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168화 (168/609)

00168  그 환자 그 교수  =========================================================================

한서진은 열심히 날씨 분석 모듈에 매달렸다.

‘일단 기상 자료부터 공부해야 해.’

통찰안은 진실을 보여주는 힘이지만, 여기에는 일정한 제한이 따른다. 한서진의 역량이 닿지 않는 부분은 블라인드로 가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어차피 봐도 어려워서 이해 못할 게 뻔한’ 진실은 보여주지 않는다고 할까.

그 제한을 넘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 분야에 숙달된 이해도를 가지거나, 혹은 알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반도체에 특화된 눈을 가지게 된 것은 전자의 경우에 가깝고, 엘릭서 제조법을 알게 된 것은 후자의 경우다.

기상 관측 데이터에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에테르의 흐름이 담겨 있다. 타르타로스는 그것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관측 데이터라도 매우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이런 가설을 세운 한서진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기상 자료 공부에 매달렸다.

“갑자기 웬 기상 연구냐? 기상학자라도 되려고?”

“타르타로스 연구에 필요한 작업입니다.”

“뭐…… 열심인 건 좋은데 네 본분을 잊지 마라. 넌 반도체 과학자지 기상학자가 아니다.”

“과학자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서진은 우쭐한 마음보다는 괜히 머쓱해졌다. 과학자라니, 자신은 교수도 아닌데.

“너 정도면 다른 과학자들보다 훨씬 낫지. 네가 이룬 업적이 대체 몇 개냐.”

“그래도 전 아직 학생인데.”

“학위가 뭐가 중요하냐. 내가 보기에 넌 이미 어엿한 반도체 과학자다.”

마침 자료 더미를 한 아름 안고 지나가던 안홍철이 슬쩍 듣고 냉큼 한 마디 했다.

“서진이는 한국대의 토니 스타크지 말입니다.”

“안 선배님, 그런 말 하지 마시라니까. 저 진짜 들을 때마다 민망하다고요.”

안홍철은 피식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박효산도 웃으며 놀렸다.

“한국대의 토니 스타크? 언제 그런 별명이 생겼냐?”

“몰라요. 첸테나리오 때문인가.”

“아아, 며칠 전에 뽑았다는 그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첸테나리오. SF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역동적인 디자인 덕분에 한서진은 한국대의 토니 스타크란 별명을 얻었다. 과학으로 억만장자가 됐다는 이미지는 비슷하지만, 그 외에는 대체 뭐가 비슷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잘 어울리는데. 한국대의 토니 스타크라. 그럼 나중에 SJ인더스트리가 무기 제조업도 하는 거냐?”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전 반도체 말고는 아는 게 없다고요.”

“첨단 무기는 결국 반도체와 폭발물의 합체 아니냐. 요즘은 소총에도 반도체를 넣느니 마느니 하는 시대야.”

“에이, 전 그런 건 안 해요.”

“그래도 군수업체들이 슈나우저와 코카 스패니얼 열심히 사다가 자기 무기에 탑재하고 있을걸. 그런 걸로 사업 제휴 요청 같은 건 안 들어왔냐?”

“글쎄요. 없는 걸로 알아요.”

한서진은 만약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어떨지 상상해보았다. 크게 내키지는 않는다. 자신이 영화에나 나올 법한 죽음의 무기 상인이 되다니.

기상학 교수를 찾아가 따로 질의를 하는 등 한서진은 열심히 기상 관련 공부를 했다. 전문적으로 오래 공부한 학자들에 비하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대강 기상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큰 그림을 한 번 스쳐볼 수는 있었다.

기상학의 큰 그림을 숙지했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스쳐지나가듯이 봤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

그러나 그에게는 매우 만족스러운 성과가 뒤따랐다.

“보인다!”

기상청에서 얻은 기상 관측 데이터를 보는 순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진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그 안에 담겨 있는 에테르의 흐름이었다.

“이거구나.”

기형적인 선으로 이뤄진 도형이 수도 없이 떠올랐다. 마치 3차원 공간 역장을 나타낸 듯한 도식이다.

한서진은 터치펜을 쥐고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베껴 그렸다. 분석은 나중이다. 지금은 보이는 대로 적어야 했다.

“역시 내 가설이 맞았어.”

