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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150화 (150/609)

00150  과거와 현재  =========================================================================

배당은 기업 가치를 측정하는 중요 요인 중 하나다.

배당금이 높다는 것은 수익이 높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기업의 재정이 그만큼 건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슈나우저, 코카 스패니얼로 컴퓨터 반도체 시장의 패왕이 된 SJ인더스트리의 첫 배당 소식에 월가가 일제히 술렁였다.

주주가 4명밖에 없는 SJ인더스트리는 아직 상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한 기업 내부 사정을 알아내기 어려웠다. 돈을 쓸어 담은 것은 아는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쓸어 담았는지는 외부에서 알기 어려웠다.

월가 투자 전문가들은 이 기회에 SJ인더스트리의 재정 상태를 정확히 알아내겠다는 듯이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았다.

내친 김에 SJ인더스트리는 작년 한 해 동안의 순이익을 발표했고, 월가는 뒤집어질 듯이 놀랐다.

“순이익이 900억 달러라고?”

작년에 설립한 회사, 그것도 본격적인 영업은 4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무려 900억 달러의 순이익을 낸 것이다.

근래 실리콘 밸리에서 터진 최대의 잭팟이었다.

배당액은 450억 달러.

1%, 2%의 지분을 가진 정지원과 칼 루이스는 각각 4억 5,000만 달러, 9억 달러의 배당액을 쥐었다. 10.5%의 지분을 가진 크렘 회장도 47억 2,500만 달러의 배당액을 가져갔다.

그리고 86.5%의 지분을 가진, SJ인더스트리의 최대 주주이자 지주회사인 L국의 에스코너는 389억 2,500만 달러의 배당액을 가져갔다.

이 놀라운 배당 소식은 월가뿐만이 아니라 한국 증권가에까지 강타했다.

“참 신기해요.”

500억 달러의 현금이 생긴 게 불과 작년이다. 그리고 연초에는 특허 로열티로만 8억 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받은 389억 2,500만 달러의 배당액. 돈을 얼마 써보지도 못했는데 순식간에 9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자산가가 되었다.

여기에 SJ인더스트리의 지분, 케르베로스의 가치는 아예 산정되지도 않았다.

「너 정도면 이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탑클래스 부호라고 할 수 있지.」

“정말 실감이 안 나요. 재작년만 해도 수술비도 못 대서 허덕이고 그랬는데…….”

「수술비?」

정지원의 목소리가 문득 심각해졌다. 한서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저, 재작년, 그러니까 24살 때 죽을 뻔한 적 있습니다. 의사한테 시한부도 통보받았었어요.”

「저런…… 지금은 괜찮은 거지?」

“물론이죠. 깨끗이 완치됐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래도 참 다행이다.」

“기적이 있었거든요.”

한서진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진실을 보여주는 놀라운 힘, 통찰안. 그 기적을 얻은 뒤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변했다. 난치병을 치료했고, 최고 명문대에 입학했으며,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고,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아무한테도 말해선 안 되겠지. 정 팀장님이라 해도.’

한서진은 조용히 피식거렸다. 정지원뿐만 아니라, 한지혜나 송하나라 해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어둬야만 하리라.

‘잠깐, 근데 여기서 왜 송하나가 나와?’

퍼뜩 든 생각에 괜히 민망해진 한서진은 다른 질문으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럼 이제 해변에 있는 대저택 사시겠네요? 활주로까지 딸린 걸로요.”

「안 그래도 이미 계약하고 왔다.」

“와, 행동력 빠르시네요. 잠깐, 근데 활주로가 있다는 건 전용기가 있다는 건데…….”

「전용기야 예전에 샀지. 네가 지분 1% 줬을 때.」

“헉, 진짜요?”

아니, 그런 대단한 걸 구매하셨으면서 왜 아무 말도 없었대? 한서진은 놀라운 한편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그냥 4,000만 불짜리 조그만 놈으로 하나 샀어. 어차피 할부야.」

“헐……. 놀랍네요.”

정지원의 지름 스케일이 언제 이리 커졌단 말인가. 한서진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이래서 사람은 미국 물을 먹어야 한다는 것인가.

「나야 원래 비행기 조종하는 걸 좋아했거든. 어렸을 때는 파일럿이 꿈이기도 했어.」

“그러셨군요. 그래도 전용기까지 지르실 줄은…….”

