 흥미로운 눈으로 살폈다.

“그거 뭐예요?”

“말 나온 김에 지금 계산해보려고.”

“그런 프로그램도 있어요? 신기하네요.”

“얘로 직접 계산하는 건 아니고, 이건 그냥 접속 단말기거든. 집에 있는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로 할 거야.”

미스릴 수퍼컴퓨터가 졸지에 평범한 워크스테이션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만약 타르타로스에 인격이 있었다면 비분강개하며 레드스크린 파업을 일으켰으리라.

‘밑져야 본전이니, 한 번 시켜볼까?’

산불 진로 관측 데이터 따위는 없다. 하지만 산불 경과 분석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았다.

태풍 메기의 진로를 계산할 때, 타르타로스는 에테르의 흐름을 읽어 정확한 결과를 예측했다. 기상 정보 그 자체보다는, 그 안에 담긴 에테르의 정보를 읽어서 분석 작업에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산불의 경과도 에테르의 흐름을 읽는다면 충분히 예측 가능할 것이다.

‘타르타로스는 에테르 흐름으로 감싸여 있으니까…….’

상시 타르타로스를 감싸고 있는 에테르의 흐름. 그 수많은 가닥 중 어느 것들은 분명 태백산에도 이어져 있으리라.

시도할 가치는 충분했다.

계산 결과는 금세 나왔다.

“됐다.”

“벌써 결과가 나왔어요?”

“응, 좀 특별한 부품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라서 계산하는 게 좀 빨라. 어디 보자…….”

결과를 확인한 한서진은 그만 굳었다. 송하나의 얼굴도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놀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이거 잘못된 계산이죠?”

“어, 그, 그런가 보다. 말도 안 되는 계산이네. 하하…….”

“진짜 잘못된 거 맞죠?”

송하나는 한 번 확인하려는 듯이 물었다.

「산불 경로 예측 :

태백산맥 전체 소각까지 162시간 미만.

차령산맥 전체 소각까지 228시간 미만.

소백산맥 전체 소각까지 225시간 미만.

노령산맥 전체 소각까지 276시간 미만.

한반도 전체 소각까지 527시간 미만.」

‘말도 안 돼!’

한서진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계산 결과란 말인가.

산불을 잡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주요 산맥들이 전부 타버린다고?

게다가 마지막 결과는 대체 뭔가?

약 22일 안에 한반도 전체가 소각된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결과인가?

아무리 큰 산불이 무섭다 하나, 나라 전체를 태워버리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타르타로스, 너 미쳤냐?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내놓…….’

그때였다.

한서진의 눈이 화면 한쪽에 출력된 그림에 닿았다. 지도를 3차원 모형으로 도식화한 그림에는, ‘그에게만 보이는’ 황금빛 선이 무수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건 설마?’

그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오빠? 어디에 전화하세요?”

“잠시만, 알아볼 게 있어.”

한국대 기상학과 교수의 전화번호를 찾은 그는 얼른 통화를 시도했다. 잠시 후 전화가 연결되었다.

“교수님, 저 반도체공학부 한서진입니다.”

「어, 그래요. 무슨 일인가요?」

“다름이 아니고 강원도 산불 말인데요, 혹시 산불의 진로를 촬영한 항공사진을 좀 얻을 수 있을까요? 가능한 크고 넓게 촬영한 사진이면 더 좋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지금 나한테도 있어요. 우리도 예의 주시하고 있거든. 바로 보내줄게요.」

“네, 감사합니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메일이 도착했다. 한서진은 사진을 열어보고는 그만 신음했다.

“와…… 이렇게 보니까 산불이 정말 엄청나네요.”

옆에서 송하나가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한서진은 그녀의 말에 집중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보지 못하는, 아니 그녀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두가 보지 못하는 것. 오로지 그에게만 보이는 진실의 흐름이 사진 속 산불에 생생히 섞여 있었던 것이다.

붉은 화염을 휘감고 있는 거대한 산불.

그 안에 뼈대처럼 자리 잡은, 무수하게 뻗어 있는 황금빛 에테르의 선이, 똑똑히 보였다.

‘에테르 불꽃?’

강원도는 지옥이었다.

“불이 꺼지질 않아요! 미쳤어요, 이건 미쳤단 말입니다!”

소방대원이 절망한 얼굴로 악을 썼다.

강원도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산불 진압에 나섰다. 강원도뿐만이 아니라 인접한 도에서도 비상을 대비한 최소한의 자원만 남기고, 산불 진압을 돕기 위해 가용한 모든 소방자원을 투입했다.

소방헬기, 소방차, 소방대원 등 모든 자원을 긁어모아 화재 진압에 나섰다.

그뿐이 아니다. 군대에서도 장병들을 총동원해서 산불 진압에 나섰으며,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민방위까지 소집되어 산불을 끄러 나섰다.

재해대책본부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무슨 말인가? 불길이 전혀 잡히질 않는다고?”

“그렇습니다! 현장은 지금 지옥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릴. 아무리 크다 해도 결국 불이잖나. 어떻게든 진압을 해봐.”

실무자는 답답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불길이 워낙 크니 단시간에 잡는 게 힘든 것은 사실인데, 그래도 어느 정도 효과는 있어야 정상입니다. 하지만 분말이나 물을 아무리 끼얹어도 불길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 말대로, 산불 현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불이 분말이나 물 등 소화 물질에 아예 반응 자체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소화 물질에 면역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그리고 불의 전진 속도…… 이것도 이상합니다. 불길이 번지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느립니다.”

“불이 천천히 번지면 좋은 거 아닌가?”

“천천히 번지면 좋죠. 하지만 현장의 상황을 보면 이것보다 다섯 배는 더 빠르게 불길이 번져야 합니다.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비정상적으로 느린 속도.

어떤 소화 물질에도 반응하지 않는 화염.

절대로 평범한 산불이 아니었다. 실무자는 소방 인생 30년 동안 이런 산불, 아니 이런 불은 처음 보았다.

“이건 마치…… 이 세상의 불이 아닌 것 같습니다.”

============================ 작품 후기 ============================

왕은 몹시 멋쩍습니다.

“아…… 통신감도 올리려다가 그만 전선에 불이 붙었네;;;;;”

조심스럽게 강림 안 하면 지구 망가진다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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