기상 정보에 담긴 에테르의 흐름을 남김없이 옮겨 적은 한서진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에테르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야.”

니트론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제5의 힘의 존재를 가정했다. 한서진은 그가 발견한 것이 에테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에테르를 단순히 5번째 힘으로 가정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훨씬 대단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거대한 법칙이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자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그는 새삼 통찰안을 얻은 운명에 감사했다.

‘통찰안만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세상의 비밀을 볼 수 있어.’

흥분이 가슴에 머무른다. 한서진은 벌떡 일어나서 바닥을 왔다갔다 반복해서 걸었다. 좀처럼 흥분이 식지 않았다.

“에테르의 움직임은 대자연과도 맞물려 있고, 기상 활동에도 그 흔적이 있어. 통찰안은 당연히 그것을 볼 수 있고…….”

그의 눈이 가늘게 변하며, 저쪽 보안공간에 있는 타르타로스를 향했다.

“그럼 타르타로스는?”

소프트웨어에는 특별히 그런 명령어가 담겨 있지 않았다. 타르타로스 자체가 가진 특성이라고 봐야 한다.

‘에테르 반도체라서, 에테르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건가?’

그것이 타당한 이치일 것이다.

한서진은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만약 에테르 언어로 프로그래밍한다면…….’

이전부터 조심스럽게 했던 발상이다.

에테르 언어로 만든 미스릴 반도체에는 당연히 에테르 언어로 만들어진 프로그래밍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만약 미스릴이 정말 현진국 교수의 가설대로 외계의 어떤 고도 문명이 지구에 남긴 문물이라면, 그에 합당한 기계어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좋아. 어디 해보자.”

통찰안을 통해 병을 치료하고, 놀라운 지식을 알게 되었으며, 많은 부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욕심이 났다. 갈증이 심해졌다.

계속 알고 싶어졌다.

통찰안이 아직 보여주지 않은 세계의 비밀이.

“교수님. 영상 판독 끝났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거기 둬라.”

김자홍 교수는 미간을 지그시 눌렀다. 어깨에서부터 피로감이 엄습해왔다.

이창용 회장이 입원한 이후, 담당 의료진은 하루도 제대로 쉬어본 날이 없었다. 지금 특실에 누워 있는 것은 한 명의 노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경제 그 자체였다.

국내의 모든 경제 전문가와 종사자들이 숨을 죽여 이창용 회장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진성그룹이 철저히 정보 통제를 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당치도 않는 악성 루머들이 판을 쳤다.

이창용 회장은 이미 죽었다더라.

심폐 소생 장치로 심장만 뛰게 하고 있는 거라더라.

주식 작업이 모두 끝난 뒤에 심폐소생장치를 떼어낼 거라더라.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엄밀히 말해 이창용 회장은 뇌 손상이 의심되는 코마 상태에 빠진 것이지, 뇌사가 아니다. 식물인간에 한 발쯤 걸치고 있는 상태라 해야 할까.

이서나는 절대로 식물인간 발표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룹 안정만 생각하면 차라리 죽더라도 확실한 게 낫다. 식물인간이라는 변수는 어떤 불똥을 양산할지 모른다.

“조금 아쉽네요.”

“뭐가 말이냐?”

“재작년 그 한서진 환자 말이에요. 그 환자의 체내에서 합성된 면역 효소, 그걸 계속 연구했다면 이창용 회장님한테 사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췌장암과 뇌 질환은 전혀 달라.”

“사실 그 효소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잖아요. 어떤 식으로 응용이 가능했을지는 모르는 거죠.”

그때를 생각하면 김자홍은 지금도 그저 아쉬웠다.

구체적인 기능은 알 수 없지만, 암세포를 말끔하게 몰아낸 것은 그 효소의 작용이 틀림없었다. 계속 연구했더라면 암 정복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기획조정실의 호출을 박은 박현준 차장은 잔뜩 굳은 얼굴로 복도를 걷고 있었다.

‘왜 나를?’

그룹 기조실에서 자신을 부르다니.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다.

진성제약 사내에서 근무하는 자신은 하청업체를 상대하거나 병원을 상대로 직접 영업을 뛰는 일이 없다. 당연히 리베이트 같은 것에 얽힐 일도 없었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그룹 기획조정실에서 직접 호출을 하다니. 대체 무슨 일일까.