「서진이 네가 너무 소박한 거지. 너도 이제 현금만 900억 불인데 좀 이것저것 쓰기도 하고 그래 봐.」

“이거 그래야겠어요. 저도 정 팀장님 본 좀 받아야겠는데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 한서진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뭘 지르면 되지? 뭘 사면 정지원이 잘 샀다고 뿌듯해할까?

“그러고 보니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의 소비욕은 꽤나 소박한 편이다. 최근 명품 의류와 가방을 꽤나 사들이긴 했지만,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송하나의 조언과 권유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혼자서 명품을 사러 다닌 적은 없구나.

“쇼핑이나 할까?”

한서진은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송하나가 연락이 없다. 거의 매일 톡을 주고받곤 했는데. 한 번에 길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짧게 자주 톡을 나누는 편이지만.

‘같이 가자고 해봐?’

한서진은 고민 끝에 톡 앱을 켰다. 그리고 친구 목록에서 송하나를 찾았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누구야.”

그는 전화를 수신거절했다. 그러자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또 수신거절을 했지만, 상대는 지지 않고 거듭 전화를 했다.

“누구지? 날 아는 사람인가?”

몇 번의 수신거절 끝에 지친 그는 일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지혜 너, 요즘 애들 사이에서 말 많은 거 알아?”

절친한 친구, 정유진을 만난 자리에서 한지혜는 뜬금없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커피를 쪽쪽 빨며 물었다.

“무슨 말?”

“기분 나빠하면 안 돼? 그리고 내가 이런 말 했다는 것도…….”

“걱정 말고 말이나 해보셔.”

“너 스폰 받는 거 아니냐고.”

“스폰?”

“그, 있잖아. 돈 많은 남자 물주 삼아서 용돈 받고 막 그러고 사는 거.”

“아아, 그거. 왜 그 이야기 안 나오나 했다.”

보통 여자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질색을 할 이야기지만, 한지혜는 아무렇지 않게 반응했다.

정유진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너 요즘 옷이랑 가방들 죄다 명품이잖아. 차도 포르쉐랑 레인지로버 번갈아 끌고 다니고. 그래서 그런 말 나오는 거 같아.”

“에휴. 너, 내가 뉴월드백화점 본점 이사랑 사귄 거 알지?”

“응, 알지.”

“알고 보니까 뉴월드그룹 회장 아들이더라. 재벌 2세.”

“헐, 대박.”

정유진은 하마터면 입에 대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릴 뻔했다.

한지혜는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 오빠가 사귀는 내내 명품 못 사줘서 안달이었어. 내가 칼같이 거절했지만.”

“그랬어? 하긴 네 성격에 그런 거 싫어할 만하지.”

“그런 내 성격에 스폰 같은 걸 할 거 같아? 더럽고 치사해서 안 해. 그딴 거.”

“안 하지. 나도 알지. 내 말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게 아니고, 그냥 그런 말이 나오고 있다고…….”

“알아. 내가 그런 질시 받은 게 어디 한두 번이야?”

한지혜는 태연히 반문하며, 두 손으로 자기 얼굴에 받침을 하듯이 댔다. 그리고 으스대듯 말을 이었다.

“쥐뿔도 없는 게 얼굴만 이렇게 잘났으니, 덜 생긴 것들이 오죽 질투가 나겠어. 안 그래?”

“기집애 졸라 재수 없다.”

“사실인걸 어떡해.”

“알지만 졸라 재수 없다. 이년아.”

두 여자는 서로 빤히 쳐다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낄낄거렸다.

한지혜는 키득거리면서 물었다.

“혜진이? 소진이? 해민이? 누구야?”

“셋 다. 그리고 정일이랑 석준이도. 그년들 말에 맞장구친 거긴 하지만.”

“헐, 셋 다? 그래도 하나쯤은 아닐 줄 알았는데.”

“그 세 년 요즘 엄청 끈끈하잖아. 근데 정일이랑 석준이는 갑자기 왜 그런대.”

한지혜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내가 찼거든.”

“아, 그런 일이 있었어? 근데 왜? 걔들 나름 괜찮은데.”

“나름 괜찮다고? 지금 나 매춘부로 만든 그 세 년 말에 맞장구 쳤다는데도 그 소리가 처나와?”

