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167화 (167/609)

00167  그 환자 그 교수  =========================================================================

타르타로스 2차 패치 작업이 무사히 끝났다.

하드웨어가 워낙 괴물이다 보니 그에 어울리는 OS 체계를 잡아나가는 것도 벅찬 작업이었다. 가끔 실리콘밸리의 인력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서진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기로 했다.

지금 사무소의 인재들도 한국 최고다. 단지 불리한 환경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성능 최적화는 이제 끝났고.”

2차 패치 작업의 주요 골자는 하드웨어의 성능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것이었다.

최고의 수재들이 열과 성을 다한 덕에, 디폴트 상태에서 50엑사플롭스였던 성능이 60엑사플롭스까지 뛰어올랐다. 소프트웨어 조율만으로 20%의 성능 증가를 보인 것이다.

“근데 얘로 당장 뭘 하지?”

막상 곧바로 생각나는 게 없다.

원래는 USL과 미스릴의 상관관계 분석에 이용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타르타로스를 다른 사람 손에 타게 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럽다.

“본격적으로 뭔가 계산 테스트가 필요한데. 뭘 하지?”

곰곰이 생각하던 한서진은 불현듯 창 밖을 내다보았다. 화창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문득 오늘 아침 보았던 기상 일보가 생각났다.

“오늘 비 온다고 했는데 짱짱하네.”

기상 예보가 틀리는 거야 어디 하루 이틀이겠는가. 한서진은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날씨 예측이나 해볼까? 테스트로는 딱이겠네.”

기상 예측은 위성 등 다양한 관측장치를 통해 얻은 종합 데이터를 수퍼컴퓨터로 계산해서 이뤄진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정확한 기상 예측을 위해 3자 교류 협정을 체결하여, 기상 관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공유에는 어디까지나 관측 데이터에 한하며, 최종 계산은 각국이 별개로 한다.

쉽게 말하자면 조금이라도 오차를 줄이기 위해 타국의 관측 데이터도 겸사겸사 참고하겠다는 의도였다.

한서진은 대학 부속 기상 연구 기관을 통해, 한국 기상청의 관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제공받기로 했다. 연간 5억 원의 금액을 약속하자 기상청은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중요한 국가 기밀도 아니고 기상 관측 결과를 공유해주는 것쯤이야, 연간 5억 원의 예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어차피 학술 지원을 위해 한국대에 제공하고 있던 관측 정보를 한서진에게도 나눠주도록 추가 허락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상청 입장에서는 앉은 자리에서 5억이 공짜로 생긴 것이다.

“날씨는 갑자기 왜?”

“새로 만든 녀석 있잖아요. 한 번 성능 테스트 좀 제대로 해보려고요.”

“기왕 테스트 할 거면 핵융합 시뮬레이션이나 돌릴 것이지, 무슨 날씨 예보냐.”

“요즘 날씨 하도 많이 틀리잖아요. 그래서 한 번 재미삼아 해보는 겁니다.”

박효산은 툴툴거리면서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기 것으로 하겠다는데.

“그럼 언제부터 결과 받아볼 수 있냐?”

“이미 시작했어요. 지금도 실시간으로 계산 중입니다.”

“오늘 저녁 날씨는 어떻대?”

“소나기 엄청 쏟아진대요.”

“무슨 소리야? 날씨 어플에는 해 쨍쨍하다는데. 강우 확률 5%야, 인마.”

박효산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하고는 타박했다.

“내일도 비 온단 소리 없는데, 그 놈 계산 잘못한 거 아니냐?”

“어, 정말 그런가?”

한서진도 자신 없어 했다.

타르타로스의 괴물 같은 성능은 믿지만, 아무래도 날씨 예측에는 단순히 빠른 연산 속도뿐만 아니라 올바른 분석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수십 년 이상 축적된 노하우에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랬는데…….

“쏟아지는데요?”

“…….”

박효산은 말문이 막힌 채 연구소 밖을 내다봤다.

오후 6시, 밖에는 말 그대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지금이 봄이 아니라 장마로 착각될 정도다.

민망해진 박효산 교수는 헛기침을 했다.

“거, 5분 전만 해도 맑던 하늘이 갑자기 왜 이런대. 하여간 기상청 놈들은 제대로 날씨 예측하는 게 없어.”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갑작스러운 소나기 폭우 때문에 난리가 났다. 강우 확률 5%였기에 누구도 비가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이야, 하필 기가 막히게 서울만 딱 이러네.”

“그러네요.”

