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76 예고된 태풍? =========================================================================
“열흘 뒤 날씨니 틀려도 이상한 게 아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정지원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넘겼다.
그러나 한서진은 기상 예측 결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틀릴 리가 없는데.’
타르타로스의 진정한 성능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 하드웨어를 구성한 일만 개의 케르베로스는 단순한 고성능 연산 반도체가 아니다.
입력된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 그 데이터에 담긴 에테르의 움직임까지 읽어내는 괴물이다. 지금까지 연달아 날씨를 정확히 맞혔던 것도, 기상 관측 정보에 타르타로스만이 읽을 수 있는 에테르 정보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열흘 뒤라고는 하지만 절대 틀릴 리가 없다. 한서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계산해볼게요.”
한서진은 새로운 계산 명령을 입력했다.
긴 시간이 걸리는 방대한 비선형 계산 작업이지만, 타르타로스는 얼마 걸리지 않아 결과를 내놓았다.
“어때?”
“변한 건 없어요. 다만 추가 된 게 있네요.”
“추가?”
“아까는 태풍이 부산에 상륙하는 날까지만 계산을 한 거고, 그 이후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떤데?”
“부산에서 나흘 동안 체류하다가 그대로 동해로 이동해서 일본 서부에 상륙하고 하루 뒤에 사라진다네요.”
“상당히 구체적인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정지원도 비로소 심각한 얼굴이 되어서 바짝 다가왔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물었다.
“네가 설계한 컴퓨터 성능은 믿지만, 이건 기존 기상 관측 정보를 분석한 거잖아.”
“그렇죠.”
“그럼 네 컴퓨터가 아무리 뛰어나도, 관측 정보에 오류가 있으면 틀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게다가 열흘이 지난 다음 일이고, 지금은 이런 큰 태풍이 올 시기도 아닌데.”
“…….”
한서진은 대답 대신 입을 다물었다. 정지원은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 확신하고 있구나. 예측 결과.”
“네, 확신합니다. 전 제가 설계한 반도체를 믿습니다.”
“좋아. 알겠어.”
정지원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뭐 하시려고요?”
“나도 네 확신에 배팅해보려고.”
그의 대답은 의미심장했다.
이용무 부회장으로부터 드디어 연락이 왔다.
타르타로스의 기상 예측 결과 분석에 매달리고 있던 한서진은 연락을 받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용무는 유선상이 아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길 원했다.
“그럼 저희 집으로 오시지요. 제가 지금 바빠서 나갈 틈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용무가 찾아왔다.
이용무가 정문을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은 한서진은 본채 건물 밖으로 나왔다. 굳이 현관문 밖까지 나온 것은, 차에서 내린 순간의 이용무의 표정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부족할 것 없는 재벌2세에게도, 이 대저택은 과연 특별한 소감을 줄 수 있을까.
“어서 오세요.”
편안한 차림을 한 채, 한서진은 태연하게 그를 맞이했다. 뒷좌석에서 내린 이용무의 얼굴은 상당히 경직돼 있었다.
집은 그 사람의 가치를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다.
이곳은 땅값만 2조 원이 훨씬 넘어가는 대저택, 이창용 회장의 사가도 이 대저택에 비하면 초가삼간 수준이다. 이용무는 굳어진 얼굴을 펼 줄 몰랐다.
“집이…… 무척 좋군요. 놀랐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서진은 덤덤히 말했다. 이용무는 오늘 쉽지 않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밖에서 만났으면 좋았겠지만 제가 지금 집에서 중요한 작업 중이던 게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오히려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한서진은 이용무를 직접 1층 응접실로 안내했다. 개인 저택이라기보다는 마치 잘 꾸며진 사립 박물관 같은 느낌의 규모다. 재벌들도 서울 한복판에 이런 집을 갖진 못한다.
집사, 최수한이 차를 가져와서 대접했다. 찻잔 받침까지도 외국 왕실에서나 쓸 법한 고급품이다. 어디에서도 하루아침에 돈 벼락을 맞은 졸부의 티가 보이질 않는다.
500억 달러의 재력가, 저택 구석구석에서 그런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이용무는 새삼 방문하기를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찾아오신 이유가 뭡니까.”
한서진이 차분히 질문했다. 이용무는 호흡을 한 번 다듬고 대답을 꺼냈다.
“절반이면 됩니까.”
