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177화 (177/609)

00177  예고된 태풍?  =========================================================================

태풍 메기가 부산을 덮쳤다.

태풍의 중심이 부산 해안을 점령했고, 기상청은 경악했다. 일본 기상청이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일본이 천국이라면, 부산은 지옥이었다.

태풍의 영향권은 경상남도 거제에서부터 부산, 울산에 걸쳤다.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 지옥이 강림했다.

서둘러 편성된 재해대책본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전문가들은 건국 이래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남길 재해라며, 거듭 그 위험성을 강조했다.

태풍 피해와 상관없는 지역 거주민들도 걱정하며, 남부 지역의 상황을 확인했다.

지방행정부는 온힘을 다해 주민 대피 작업을 실시하고, 태풍으로 인한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움직였다.

한서진 역시 태풍 때문에 다급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내심 크게 후회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작정하고 알리는 건데.’

연이어 보도되는 태풍의 피해에 그는 당황했다. 그는 태풍 피해가 이렇게 심한 줄 몰랐다. 이전에는 태풍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서울에 살다 보니 바람이 세고 폭우가 좀 쏟아진다고 투덜거리는 선에서 늘 끝났다. TV에 나오는 이재민은 언제나 남의 이야기였기에 금세 잊곤 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정확히 예측한 태풍으로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왜 이것을 적극 알리지 않았는지, 그는 자신의 안이한 경솔함을 후회했다.

그는 기상학과 교수를 찾아갔다. 그라면 이 사태에 관해서 말이 통할 테니까.

전후사정을 듣고, 사전 예측 결과를 확인한 교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랐다.

“이걸 자네가 계산했었다고?”

“네, 태풍 피해는 이제 시작입니다. 저놈, 부산에서 앞으로 사흘은 더 머물러 있을 겁니다. 위력도 별로 줄어들지 않을 거구요. 알려야 해요.”

교수는 다시 한 번 결과를 확인했다. 한서진의 예측 계산은 태풍이 발생한 시기부터 지금까지의 전개 과정과 조금의 오차가 없었다.

그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정확히 태풍의 탄생과 이동경로를 예상한 것이다.

이런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지금까지 시범적으로 예측한 기상 예보도 전부 들어맞았다. 교수는 그를 믿기로 했다.

“이 계산 정보, 내가 행정부에 알려줘도 되겠지? 재해본부에 아는 사람이 좀 있네.”

“물론입니다. 그러라고 가져온 겁니다.”

“사흘이나 더 머물 수도 있다니, 피해가 엄청나겠어.”

2003년도, 당시 건국 이래 최대 규모라던 태풍이 비슷한 경로로 남해안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해 시간은 겨우 6시간 정도였으나 재산손실액이 4조 원이 넘고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그런데 이번 태풍은 그때와 비슷한 규모인데 자그마치 나흘 동안 부산을 차지할 예정이란다. 이 사실을 재해대책본부 사람들이 알면 뒤집어질 것이다.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한서진은 집에 돌아와서 TV를 시청했다. 아나운서가 다급한 목소리로 남해 지역의 피해 상황을 알려주고 있었다. 피해 방송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거제와 부산, 울산은 사실상 도시 기능이 정지했다.

거리로 나오는 것 자체가 자살 행위였다. 태풍은 건장한 성인 남자도 날려버릴 힘을 갖고 있었으니.

거리에는 부서진 간판과 가로등이 수수깡처럼 날아다녔고, 박살난 차량이 뒤집어진 채 나뒹굴었다.

「정부는 부산과 거제, 울산 등에서 12곳 이상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였으며…….」

다급한 아나운서의 멘트 뒤로, 홍수에 휩쓸린 사람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들린다. 다행히 그들은 무사히 구조되었지만, 스쳐 본 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는 기분이었다.

2미터가 넘는 해일과 25미터가 넘는 파도가 거제를 덮치는 장면이 나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졌다. 양식장은 흔적도 없이 날아갔고, 진수를 앞두고 있던 배가 떠내려갔다.