절묘하게도 서울 지역에만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약 20분 정도 그렇게 시원스럽게 쏟아 부은 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졌다.

“고놈 신통하네. 첫 출전부터 홈런일세.”

한서진은 왠지 모를 자부심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박효산이 신기한 듯 다시 물었다.

“내일 날씨는 어떻다냐? 내일도 비 온대?”

“잠시만요.”

한서진은 스마트폰으로 타르타로스에 접속해서 내일 날씨 결과를 요청했다. 곧바로 예측 결과가 스마트폰에 전송되었다.

“일단 비는 안 온대요. 기상청 결과랑 같네요.”

“기상청 의문의 1승이군.”

“근데 기온이…… 좀 이상하네요.”

“기온이 뭐? 왜 이상해?”

한서진은 자신 없다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낮 기온이 최고 25까지 치솟을 거래요.”

“뭐? 무슨 여름이야?”

박효산은 어이가 없었다. 봄에 무슨 낮 기온이 25도까지 올라?

한서진은 자신이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지 어처구니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첫타에 홈런 날렸으니 다음 타석에는 죽 쓸 수도 있죠. 분석 알고리즘 기존 기상청 것을 쓰긴 하는데, 그래도 좀 손을 보고 그래야겠어요. 애초에 걷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녀석이잖아요.”

“하긴, 오늘 저녁 소나기 예측만 것만 해도 한 건 한 거지. 기상청 녀석들도 못 잡은 건데.”

둘 다 내일 예측 결과를 믿지 않았다.

이 선선한 봄에 무슨 낮 기온이 25도를 찍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소리다.

그러나 다음 날…….

“점심 먹고 들어오는데 쪄 죽는 줄 알았다. 봄 날씨가 왜 이래?”

“지금 다들 덥다고 난리예요. 아니, 초봄에 무슨 25도까지 올라가요?”

“우리나라 봄 가을이 점점 없어진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아직 4월도 안 됐다고.”

당연하게도 기상청은 이와 같은 이상 온도를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에서도 한국의 이상 기온에 대해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들로서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던 것이다.

낮 최고 기온 25도를 찍은 이상 기후는,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 급격히 선선해졌다. 정상 봄 기온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람들은 온난화 효과로 인한 이상 기온 해프닝이라 치부했고, 기상청은 이런 거 하나도 예측 못하냐며 욕을 먹었다.

그렇게 이상 기온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지만, 두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놈 진짜 신통방통한데. 벌써 두 번이나 장외 홈런 쳤어. 대체 무슨 분석 모듈 쓰냐?”

“그냥 기존 기상 분석 모듈 갖다 쓰는 건데요.”

“관측 데이터도 기상청에서 가져다 쓰는 거지? 하드웨어 성능만으로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나?”

“그런가 봐요. 아무튼 며칠 더 지켜봐야겠어요.”

그 뒤로 한서진은 며칠을 더 지켜봤다.

그러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타르타로스는 한 치의 틀림없는 예보를 해냈다.

반면 기상청은 50% 이상 틀린 예보를 남발하며, 역대급 비난의 목소리에 두들겨 맞고 있었다.

박효산 교수도 며칠 간의 결과에 놀라워했다.

“한 번도 안 틀렸어?”

“네.”

“거참, 신기하네. 나도 그놈 때문에 기상 예보 계속 확인했는데, 이놈들이 절반 가까이 틀리더라고. 정줄을 놔도 이렇게 놓을 수가 없는데, 그놈은 한 번도 안 틀려?”

“그러게요. 아예 제가 기상청에 예측 결과를 제공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네요.”

물론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나 박효산의 얼굴이 돌연 심각해졌다.

“기상 관측 데이터, 우리 학교 기상 연구 기관을 통해서 제공받는 거라 했지?”

“네, 기상청과 직접 교류하는 건 아닙니다. 대신 기상청에는 연 5억을 주기로 했죠.”

기상청에서 그 중 얼마를 떼어서 한국대 부속 기관에 제공하기로 했다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한서진이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연 5억은 그에게 있어 먼지 같은 돈이었다. 일반인이 부담하는 ATM 수수료보다 못한 돈이다.

“그럼 이렇게 하자. 예측 결과를 너 혼자만 알지 말고, 우리 학교 부속 기관에도 제공해서 공시하는 거야.”

“우리 학교에요?”