한서진은 자신의 귀를 살짝 의심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부친을 위해서라면 그룹의 절반이라도 기꺼이 떼어주겠다는 건가요. 효심이 무척 깊으신 분이군요.”
“한 대표의 의지만 분명하다면 여기서 확실히 약속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묻겠습니다.”
“…….”
“정말 절반이면 됩니까.”
이용무의 눈빛이 무겁게 부딪쳐 온다. 결코 시시하게 여기고 있는 게 아니다. 아마 이 대답에 따라서 그의 결심이 굳어지게 되리라.
차분히 바라보던 한서진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사실 절반은 그냥 해본 말이었습니다.”
“……!”
“전부, 그게 아니면 거래는 없습니다.”
이용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한 대표! 이게 무슨……!”
“본래라면 그룹의 전부를 준다 해도 하지 않을 거래입니다.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이죠. 애초에 제 집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긍정 가능성조차 언급하지 않았을 겁니다. 위험하니까요.”
이용무와 이서나 남매는 경영권을 다툴지언정 그룹 자체는 지키려 했다. 그런데 절반을 주겠다니, 그간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은 것일까.
한서진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엘릭서의 존재를 아는 자를 늘리면서까지 탐할 정도로, 진성그룹이 대단하지 않을 뿐이다.
이창용 회장이 위독한 것? 무슨 상관인가.
‘진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나도 죽을 뻔했는데.’
자신은 반도체 화학 물질에 노출돼서 암까지 걸리지 않았나. 분명한 인과관계가 증명된 건 아니지만, 그것은 상관없다.
자신의 보물을 나누는 데는 자신의 심증만이 절대적인 판결 기준이니까.
“전부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러니 더 생각을 해보시죠.”
“……한 대표. 이러지 맙시다.”
“전 더 할 말이 없습니다.”
이것이 간접적인 거절임은, 둘 다 알고 있었다.
어차피 이용무는 전부를 주지 못한다. 주고 싶어도 그를 둘러싼 모두가 반대하고, 그를 막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강행하고자 한다면 주변의 모두가 그를 끌어내릴 것이다.
재벌의 재산이 가지는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형체는 없지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람의 탐욕을 이용한다.
“잊지 마십시오. 전부입니다.”
비밀 유지에 관한 협박 따위는 하지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이용무가 스스로 알아서 지킬 테니까.
「적도 부근에서 형성된 열대성 저기압이 북서 방향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른 태풍의 조짐에 놀라워하고 있으나, 계절 시기상 태풍이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시기에 어울리지 않는 열대저기압입니다. 얼마 상승하지 못하고 곧 스스로 소멸하고 말 겁니다. 국민 여러분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타르타로스가 예고한 태풍의 부산 상륙을 일주일 앞두고, 북태평양에서 형성된 열대저기압이 일본을 향해 상승하기 시작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이틀 전 형성된 열대저기압이 소실되기는커녕 더욱 강성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바람3급 위력의 태풍 판정을 받은 ‘메기’는 일본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 중입니다.」
초속 20m/s를 돌파한 열대저기압은 메기란 이름을 받고 일본을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한국과 일본 기상청은 난리가 났다.
태풍의 조짐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금방 소멸할 거라는 낙관을 깨부순 것으로도 모자라, 주변의 바람을 잡아먹으며 커지는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아직 우리나라는 초강력 태풍이 올 때가 아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비껴갈 거야. 일본 열도가 알아서 바람막이가 되어주겠지.”
아직 계절이 봄인 터라 한국은 태풍의 영향력을 낙관하고 있었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게 태풍이라지만 한국은 주로 여름에서 가을에 큰 피해가 집중되었으니.
타르타로스의 부산 상륙 예고를 사흘 앞두고, 돌연 태풍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역으로 틀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급격한 진로 변경에 누구보다 당황한 것은 바로 한국이었다. 본래라면 오키나와를 스치듯이 반원을 그리며 일본 동부를 비껴갈 예정이었는데, 왜 갑자기 방향이 반대로 바뀐 것인가?
―야야, 이거 왜 이래?
―아니잖아. 설마 우리나라 오는 거 아니지?
―걱정할 것 없다. 이 방향대로라면 산둥반도를 덮칠 각이다.