“아니, 그러니까 딱 그 전까지만 괜찮았다고.”

한지혜는 뒤로 크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별 건 아니고, 그냥 그때 나 남친 있었잖아.”

“…….”

“그래서 거절했지, 별다른 이유는 없어. 그래도 고맙게도 딱 아쉽지 않게 만들어주네. 안 그래도 지금 솔로라서 옛날에 걔들 고백 거절한 거 나름 아쉬워하고 있었거든.”

“나야 너 믿었지. 근데 정말 지금 그 옷이랑 차는 어떻게 된 거야? 로또라도 됐어? 혹시 알고 보니 친척 중에 재벌 어르신이 있었다던가?”

“그런 거 아니고, 오빠가 사줬어.”

“서진 오빠가?”

“응. 오빠가 요새 사업이 잘 되거든.”

한지혜는 은근한 목소리로 자랑하듯 말했다. 정유진의 얼굴에 대번 부러운 감정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좋겠다.”

“딴 사람도 아니고, 오빠님이 사주시는 건데 당연히 감사히 들고 다녀야지. 안 그래?”

한지혜는 보란 듯이 가방을 들고 흔들어 보였다. 밉지 않게 장난스러운 태도, 정유진은 쿡 웃었다.

“그럼 차도?”

“포르쉐는 오빠 차인데 내가 가끔 졸라서 끄는 거고, 레인지로버는 오빠가 사줬고.”

“대박. 그 포르쉐 10억인가 한다던데.”

“오빠 잘 나가는 사업가라니까. 덕분에 인간 한지혜, 요새 팔자 개폈다.”

“얼굴만 난 년에서 이제 얼굴도 난 년 됐네. 이제 좋은 집안에 시집만 가면 되는 거지?”

그 말에 갑자기 한지혜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난 왜 하필 우리 오빠와 남매로 태어났을까?”

“미친년아! 근친 로맨스 찍을 생각 하지도 마.”

“아니, 기왕이면 딸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잖아.”

“……아, 납득.”

한지혜는 기도하듯이 눈을 감고 두 손을 꼭 모아 쥐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만약 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어서 염라대왕이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면 꼭 이렇게 빌 거야. 우리 오빠 막내딸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하고. 장녀도 안 되고 차녀도 안 되고, 반드시 막내딸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바로 위 언니 자리는 나한테 양보해주라. 내가 정말 잘할게.”

“그건 너 이번 생에 하는 거 봐서.”

정유진은 빈 커피를 옆으로 치우며, 얼굴을 조금 더 바짝 들이댔다.

“그럼 너 이번에 복학하는 거야?”

“응, 오빠가 복학하래.”

“좋겠다. 오빠가 학비며 생활비며 다 대주겠네.”

“당연하지.”

“난 왜 그런 오빠가 없냐. 하아……. 그럼 집은? 아직도 그 원룸에서 살아?”

“작년에 오빠 집으로 이사했어.”

“그럼 오빠랑 같이 살아? 아무리 남매라지만, 그건 좀…….”

“집이 졸라 크답니다. 아, 크리스마스에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네. 그 집만 보여줬으면 그 세 년들이 그딴 소리 절대 못했을 텐데.”

“그렇게 커? 나중에 나도 한 번 구경시켜 줘.”

“알았어. 조만간 자리 잡을게. 인간 한지혜가 이렇게 오빠를 잘 만났다는 것도 한 번쯤 자랑해야지.”

“아유, 부러운 기집애.”

두 여자는 키득거리며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정유진은 구김 없이 밝은 한지혜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가난한 시절에도 그렇게 밝고 활발했는데, 지금은 얼굴에서 빛이 났다.

다른 친구들은 저렇게 밝은 아이를 왜 물어뜯지 못해서 안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잠시만. 나 오빠한테 전화 왔어.”

“얼른 받아야지. 다음 생에 오빠 막내딸로 태어나려면.”

“그래, 착한 카르마를 쌓아둬야 염라대왕님도 내 소원 들어줄 테니까.”

한지혜는 즐거운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오빠, 왜?”

「……지혜야.」

심상치 않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 불길한 예감을 느낀 한지혜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무슨 일인데?”

「좀 전에 엄마한테 전화 왔어.」

============================ 작품 후기 ============================

유진이와 지혜 수다 장면... 저 이런 거 너무 조아여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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