“좋은 정보는 공유하는 게 좋지. 그렇다고 기상청에 무턱대고 제공하면 반발도 있겠고, 또 아무래도 부담도 있으니. 하지만 학생이 독자적으로 분석한 예측 결과를 학교 기관과 공유하는 건 문제 없지 않겠냐?”

“흠, 그러네요. 재밌겠어요. 한 번 해봐야겠어요.”

어차피 한서진이 말을 꺼내면, 담당 기관 교수도 두 팔을 벌리며 환영할 것이다. 이미 한서진은 일개 대학생이 아니라, 한국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총장보다 더 영향력이 컸다.

“한서진 학생, 예측 결과를 우리 연구실과 공유하고 싶다고요?”

“네, 제가 요즘 제 개인 수퍼컴퓨터로 분석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예측률이 쏠쏠하더라고요. 같이 공유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우리야 좋지요.”

예상대로 교수 이하 연구진은 두 말 없이 환영했다.

그리고 놀라우리만치 정확한 예측 결과에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예보 정확도 100%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떤 선진국도 이렇게 정확하게 날씨를 예측하지는 못한다.

“정말 대단해요!”

“Z7은 역시 다르구나. 우리 연구실도 빨리 도입해야 하는데, 학교 측에서 시스템 리소스를 할당해주지 않으니.”

연구원들은 답답해서 가슴을 쳤고, 한서진은 머쓱했다. Z7로는 이런 성능을 내지 못하는데…….

‘진짜 타르타로스가 괴물인가?’

귀가한 한서진은 보안방에 들어섰다. 몇 중으로 된 합금 잠금 장치를 열고, 타르타로스 앞에 섰다.

“어? 뭐지?”

그 순간 그는 보고 말았다.

푸르스름한 빛의 에너지가 타르타로스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모여들었다가 빠져 나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수천, 수만 가닥이 넘는 빛의 선은 그 끝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세상 끝까지 뻗어나가는 듯했다.

‘설마 에테르를?’

저것은 틀림없는 에테르의 움직임이었다. 통찰안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에테르는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잠깐? 그럼?’

퍼뜩 어떤 생각이 스쳤다.

타르타로스는 기상청과 같은 관측 데이터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기상청과 달리 매번 정확한 결과를 내고 있다.

혹시 타르타로스는 관측 데이터에 담긴 에테르의 움직임을 읽고 분석하는 것은 아닐까?

에테르는 만물 어디에나 존재하는 미지의 힘이다. 그런 에테르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고 분석한다면, 날씨 100% 예측도 가능한 게 아닐까?

“확인해야겠어.”

그는 서둘러 관측 데이터를 꺼냈다. 만약 정말 에테르의 움직임이 담겨 있고, 타르타로스만이 그것을 해독할 수 있는 거라면, 통찰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젠장, 안 보이네.”

아쉽게도 실패했다. 관측 데이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에테르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지금 내 능력이 미숙해서 안 보이는 걸 수도 있어. 타르타로스만 읽을 수 있는 에테르 움직임이라면…… 좋아!”

가설이지만, 타르타로스만이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에테르의 움직임이 있다면?

한서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타르타로스를 궁극적으로 어떻게 운용하면 좋을지 가닥이 잡히기 시작했다.

“마력의 도움 없이 에고 주얼 일만 개를 엮어 유사 상급 마력석을 재현한 것은 대단하지만…….”

케르베로스. 이곳에서는 에고 주얼이라 부르는 물질이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성능은 비슷하다. 최소한의 사고 능력을 가진 보석으로, 지역 순찰 등 단순한 행정업무에 주로 사용하는 녀석이다.

그런 에고 주얼을 일만 개나 엮어 자연스럽게 활동하게 한 것은 실로 대단하다. 그 정도면 레노지안에서도 귀물로 통하는 상급 마력석에 준하는 위력이다.

상급 마력석.

진정한 고급 마법은 상급 마력석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보통 마법과 상급 마법을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에테르 보석 기둥을 제조하는 가장 기초 단위이기도 하다.

날씨마저 자유자재로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능, 에테르 보석 기둥을 만들 수 있는 권원이다. 그걸 가지고 고작…….

“날씨 예측이나 하고 있다니.”

왕은 침울했다.

============================ 작품 후기 ============================

초룡을 타고 다니는 왕이 한서진의 새 차를 부러워하는 것은 말이죠.

마치 999,999,999석을 가진 부자가 1되를 가진 거지의 쌀바구니를 부러워하는 심리와 비슷합니다.

딱지를 탐하며 반짝반짝 닦는 노예의 탐욕과는 넘나 비교도 안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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