―이렇게 코앞에서 급격히 방향을 바꾼 태풍도 있었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낙관했다. 진로를 튼 방향을 볼 때, 태풍은 중국 동부 해안을 덮칠 것이라고 보았다.
예고 이틀 전.
태풍 메기는 다시 한 번 방향을 틀며, 똑바로 직선 경로를 잡았다. 그 경로 위에 놓인 도시는 다름 아닌 부산이었다. 대한민국 최대의 항구물류도시.
한국, 특히 부산은 난리가 났다.
「속보입니다! 현재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에 바람1급 태풍 경보가 내렸습니다! 태풍 메기의 최대풍속은 60m/s로, 이는 철제 크레인을 쓰러 넘어뜨릴 수도 있는 위력입니다! 태풍 경보 지역의 주민 여러분들은 고가도로 내 차량 진입, 고층건물의 옥상 출입, 대형간판 등 옥외시설물 근처로 접근을 금지하시기 바랍니다!」
풍속 40m/s 이상의 태풍이면 사람은 물론 달리는 자동차도 날려버리는 위력이다. 그런데 무려 60m/s였다.
부산은 앉은 자리에서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항만물류센터는 며칠 전부터 태풍을 대비하기 위해 부랴부랴 뛰어다니고 있지만,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겨우 이틀이었다.
부산을 덮치기 이틀 전에서야 마침내 메기는 최종 경로를 부산으로 잡았고, 풍속 60m/s라는 자신의 진정한 위력을 선보였다.
마치 최후의 순간 목을 물어뜯기 위해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이빨을 꺼낸 맹수처럼 말이다.
항만물류지역에서는 당연히 제대로 된 대비를 할 수가 없었다. 누가 이틀 만에 저런 괴물이 되어 부산을 정통으로 덮칠 줄 알았겠는가.
그러나 재앙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타르타로스가 예고한 날, 태풍은 그 위력이 전혀 줄지 않은 채 부산 해안 지역에 잔류했다.
정지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진아, 네 계산 결과로는 나흘 동안 저대로 부산에 잔류하다가 일본 서부로 이동한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정지원도, 한서진도 계산 결과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태풍의 움직임에 전율했다.
꿈에서 깨어난 왕은 가볍게 이를 악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틀림없다.”
왕은 꿈에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한서진이라 여긴 채, 사고하고, 행동할 뿐이다.
꿈이 끝나면 한서진의 경험은 기억으로 갈무리되어 왕의 머릿속에 남는다.
깨어난 왕이 떠올리는 기억은 한서진의 눈과 귀, 생각을 거쳐 가공된 것들이다. 왕은 그 가공된 기억을 제3자의 입장에서 관조하여 꿈속 세상을 이해한다.
따라서 한서진이 접하지 못한 정보는 왕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왕의 지혜와 경험에 의거해 추론을 할 뿐이다.
이를 테면 정지원이 한서진에게 헌신하는 진짜 이유, 주변에서 한서진을 건드리지 않고 놔두는 이유. 그런 것들이 있다.
“타르타로스는 에테르를 움직였다.”
한서진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다. 따라서 100% 확인한 정보는 아니다.
그럼에도 왕은 확신했다.
타르타로스는 미약하지만 에테르에 간섭했다. 꿈속에서 발생한 태풍은 100% 예측된 게 아니라, 99%의 예측에 1%의 타르타로스의 간섭력으로 탄생한 것이다.
“만약 그 반대라면……!”
만약 타르타로스가 99% 이상의 간섭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이곳 레노지안처럼 날씨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왕이 흥분한 것은 날씨 제어의 가능성 때문이 아니었다. 에테르의 제어를 미시 영역이 아닌 거시 영역에서 이룰 수 있다면, 그전에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서진의 의식에 직접 접촉하는 것이.
============================ 작품 후기 ============================
"아니... 난 100% 정확한 예측을 하고 싶었는데 99% 밖에 안 맞잖아...그래서 남은 1%는 주작질을 좀 했어. 아이, 그래서 나 업글 안 해줄 거야?ㅎ"
ps : 보다시피 초속 60미터의 태풍이 부산에 나흘 간 체류하다가 떠난다는 전개입니다.
이에 관해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와, 이 피해를 미리 알고 베팅한 정지원이 추구할 수 있는 이익에 관해서 독자 여러분들의 제보를 부탁합니다.
참고 좀 할께여... 결코 날로 먹으려고 그러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