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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142화 (142/609)

00142  그리고 신년  =========================================================================

‘이건 크다.’

백철중은 자신만만한 한서진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신음했다. 아마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태연한 표정과 달리 백철중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칼라 시스템이 불러올 파급 효과에 관해서. 또한 한서진의 천재성에 관해서.

통신 시장의 판도 자체를 바꿔버릴 카드, H그룹이 단독으로 쥐기에는 너무 버거운 놈이었다.

그러나 백철중은 끝까지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다.

‘해본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할 수 있고, 해내야 했다. H그룹을 쌓아올린 이 두 주먹으로 못할 게 뭐가 있는가.

자동차와 조선. H그룹을 이끄는 양대 축이다. 그러나 이 산업은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치게 되어 있다.

미래를 생각하면 첨단 부가가치 산업으로 그룹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그것이 백철중이 오랫동안 놓지 않은 굳은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를 위한 큰 기회가 눈앞에 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알았네. 2차 테스트에 필히 참석하지.”

“감사합니다.”

“그러지 말게. 감사해야 할 건 나와 우리 그룹이니. 자네의 배려에 정말 감사하고 있네.”

그는 H통신이 하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했다.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하는 기대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부디 자신이 상상한 것이면 좋겠는데.

“그 다음은 내게 맡겨 주게나. 문제 없이 처리하지.”

2차 테스트는 백철중과 H통신을 추진하는 태스크포스 팀 주축 인원 열 명도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테스트에는 총 4천 대의 단말기가 사용되었다. 그중 1,500대는 기존 시장에 존재하는 타사 스마트폰에 칼라 칩을 탑재한 개조품이었고, 다른 2,500대는 음성 통화와 데이터 송수신 기능만을 탑재한 간이 공기계였다.

테스트는 전 지구적인 범위에서 치러졌다.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남미, 심지어는 무인 잠수정을 이용한 수중 공간까지 활용했다.

그 모든 단말기로 동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잡음 없이 원활히 연결되었다. 데이터 통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4천 대의 단말기가 초당 최고 1TB, 최저 800GB의 데이터를 주고받았음에도 자료 손실이나 지연이 없었다.

백철중도 실제로 이 결과를 눈앞에서 지켜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태스크포스 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통신 기술에 해박한 전문가들이기에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정말 놀라워!”

특히 태스크포스 팀을 놀라게 한 것은, 모든 단말기의 연결을 지휘하는 중계 서버의 부하율이 0.001%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중계 서버 한 대로 이게 가능한 겁니까? Z7이라 해도 이런 성능을 내진 못할 겁니다.”

그들이 경악하는 것은 당연했다. 4천 대의 단말기가 모두 쌍을 이루어 초당 1TB의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는데도, 중계 서버의 부하율이 0.001%라니.

“왜냐하면 중계 서버를 거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각 단말기는 서로 직접 연결되어 데이터를 주고 받고 있습니다. 단지 이 과정에서 중계 서버의 ‘허락’을 받을 뿐입니다.”

모든 단말기는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중계 서버의 허락 없이는 서로 통신 접속이 불가능하다.

“이론상으로는 1대의 중계 서버로 최고 10억 대의 단말기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김유빈의 차분한 설명에 태스크포스팀은 너나 할 것 없이 열띤 질문을 던졌다.

“그럼 서버가 모두 4대이니 40억 대의 단말기를 커버 가능한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3대의 서버는 중계 역할이 아니라 방호 역할을 합니다.”

“방호 역할이요?”

“시범을 보여드리죠. 칼라 통신망에 침투해서 특정 단말기 간의 대화를 도청하겠습니다.”

곧이어 대항군 해커 역할을 맡은 팀이 중계 서버에 침투를 시도했다.

“중계 서버에도 자체적인 보안 방화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방화벽이 가동되기 전에, 세 대의 방호 서버가 먼저 감지하고 대응합니다.”