‘설마…….’

짚이는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번에 걸쳐 한 청년의 의뢰를 받아 의약 물질을 제조해주고, 합이 35억의 거액을 챙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됐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조에 사용한 화학 재료는 특별히 값비싸거나 중요한 품목이 아니었다. 폐기로 위장한 재고 조작도 완벽했고, 애초에 값싸고 흔한 재료 품목이 소량 비었다고 문제시 될 일도 없었다.

‘혹시?’

그렇다면 그 청년이 그룹에 그 일을 찔렀을 경우의 수뿐인데, 이것도 말이 안 된다. 뒤늦게 35억이 아까워서 그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 의약 물질은 그 자체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으니까.

“박현준 차장입니다.”

“아, 어서 오세요. 나 김성일 실장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기획조정실장은 50대 초반의 사근사근한 이미지를 지닌 남자였다.

그는 친절한 표정이었지만 박현준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날카로운 칼이 찌르고 들어올지 모른다.

“음…… 다름이 아니라 진성제약에서 내부고발이 들어와서요. 어찌 보면 우리 권한 밖이지만 아무래도 제약업 특성상 사실관계는 조사해야 할 것 같아서 불렀습니다.”

“내부고발이라고요? 어떤…….”

“별 건 아니고, 얼마 전에 60평형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던데요. 그것도 일시불로 잔금을 치르시고요. 대출 없이.”

박현준은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지금 돈을 풍족하게 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조실에서 냄새를 맡은 건가?

김성일 실장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해서 주변 가족 조사를 해봤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집안 재산 같은 것은 없더라고요. 박 차장님 재산이나 연봉이야 뭐 뻔한 수준이고, 대체 10억이나 되는 돈이 갑자기 어디서 생겨서 그런 큰 아파트를 샀을까요?”

“그건…….”

“아무리 봐도 돈 나올 구멍이 없는데, 혹시 로또나 경마라도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간단하죠. 당첨금 수령 내역이라도 보여주시면 아무 문제 없이 사정 종결 처리 됩니다.”

박현준은 식은땀을 흘렸다.

생각지도 못한, 어이없는 이유였다. 큰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이유만으로 내부고발이 들어오고, 또 기조실에서 의심의 눈길을 보내다니.

갑자기 김성일의 표정이 엄하게 변했다.

“잘 아시겠지만 제약업이라는 게 언제나 거래처 리베이트의 유혹에 시달리는 직종 아닙니까. 지금 박 차장님이 그런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애초에 제 직위와 권한 내에서는 리베이트가 들어오고 말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물론 박 차장님 사정은 이해합니다. 그럼 그 돈이 대체 어디서 났습니까?”

“…….”

“그것만 소명하시면 됩니다. 아주 간단해요.”

박현준은 긴장감이 입술이 타들어갔다.

특별히 돈 자랑을 한 적이 없건만, 큰 아파트를 샀다는 것 때문에 동료나 상사 중 누군가가 질투를 한 게 틀림없었다. 역시 퇴사하고 몇 년쯤 지난 뒤에 샀어야 했나?

억울했다. 이런 사소한 이유로 리베이트 의혹을 받아야 하다니.

엄밀히 말해 자신의 행위는 회사에 대한 불법행위가 맞지만, 따지고 보면 몇 푼 하지도 않는 원재료 횡령과 사사로이 제조설비를 사용한 것뿐이다. 그건 손실이라고 할 만한 수준도 되지 않는데.

박현준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박성일 실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끄덕이고는, 서류철을 펼치고 보란 듯이 넘겼다.

“박 차장님이 관련된 모든 서류 자료를 샅샅이 뒤져보느라 기조실 직원들이 나름 고생을 좀 했습니다. 여기 보면 두 번에 걸쳐 특정 원자재들을 폐기 처리한 내용이 있네요. 작년과 재작년에 각각 한 번, 신기하게도 폐기 처리한 원자재의 종류가 완벽하게 똑같아요. 중요한 원자재는 아니지만 어쨌든.”

“…….”

“이거,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독사의 눈동자가 입맛을 다시듯이 노려보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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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미수급 딱지도 완벽히 수거 완료!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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