거대한 해상 호텔이 전복된 채 반쯤 물에 잠겼고, 물류센터의 육중한 철제 크레인들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대형 컨테이너를 선박에 적재하는 거대한 크레인들이 바람에 쓰러진 것이다.

「국내 수출입 물량의 70% 가까운 물량을 소화하는 부산항의 마비로 인해 그 경제적 피해는 국내 전체에 확산되고 있으며…….」

심각한 전문가의 말은 이게 단지 남해안의 위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수출 육로가 없는 한국은 대부분의 물류를 항만에 의존했고, 또 부산은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물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 대동맥이 태풍이라는 혈전에 막히고 말았으니, 피해가 온몸으로 퍼져 나갈 수밖에.

한서진은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팔을 걷어붙이고, 보안방을 찾았다. 타르타로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에테르의 흐름, 그만이 볼 수 있는 광휘가 반갑게 맞이했다.

“타르타로스.”

착각이지만 마치 타르타로스를 감싼 에테르의 흐름이 움직였던 것 같다. 마치 자신을 알아보고 환영하듯이.

그는 주모니터 앞에 털썩 앉았다.

“방법을 찾아보자. 피해를 줄일 수는 없는지, 정말로 나흘씩이나 머무르는지, 아무튼 뭐든지 계산해 보자.”

그는 이를 악물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모든 변수를 상정한 새로운 계산을 요구했다. 그 조정 값을 입력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타르타로스를 감싼 보이지 않는 에테르의 흐름이,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더욱 강하게 흔들렸다. 일만 마리의 케르베로스가 내뱉는 포효가 하나로 섞이며, 그 흐름이 대기에 이어진 에테르를 타고 널리 퍼져 나갔다.

어느 순간, 한서진의 손이 뚝 멈췄다.

“이건 뭐지?”

그는 타르타로스가 폐기했던 예측 결과를 보고 있었다. 1차, 2차 계산에서 전혀 보지 못했던 값, 아마도 시뮬레이션상의 오차 결과를 자체적으로 폐기해서 저장해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나흘 동안 남해안 전부를 돌다가 한반도를 북상해서 서울에서 사라질 예정이었다고?”

이 무슨 미친 계산 결과란 말인가.

심각한 오류가 난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타르타로스도 처음에 자체적으로 폐기하고, 다시 계산을 했던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명백한 오류였다고.

그럼에도 한서진은 그 예보 결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바보스러운 공상이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 한 줄기가 가슴 속에 줄기를 틔웠다.

‘혹시 초기 계산 오류가 아니라…….’

한서진이 만든 모든 반도체는 미시적인 영역에서 에테르의 힘을 이용한다. 반도체 회로에 새겨 넣은 에테르 언어, 레노지안 말로는 진언이라 하는 명령어가 에테르를 움직이는 것이다.

그 힘은 전자 단위에서 상호작용하는, 아주 미약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만 개의 케르베로스가 모인 타르타로스는 다르다.

미시적인 힘을 긁어서 한데 모으고, 증폭하고, 나비 효과를 일으켜 거시적인 에테르의 흐름에 간섭한다.

거시적인 에테르의 흐름을 제어한다고 하나, 그 간섭력 자체는 보잘것없이 작다.

그래서 타르타로스는 힘을 최대한으로 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나비 효과다. 태풍의 씨앗 단계에서 에테르의 흐름을 주입하여, 태풍 자체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증폭시킨 것이다.

그 결과가 저것이다.

본래라면 서울까지 침투하여 한반도 전체를 무차별로 할퀴었을 태풍이, 남쪽 지역에 발이 묶인 채로 있다가 동해로 빠져나가는 흐름으로 바뀌었다.

아쉬운 것은 태풍 자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는 없다는 것. 움직일 수 있는 에테르의 흐름이 그만큼 미약하기 때문이다.

‘의식이 소용없지는 않았다.’

왕가의 모든 미스릴과 오리할콘을 쏟아 부어 치렀던, 꿈에 개입하기 위한 의식. 비록 한 시간도 넘기지 못하고 현실로 튕겨져 나왔지만, 그 의식은 분명한 연결 통로를 만들었다.