외부 침투가 시도되자마자 세 대의 방호 서버에서 동시에 차단이 들어왔다. 침입은 미처 시도하기도 전에 중지되었다.

Z7의 시스템 일부 리소스를 이용해 구상한 고성능 침투 시스템이지만, 3대의 방호 서버는 손쉽게 차단한 것이다.

“이번엔 최악의 상황, 즉 1대의 방호 서버 제어권이 탈취된 상황을 가정해서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1번 방호 서버가 적으로 설정되었다. 처음에는 아군으로 인식하던 2번, 3번 서버는 곧 사태를 파악하고 동시에 1번 서버를 협공했다. 1번 서버의 데이터 유출은 2번과 3번 서버의 철저한 제지에 의해 원천 차단되었고, 두 서버는 힘을 합쳐 1번 서버를 고립시켰다.

“원격 해킹으로 뚫기 위해서는 방호 서버 두 대의 제어를 동시에 탈취해야 하지만, 그 정도까지 되면 이미 관리자가 모를 수가 없죠.”

김유빈은 뿌듯해서 덧붙였다.

“사실 완벽한 해킹 방어란 존재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민간 통신 시스템 보안으로는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비공개 테스트가 끝나고, 백철중은 진심을 담은 소감을 말했다.

“잘 봤네. 그저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군.”

“좋게 봐주시니 저도 기쁩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나오겠지만…… 국내에 한해서는 내가 확실히 사업을 굳힐 수 있네.”

한서진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오히려 그게 빠를 것이다. H그룹이 정재계에 구축한 인맥의 파워는 어마어마한 것이니.

“지분은 어떻게 할 텐가? 기간산업이니만큼 정부에도 최소 20%의 지분은 양보해야 하네.”

“그럼 저는 총 지분의 51%를 갖겠습니다.”

“……쉽지 않을 게야. 정부는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지분을 분산시키려고 할 걸세.”

“그거야 그룹에서 방법을 찾아주셔야지요.”

“한 번 찾아보지. 통신사업법에 파고들 틈이 있는지.”

“부탁드립니다.”

무미건조한 말에 백철중은 쓴웃음을 지었다.

“진지하게 부탁하는 얼굴은 아니군.”

“누군가에게 애걸해야 할 기술은 아니니까요.”

“그렇지.”

오히려 한국 시장에만 가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술이다. 백철중은 할 수만 있다면 이 기술에 큼직한 날개를 달아 온 세상을 훨훨 날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나라는 결코 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굳건한 빗장을 열기 위해서는 옷을 모두 벗다시피 해서 갖다 바쳐야 할 터이고, 그래서야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 아닌가.

“글로벌 컨소시엄은 어떤가? 장담은 못하지만, 그 방법이라면…….”

“굳이 외국에 널리 진출할 마음은 없습니다. 한다면 미국 시장 정도나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미국, 미국이라.”

그 또한 가시밭길이리라. 그만큼 칼라 통신망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니.

잠시 생각하던 백철중은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확실한 성공 모델을 보여줘야겠군. 그래야 자네의 미국 진출이 쉬워지겠지.”

한서진은 소리 없이 웃었다. 사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백철중의 각오가 의미있게 느껴졌다.

“한서진 대표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입니까?”

정지원으로부터 칼라 통신망의 개요를 듣고 난 크렘 회장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적인 투자의 귀재, 그는 간단한 개요만으로도 칼라 통신망이 가진 위력을 알아보았다.

정지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도 한 대표의 끝을 알지 못합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합니다. 이 사람은 테슬라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결코 과언이 아니군요.”

크렘은 침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에는 제법 심각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건 너무 사업 규모가 큽니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군사적인 활용 가치가 높습니다. 단순히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적지않은 반발이 뒤따를 겁니다.”

적지않은 반발. 크렘으로서는 상당히 겸손한 표현을 사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지원은 그가 품은 우려의 실체를 똑바로 느끼고 있었다.

“로비도 한계가 있습니다. 자칫 워싱턴이 움직일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

“워싱턴을 확실히 안심시키는 게 어떻습니까? 시민권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정지원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크렘은 그 짧은 행동에 담긴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

“저는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만, 그것을 한 대표에게 어떤 식으로든 감히 강요하고 싶지는 않군요. 한 대표가 먼저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원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크렘은 조용히 끄덕여 보였다. 단단한 말투에서, 정지원이 얼마나 한서진에게 경외감을 품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의 정신이 흐트러질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내 인맥이 제법 되니, 아직까지는 워싱턴을 다독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칼라 통신망 사업은 반드시 미국을 중심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워싱턴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한국 시장은 그저 실용화 테스트 단계일 뿐입니다.”

“그 점, 워싱턴에 분명히 전달해두지요.”

칼라 프로젝트 기초 작업이 마무리되자, 한서진은 직원들에게 4일 간의 유급 휴가를 주었다.

“나흘 뒤까지 사무소 문 닫을 테니, 안 나오셔도 됩니다.”

“뭔가 아쉽습니다, 대표님.”

“……아니, 그렇게 퀭한 눈으로 그런 말씀하시면 설득력이 없는데요.”

밤낮으로 야근에 철야에 몸을 혹사해놓고, 뭐가 그리 아쉽다는 걸까.

‘역시 돈의 힘이란…….’

아무튼 사무소는 나흘 동안 문을 닫게 되었다. 한서진도 오랜만에 모든 작업에서 손을 놓고 푹 쉬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데 송하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지금 회사죠? 바빠요?」

“아니, 집에 가는 중이야.”

「어, 이 시간에요?」

“프로젝트 큰 거 하나 일단락해서 나흘 동안 휴가야.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 전부.”

「저한테 연락하시지 그랬어요. 저 지금 심심한데.」

목소리에서 희미한 애교가 느껴졌다.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즐거운 웃음이 나왔다.

“그럼 하나 너, 나 옷 좀 골라줄래? 내가 옷 고르는 센스가 영 없어서.”

「바로 준비할게요. 저번에 갔던 뉴월드 본점으로 갈까요?」

“아니, 나 뉴월드는 앞으로 안 가려고. H백화점으로 가자.”

「제가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솔직히 H백화점은 뉴월드에 비하면 조금 빈약해요.」

“괜찮아. 상관없어.”

「그럼 H백화점 본점에서 봐요. 저 도착까지 한 시간 정도 걸릴 거 같아요.」

“내가 지금 너희 집 근처로 갈게. 삼십 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

「네, 맞춰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한서진은 곧장 차를 돌렸다. 백철중 회장의 저택 근처에 도착하자 송하나가 톡 메시지를 보냈다.

「저 XX사거리에 있어요.」

마침 거의 다 와가는 중이었다. 한서진은 XX사거리로 향하다가 송하나를 발견했다. 차를 세우자 그녀가 얼른 조수석에 탔다.

“그동안 엄청 바쁘셨나 봐요. 연락도 잘 안 되고.”

“좀 큰 프로젝트 하나 하던 게 있어서. 이제 일단락 돼서 좀 여유가 나. 바톤 넘겼거든.”

“다행이에요.”

송하나는 밝게 웃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이윽고 그녀가 큰 결심을 한 듯이 입을 열었다.

“저기, 오빠. 혹시 이번주 토요일에 바빠요?”

“글쎄, 근데 왜?”

“우리 아빠 생신이거든요. 혹시 와주실 수 있나 해서요.”

============================ 작품 후기 ============================

이번 작품에서는 가급적 미국과 정보기관 등의 등장을 억제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이 활동을 안 한다는 건 아니고... 적어도 출연을 최대한 커트하는 방향으로...

그래서 사업 기반을 처음부터 미국에서 시작한 거구요.

출연진이 너무 많으면 출연료 때문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요.ㅜㅜ

실탄프로덕션은 영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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