가능할지도 모른다. 현실의 의식을 유지한 채, 다시 한 번 꿈에 개입하는 것이.

왕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세계를 떠올리고, 온몸에서 에테르의 힘을 끌어올렸다.

거짓된 세상에서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며.

방송에서는 피해 속보가 끊이지 않았다.

오래되고 낡은 집은 거의 초토화되었고, 빌라들은 유리창이 깨져 나갔다.

지하상가, 지하주차장 등 지하 지역은 남김없이 침수되었다. 이틀 연속으로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마치 태풍이 바닷물을 퍼 올려다가 하늘에서 쏟아 붓는 것만 같았다.

낮은 지역은 물로 뒤덮였고, 거리에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식수는 사실상 끊겼고, 주민들은 집에 갇힌 채 구조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서진은 사흘째 미친 듯이 태풍 예측에만 매달렸다.

‘정녕 방법이 없나? 진짜 이놈, 나흘 내내 남쪽 지역을 초토화시킬 작정인가?’

수백 번을 넘게 계산을 거듭했다. 틀렸기를 바라며 몇 번이고 계산을 반복했다.

처음 태풍 예측 결과가 나왔을 땐 그저 신기했다. 봄인데 이런 큰 태풍이 오기도 하는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 태풍의 남의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TV에서는 하루하루 고통 받는 이재민들의 모습과 유령 도시처럼 변한 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미 예상 집계된 직접적인 재산 피해만 15조 원이 넘었으며, 물류 마비로 인한 손실, 그리고 울산공단과 거제조선지역이 입은 손실 또한 엄청났다.

이제는 태풍과 크게 상관없는 지역까지 포함해서, 온 나라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빌고 있었다.

제발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빨리 저 지긋지긋한 악마가 떠나가게 해달라고.

띵, 하고 계산을 완료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깜빡 졸고 있던 한서진은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미 수백 번을 넘게 반복한 계산, 그는 기계적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문득 그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지며, 각막에 고여 있던 졸음이 씻은 듯이 달아났다.

“뭐, 뭐야? 정말?”

「태풍 이동 경로 변경.」

놀랍게도 타르타로스는 다른 계산 결과를 내놓았다. 태풍이 앞으로 30분 뒤부터 서서히 동해 쪽으로 이탈해, 최종적으로는 일본 서부 해안에 상륙하자마자 소멸한다는 예측이었다.

한서진은 다시 계산을 했다. 두 번이나 걸친 반복 계산에서도 동일한 예측 결과가 나왔다.

확실하다는 믿음을 얻은 한서진은 얼른 전화를 들었다.

“정 팀장님, 접니다.”

「어,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었다.」

“예측 결과가 바뀌었어요. 태풍이 30분 뒤부터 이탈을 할 겁니다. 그리고 일본 서부 해안에 상륙하자마자 소멸할 거예요.”

「그게 정말이야?」

“세 번이나 재계산했는데 틀림없어요. 뭔가 다른 변수가 생겨서 태풍의 경로가 바뀐 겁니다.”

「그거 정말 다행이네. 알았다. 다시 방침을 바꿔야겠어.」

“방침이요?”

한서진은 퍼뜩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정지원은 자신의 계산에 베팅을 하겠다고 했었다.

태풍의 규모를 예측할 수 있다면 자연히 피해를 감안할 수 있고, 주식이나 물류 등으로 이익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J인더스트리가 그런 짓을 한다면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을 텐데. 설마 정지원이?

「염려할 것 없어. 한국 시장에는 일절 손도 안 댔다. 오히려 부산, 경남, 울산 지방행정부에 언질을 줘서 미리 준비를 해서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부탁했지. 반신반의하지만 그래도 못 들은 체 하지는 않더군. 그들도 감사하다고 전화 왔었고.」

“아, 그래서 베팅을 한다는 거였나요.”

「겸사겸사 일본 선물 시장에 올인했어. 걔들은 주가만 널뛰기를 했지, 태풍 피해는 안 입었잖아. 욕먹을 일도 없어.」

============================ 작품 후기 ============================

날아오르라, 주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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